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Y-DO의 시대 > (175/200)

< Y-DO의 시대 >

[부시 스타디움에 이틀 연속 등장한 ‘73호 홈런 기원 플래카드’. 여기가 원정이야, 홈이야?]

[그토록 기다려온, 40년을 기다려온 도핑 스탯의 추방... 73호 홈런 향한 두 번째 도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팬덤의 필요 이상으로 쿨한 태도. 카디널스 선수단의 반응은 어떨까]

“참... 카즈의 위대한 선배님들한테 면목이 없는데... 나, 참... 이게 말이나 되는 상황인지.”

카디널스 선수들의 반응이 어떨지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이미 시즌에 대한 욕심과 기대를 버린 카디널스 팬덤은 72호 홈런 이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영도의 73호 홈런을 응원했다.

어차피 74호 홈런도 아니고 영도의 시즌 마지막 홈런일 확률도 낮은데 허용 구단으로 박제될 것도 아니니 응원하는 데 부담은 없었다.

보통 대단한 기록도 아니고 카디널스 팬들이 원정팀과 선수한테 관대한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니 그런 행동 자체는 문제될 게 없었다.

하지만 팬들이 그런 식으로 나오는 이유, 그 이유가 문제였다.

이유는 단 하나, 지금 상황에서 1승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카디널스가 승리를 쌓으면 포스트시즌을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그래도 역사적인 기록이라는 이유로 영도의 73호 홈런을 응원했을까?

바로 그것 때문에 카디널스 선수들이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리빌딩 중인 팀이라지만, 벌써 카디널스치고는 너무 오래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 중이고, 리빌딩이고 뭐고 다 떠나서 시즌 막판에 포스트시즌과 아예 상관없는 팀이 된다는 게 선수에겐 반가울 수 없는 일이었다.

“아놀드. 표정이 많이 안 좋은데 무슨 일이야?”

“뭐... 팬들한테 미안해서. 저들도 Y-DO의 홈런 기록을 응원하고 싶어서 응원하는 게 아닐 텐데.”

“당연하지. 우리 잘못이긴 한데, 달리 말하면 그게 우리 잘못인가. 프런트 잘못이지.”

“... 전력 자체가 포스트시즌 전력은 아니었으니 프런트 잘못이 맞긴 하지. 그걸로 위로가 안 된다는 게 문제지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전통적으로 선수들의 팀에 대한 충성심이 높기로 유명한 팀이었다.

명문들이 대부분 그런 이미지가 있지만, ‘보사구팽’으로 유명한 레드삭스나 ‘악의 제국’답게 선수들을 쭉쭉 갈아치우는 양키스, 그와 비슷한 다저스, 비교적 부침이 심해 팀 전력이 약할 때 핵심 선수들이 생각보다 자주 이적하는 컵스, 자이언츠 등과 확연히 다른 이미지.

비록 오랜만에 부침을 겪으며 카디널스 역시 주력 선수들을 놓칠 위기에 처했지만, 생각보다 나간 선수는 많지 않았다.

아놀드 그레고리는 물론이고 내셔널리그 최고의 수비형 포수로 ‘야디어 몰리나의 재림’이라 평가받는 골드글러브 5회 수상자, 야디어 코데로 역시 그랬다.

이 두 선수가 카디널스의 라커룸을 꽉 잡고 있었고, 덕분에 생각보다 지지부진한 리빌딩에도 팀이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선수는 선수가 할 일만 하면 되지, 너처럼 자꾸 다른 것까지 생각하고 참견하다가 자기 실력만큼 못 보여주고 끝나는 거다. 그러니까 전력 보강 같은 건 프런트에 맡기고 그라운드 위에서나 최선을 다하라고.”

“하아... 성격상 그게 안 되는데. 처음부터 리더 이런 거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Y-DO 봐라. 사람이 얼마나 담백하냐. 딱 자기 할 일만 하고 주변에는 신경도 안 쓰니까 본인 성적도 저 난리고, 저 난리를 보고 주변 선수들도 알아서 자극받아서 같이 날고. 너도 충분히 할 수 있다니까.”

“야디어, 당신도 참 대단해. 야수뿐 아니라 투수들까지 맡아서 끌고 가는데 어떻게 그렇게 꾸준하지?”

“나도 투수 중에 믿을 만한 리더가 있었으면 타율 2푼은 더 올라갔을걸. 그랬으면 역대급 수비형 포수가 아니라 그냥 역대급 포수가 되었겠지.”

“... 뭐라고 해야 하지? 리더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말하면 딱 그만큼이 당신 실력이라고 말하는 것 같고, 더 잘할 수 있다고 하면 리더 역할을 제대로 못 한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리빌딩을 진행 중인 부진한 명문 구단의 클럽하우스 리더는 항상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모든 비난의 대상이 되기에, 나아가 은퇴한 이후에도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조차 박탈당하기에 그랬다.

‘악의 제국’ 뉴욕 양키스의 140년 역사에서 고작 15명에 불과한 캡틴 중 한 명, 돈 매팅리가 바로 그 예시였다.

그는 9회의 골드글러브, 3회의 실버슬러거, 1회의 MVP를 수상한 뛰어난 선수였지만, 역대 양키스 캡틴 중 우승 반지가 없는 선수는 그가 유일했고 양키스의 암흑기를 어렵게 지탱해 준 큰 공로가 있는 선수였다.

돈 매팅리의 데뷔 직전 시즌 양키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고, 은퇴 바로 다음 시즌에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을 정도.

그러나 역대 캡틴 중 가장 존재감이 없었다.

부상으로 인한 이른 하락세로 누적과 임팩트가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악의 제국’의 캡틴으로서 이만큼 존재감이 없기도 어려웠고, 이는 결국 그가 활약한 시기가 양키스 최대의 암흑기였기 때문이었다.

프로선수로서 명예를 생각하지 않는 선수는 거의 없었기에 이는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그레고리와 코데로 모두 좋은 선수들이었고, 카디널스의 전성기를 함께 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선수들이었지만...

팀 상황에 따른 스트레스는 이들이 100% 기량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난 확신해, 그레고리. 네가 리더라는 부담감을 털고 야구에만 집중한다면 Y-DO 못지않은 괴물이 될 수 있다고. 그럴 능력이 있다고 말이지.”

“... 그런 말을 해도... 솔직히 나보다 Y-DO의 상황이 더 어려웠을 것 같은데. 로키스야 해니건이 있다 쳐도 레즈에선 Y-DO가 리더니까.”

“... 레즈는 일단 포스트시즌 시작하고 봐야지. 월드시리즈 우승 아니면 전부 실패인 시즌에서 진짜 부담감과 긴장감은 그때부터 시작이니... 하아, 그냥 Y-DO가 괴물인 거야. 괴물을 따라가려면 너도 비슷하게 가야지.”

“괴물 같은 자식. 대체 어떻게 사람이 그 어려운 상황에서 팀 성적이랑 본인 성적을 다 챙기지?”

그래서 영도가 더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명문 구단은 아니었지만, 만년 최하위권 팀인 콜로라도 로키스를 거의 원맨 캐리로 우승시켰고, 70년대 이후 만년 하위권 팀이었던 레즈마저 합류와 동시에 정규시즌 승률 1, 2위에 올려버렸다.

그리고 개인 성적마저 하늘을 뚫었으니...

천하의 배리 본즈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의 15시즌 동안 월드시리즈 우승은 한 번도 없고 내셔널리그 우승 1회, 지구 우승 3회, 와일드카드 획득 1회에 불과했다.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선 7시즌 동안 지구 우승 3회가 전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TOP 20에 언급되는 야수 중 배리 본즈 외에도 테드 윌리엄스, 조지 브렛 등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가 없는 선수들이 적지 않고, 윌리 메이스, 행크 아론, 마이크 슈미트 등도 1회 우승이 전부.

슈퍼스타의 이적이 흔치 않던 시대라 해도 콜로라도 로키스의 상황이 당시 약팀과 비교해 하나 나을 것 없었고, 철저하게 산업화되고 선수들의 기량도 평준화된 요즘이 원맨 캐리하기 훨씬 어려운 시대였다.

즉, 영도가 높은 평가를 받으며 신드롬을 일으킨 건 단순히 개인 기량과 스탯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내 생각은 같아. 아놀드, 넌 지금보다 훨씬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어. 나이? 요즘 31세는 많은 것도 아니라니까? 그러니까 리더 역할은 조금 더 나에게 맡기고 넌 너한테 더 신경 써. 수비형 선수면 경기 외적으로도 많은 역할을 해내야 밥값 하는 거지만, 넌 다르잖아?”

“고마워. 너만 믿는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슈퍼스타들의 재능과 승부욕, 자존심과 투지는 상상을 초월했다.

영도가 아무리 믿을 수 없는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지만, 이들이 언제까지나 그런 영도를 바라만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긴 어려웠다.

메이저리그는 언제나 시대를 이끄는 슈퍼스타와 그를 따라가려는, 혹은 잡아내려는 선수들, 구단들, 시스템에 의해 발전해왔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영도가 아무리 대단해도 점점 더 강해질 견제 속에 매 시즌 지금과 같은 활약을 이어가긴 어려울 테고 다른 선수들도 어떻게든 따라붙으려 할 것이었다.

아놀드 그레고리를 비롯한 다른 선수들의 도전과 이를 따돌리려는 영도의 활약.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메이저리그의 역사는 그렇게 흘러갈 테고, 시대를 이끄는 슈퍼스타가 역사를 새로 쓰는 영도였기에 평소보다 흥미롭고 역동적인 시대가 되지 않을까.

***

[비록 한 경기 침묵하긴 했지만, 어제 경기에서도 멀티 히트를 때려내면서 타격감을 유지하는 모습은 보여줬습니다.]

[한 경기 정도는 당연히 침묵할 수 있죠. 홈런 개수만 따지면 거의 2경기마다 홈런 한 개씩 때려내는 페이스지만, 멀티 홈런 경기가 있으니까 경기로 따지면 3경기당 한 개 정도거든요.]

원정 경기인데도 어제부터 이상하게 73호 홈런 기원 플래카드들이 즐비한 부시 스타디움에서의 3연전 마지막 경기.

플래카드가 등장한 첫 경기에선 아쉽게도 침묵했지만,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오늘도 카디널스는 유망주 선발투수, 조 메이나드를 마운드에 올렸습니다. Y-DO의 기록 달성을 위해선 나쁘지 않다고 봤는데, 실제로도 메이나드의 피칭이 다소 아쉽긴 합니다.]

[세 번째 맞대결이 있을 거라고 확신하기 어려워요. 물론, 점수 차이가 꽤 벌어졌고, 카디널스도 승리보다 다음 시즌 준비에 더 집중하는 시기인 만큼 이미 점수 차가 벌어진 상황이라면 Y-DO에게 나쁠 것도 없겠지만... 일단 지금 메이나드의 상태를 보면 홈런 한 개 정도 노릴 수 있을 것 같거든요?]

패스트볼 구속은 선발 유망주 NO.1 후앙 루이즈보다 다소 떨어지지만, 커브와 투심, 체인지업을 구사하는 등 구종 완성도는 조금 더 앞서는 조 메이나드.

하지만 NO.1이 NO.1인 이유가 있었다. 그것도 꽤 차이가 있는 NO.2.

‘옛날 용어로 하면 공이 확실히 좀 가벼운데. 요즘 말로 하면 회전수가 적고.’

부족한 회전수와 정직한 무브먼트.

공도 빠르고 구종 완성도도 괜찮지만, 가장 중요한 패스트볼이 가벼운 데다가 작대기 포심이었다.

마이너리그에서도 타순이 두 바퀴 정도 돌면 메이저리그에 당장 데뷔하기엔 부족한 스탯이 찍혔고.

여러모로 후앙 루이즈보다 꽤 아쉬운 유망주였다.

‘이게 원정 경기에서 응원받는다는 게 묘하네. 원정인데 응원까지 해주니 꼭 부응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원정 팬들에게 응원받는 상황을 당연히 처음 겪다 보니 영도 역시 처음 경험하는 감정이었다.

홈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마음과는 약간 다른 그런 느낌.

아마도 다신 응원해주지 않을 사람들이었기에 지금의 응원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팬들로부터 힘을 좀 받더라고.’

영도의 신경은 나에서 팬, 동료, 팀, 그리고 리그와 역사로 뻗어갔다.

KBO 시절부터 조금씩 자리 잡으면서 팬들을 신경 쓰기 시작했고, 팬들에게 응원과 기대를 받을 때마다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메이나드의 표정이... 표정 관리가 안 되는 모습입니다. 사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쉽지만, 20대 초반, 아직 풀타임 데뷔도 못한 유망주에겐 너무 가혹한 요구일 수 있습니다.]

[유망주를 키우는 건 좋은 일이고, 딱 그럴 만한 시기와 상황이지만, 신시내티 레즈와 Y-DO를 유망주에게 상대하게 하는 게 과연 선수의 성장에 도움이 될지... 오히려 무너질 수도 있거든요. 아직 멘탈이 정립되지 않았을 때 너무 부담스러운 경기를 치르게 되면.]

카디널스의 10년을 책임질 에이스가 되어줄 줄 알았지만, 루키 시즌에 NLDS 1차전 선발로, 그것도 상대 투수는 그렉 매덕스, 그것도 항상 호흡을 맞추던 포수가 아니라 백업 포수와 호흡을 맞추면서 처참하게 무너진 릭 앤키엘처럼.

비록 경기 자체는 부담이 없는 경기였지만, 영도라는 타자가 주는 부담감이 릭 앤키엘이 겪은 부담감과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관심을 나눠 받는 NLDS 1차전과 달리 모든 언론과 팬들의 관심을 홀로 받는 경기였고, 선수였으니까.

‘작대기를 이렇게 가운데로 밋밋하게 꽂으면...’

역시 애매하게 뛰어난 재능의 유망주가 이겨내기엔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상황과 상대였다.

안 그래도 약점인 작대기 포심이 가운데로 밋밋하게.

영도의 기록을 응원하는 건 카디널스의 팬만이 아닌 듯했다.

[크고 아름다운 타구!! 드디어!! 드디어!! 40년을 기다린 타구가 펜스 바깥으로 날아갑니다!! 그리고... 펜스 바깥으로 완전히 사라집니다! Y-DO의 2042시즌 73번째 홈런!! 불멸의 기록일 줄 알았던 배리 본즈의 기록과 동률을 이룹니다!!]

[와... 이 날이 올 줄 알았지만, 진짜 올 줄은 몰랐네요. 무슨 말인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뭔가... 기분이 묘합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예, 어떤 기분인지 너무 잘 알겠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쁘면서도 살짝... 아, 이걸 뭐라고 해야 하죠? 제가 어디 가서 어휘력 부족하다는 소린 안 듣는 사람인데...]

[그럴 만한 기록이에요.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번 홈런에 그런 묘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죠.]

< Y-DO의 시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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