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럭키 세븐 > (180/200)

< 럭키 세븐 >

“어!! 어어어!!!”

“아버지, 아버지! 잠깐 피하세요, 제가 잡을게요!”

“할아버지!! 위험해요!”

“됐어, 이건 내 거야!!”

7대째 레즈 팬 가문의 5대 가주이자 아들과 손자들을 데리고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를 찾은 다니엘 쿠퍼.

골수 중에서도 골수 팬인 만큼 웬만하면 1루 내야석에서 경기를 관람하던 쿠퍼 가문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외야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영도의 77호 홈런이 쿠퍼 가문이 자리 잡은 외야석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70대의 늙은 아버지를 걱정한 아들 제임스 쿠퍼와 손자 벤슨, 코디가 비명을 질렀지만, 나이가 들었어도 다니엘은 골수 야구팬이었다.

골수 야구팬이 홈런볼을 피할 리가 있을까.

다니엘 쿠퍼는 혹시나 해서 끼고 온 글러브를 치켜든 채 영도의 홈런볼에 시선을 고정했다.

“우리 할아버지 거예요!!”

“할아부지, 할아부지 거!!”

빈자리 없이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의 관중석이 가득 찬, 일찌감치 티켓이 매진되고 암표 값도 수백 달러를 호가하는 경기.

당연히 영도의 홈런볼이 날아오는 위치에도 수많은 팬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쿠퍼 3대에겐 머릿수라는 훌륭한 무기가 있었다.

어린 나이가 무기인 벤슨, 코디는 주변의 팬들을 방해하며 할아버지를 도왔고, 아들 제임스는 아버지를 위해 아들들의 행동으로 인한 미안한 마음을 애써 숨기며 홈런볼 쟁탈전에 참여했다.

“으어어얽!! 잡았다!! 잡았어!! 여기 글러브에 Y-DO의 홈런볼이 들어있다니까!?!?”

“오오, 아버지!! 해내셨군요! 역시 우리 아버지!!”

“우와아, 할아버지! 나도! 나도 만져볼래요!”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뒤, 영도의 77호 홈런볼은 다니엘 쿠퍼의 글러브에 들어있었다.

73세의 노익장을 엄한 곳에, 하지만 야구팬들이 보기엔 가장 필요한 곳에 발휘한 다니엘 쿠퍼.

야구 팬이자 신시내티 레즈 팬 인생 어언 65년.

지금이 바로 최고의 순간이었다.

“우와, Y-DO 홈런볼!! Y-DO 홈런볼이다!!”

“아빠, 사진! 사진 찍어주세요!!”

“하하하, 아버지. 저희한테도 이런 일이 있네요?”

“그러게. 일단 하나 말해두겠는데, 벤슨과 코디가 달라고 해도 이건 절대 못 준다. 알지?”

손자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야구보다는 손자가 먼저지만.

이것과 그건 또 별개였다.

남자에겐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포기할 수 없는 게 있는 법.

다니엘 쿠퍼에겐 영도의 77호 홈런볼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저... 홈런볼에 잠깐 시간 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아...”

77호 홈런볼은 다니엘 쿠퍼에게도 중요한 공이었지만, 신시내티 레즈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공이었다.

사실, 굳이 따지자면 영도에게 가장 중요한 공이지만, 영도는 이런 것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 스타일이었으니까.

이미 73호 홈런볼부터 시즌 마지막 홈런볼까지 구단 명예의 전당에 전시한다는 조건으로 소유권을 넘겨준 지 오래였고, 레즈 구단 직원은 77호 홈런볼을 회수하기 위해 다니엘 쿠퍼를 찾았다.

“Y-DO를 비롯해서 원하는 선수를 말씀하시면 모든 사인 장비를 드리겠습니다. 100만 달러 상당의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 시즌권도 드릴 수 있습니다.”

영도의 이번 시즌 마지막 홈런볼은 대략 500만 달러에서 700만 달러 상당의 가치가 있을 거라 평가되었다.

그러니 100만 달러 상당의 시즌권과 각종 레즈 소속 선수들 사인 장비는 그리 비싼 대가도 아니었다.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의 시즌권은 가장 저렴한 게 연간 900달러, 가장 비싼 건 연간 7,500달러 정도였기에 100만 달러면 최소 133년에서 최대 1,100년 동안 무료로 신시내티 레즈 홈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다.

“음...”

다니엘 쿠퍼는 손자인 벤슨과 코디를 바라보았다.

영도의 77호 홈런볼을 들고 신나서 날뛰는 손자들을 보니 아무리 합리적인 조건이라 해도 쉽게 기부를 결정할 수 없었다.

“난 신시내티 레즈를 그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65년 차 팬입니다. 우리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증조 할아버지와 고조 할아버지도 신시내티 레즈의 팬이었죠.”

“하하하,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그보다 못한 조건이어도 기부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 손자들이 있어서...”

“아... 이해합니다.”

“100만 달러 상당의 시즌권도 좋고, 사인 장비도 좋지만... 우리 손자들은 어려요. 어린 아이들이라 당장 그 홈런볼을 내준다 하더라도 만족할 수 있을 만큼의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죄송하지만 133년의 최고급 시즌권과 사인 장비 정도로는 손자들을 설득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

비록 손자에게도 양보할 수 없다 말했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지 본인 소유로 집에 놔두고 손자들과 함께 추억하는 것과 아예 구단에 기부하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어느덧 70대가 된 지금 개인적인 욕심보다는 너무나도 사랑하는 레즈를 위해 기부하고 싶지만, 역시 손자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면 일단 내려가서 구단이랑 Y-DO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아, 예.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손자가 신경 쓰여서...”

“아니에요. 당연한 겁니다. 조금 더 좋은 조건을 들고 와썽야 하는 건데 저희가 죄송합니다.”

“아, 예...”

이런 상황에서 신시내티 레즈가 가져올 수 있는 최고의 무기는 역시 영도였다.

비록 센시오 리코나 토드 칸터 등이 레즈라는 팀에서 활약한 시간과 차지하는 의미, 비중이 더 클 수 있겠지만, 영도는 그런 것 다 떠나서, 팀에서의 의미 같은 것 다 떠나서 그냥 메이저리그 최고의 스타였으니까.

구단 직원은 다니엘 쿠퍼와의 대화를 끝내고 바로 덕아웃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어차피 승패가 중요한 경기도 아니기에 바로 코칭스태프를 통해 영도에게 소식을 전했다.

“아... 그렇다면 경기 후 기념행사 때 그 가족들을 초대하는 것 어떻겠습니까? 모두가 주목하는 오늘 경기, 그리고 경기 후 행사 때 홈런볼 기부 행사까지 동시에 치르는 거죠.”

“아... 확실히 아이들은 순수하니까 그런 걸 더 좋아할 수도 있겠군.”

“그리고 행사 이후에 같이 기념 사진 찍고 구단 명예의 전당에 77호 홈런볼을 전시할 때 그 사진도 함께 전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전시된 홈런볼을 구경하러 올 때마다 할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게.”

“호오... 생각이 깊은데? 혹시 숨겨둔 아이라도 있는 건가?”

원래 영도는 경기 중 집중을 방해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선수였지만, 오늘 경기의 의미도 그렇고 또 자신의 홈런볼을 기부하겠다는 팬과 관련된 일이었기 때문에 흔쾌히 경기 중 대화를 허락했다.

구단이 요청하고 싶었지만, 영도의 눈치 때문에 쉽게 꺼내지 못했던 방식을 먼저 제안했다.

어떤 선수들은 팬들과 가까이에서 만나는 것을, 자신을 위한 자리에서 포커스가 나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는데, 영도는 그런 것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러면 일단 그분들에게 가서 제의해보겠습니다.”

“예.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나와 관련된 것들을 요구한다면 굳이 나한테 물어보지 않고 허락하셔도 됩니다. 크게 무리가 되는 일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으니까.”

77호 홈런볼을 기증하겠다는데 못해줄 게 뭐가 있을까.

그냥 가져다 팔면 현물이나 명예 같은 게 아니라 돈으로 수백만 달러를 받을 수 있는데 그것 대신 팀을 위해, 팀의 역사에 아주 작은 한 페이지라도 장식하는 것을 선택하겠다는데 해줄 수 있는 건 뭐든 해줘야지.

프로 선수로서 팬들을 위해 그냥도 해줄 수 있는 것들인데 팬이 그렇게 큰 걸 해주는데 못해줄 건 없었다.

“와... 진짜요!? 진짜로 그라운드에 내려가서 Y-DO랑 만날 수 있는 거예요!?”

“사진도 같이 찍고 명예의 전당에 사진도 올라간다고요! 여기요! 여기 공 가져가세요, 아저씨!!”

예상대로 쿠퍼 가문의 손자들은 순수했다.

공이 가진 금전적 가치 같은 것보다 영도와 만날 수 있다는 것, 그것도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의 내야에서 만나 사진도 찍고 구단 명예의 전당에 사진을 남길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며 미련 없이 홈런볼을 내주었다.

물론, 그래도 괜찮았다.

신시내티 레즈는 금전적인 보상 없이 생색만 낼 생각이 없었고, 금전적 보상은 어른들이 알아서 챙겼으니까.

“명... 명예의 전당!!”

물론,,, 65년째 레즈 팬이자 구단 명예의 전당 입성에 흥분한 다니엘 쿠퍼의 모습을 보면 제대로 챙길 수나 있을지 의문이지만...

어쨌든 레즈는 최선을 다했다.

***

[시즌 마지막 출전이었던 161차전에서 77호 홈런 터뜨리며 완벽하게 정규시즌 마무리한 Y-DO. “너무나도 환상적인 시즌. 언제나 응원해준 신시내티 레즈 팬들과 응원팀 소속이 아니었음에도 홈런 신기록 도전을 응원해준 야구 팬들에게도 감사하다. 여러분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시내티 레즈 다큐멘터리에도 출연했던 7대째 레즈 팬 다니엘 쿠퍼(73), “환상적인 날이다. 65년 동안 응원해온, 너무나도 사랑하는 팀의 명예의 전당에 나와 가족들의 사진이 걸린다는 건 내 인생 최고의 영광”]

[럭키세븐 x2 Y-DO, 77호 홈런과 함께 아름다운 2042시즌 마무리. 2시즌 통합 141홈런으로 135홈런의 마크 맥과이어 제치고 1위 등극]

사실, 미국인들만큼 숫자와 미신에 집착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77호 홈런이라고 해서 뭐가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행운의 숫자라고 여기는 7이 두 개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히 더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의 뒤에는 물론 언론이 있었다.

영도의 홈런 신기록은 언론 입장에선 최고의 소재였고, 이를 매끈하고 그럴듯하게 가공하면 실질적인 이득으로 돌아왔으니 아주 자그마한 구실만 있어도 어떻게든 기사 하나라도 더 써내려 했다.

의도적인 이슈 생산이라 해도 영도와 영도의 성적엔 충분한 설득력이 있었기에 팬들도 이런 움직임을 이해했고, 이해하다 못해 반겼다.

팬들 역시 영도에 관한 더 많은 기사와 칼럼를 원했으니까.

언론이 의도적으로 의미를 부여했든 말든.

어쨌든 영도는 메이저리그 사무국 차원의 푸쉬와 전문가, 언론의 푸쉬로 메이저리그 복귀 두 시즌 만에 최정상의 위치를 차지했다.

지난 시즌 종료 후에도 어느 정도 낌새가 보였지만, 이번 시즌 중반 이후에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1인자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인기로는 마이클 키니가, 기량으로는 아놀드 그레고리, 로날드 비어니, 칼 앤더슨, 앨런 밀러 등이 1인자 자리를 두고 다퉜지만, 한 시즌 반만에 영도에 의해 깔끔하게 평정되었다.

영도는 현재 메이저리그의 압도적인 1인자였으며 압도적인 NO.1 인기스타였고, 현대가 아니라 메이저리그 역사에 내놓아도 TOP 10이나 TOP 5 같은 애매한 위치가 아니라 진정한 올타임 NO.1 자리를 노려볼 수 있는 유일한 현역 선수였다.

배리 본즈의 아성을 넘어선, 메이저리그의 흑역사를 씻어낸 영도의 2042시즌 정규시즌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끝은 아니었다.

영도와 신시내티 레즈의 시선은 이미 이후 시작될 포스트시즌, 그리고 월드시리즈를 향해 있었다.

< 럭키 세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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