< 백투백 >
2042시즌 월드시리즈를 치르는 양 팀에는 시대를 지배할 만큼 압도적인 재능을 가진 세 명의 선수가 있었다.
첫 번째는 당연히 제리 페이지였다.
이번 시즌을 통해 역대 32번째로 500홈런 고지에 올랐고, 510홈런을 때려내며 통산 홈런 역대 29위 자리를 차지했다.
노쇠화가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다음 시즌이 36세 시즌으로 2, 3년 정도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600홈런은 조금 어려워 보이지만, 같은 양키스 출신 명예의 전당 헌액자 레지 잭슨의 563호 홈런 기록에는 도전해볼 만했다.
‘Y-DO라...’
두 번째는 뉴욕 양키스의 에이스, 28세의 에디 카날레스였다.
시카고 컵스의 에이스 에릭 카날레스와는 연년생 형제로, 에디 쪽이 동생이지만, 선수로서의 평가는 동생이 반 수에서 한 수 정도 높았다.
이미 26세 시즌에 첫 번째 사이 영 상을 받았고, 28세 시즌인 이번 시즌 역시 아직 발표는 되지 않았지만, 사이 영 수상이 유력한 상황.
2회 이상 사이 영 상을 수상한 투수는 총 24명, 이 중 현역 투수 3명을 제외하면 도핑이 적발된 로저 클레멘스 제외 20명 중 15명이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
팀 린스컴, 데니 맥클레인, 브렛 세이버하겐, 코리 클루버, 제이콥 디그롬은 누적이 턱없이 부족해 탈락한 투수들.
카날레스는 23세에 첫 풀타임 선발 시즌을 치렀고, 이후 6시즌 동안 93승을 쌓아두었기에 28세에 이미 큰 부상이나 사고만 조심하면 명예의 전당 입성이 유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Y-DO의 장타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긴 하지만, 에디 카날레스의 파워도 만만치 않습니다. 힘과 힘의 흥미로운 맞대결이 될 것 같습니다.]
[카날레스는 참 대단한 투수죠. 사실, 양키 스타디움은 우완투수에게 굉장히 불리한 구장이에요. 그런데도 스트라이크 비율이 비교적 높은 편이거든요? 그래서 압도적으로 낮은 피안타율, 피출루율에 비해 피홈런이 많은 편이지만, 어디까지나 피안타율, 피출루율에 비해 많다는 거지, 절대적인 개수만 놓고 보면 평균 정도죠.]
야구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십수 년 동안 에디 카날레스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재능에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의문을 품기도 뭐했던 게 상위 리그에서 검증을 받아야 한다, 조금 더 큰물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소리를 들어도 올라가자마자 보란 듯이 잘해버리는데 의문을 품을 이유가 있었을까.
98마일의 강속구와 91마일의 파워 슬라이더, 신으로부터 선물 받은 두 가지 무기를 앞세워 타자들을 찍어눌렀고, 순식간에 리그를 지배하는 절대자로 군림했다.
아직 메이저리그 역사에 이름을 남긴 대투수들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향후 커리어에 따라 그렇게 될 가능성도 낮지 않은 엄청난 재능.
그게 바로 에디 카날레스라는 투수의 정체였다.
‘Y-DO에게도 내 파워가 통할까?’
하지만 이 순간, 카날레스는 메이저리그 데뷔전 바로 전날 밤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공에 의문을 가졌다.
영도는 시대를 지배할 만한 3인의 특급 재능에 속하지 않았는데, 영도 자체가 일반적인 선수들과는 많이 다른 과정을 통해 성장한 선수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자신감 넘치는 카날레스라 하더라도 메이저리그 데뷔전의 중압감은 엄청났다.
데뷔전의 카날레스는 혹시나 메이저리그에선 자신의 공이 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경기 초반 평소답지 않은 조심스런 피칭으로 일관했다.
[음... 카날레스의 공이 전반적으로 바깥쪽에 형성되고 있습니다. 평소 카날레스답지 않은 모습 아닙니까?]
[아무래도 Y-DO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겠죠. 실제로 Y-DO를 상대로 자신 있게 몸쪽 승부를 시도하는 투수는 거의 없어요. 카날레스보다 훨씬 공격적인 투수들도 Y-DO를 상대할 땐 바깥쪽을 노리죠.]
[하지만 카날레스는 다른 건 몰라도 커맨드가 좋은 투수는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로케이션을 제한하면 자신의 가장 큰 무기를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렇죠. 카날레스 정도의 압도적인 파워가 있다면 커맨드 그거 좀 안 좋아도 되거든요. 스트라이크는 언제든 원할 때 던질 수 있는 투수니까 존 안으로만 꽂으면 돼요. 그런데 지금처럼 스트라이크 존을 넘나드는 정교한 제구는 다른 것에 비해 조금 약한 편이죠.]
데뷔전 때는 두어 차례 나온 실투가 상대 타자의 배트를 밀어내며 내야 플라이, 혹은 범타를 유도하면서 자신감을 찾았다.
그리고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가 과감하게 스트라이크를 꽂아넣으며 승리를 따냈다.
이후 양키 스타디움의 위엄을 느끼며 어느 정도 공격성을 덜어내긴 했지만, 여전히 카날레스는 공격적인 피칭을 메인으로 하는 투수였다.
무지막지한 파워와 스터프를 앞세워 과감하게 꽂아넣는 스타일로 여기까지 올라온 투수.
아무리 위대한 투수라 할지라도 모든 걸 잘할 순 없었다.
일반적으로 놀란 라이언이 톰 글래빈보다 조금 더 높은 평가를 받지만, 볼넷이고 나발이고 일단 욱여넣던 극단적 파워 피처 라이언이 집요하게 구석으로만 공을 던져 구심의 스트라이크 존마저 넓혀버리는 컨트롤 아티스트, 극단적 피네스 피처 글래빈처럼 공을 던졌다간 평균 자책점의 절반 이상을 밀어내기 실점으로 채우게 될 것이었다.
‘피홈런도 적지 않은 편이고, 홈런을 무서워하지 않는 성격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것도 아닌가?’
메이저리그를 지배하는 전성기의 투수마저 자신의 공을 던지지 못하고 피해가게 하는 선수.
애초에 시대를 지배하는 선수와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새로 쓴 선수 사이에는 분명한 격차가 있었다.
‘아마도 팀에서 양키 스타디움 문제도 있고 하니까 바깥쪽 위주로 던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겠지.’
카날레스는 전략분석팀의 분석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들의 보고서를 잘 따르는 것으로 유명했다.
직접 연구, 분석하고 궁리하며 경기를 준비하는 영도와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
물론, 전력분석팀에 들어가는 돈이 어마어마하다 보니 당연히 완성도는 선수 개인이 노력하는 것보다 뛰어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분석팀은 선수 본인이 아니었다.
그동안은 카날레스의 재능을 이겨낼 만한 타자가 거의 없었기에 전력분석팀에서 특별한 요구를 할 필요가 없었지만, 누가 봐도 확실히 위에 있는 영도가 등장하자 바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바깥쪽!!’
그냥 냅다 꽂던 평소와 달리 정교한 제구가 필요한 상황이었기에 스터프를 살짝 떨어뜨린 상태였다.
그리고 바깥쪽 위주의 로케이션을 가져갔지만, 처음부터 커맨드와 컨트롤이 아주 정교한 투수는 아니다 보니 조금이라도 몰리는 공이 아예 없을 순 없었고.
그리고 영도는 바깥쪽 공도 곧잘 쳐내는 선수였기에 조금이라도 몰리면 의미가 없었다.
‘살짝 늦었나. 그래도 이 정도면...’
그래도 워낙 대단한 재능의 소유자였기에 타이밍이 완전히 맞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현재 영도의 기량이 카날레스의 재능보다는 확연히 위에 있었기 때문에.
[우측으로 강하게 밀어친 타구! 역시! 역시 양키 스타디움의 우측 담장이 일을 내고 말았습니다! 양키스의 걱정이 현실로 이어지면서 솔로 홈런! 월드시리즈 1차전부터 솔로 홈런을 터뜨리며 포스트시즌 5경기 연속 홈런, 그리고 포스트시즌 통산 19호 홈런으로 알버트 푸홀스, 넬슨 크루즈와 동률을 이룹니다! 공동 4위!]
[음... 살짝 몰렸죠? 살짝 몰리긴 했어도 바깥쪽으로 구사된 공이기는 한데, Y-DO잖아요. Y-DO에게 이 정도 빠진 공은 전혀 문제 되지 않아요. 밀어도 얼마든지 2층, 3층 관중석을 노릴 수 있는 타자인데... 뺄 거면 완전히 뺏어야죠.]
전력분석팀의 보고서를 자신의 상황에 맞게 취사선택해 받아들이는 노력이 부족했던 에디 카날레스는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홈런으로 그 대가를 치르고 말았다.
차라리 자신의 색깔을 그대로 보여줬다면 상대적으로 투수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야구의 특성상 잡아낼 확률이 조금이나마 더 높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자, 일단 잊어야 합니다. 에이스로서 월드시리즈 1차전 1회부터 홈런을 내줬다는 게 기분이 많이 나쁘겠지만, 지금 헤매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Y-DO가 WAR 13.4를 기록하면서 베이브루스의 아성을 깨고 WAR 역대 TOP 3에 들어간 역대 최초의 선수가 되었죠. 하지만 그런 Y-DO에 가려져서 그렇지, 센시오 리코도 8.0을 찍었어요. 이번 시즌 전체 3위입니다!]
[Y-DO에 가려졌다는 것, 그게 시즌 내내 리코에게 큰 힘이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원래 이 정도 성적을 찍으면 가장 강하게 견제받아야 하는데, Y-DO 때문에 말도 안 되게 두 번째로 밀리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그게 우산효과고요. 시대를 지배할 재능이 올타임급 재능과 함께 뛰면서 우산효과를 받으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센시오 리코가 보여준 거예요.]
지금 이 경기장에 존재하는 시대를 지배할 재능을 보유한 세 명의 선수.
세 번째 선수는 바로 센시오 리코였다.
풀타임 3년 차에 메이저리그 1루수 역대 39위의 WAR을 찍으면서 포텐셜이 만개하기 시작한 특급 재능.
재능만 놓고 보면 에디 카날레스는 물론 제리 페이지에게도 밀릴 게 없었다.
그런데도 영도가 너무 미쳐버려서 시즌 내내 묘하게 견제에서 벗어나 있었고,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비야구인 위주로 구성된 양키스의 전력분석팀은 영도가 월드시리즈의 키맨이라고 판단, 영도를 분석하는데 대부분의 노력을 쏟았고, 이번에도 리코는 뒤로 밀려났다.
[어! 어어!! 작정하고 잡아당긴 타구가 우측 파울라인을 타고 크게 날아갑니다! 저기는 폴대까지 거리가 100m도 안 됩니다! 역시 이렇게 됩니다!! 우측 폴대를 때리는 센시오 리코의 백투백 홈런! 양키 스타디움에서 가장 가까운 펜스를 공략, 지극히 경제적인 홈런을 만들어냅니다!]
[이건 크죠! 이건 커요! 이번 시즌 신시내티 레즈는 Y-DO와 센시오 리코가 백투백 홈런을 터뜨린 8경기에서 전부 승리했거든요?! 두 선수가 동시에 홈런을 기록한 경기는 19경기인데, 19경기에서도 17승 2패예요!]
센시오 리코는 모든 현역 야수 중 양키 스타디움의 컨셉에 가장 완벽하게 들어맞는 타자였다.
96m의 짧은 거리와 낮은 펜스 정도는 적당히 빗맞혀도 넘길 만한 파워를 보유했고, 실제로 그런 식의 홈런을 때려냈다.
둘이 합쳐서 WAR 21.4는 1996시즌 켄 그리피 주니어와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기록한 19.8을 제치고 1927시즌 베이브 루스-루 게릭이 기록한 25.5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엄청난 기록이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두 번째로 뛰어난 듀오가 나란히 홈런을 때려내며 양키스의 에이스에게서 눈물을 뽑아냈다.
[시작부터 경기가 이상해집니다! 뉴욕 양키스의 방패와 신시내티 레즈의 창의 대결이 될 거라 예상했는데, 시작부터 뉴욕 양키스가 자랑하는 최강의 방패가 연달아 뚫리고 말았습니다.]
[레즈는 이 둘이 신을 내면 팀 전체의 분위기가 달아오르는 팀이거든요? 에디 카날레스, 지금이라도 정신 차려야 해요!]
[백투백 월드시리즈 우승을 향한 Y-DO의 도전! 일단 시작은 완벽합니다.]
[백투백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리는 Y-DO가 포함된 백투백 홈런이네요. 예, 뭐, 그렇다고요.]
메이저리그 전체 승률 2위로 이번 포스트시즌 들어 처음으로 원정에서 1차전을 치르게 된 신시내티 레즈.
하지만 양키 스타디움 원저은 오히려 이쪽에서 반갑다는 듯 1회부터 두 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영도와 리코의 활약에 따라 팀 분위기가 크게 널뛰는 레즈이기에 시작부터 레즈 덕아웃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 백투백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