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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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든 에레라라는 투수는 참 특이한 선수였다.

90마일을 겨우 넘는 느린 평균 구속, 구속이 느림에도 스트라이크 같은 볼로 타자를 유혹하는 능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아 한계가 뚜렷한 유형.

대신 원할 때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고 요즘 보기 어려운 정통 싱커와 쓰리 핑거 체인지업을 구사하는 유니크함, 싱커, 투심, 체인지업 등 맞춰 잡기에 특화된 구종들을 갈고 닦은 정상급 피네스 피칭이 장점이었다.

확실한 장점과 유니크함이 있지만, 뛰어난 투수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재능이 약간 부족한 투수.

그래서 선발 로테이션이 완성되지 않은 지난 시즌까지만 하더라도 로키스의 2, 3선발을 맡아주었지만, 실링이 훨씬 높은 커트 페니가 터지고 체사레 몬도를 데려오면서 이번 시즌 4선발까지 밀려났다.

[에레라 같은 투수가 있으면 감독은 참 편할 것 같습니다. 덴버 홈보이 출신으로 로키스를 너무 사랑하는 강한 충성심, 원정에선 4선발급이지만, 쿠어스 필드 성적으로만 따지면 역대 TOP 10을 노려볼 수 있는 확실한 장점까지. 로테이션을 운용할 때 활용도가 아주 명확하지 않습니까?]

[일단 쿠어스 필드 경기 위주로 등판시키면 자기 역할을 120% 해내는 선수죠. 특정한 역할을 맡기고 그렇게 활용하면 기량 이상의 성적을 찍어주는 선수. 감독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선수예요.]

4선발이지만, 쿠어스 필드 성적으로 한정하면 커트 페니에 이어 두 번째로 뛰어났다.

홉슨은 잘 알려진 대로 홈에서 훨씬 약했고, 체사레 몬도 역시 쿠어스 필드에서 신고식을 제대로 치렀다.

야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 콜로라도 로키스를 사랑했고, 단 한 번도 한눈팔지 않은 골수 팬이어서 그랬는지.

덴버에서 태어나 덴버에서 자랐고, 지금도 덴버에서 생활하는 홈 보이, 브랜든 에레라.

고향에 대한 애정이 유독 지극한 미국인의 특징과 홈에서 보여주는 강력한 모습 때문에 실력과 기량에 비해 훨씬 많은 사랑을 받는 선수.

콜로라도 로키스를 디비전 시리즈 탈락 위기에서 구해줄 선수로 선택받은 건 브랜든 에레라였다.

‘파체코 요즘 분위기 좋은데 가볍게 잡네.’

쿠어스 필드 한정으로는 어지간한 특급 에이스들보다도 성적이 좋은 투수가 에레라였다.

쿠어스 필드에선 2점대 초반 FIP를 찍는 사이 영 위너들도 3점대로 떨어지기 마련인데 에레라는 3점대 중후반 FIP를 찍는 투수인데도 쿠어스 필드에서는 오히려 3점대 중반으로 떨어졌으니까.

이게 선수 본인에게 좋은 평가인지는 모르겠지만, 해니건의 뒤를 이을 로키스의 차기 프랜차이즈 스타 겸 영구 결번 대상으로까지 언급되고 있었다.

기량이 적당히 뛰어난 편이라 커트 페니, 체사레 몬도와는 달리 최전성기에도 좋은 투수를 영입하기 어려운 중소마켓 로키스가 은퇴할 때까지 충분히 장기 계약으로 묶어둘 수 있는 몸값일 것이라 평가되기 때문이었다.

쿠어스 필드 스페셜리스트답게 에레라는 1회 초부터 알파로와 파체코를 가볍게 잡아내며 좋은 흐름으로 경기를 시작했다.

‘오늘은 그래도 기회가 좀 있겠는데.’

하지만 변수가 있다면 영도에 대한 대처법이 바뀔 수밖에 없는 타이밍이란 것이었다.

영도를 철저히 거르고 대신 파체코와 리코를 철저히 잡아내는 게 1, 2차전 보여준 로키스의 전략.

하지만 이는 완벽한 실패로 끝났고, 두 선수의 맹활약 속에 레즈는 손쉽게 1, 2차전을 가져갔다.

이렇게 되면 로키스도 영도를 대놓고 거르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평범한 다른 타자들처럼 상대할 순 없겠지만, 2아웃에 주자 없는 상황에서 1, 2차전이라면 걸렀겠지만, 지금은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에레라도 신중한 피칭을 이어갑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맞춰 잡는 투수들을 만나면 평소와 달리 극단적인 스윙을 보여주는 Y-DO가 어떤 타구들을 보여줬는지 그가 모를 리 없습니다.]

[그렇죠. 딱 Y-DO가 가끔 보여주는 막스윙으로 공략하기 딱 좋은 스타일의 투수니까요.]

에레라는 구위가 강력한 선수는 아니지만, 스트라이크 비율은 꽤 높은 선수였다.

본인의 장점이 미묘하게 흔들리는 뛰어난 무브먼트의 브레이킹 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패스트볼은 존의 경계를 보고 던지지만, 브레이킹볼은 과감하게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꽂아넣는 배짱이 있었다.

하지만 영도를 상대하면서까지 스타일을 유지하진 못했다.

맞춰 잡으려는 의도의 공이 존 안으로 들어오면 영도의 파워를 절대 이겨낼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조금 빠져도 넘길 수 있을 것 같은데.’

에레라는 영도가 꽤 좋아하는 선수였다.

동료들을 인간적으로 잘 평가하지 않고 야구 내적으로만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지만, 그래도 몇몇 선수에 대해선 호불호가 있었다.

불호의 대표가 발데마르 피자로라면 호의 대표는 해니건, 에레라, 유형근, 리코 정도.

넉살 좋고 유쾌한 스타일의 에레라는 나름 벽을 두껍게 세워둔 영도마저 월담을 일부 허락할 정도로 인간적인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대결하는 입장에서 투수로만 평가하자면.

그렇게까지 부담스러운 투수는 아니었다.

[가슴 높이로 빼는 공을 노리고 휘두릅니다! 많이 빠진 높은 공을 노렸는데도 쭉쭉 뻗는 타구!]

[자신의 파워, 그리고 쿠어스 필드의 고도를 믿은 걸까요!? Y-DO는 이렇게 될 거라 예상했을까요?]

[좌익수와 중견수 사이로 끝없이 뻗는 타구! Y-DO의 파워가 또 한 명의 피네스 피처를 울릴 것 같습니다! 그리고... GET-YA!! 드디어 Y-DO의 이번 포스트시즌 첫 홈런이 터집니다!]

[지난 시즌 메이저리그 역사상 단일 포스트시즌 최다 홈런, 최다 경기 홈런을 기록한 선수 아니겠어요?]

[다른 선수들이 300, 400타석에서 20개 조금 안 되는 홈런을 기록,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홈런 TOP 10에 이름을 올렸는데, Y-DO는 100타석에도 한창 부족한 타석 수로 14호 홈런입니다.]

[어유... 이번 시즌에도 월드시리즈까지 올라갈 수만 있다면 2시즌, 100타석 조금 넘는 타석 수로 TOP 10에 입성할 수 있겠는데요? 하여튼 파워가 참...]

영도의 홈런이 터진 순간, 콜로라도 로키스의 포스트시즌 플랜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망가지고 말았다.

영도를 거르고 파체코, 리코를 상대하는 전략은 두 선수의 맹활약으로 망가졌다. 

그게 망가지면서 조금 더 극단적인 부분을 완화한 전략도 영도의 홈런과 함께 망가졌고.

‘콕스 감독의 표정을 보니... 이대로 부드럽게 끝날 것 같은데.’

메이슨 콕스 로키스 감독은 유영도라는 대적 불가능한 절대적인 존재를 상대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온몸으로 깨달았다.

지난 시즌 영도를 활용하는 입장일 땐 포스트시즌에서 믿을 수 없는 폭주를 이어가면서도 로키스 전력으로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 기쁘지만, 본인이 공부하고 배워 온 야구와는 결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120% 이해했다.

영도는 수백 년을 이어온 야구라는 스포츠의 모습을 잠깐이나마 달라지게 하는 이레귤러였다.

마치 배리 본즈가 그랬던 것처럼.

“허... 이제야 지난 시즌의 우승이 이해되네. 왜 상대 팀들이 본인들 전력을 100% 발휘하지 못한 건지도.”

“Y-DO는 그런 선수죠. 같은 팀 동료들의 실력을 끌어내고 상대 팀 선수들을 찍어누르는. Y-DO와 함께 했던 지난 시즌의 기억 때문에 포스트시즌을 너무 쉽게 봤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랬나? 내가 기억하기로는 다들 Y-DO의 레즈와 만난다는 게 결정되었을 때부터 다들 내심 포기했던 것 같은데.”

“뭐, 그런 것도 있었죠. 포스트시즌의 Y-DO가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선수는 우리 팀엔 없으니까.”

***

“우릴 밟고 올라가는 거니까 꼭 우승해라. 내 주제에 너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기지만.”

“당연히 우승할 생각이다. 여기까지 왔고 메이저리그 전체 승률 2위인데 당연히 우승을 노려야지.”

역시 변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영도에게만은 장타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컨셉으로 디비전 시리즈에 임했던 로키스는 바로 그 영도에게 홈런을 허용하면서 동력을 잃었다.

에레라도 로키스의 홈 보이이자 차기 프랜차이즈 스타답게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6회 선두 타자로 등장한 영도에게 멀티 홈런을 허용하며 5이닝 3실점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이후에는 레드 머신즈의 쇼타임이었다.

파체코와 리코의 장타들이 터지고 영도 역시 2루타와 볼넷을 추가, 팀의 분위기를 끌어올렸고, 나머지 타자들도 이에 부응해 남은 4이닝 동안 7점을 추가, 10-6으로 승리하며 3연승으로 디비전 시리즈를 끝냈다.

“여기 팬들 보이지? 74홈런 때는 널 응원했지만, 포스트시즌에는 다르다고. 네가 이 사람들을 슬프게 만든 거야, 알아?”

“어쩔 수 없지. 마음이 좋진 않지만.”

“그러니까. 하지만 앞으로 며칠 더 슬퍼한 뒤에는 널 응원하겠지. 우리가 안 된다면 응원할 사람은 너밖에 없으니까.”

“그렇겠지. 언제나 고맙게도.”

“그럼 두 번 슬퍼하게 만드는 건 해선 안 되는 짓이겠지? 꼭 우승해라.”

“알았다니까.”

해니건을 비롯한 로키스 선수들, 그리고 팬들은 디비전 시리즈에서 탈락했음에도 크게 슬퍼하거나 하진 않았다.

당연히 슬프지만, 레즈와의 대진이 결정되었을 때부터 이미 어느 정도 예감한 일이었다.

이번 시즌 내내 그래 왔듯 로키스 팬들은 로키스가 없는 곳에선 영도를 응원할 것이었다.

신시내티 레즈가 아니라 영도를.

그리고 단기 토너먼트인 포스트시즌에서 영도를 응원한다는 건 곧 신시내티 레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응원한다는 뜻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번 시즌에도 지난 시즌만큼만 해주면 몸값이 하늘을 뚫겠는데? 이제 FA잖아?”

“아마도 그렇게 되겠지.”

“부럽다... 아마도 메이저리그 최초 6억 달러 계약은 나오겠지? 연평균 60M도 처음으로 넘기는 거 아냐?”

“... 당신도 10년 330M 계약 4년 더 남아있지 않나. 그리고 지금 신경 쓸 일은 아닌 것 같은데.”

포스트시즌에 집중하기 위해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하지만.

애초에 돈은 영도의 야구에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요소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시즌 후 시작될 FA 협상을 무시하긴 어려웠다.

메이저리그 최초의 총액 6억 달러 이상의 계약, 메이저리그 최초의 연평균 6,000만 달러 이상의 계약이 가능할 거라며 언론마다 설레발을 떨었으니까.

요즘 들어 메이저리그 최초, 최다 같은 수식어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고, 의식적으로 목표하기 시작했기에 시즌 후 FA 협상이 기대되긴 했다.

“일단은 월드시리즈 우승에 집중해야지. 그게 곧 더 좋은 계약 조건으로 이어질 테니.”

“크으... 이번에도 혼자 캐리해서 월드시리즈 우승하면 대체 몸값이 얼마까지 뛰려나. 나도 궁금하다. 새로운 역사를 눈앞에서 직관하는 거 아냐?”

그래도 지금은 포스트시즌에 집중할 때였다.

괜히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걸 미리 생각하다가 더 좋은 조건을 끌어낼 기회까지 잃어버릴 수 있을 테니까.

2042시즌 포스트시즌은 이제 겨우 디비전 시리즈가 끝났을 뿐이었다.

챔피언십 시리즈와 월드시리즈.

몸값을 높일 기회는 아직 최소 8경기, 최대 14경기 남아 있었다.

< 통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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