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이스 >
[지난 시즌에 이어 두 시즌 연속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마주친 Y-DO와 LA 다저스. 이번에도 월드시리즈는 Y-DO가 가게 될지, 아니면 다저스가 설욕에 성공할지...]
[각각 로키스와 내셔널스를 스윕하고 올라온 양 팀. ‘레드 머신즈’를 앞세운 레즈의 창 vs ‘판타스틱4’ 다저스의 방패]
[어느덧 33세. 마지막을 향해가는 ‘돈 라이스 시대’. 과연 이번 시대의 다저스 에이스는 다저스의 숙원을 이뤄줄 수 있을까.]
이번 시즌 역시 반대편에서 올라온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상대는 LA 다저스였다.
언제나처럼 칼을 갈고 포스트시즌을 맞이한 돈 라이스가 코트니 매든과의 사이 영 위너 출신 에이스 맞대결에서 승리하면서 워싱턴 내셔널스를 스윕하고 올라온 것.
‘제기랄. 나한테는 이런 시기가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돈 라이스는 게일 해니건과 드래프트 동기였고, 당시 드래프트에서 고졸 출신 중 1, 2순위를 차지한 선수였다.
즉, 해니건과 동갑이라는 뜻이었다.
라이스는 생일이 4월이었고, 해니건은 10월이라 동갑이긴 하지만, 해니건이 33번째 생일을 앞둔 지금 라이스는 이미 33세 6개월을 향해가고 있었다.
시즌 분류는 6월 30일의 나이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해니건은 2042시즌이 32세 시즌, 돈 라이스에겐 33세 시즌이었다.
투수에겐 33세의 저주라는 게 있었다.
2010년대 후반에 발표되어 현재는 정설이 된 연구에 따르면 타자는 25세, 투수는 데뷔 직후부터 하락세가 시작된다고 했다.
메이저리거 나이별 평균 구속으로 봐도 27세 시즌과 33세 시즌에 직전 시즌보다 거의 1마일에 가깝게 평균 구속이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 몸이 대체 언제까지 버텨줄지 몰라. 어쩌면 매 시즌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고.’
돈 라이스는 큰 부상은 한 차례밖에 없었고, 성공적으로 재기에 성공했지만, 데뷔 초반에 비하면 평균 구속이 4마일 가까이 떨어진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잔부상도 많은 스타일이라 30대 중반이 된 지금은 언제 드라마틱한 하락세가 와도 놀랍지 않을 정도.
실제로 이번 시즌 돈 라이스는 여전히 에이스다운 모습은 보여줬지만, 과거의 언터처블한 모습을 잃었고, 사이 영 수상자 예상에서 부상으로 시즌을 접었던 2035시즌 이후 7년 만에 TOP 5 밖으로 밀려나는 수모까지 겪었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92.3마일을 유지했던 평균 구속도 1마일 이상 하락해 91.2마일까지 떨어졌다.
그래서 더욱 간절했고, 다른 잡생각은 끼어들 여지도 없었다.
내셔널스전 보여준 피칭에선 비장미가 느껴졌을 정도.
메이저리그의 슈퍼 에이스, 돈 라이스는 이번 시즌 포스트시즌에 모든 걸 걸었다.
“제기랄... 로키스는 대체 왜 그딴 쓸데없는 짓을 해서. 괜히 Y-DO 외의 다른 선수들 기까지 살려버렸잖아.”
“Y-DO는 어떻게 하든 잘할 선수인데 말이죠. 아무리 견제하고 방해해도 잘할 선수인데 그 선수 빼고 다른 선수들까지 살아났으니...”
이번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다저스의 모든 관계자들이 로키스에게 이를 갈았다.
지난 시즌 한 번 당해보았기에 영도를 막을 수 없다는 진리를 뼈에 새긴 팀이 다저스였다.
하지만 로키스는 영도를 노골적으로 견제하는 전략을 들고 왔고, 덕분에 파체코와 리코를 포함한 레즈 타선의 나머지 선수들이 살아났다.
레즈와의 시리즈를 준비해야 하는 다저스 입장에선 최악의 상황.
심지어 언제나 듬직하게 마운드를 지켜줬던 다저스의 중심이자 핵심, 절대적 에이스 돈 라이스마저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이니...
여러모로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날카로운 슬라이더로 삼진! 돈 라이스, Y-DO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삼자범퇴로 1회를 마무리합니다!]
[그렇죠! 이게 돈 라이스죠! 돈 라이스가 예전 같지 않다? 맞아요,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예전 같지 않은 돈 라이스도 슈퍼 에이스예요!]
[Y-DO가 삼진이 아주 적은 타자는 아닙니다. 리그 최고의 홈런 타자니까 당연한 건데, 그렇다고 삼진으로 돌려세우기 쉬운 타자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요! 세 자릿수 삼진을 당하긴 했지만, 그보다 볼넷이 훨씬 많은 선수예요. 선구안이 절대 나쁜 선수는 아니죠.]
“으랏차차차차차!!!!!!”
하지만 상처 입은, 노쇠화가 시작된 슈퍼 에이스는 시작부터 기어를 끌어올렸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영도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뒤 마운드 위에서 포효했다.
평소 거의 보여주지 않는 모습이었는데, 팀 전체가 지난 시즌 영도에게 당한 것 때문에 움츠러든 것을 느끼고 분위기를 끌어올리려는 의도였다.
“좋아! 역시 돈이 최고라고!!”
“누가 감히 돈을 의심했지? 누구야!”
“누구인지만 알려주면 내가 제일 먼저 가서 혼내줄 거라고!! 으하하하!!”
이러니저러니 해도 돈 라이스는 다저스의 중심이었다.
라이스의 포효는 다저스 선수단을 깨웠고, 단숨에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다저스 선수단을 짓누르는 포스트시즌 공포증과 지난 시즌보다 1년 만큼 노쇠한 전력으로 인한 불안감은 여전했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의 분위기는 그런 것들을 전부 잊어버린 듯했다.
***
‘돈 라이스. 역시 좋은 투수라니까?’
신시내티 레즈의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 선발은 당연히 유형근의 차지였다.
그리고 돈 라이스는 유형근에게 큰 영향을 끼친 선수였다.
강속구와 날카로운 슬라이더, 그리고 써드피치로 체인지업까지.
레퍼토리도 비슷했기 때문에 메이저리그의 슈퍼 에이스 돈 라이스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휴, 영도 형한테 들은 그대로네. 얼마나 열을 내고 있으면 18.44미터 떨어진 여기까지 뜨겁냐.’
강한 멘탈과 확고한 자기만의 세계로 언제나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투수.
다저스 소속 선수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포스트시즌에 대한 엄청난 집착을 보여주고 있었다.
타석에서도 이를 전혀 숨기지 않았고, 담이 작은 투수라면 마운드에 서는 것만으로도 움츠러들 만큼 집착과 열기가 바깥 온도에 영향을 미쳤다.
[절묘하게 구석을 찌르는 95마일 강속구! YG의 패스트볼이 H-STAR를 돌려세웁니다!]
[하하하, 한국 출신 선수가 양 팀 합쳐서 4명이나 되네요? 일단 첫 타석은 후배인 YG가 승리했습니다.]
[94마일대의 강속구, 두세 가지 궤적의 날카로운 슬라이더, 평균 이상의 체인지업까지. 마치 한창 좋았을 때의 돈 라이스를 보는 듯한 퍼포먼스입니다.]
[음... 객관적으로 보면 살짝 노쇠화가 왔다는 지금의 돈 라이스보다도 부족한 부분이 있는 선수죠. 하지만 레즈 입장에선 너무나도 사랑스러울 거예요. 이런 걸 기대하고 영입한 선수가 아니고, 이런 모습을 기대할 만큼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도 아니거든요.]
하지만 유형근은 오늘도 자신의 흐름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유형근은 돈 라이스의 마이너 버전 정도였다.
돈 라이스의 후계자라는 다저스의 2년 차 유망주, 페드로 케인과 비교해도 확실하게 위라고 말하긴 어려울 정도.
그래도 이번 시즌 유형근이 에이스급 활약을 보여줬다는 걸 부정할 순 없었다.
가끔 긁히는 날에는 전성기 돈 라이스를 떠올리는 게 이상하진 않을 만큼은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이번에는 수직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였습니다! 다저스 최고의 타자, 제임스 프레스톤마저 삼진으로 물러납니다! 세 타자 연속 삼진! Y-DO의 삼진을 YG가 바로 갚아줍니다!]
[와... 아까는 제가 YG는 전성기 돈 라이스는 물론, 지금의 돈 라이스보다도 부족하다고 했죠? 한 마디 보태야 할 것 같네요. 적어도 오늘의 YG는 전성기 돈 라이스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만큼 위력적이에요.]
“와우... YG! 훌륭한데? 무슨 일이야?”
“오늘 좀 긁히네. 기대해도 좋다고? 오! 영도 형! 1회 어땠어요? 완전 쩔었죠?”
“훌륭한데? KBO 때 모습이 보이던데.”
돈 라이스는 올해가 마지막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사력을 다해 공을 던졌다.
반면, 유형근은 평소와 크게 다를 것 없는 태도로 공을 던졌지만, 소위 말하는 긁히는 날이 찾아왔다.
그리고 KBO 시절부터 포스트시즌 등 큰 경기에 강한 면모를 보여준 선수이기도 했다.
영도와 성이 같다는 것마저 마음에 걸릴 정도로 예민해져 있는데 큰 경기에 강한 모습까지 영도와 닮았다?
안 그래도 영도와 다시 만났다는 것, 그냥 이 무대가 포스트시즌이라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선발에게 긁히는 날까지 찾아왔으니...
돈 라이스와 다저스 입장에선 뭔가 찜찜한 시작이었다.
***
‘그래. 돈 라이스 정도 되면 이렇게 나와줘야지.’
이를 갈고 나온, 이번만큼은 달라지겠다고 나선 돈 라이스와 긁히는 날을 맞이한 유형근의 투수전이 펼쳐지는 경기.
이름값에 비해 무너지는 경기가 너무 많아서 큰 경기에 약한, 새가슴의 대표로 꼽히지만, 포스트시즌의 돈 라이스는 크게 무너지는 경기만큼 돈 라이스다운 피칭을 보여주는 경기도 있었다.
오늘은 돈 라이스다운 피칭을 보여주는 중.
5.2이닝 2피안타 4탈삼진으로 무실점 피칭을 이어가다가 바로 직전 타자인 유리 파체코에게 세 번째 안타를 허용했지만.
영도의 타석에서도 돈 라이스답게 공격적으로 붙어왔다.
[슈퍼 에이스의 자존심을 보여주는 돈 라이스! 노골적으로 대결을 피했던 로키스 투수들과 달리 평소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돈 라이스에겐 자격이 있죠. 오늘은 정규시즌의 살짝 아쉬웠던 그 모습이 아니에요. 전성기의 향기가 느껴집니다.]
[나이를 거꾸로 먹은 듯한 돈 라이스, 나이를 거꾸로 먹은 돈 라이스를 떠올리게 하는 YG의 명품 투수전! 그런 의미에서 앞에 주자를 두고 등장한 Y-DO의 이번 타석이 중요하겠습니다.]
[양 팀 에이스들은 자기 역할을 100% 해내고 있어요. 그렇다면 이젠 핵심 타자들의 차례죠. Y-DO와 제임스 프레스톤, 두 선수의 활약이 필요해요.]
‘지난 시즌과 비교해도 차이가 있어. 에이스의 포스와 노련함 덕분에 공략하지 못하고 있지만, 공의 위력만 따지면 지난 시즌보다도 못하단 말이지.’
지난 시즌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만났을 때, 그때도 돈 라이스는 뛰어난 피칭을 보여주었다.
경기 중반 부상으로 마운드를 떠나서 그렇지.
그리고 엄청난 호투를 선보이는 오늘, 오히려 지난 시즌 챔피언십 시리즈보다 공의 위력은 떨어졌다.
굳은 각오에서 나오는 기백과 마지막을 생각하기 시작한 에이스의 포스가 낙폭보다 훨씬 큰 부분을 더해줬을 뿐.
기백과 포스를 이겨낼 수만 있다면 공의 위력 자체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아무리 전성기의 편린을 보여준다 해도 어디까지나 편린 정도였고, 4마일 가까이 떨어진 구속이 다시 올라온 것도, 슬라이더의 각도가 다시 날카로워진 것도 아니었으니까.
특히 다른 선수도 아니고, 다른 시즌도 아니고 이번 시즌의 영도라면 더더욱 감당할 수 있었다.
[바깥쪽으로 절묘하게 깔리는 패스트볼! 그리고 이를 끄집어내는 완벽한 스윙! 완벽한 공을 완벽하게 때려냈습니다! 그렇다면 이 타구는 어디까지 뻗습니까!?]
[잘 던진 공, 그리고 잘 때린 스윙! 그리고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
[펜스 상단을 살짝 훑으면서 넘어갑니다!! 홈런! 투런 홈런! 5회 말 2아웃 이후 오늘 경기 첫 번째 득점이 나왔습니다! 0의 행진, 이번 포스트시즌 최고의 투수전에 마침표를 찍는 Y-DO의 투런 홈런! 2042시즌 포스트시즌, Y-DO의 두 번째 홈런입니다!]
[에이스는 해줄 만큼 해줬고, 핵심 타자들이 해줄 차례다, 라고 말하자마자 바로 홈런을 때려버리네요. Y-DO가 언제나 보여줬던 것처럼 해줘야 할 때 해준 거죠!]
오늘의 돈 라이스는 그동안 팬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홈런을 맞았지만, 홈런을 맞은 공도 굉장히 절묘한 위치에 위력적으로 꽂혔다.
그저 오늘 회춘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도 돈 라이스는 저물어가는 선수였고, 영도는 이제 막 찬란하게 떠올라 역사상 그 누구보다 높은 위치에서 다른 모두를 내려다본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 에이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