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악의 제국 > (189/200)

< 악의 제국 >

뉴욕 양키스를 넘어 메이저리그의 또 다른 이름이 된 베이브 루스.

그리고 그런 ‘베이브 루스가 지은 집’, 양키 스타디움.

베이브 루스의 힘으로 1923년 개장한 구 양키 스타디움은 토마스 에디슨이 발명한 역사상 최초의 콘크리트 구조물이었다.

개장 당시에만 해도 백인 부촌이었던 구 양키 스타디움 주변 지역이 인종 차별 금지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흑인 빈민가가 되면서 뉴욕 양키스는 흑인과 백인을 가리지 않는 어마어마한 팬덤을 거느리게 되었다.

뉴욕 못지않은 대도시 시카고는 백인의 팀 컵스와 흑인의 팀 화이트삭스로 나뉘어서 그나마 컵스가 메이저리그에서 항상 TOP 5에 들어가는 인기팀이지만, 양키스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과 대비되는 결과.

그래도 뉴욕이 워낙 무지막지한 도시라 히스패닉과 아시안을 기반으로 하는 뉴욕 메츠 역시 빅마켓은 될 수 있었다.

베이브 루스와 살인 타선의 시대, 조 디마지오의 시대, 요기 베라와 미키 맨틀, 로저 매리스의 M&M포를 지나...

공중파 방송국 CBS가 구단주로 취임한 뒤, 양키스는 암흑기를 겪었다.

시대의 흐름이 쫓아가지 못했고, 심각한 팀 수뇌부의 인종주의로 베이브 루스에 이어 역대 야수 NO.2로 꼽히는 윌리 메이스와 500홈런 유격수 어니 뱅크스 등 뛰어난 흑인 선수들을 전부 놓쳤다.

언제나 양키스에 밀려 콩라인에 그쳤던 LA 다저스가 재키 로빈슨 이후 흑인 선수들을 대거 수급, 순식간에 60년대 최강의 팀으로 거듭난 것과 정반대의 결과.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보스’, 조지 스타인브레너였다.

사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보스 체제의 양키스는 37년 동안 7회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그쳤다.

보스 이전 양키스가 70년 동안 20회나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것에 비교하면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이전의 성적이 더 좋았다.

실제로 심각하게 파탄 난 막장 성격과 좁쌀만큼도 없는 인내심, 죽 끓는 듯한 변덕에 소인배 기질까지 갖춘 보스 때문에 4, 5번은 더 우승할 수 있었던 시기를 놓쳤단 말도 나왔다.

하지만 양키스 팬들은 보스를 사랑했고, 보스를 혐오하는 사람들도 ‘악의 제국’은 보스가 세웠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 구단주, 그가 말한 “팬들이 양키스에 쓴 돈은 마땅히 양키스를 위해 재투자되어야 한다”는 말처럼 ‘이익 창출’보다 ‘성적’을 중시하는 철학, ‘아름다운 패배’라는 말을 정면에서 비웃는 승리에 대한 집착.

보스 덕분에 60년대 급격히 흔들리며 평범한 구단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던 양키스는 ‘악의 제국’이라는 이름과 함께 다시 화려하게 부활, 나머지 29개 구단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위상과 입지를 자랑하며 군림할 수 있었다.

조지 스타인브레너의 양키스는 페레즈 회장 체제 레알 마드리드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엄청난 돈을 퍼부어 스타 플레이어들을 싹쓸이했고, 그에 비해 생각만큼 많은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세상 모든 스타 플레이어는 양키스로, 레알 마드리드로 향한다는 그 이미지 덕분에 투자한 것보다 훨씬 큰 수익이 잡혔다.

덕분에 뉴욕 양키스는 ‘악의 제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고, 보스가 1,000만 달러에 인수한 양키스는 현재 최소 50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자랑하는 공룡 구단이 되었다.

1,000만 달러를 만든 조지 스타인브레너 소유의 선박회사는 1993년 일찌감치 파산했지만, 그보다 훨씬 먼저 스타인브레너 가문의 핵심 사업은 양키스 관련 사업으로 바뀌어 있었다.

[‘조시 스타인브레너가 지은 집!’ 양키 스타디움에서 2042시즌 월드시리즈 1차전이 펼쳐집니다! 3년 만의 월드시리즈가 펼쳐질 양키 스타디움은 이미 한 달도 더 전에 매진되면서 월드시리즈를 향한 뜨거운 관심을 증명했습니다.]

그래서 팬들은 구 양키 스타디움을 ‘베이브 루스가 지은 집’이라 부른 것처럼 지금의 양키 스타디움을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지은 집’이라 불렀다.

베이브 루스가 양키스에서 차지하는 위치, 야구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한 찬사는 없었다.

보스를 혐오하는 일부 팬들은 ‘데릭 지터가 지은 집’이라 부르기도 했지만, 메이저는 어디까지나 전자였다.

“Y-DO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봐둬야지! 어차피 다음 시즌이면 우리 팀에서 뛸 텐데, 자격은 확인해야 하니까.”

“Y-DO에게 자격 증명을 시킨다고!? 오, 마이 갓! 이봐, 친구. 혹시 이번 시즌에 어디 아프리카라도 가 있었나?”

“놉! 하지만 아무리 Y-DO가 대단하다, 대단하다, 해도 양키스니까!”

“하여튼... 극렬 양키들이랑 대화가 통할 리 없지.”

사실, 스타인브레너가 구단주 자리에서 물러난 2010년 이후 뉴욕 양키스는 과거처럼 공격적인 투자로 스타 플레이어들을 쓸어담진 않았다.

훨씬 부족한 두 아들 중 행크는 알렉스 로드리게스와의 계약 때문에 밀려났고, 할은 아버지와 달리 냉철한 경영을 보여준다며 사치세를 덜어낼 때까지 허리띠를 졸랐지만...

지출 감소보다 수익 감소 폭이 훨씬 크다는 것이 드러나며 실패를 인정하고 부랴부랴 급하게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었다.

뉴욕 양키스는 ‘악의 제국’다워야 했고, 제국답지 못한 양키스는 팬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걸 보스는 알았지만, 아들들은 알지 못했던 것.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고, 과거 팬들은 물론 선수들 사이에서도 ‘야구, 그 이상의 구단’ 소리를 들었던 뉴욕 양키스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여전히 양키스는 2위 보스턴 레드삭스와도 엄청난 격차를 자랑하는 최고의 팀이었지만, 이전만큼 아예 다른 세상에서 군림하는 정도까진 아니었다.

“흥! 양키스가 부르면 당연히 와야지! 어차피 돈도 우리만큼 부를 팀 없을걸? 양키스가 작정하고 돈 쓰면 어떤 팀이 우리한테 비벼?”

“그건 잘 모르겠지만, 작년, 올해 팀 페이롤을 엄청나게 덜어내긴 했지.”

그래도 여전히 양키스 팬들은 양키스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NO.1 플레이어는 당연히 양키스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는 것 역시 그런 자부심 중 하나였다.

비록 보스 사후 30년이 지나면서 기존 팬들도 적응하고, 당시를 모르던 젊고 어린 팬들도 유입되면서 예전만큼 오만한 태도는 많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부심이 강한 팬덤이었다.

2010년대 중반 할 스타인브레너는 양키스는 양키스다워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은퇴했지만, 계약 기간은 남아있던 마크 테셰이라, C.C. 사바시아, 그리고 빌어먹을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계약이 끝나고 80M의 페이롤이 빠진 2020시즌부터 다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덕분에 과거만큼은 아니더라도 최근 20년 동안 5차례나 월드시리즈 타이틀을 차지하며 ‘악의 제국’이란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은 보여주고 있었다.

[2040시즌 사이 영 위너, 그리고 이번 시즌에도 유력한 사이 영 위너 후보로 거론되는 에디 카날레스가 1회 초 마운드에 오릅니다.]

[메이저리그 전체 승률 1위와 2위가 월드시리즈에 만나다니... 생각보다 거의 벌어지지 않는 일이거든요? 진정한 월드시리즈죠, 이런 게. 이제 시작인데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 막 설레고 그러네요.]

월드시리즈니까 당연히 엄청난 관심이 몰렸다.

영도의 홈런 레이스가 사회 현상,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덕분에 시즌 내내 야구 인기가 1998년 이후 가장 높은 지표를 기록하며 하늘을 찔렀으니 대단원을 마무리하는 월드시리즈도 당연히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압도적인 최고 인기팀, 뉴욕 양키스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으니 당연히 흥행이 보장된 월드시리즈였다. 

수많은 양키스 팬들도 겉으로는 작정하고 돈 싸움하면 양키스가 패배할 리 없으니 당연히 우리 선수가 될 거라 말하지만, 혹시라도 영입에 실패할까 봐 매일 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한 영도를 보고 싶어서 경기장을, TV 앞, 컴퓨터 앞을 찾았으니 시청률도 어마어마.

21세기 이후 가장 큰 화제성과 흥행이 보장된 2042시즌 월드시리즈.

드디어... 플레이볼.

***

[양키 스타디움은 슬러거들에게 상당히 유리한 구장 아니겠습니까? 보통 슬러거들은 대부분 당겨치는 타자들이 많아서 좌타자에게 유리하고 우타자에겐 다소 불리한 구장이라고 말하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선 진짜배기 슬러거들에겐 그런 것 없이 그냥 유리한 구장입니다.]

[밀어쳐도 어렵지 않게 2층 관중석에 타구를 떨어뜨릴 수 있는 타자라면 우타자라도 상관없죠.]

베이브 루스와 루 게릭, 빌 디키, 요기 배라, 로저 매리스, 돈 매팅리, 호르헤 포사다, 레지 잭슨은 좌타자.

미키 맨틀과 버니 윌리엄스는 스위치 히터.

선수 시절 활약을 통해 영구결번된 선수 중 타자는 14명, 그중 우타자는 디마지오, 스탠튼, 지터까지 3인에 불과했다.

구 양키 스타디움을 그대로 따서 지은 경기장이 지금의 양키 스타디움이고, 구 양키 스타디움의 별명이 ‘베이브 루스가 지은 집’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

구 양키 스타디움은 베이브 루스, 루 게릭 등 좌타자에게 유리한 구장이었다.

‘확실히 우익수 뒤 펜스가 가까워 보이는데. 실제로는 상대적으로 가까운 정도지만, 펜스가 저렇게 낮아서야...’

영도는 우타자지만, 밀어도 장외 홈런을 때릴 수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파워의 소유자.

좌측 담장이든 우측 담장이든 일단 가깝거나 펜스가 낮기만 하면 방향은 가리지 않았다.

양키스의 좌측 폴대까지의 거리도 짧은 편이고, 좌중간이 살짝 깊기는 하지만, 중견수 뒤 펜스까지는 또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다.

이 정도면 영도에겐 꽤 마음에 드는 구장이었다.

[양키 스타디움이 오히려 홈팀 양키스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신시내티 레즈의 ‘레드 머신즈’ 중 센시오 리코와 유리 파체코, 두 선수 모두 좌타자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Y-DO는 좌타자, 우타자 이런 분류를 이미 넘어선 타자입니다.]

[21홈런을 기록한 레온 퀸타나도 좌타자죠. 양키스도 제리 페이지, 마이클 키니, 카를로스 쿠야테, 조지 모리스까지 20홈런 이상을 기록한 좌타 거포들이 있지만, ‘레드 머신즈’와의 펀치력 대결에선 아무래도 밀리죠.]

[제리 페이지도 어느덧 35세, 기량이 조금씩 떨어지는 중이고 키니는 중장거리 5툴 플레이어에 가깝습니다. 모리스도 중장거리 타자, 쿠아테는 32홈런의 거포지만, 타율이 0.223에 불과해서 아무래도 무게감이 좀 떨어지는 느낌이죠.]

[양키스 타선에서 20+홈런을 기록한 타자는 5명이죠. 페이지가 33홈런, 쿠야테가 32홈런, 키니 24홈런에 모리스 22홈런, 우타자인 세실 코아테스가 27홈런. 5명이 더해서 138홈런입니다. ‘레드 머신즈’는 셋이서 166홈런에 다섯을 만들기 위해 퀸타나와 버드의 홈런을 더하면 204홈런이 되죠.]

역대 32번째 500홈런 타자, 지난 시즌 영도가 64홈런을 때려내기 전까지 마지막 50홈런을 기록했던 슬러거. 

2035, 2040시즌 두 차례 MVP를 수상한 현역 최고의 타자 중 한 명.

우투좌타의 제리 페이지가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에만 하더라도 양키 스타디움은 뉴욕 양키스의 든든한 홈구장이었다.

하지만 제리 페이지도 어느덧 35세.

이번 시즌 33홈런을 기록하면서 WAR 4.7의 좋은 성적을 기록하긴 했지만, 분명한 하락세였다.

이번 시즌 양키스 타선은 둘이 합쳐 82도루와 출루율 0.378을 기록한 리그 최고의 테이블 세터, 키니와 아담 소아즈 듀오를 페이지-모리스가 불러들이는 형태였다. 

코아테스와 쿠야테의 공갈포 뒤에는 OPS 0.781의 견실한 타자 빌 와튼이 하위 타순의 테이블 세터를 맡아 상위 타순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맡았고.

홈런 군단이라기보다 짜임새가 장점인 타선. 

이는 쏟아지는 홈런에 비해 2루타, 3루타 개수는 평균 이하인 양키 스타디움에선 불리한 구성이었다.

좌우를 가리지 않는 절대적인 홈런타자 영도를 가운데 두고 앞뒤로 좌타 거포들이 배치된 레즈 타선이 오히려 양키 스타디움에 적합했다.

심지어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 역시 눈에 띄게 작은 사이즈로 인해 홈런이 많이 나오는 대신 2루타, 3루타가 적은 구장이라 양키스가 자랑하는 테이블 세터진은 진가를 발휘하기 어려웠다.

물론, 워낙 절대적 인기를 자랑하는 팀이고, 그만큼 홈팬들의 응원도 강렬하기에 아무리 유리한 타선 구성이라도 양키 스타디움 원정이 부담스러운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건 사실이었다.

[91마일의 슬라이더가 파체코의 몸쪽으로 파고듭니다! 헛스윙 삼진! 에디 카날레스 특유의 파워 슬라이더는 반대 손 타자에게도 위력을 발휘합니다!]

[카날레스의 파워는 상상을 초월하죠. 다만, 그게 이제 Y-DO에게도 통해야 할 텐데...]

하지만 이번 시즌 뉴욕 양키스를 승률 1위에 올린 건 리그 4위의 선발진과 5위의 불펜, 즉, 투수진이었다.

타선 생산력 역시 8위로 상위권이라 어느 하나 약점이 없는 탄탄한 전력 덕분에 전체 승률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레즈는 전체 1위의 타선, 6위의 선발진에 비해 불펜이 13위로 살짝 밀리는 편이었고.

어쨌든 약점이 없는 양키스에서도 가장 강력한 부분은 선발진이었고, 레즈는 메이저리그 전체 역사에서도 TOP 10에 들어갈 만큼 강력한 타선이 최대 장점이었다.

결국, 이번 시리즈 역시 양키스의 마운드가 레즈의 타선을 얼마나 잘 막아내느냐에 시리즈 승패가 달려 있었다.

양키스 역시 리그 9위의 나쁘지 않은 타선을 보유했지만, 이번 시즌의 레즈와 붙으면 언제나 초점이 그렇게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서는 Absolute-Zero!! Y-DO의 2042시즌 월드시리즈 첫 번째 타석입니다.]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에서 4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며 타격감에 물이 오른... 아니지, Y-DO를 보면서 타격감에 물이 올랐다고 하면 안 되죠. 그냥 언제나의 타격감을 유지한다고 설명하는 게 맞겠죠.]

레즈의 타선을 막아낸다는 건 곧 영도의 공격력을 최대한 억제하는 데 성공한다는 뜻이었다.

이번 시즌 신시내티 레즈의 타선은 ‘레드 머신즈’가 이끈다고들 하지만, 영도는 그중에서도 특별했으니까.

뉴욕 양키스의 에이스, 에디 카날레스와 영도의 월드시리즈 1차전 첫 번째 맞대결.

이 대결에 많은 게 달려 있었다.

< 악의 제국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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