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시간 문제 > (174/200)

< 시간 문제 >

“형, 경기장 분위기 왜 이렇게 좋아요? 여기 원정 구장 아닌가?”

“요즘 73호, 74호 홈런 보겠다고 여기저기서 온다며. 시즌 막판이고 이미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한 팀이라 자리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거고.”

“음... 카디널스 홈팬들이 많지 않다는 건 알겠지만, 그래도 그런 것까지 감안해도 분위기가 너무 좋은데...”

신시내티 레즈의 경험 없는 젊은 선수들은 원정 구장에서 원정팬들에게 응원 받은 경험이 없었다.

물론, 아무리 경험 많은 선수라 할지라도 그런 경험은 거의 없을 테지만.

어쨌든 이 낯선 경험에 레즈 선수들은 얼떨떨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부시 스타디움은 홈팀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분위기였다.

홈팬들도 영도의 홈런을 기다렸지만, 일단 홈팬들의 비율 자체가 그리 높지 않았다.

45,494석 정원의 부시 스타디움은 항상 43,000명 이상 입장하는 경기장이었고, 당연히 대부분이 홈팬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만원 관중이 입장하는 동안 홈팬들의 숫자는 25,000여 명에 그칠 것이라 예상되었다.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된 카디널스의 현 상황과 영도의 홈런 기록에 대한 미국 전역의 관심이 겹치면서 자연스럽게 벌어진 상황.

당연히 20,000여 명이 진심을 다해 영도의 홈런을 응원하고 있으니 경기장 분위기가 원정 경기답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Y-DO는 정말 대단합니다. 어떻게 원정 경기에서 이런 응원을 받을 수가 있죠? 진짜 상상하기도 어려웠던 일들이 Y-DO와 함께하니까 당연하다는 듯 막 일어나네요.”

“... 리코...”

“으하하하, 진짜 리코, 대박. 리코, 넌 역시 최고야.”

“음? 내가 최고라고? 내가 아니지. Y-DO가 최고지.”

“하아...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어.”

“으하하하, 받아들여, 받아들여. 난 진짜 형을 이렇게 곤란하게 하는 사람은 처음 봤네. 어지간한 일로는 신경도 안 쓸 것 같은 사람인데.”

리코에겐 이런 분위기도 영도를 찬양하는 하나의 빌미가 되었다.

안 그래도 시즌 초반부터 영도를 찬양하지 못해 안달 난 듯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73홈런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요즘 들어 더욱 심해졌다.

이 정도면 거의 병이었다.

“하여튼 셋이 참 잘 노는군. 보기 좋아.”

“유리, 당신도 이제 겨우 30인데 왜 그렇게 한참 베테랑인 것처럼 말하는 거지?”

“흠... 글쎄. 이유는 모르겠지만, 너희를 보고 있으면 내가 나이 든 것처럼 느껴져서?”

“허... 너희 둘 때문에 내가 이런 취급을 받는다. 형근아, 리코 좀 안 말리냐? 좀 말려주지?”

“에이... 내가 어떻게 리코를 말립니까. 형 다음으로 우리 팀에서 잘 나가는 선수인데... 그렇지, 리코?”

“아니지. 너도 요즘 장난 아니지. 나야 타선에서 Y-DO 다음 NO.2지만, 넌 우리 팀 투수 중에 NO.1이니까. 내가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자부심은 있지만, 네가 투수진에서 맡은 역할만큼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 역할은 Y-DO의 것이니까.”

“... 형! 형! 살려줘! 같이 가!”

“대체 리코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처음 봤을 땐 굉장히 시크하고 오만하다시피 한 친구였는데...”

단일 시즌 홈런 신기록 같은 강력한 임팩트의 기록이 나온 시즌에는, 그리고 만약 기록이 경신된다면 경신되는 대로 리그 전체가 작든 크든 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리코 같은 젊은 선수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다만, 너무 급격하게, 그것도 완전 정반대로 다른 선수, 성격이 되어버려서 직접적 피해자인 영도를 비롯, 대부분의 레즈 선수가 당황하고 있었다.

그래도 구단 프런트와 코칭스태프들은 이러한 변화를 반기는 편이었다.

팀의 10년을 책임져야 할 선수의 오만하던 성격이 겸손한 성격으로 바뀌었으니, 본인의 장점만 바라보면서 단점을 무시하던 성격에서 단점을 직시하며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성격으로 바뀌었으니 싫어할 리가 없었다.

불과 몇 개월 만에 180도 달라진 데다가 묘하게 오글거리기까지 하는 성격을 받아줘야 하는 동료들만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할 뿐.

[확실히 두 팀 모두 사실상 순위가 결정된 상황이라 유망주 선발을 내보내지 않았습니까? 유망주 선발들을 보니까 두 팀의 유망주 뎁스를 비교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카디널스가 훨씬 낫죠? 카디널스는 그래도 느리게, 차근차근 리빌딩을 완성해가는 중이고 레즈는 리빌딩을 이미 완성해서 유망주가 많지 않은 상황에 남은 것 전부 탈탈 털이 Y-DO를 데려왔으니까요.]

[그래서 이번 시즌 레즈가 내셔널리그 승률 1위, 메이저리그 전체 승률 2위지만, 지난 시즌의 로키스만큼이나, 어쩌면 로키스보다 더 불안해 보입니다. 로키스는 지난 시즌 신이 주신 기회를 받아 월드시리즈를 차지했지만, 만약 실패했더라도 한 번의 기회가 더 있었습니다. Y-DO와의 계약이 이번 시즌까지었으니까.]

[하지만 레즈는 모든 걸 걸었죠. 카를로스 사뇰과 Y-DO의 계약은 이번 시즌이 마지막.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시즌에 뭔가 해내야 하는 팀이 레즈예요.]

이 타이밍에 나오는 유망주들이 바로 메이저리그 데뷔 준비를 끝낸, 적어도 한두 시즌 안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할 선수들이었다.

신시내티 레즈 역시 포스트시즌에 대비하고 유망주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9월 확장 로스터 적용 이후 대기록에 도전 중인 영도를 제외한 주전들을 번갈아 쉬게 하면서 유망주들에게 기회를 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 유망주들이 유독, 눈에 띌 정도로 인상적이지 못했다.

즉전감 탑 유망주들을 로키스로 보내면서 상위 유망주들은 다들 나이가 어렸고, 즉전감 유망주는 하위 유망주들에 불과했다.

심지어 상위권의 어린 유망주들도 딱히 가치가 높다고는 보기 어려운 상황.

비록 지금처럼 큰 대가를 얻어내긴 어려웠겠지만, 어쨌든 월드시리즈 우승이 목표라면 한 시즌 더 영도와 함께할 수 있었던 로키스와 달리 레즈에겐 다음 기회가 없었다.

정규시즌 성적만으로는 메이저리그 1, 2위를 다투는 상황임에도 레즈가 불안해하는 건, 레즈를 불안하게 보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카디널스도 한동안의 암흑기를 지나 카디널스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평균 구속 97마일, 최고 구속 104마일의 강속구로 유명했지만, 슬라이더 외의 다른 구종이 불안하다는 평가 때문에 오랫동안 마이너리그에서 담금질 중이었던 유망주, 후앙 루이즈가 확장 로스터 적용 이후 올라와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때 전체 유망주 랭킹 27위까지 올라갔다가 지금은 88위까지 떨어졌는데, 이건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거고요. 다음 시즌이 25세 시즌이 될 텐데, 조금 늦긴 했지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외에도 조 메이나드, 칼 야르몰렌코 등 9월에 인상적인 선수들이 꽤 보이죠?]

‘선발이 평균 구속 97마일. 슬라이더도 좋고, 빠른 구속의 두 구종을 받쳐줄 체인지업도 평균 약간 안 되는 수준.’ 

2010년을 기점으로 선발 투수들의 평균 구속이 놀라울 만큼 빠르게 상승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선발 97마일은 리그 최상위권이었다.

선발로 올라와 100마일 강속구를 뿌려대던 노아 신더가드를 위시한 파워 피처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드러누우면서 무조건 강속구를 앞세우진 않게 된 이유도 있고.

물론, 그래도 여전히 강속구는 투수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고, 있는 무기를 포기하게 하진 않았다.

다만, 100마일 강속구와 90마일 이상의 고속 슬라이더를 함께 활용하는 투수는 많이 사라졌다.

후앙 루이즈는 100마일 강속구와 93마일 슬라이더를 함께 사용하는, 최근에는 쉽게 볼 수 없는 스타일의 투수였다.

‘이 구속, 이 스터프에 이 정도 써드피치면 충분하지.’

25세까지 풀타임 데뷔를 하지 못한 선수답게 확실한 단점은 있었다.

써드피치의 문제가 계속 지적받던 단점이었고, 다음 시즌부터 풀타임 데뷔가 거의 확실시된다는 지금도 써드피치 체인지업은 20-80 스케일에서 45점, 평균 이하라는 평가였다.

네 번째 구종으로 스플리터를 던지긴 하는데, 이건 아무리 강력한 투 피치가 있어도 활용하기 힘든 수준.

하지만 투 피치가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45점짜리 체인지업으로도 3선발급 활약은 기대되는 선수였다.

‘그러니까 지금은 3선발급보다 살짝 아쉽다는 것.’

지난 시즌 사이 영 위너인 코트니 매든도 영도에게 홈런을 헌납할 수밖에 없었다.

영도의 공인 한 끼 식사 거리, 테오 제퍼슨도 영도에게 워낙 크게 당해서 그렇지, 웬만한 팀에서는 무난하게 에이스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좋은 투수였고.

후앙 루이즈가 아무리 좋은 유망주라 하더라도, 평균 97마일의 강속구와 평균 91마일의 슬라이더가 아무리 위력적인 구종이라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영도를 잡아낼 수 없었다.

[101마일의 강속구!! 그리고 Y-DO 특유의 어마어마한 배트 스피드, 그리고 파워!! 당연한 이야기지만, 투수가 던진 공이 빠를수록 정타가 나왔을 때 비거리도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루이즈는 생각보다 공의 회전수는 평범한 투수거든요? 제대로 맞았을 때 Y-DO의 파워를 이겨내긴 어려워요!]

[72!! 72!! 72호 홈런!! 2042시즌 Y-DO의 72번째 홈런!! 72번째로 펜스를 넘기는 타구!! 시즌 72호 홈런으로 배리 본즈의 기록에 드디어 한 개 차이로 접근합니다!]

[하나 남았다는 거잖아요, 지금! 그 말도 안 되는 기록에 한 개 차이로 접근! 98시즌의 마크 맥과이어도 넘었고, 이젠 정말로 마지막 고지, 배리 본즈의 73호 홈런까지 한 개 차이로 접근했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심지어 시즌 최종전까지 무려 14경기나 남아 있습니다. 잠재력이 폭발하기 전에도 ‘아이언맨’으로 유명했던 Y-DO니까 딱히 부상이나 슬럼프 확률도 극히 낮죠! 14경기에서 홈런 두 개? 여러분! 축포를 준비하십시오! 분명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터뜨릴 수 있을 겁니다!]

[이젠 정말 마지막까지 왔어요. Y-DO의 위대한 시즌이 이젠 정말로 클라이막스와 마무리만을 남겨두고 있다는 거죠!]

배리 본즈의 73호 홈런과 영도의 72호 홈런.

본즈는 153번째 출전에서, 161번째 경기에서 73호 홈런을 때려냈는데, 오늘 경기는 영도의 147번째 출전 경기이자 레즈의 시즌 148차전 경기였다.

안 그래도 꽤 오래전부터 영도의 신기록 경신이 유력하다는, 거의 확실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72호 홈런까지 터진 이후의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이제는 정말로 기대감이나 확률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는 딱 하나, 시기의 문제일 뿐이었다.

[(속보) Y-DO,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3연전 1차전에서 72호 홈런 폭발! 배리 본즈까지 -1]

[(1분 빠른 중계) 72호 홈런 터졌다!!!!!!!!!!!!!!!!!!]

[(급구) 내일, 그리고 모레 부시 스타디움 티켓 삽니다!!!!!]

[니네 이거 봄? 이번 부시 스타디움 암표 가격인데 수천 달러까지 감. 우리 돈으로 몇백을 경기 한 번에 태운다고...? 대단하다, 얘네도]

- 왜? 나도 비행기 값만 없었으면 가고 싶은데?

- 크으... 돈 많은 사람들 많네. 그런데 나도 그 정도 돈 있으면 가고 싶다. 73호 홈런이 또 나오겠냐? 야구라는 스포츠가 사라질 때까지 안 나올 것 같은데?

- 지구 멸망할 때까지 안 나올 기록임. 야구 좋아하는 사람이면 그 돈 주고 가서 볼만 하지. 평생 자랑할 수 있을걸?

- (세인트루이스 교민) 진짜 운 좋아서 나 예매했거든? 이거 팔면 저 돈 버는 건데, 솔직히 고민된다. 그런데 안 팔 거임. 그 정도 가치는 충분히 한다고 본다.

- 아... 미국 놈들 개부럽다. 내가 다른 건 하나도 안 부럽고 우리나라가 훨씬 살기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유영도 볼 수 있다는 거 하나 때문에 개부럽다. 티켓은 내가 살 테니 비행기값만 좀 지원해줄 사람 없냐!?!? 티켓이 더 비싸다고!!

< 시간 문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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