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대하는 사람들 >
“이 시간에 주차장이 운영하는 것도 신기한데 차가 이렇게 많은 게 더 신기하네. 안 그래요, 아버지?”
“음... 이런 건 나도 처음인데. 내가 어렸을 때 ‘빅 레드 머신’이 전성기였는데, 그때도 이랬던 적은 없지.”
신시내티 레즈의 골수팬, 쿠퍼 3대는 오랜만에 3대가 함께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를 찾았다.
1968년생으로 이제 곧 74세 생일을 맞이할 다니엘 쿠퍼는 아주 운이 좋게도 10대가 되기 전 신시내티 레즈 최고의 전성기, ‘빅 레드 머신’ 시대를 지켜본 레즈의 산 증인이었다.
4살 위의 배리 라킨이 팀의 깜짝 돌풍을 이끌며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차지한 1990년에도, 조이 보토의 등장으로 잠깐이나마 지구 우승이라도 차지했던 2010년대 초반에도 다니엘은 꾸준히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를 찾았다.
그러나 최근처럼 이 구장에 사람이 몰린 것도, 이 구장이 문을 이렇게 일찍 여는 것도 처음이었다.
‘빅 레드 머신’ 시대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
“그런데 벌써부터 다들 글러브에 양동이, 페인트통... 홈런볼 잡을 수 있는 도구들은 다 들고 왔네요.”
“그것 때문에 한 시간이나 먼저 개방한 거니... 다들 그것만 보고 온 거잖냐.”
“옛날에 빅맥 70호 홈런볼이 300만 달러에 팔렸다고 했죠?”
“300만 5000달러. 배리 본즈 756호 홈런볼은 75만 달러였고...”
“본즈야 도핑 적발 이후에 팔린 거잖아요? 또 모르죠. 도핑 적발 이전에 756호 홈런이 나왔으면...”
“그래도 300만 달러는 안 됐을 거다. 그 인간은 인기가 없었거든. 최고의 선수였지만, 인기가 없었으니 그 성격에 약까지 손댄 거고.”
영도는 144차전까지 143경기에 출전해 69개의 홈런을 기록 중이었다.
배리 본즈의 홈런 기록은 73개로 4개 차이까지 접근했고, 슬슬 영도의 74호 홈런볼을 노리는 콜렉터들이 경기장을 찾기 시작했다.
아직 5개의 격차가 있었지만, 영도는 세계 유일의 5연타석 홈런 기록 보유자였다.
메이저리그 139년의 역사에서도 4번의 4연타석 홈런 기록이 전부였는데, 영도는 2040시즌 KBO 개막전에서 5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적 있는 타자였다.
이런 몰아치기 능력을 보유한 선수였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몰려든 콜렉터들이 많았다.
꼭 콜렉터가 아니더라도 일반 야구팬들 역시 다들 글러브 정도는 장착한 채 구장을 찾았다.
“할아버지! 아빠!! 같이 가요!!”
“아빠! 저기로 가야 하는 거 아냐?”
68년생 다니엘 쿠퍼, 93년생 제임스 쿠퍼, 그리고 26년생 벤슨 쿠퍼와 29년생 코디 쿠퍼.
쿠퍼 3대의 3대를 맡은 벤슨과 코디 역시 한 손에 글러브를 낀 채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향해 달려왔다.
영도의 홈런 레이스는 여러 가지 의의를 가지고 있었다.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의 역대급 홈런 경쟁은 죽어가는 메이저리그 인기를 되살린 것도 모자라 또 한 번의 전성기를 열었다.
영도의 홈런 레이스는 메이저리그의 숙원 사업인 세계화에 크게 일조하면서 프로 스포츠로서의 생명이 걸린 어린이 팬들에게도 큰 임팩트를 남겼다.
배리 본즈는 선수 본인의 문제와 당시만 해도 극성이었던 인종차별 문제로, 플라이볼 혁명기에는 홈런의 임팩트와 희소성이라는 게 사라질 만큼 개나 소나 너무 많은 홈런을 때려내면서 팬층 확보에 실패했지만.
영도는 40홈런만 넘기면 홈런왕이 되는 시대에 홀로 73홈런 기록에 도전하는 기염을 토하면서 야구 인기 상승에 큰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워낙 사회 전체가 영도의 홈런 기록 때문에 시끄러워지다 보니 주변 흐름에 민감한 젊은 층과 어린이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KBO 등 여러 스포츠에서 장점을 배워와 젊은 팬들을 많이 늘리며 살아난 메이저리그였지만, 젊은 팬들, 어린 팬들의 증가는 언제나 정답이었다.
“배리는 다음 홈 시리즈부터 오신다 했다고?”
“예. 그때쯤 되면 이미 73홈런 기록이 깨진 이후겠지만, 그래도 마지막 5경기가 홈 시리즈니까 그때 와서 마지막 홈런 정도만 지켜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Y-DO가 마지막 5경기에도 꼭 홈런을 쳐줬으면 좋겠네. 배리가 힘들게 찾아왔는데 헛걸음하시면 안 되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Y-DO가 5경기, 그것도 홈에서 마지막 5경기 동안 홈런을 못 때릴 것 같진 않은데.”
사회적으로 워낙 큰 반향을 일으킨 만큼 신시내티 레즈의 레전드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빅 레드 머신’을 이끌었던 레즈 최고의 레전드들은 대부분 1940년대 출생한 선수들이라 이미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그 시대 이후 활약하면서 신시내티 레즈 구단 명예의 전당에 올라간 선수는 배리 라킨과 조이 보토, 두 명이 유이했다.
스몰마켓답게 영구결번과 구단 명예의 전당 입성을 허락해줄 만한 선수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고, 배리 라킨은 벌써 40년이 넘도록, 조이 보토 역시 거의 20년 가까이 구단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얼굴을 비췄다.
둘 중 한 명이라도 빠지면 행사가 너무 초라해지는 관계로 결석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건 또 모르지. 워낙 거대하고 위대한 기록인 만큼 기록을 깨게 되면 한동안 슬럼프에 빠질 수도 있는 거니까. 선수들한테는 그런 게 있거든.”
“음... 그러면 큰일인데요? Y-DO의 홈런 신기록도 중요하지만, 레즈도 모든 걸 걸었다고요. 꼭 올해에는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도 껴봐야 하는데...”
“아, 그러고 보니 당신도 구단 직원이니까 우승하면 우승 반지 받겠네?”
“그럼요! 어릴 때부터 레즈를 사랑했고, 이 팀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지만, 그래서 지금 꿈을 이뤘지만, 우승 반지는 내심 포기하고 있었는데...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요. 제가 올해 37인데 내가 은퇴할 때까지 또 이런 기회가 오겠어요?”
신시내티 레즈의 구성원들, 팬들은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마지막 전성기 이후 거의 70년이 지났고, 이후에는 10년, 20년마다 한 번씩 안정적인 포스트시즌 진출이 가능한 전력이 갖춰지는, 그런 평범한 스몰마켓의 행보를 걸었지만, 본래 자부심은 대물림되는 것이었다.
레즈의 자부심은 현재의 전력이 아니었다.
세계 최초의 프로야구팀이라는 전통, ‘악의 제국’ 양키스의 역사마저 한 수 접어줘야 하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강의 타선’으로 꼽히는 ‘빅 레드 머신’ 시대의 화려한 전성기가 레즈의 자부심이었다.
그런 만큼 그들이 가진 자부심과 현재의 초라한 모습이 심각한 괴리를 일으켰다.
그래서 월드시리즈 우승, 영도의 홈런 신기록과 같은 영광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영도도 큰 도움을 받고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메인은 개인의 영광이 아닌 팀의 영광, 월드시리즈 우승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Y-DO라면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아시잖아요? 지난 시즌에도 이번 시즌보다 더 어려우면 어려웠지, 쉽지 않았는데 로키스에서, 그것도 포스트시즌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줬는지. Y-DO는 그런 선수고, 그러니까 체사레, 데미안, 데릭을 묶어서 내줘도 다들 납득한 거죠.”
“그렇다면 다행이겠지. 물론, 나도 그래 주길 바라고 있어. 그 누구보다 레즈를 사랑하고 레즈의 영광을 원하는 사람이 바로 나니까.”
월드시리즈 우승을 향한 레즈의 염원, 찬란한 영광을 재현하고 싶다는 바람을 이뤄주는 게 영도의 역할이었다.
레즈는 트레이드 과정에서부터 엄청난 대가를 넘겨주면서 영도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고, 이후에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영도를 서운하게 대하지 않았다.
팀은 최선을 다했고 이제 영도의 차례였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향해, 팀의 영광을 향해 나아가는 길.
영도는 일단 단일 시즌 홈런 신기록이라는 영광을 정조준하고 있었다.
***
[결국, 밀워키 브루어스가 먼저 물러나다. 로테이션상 테오 제퍼슨의 등판 순서였던 레즈와의 3연전 마지막 경기에 대체 선발 예고]
[‘자존감 덩어리’ 테오 제퍼슨은 과연 자신이 먼저 물러나게 된 이 상황을 견딜 수 있을까]
[밀워키 브루어스는 다음 시즌 종료 후 FA 자격 얻는 테오 제퍼슨과의 결별을 준비하는가]
테오 제퍼슨은 아주 많은 단점과 결점이 있는 선수였지만, 그래도 양대 리그 통합 선발투수 중 TOP 10을 노려볼 만한 선수임이 분명했다.
그렇다는 건 같은 타자에게 계속 장타를 허용하면 거의 100%에 가까운 확률로 무너진다는 단점 역시 항상 본인의 손으로 메워왔다는 뜻이었다.
영도를 제외하면 그 어떤 타자도 세 경기 이상 제퍼슨을 괴롭히지 못했다.
그래서 브루어스도 제퍼슨에게 복수할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어주는 편이었다.
그만큼 제퍼슨을 신뢰한다는 뜻도 되지만, 슈퍼스타 개인의 영향력이 팀과 감독의 영향력을 찍어누르는 시대에 명문도, 메가마켓도 아닌 브루어스로선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했다.
하지만 레즈와의 맞대결을 앞두고 제퍼슨 대신 대체 선발을 내밀었다?
현명하다고 할 수도 있는 판단이었지만, 제퍼슨이라는 선수의 성격을 고려하면 분명 사이가 틀어질 수 있는 판단이었다.
다음 시즌 종료 후 FA가 되는 테오 제퍼슨의 계약 기간을 고려하면 브루어스가 제퍼슨과 이별하고 리빌딩에 돌입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게 당연했다.
“빌어먹을!! 감독 데려와, 씨X!! 지금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어쨌거나 브루어스가 리빌딩을 선언하든 말든 그건 제퍼슨과 브루어스의 이야기.
브루어스는 쉬쉬했지만, 기자들을 통해 알음알음 전해진 ‘테오 제퍼슨의 클럽하우스 난동 사건’ 역시 남의 이야기였다.
중요한 건 브루어스와 레즈의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브루어스가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되지 않은 대체 선발을 올렸다는 것.
당연히 대체 선발은 비교적 기량이 떨어지는 선수였고...
레즈와의 3연전이 시작하기도 전에 테오 제퍼슨 대신 대체 선발이 등판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밀워키 브루어스 팀 전체가 어수선해지기까지 했다.
영도에겐 70홈런 고지에 올라설 절호의 찬스였다.
[원정 10연전 직전 마지막 홈 3연전. 과연 Y-DO는 홈에서 70홈런 고지에 올라설 수 있을까]
[배리 본즈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 마크 맥과이어의 70홈런 기록까지 -1]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에서 70홈런 고지에 오르고 쿠어스 필드에서 마무리하나? 두 곳의 홈런 공장이 Y-DO를 기다린다]
브루어스와의 홈 3연전을 끝으로 레즈는 휴식일 없는 원정 10연전, 지옥의 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카고 컵스와의 리글리 필드 3연전 이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부시 스타디움 3연전이 펼쳐지고, 이후에는 쿠어스 필드에서 콜로라도 로키스와 4연전을 펼치는 일정.
지난 두 시즌 동안 영도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던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친화구장들,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와 쿠어스 필드가 각각 8경기와 4경기씩을 맡아주었다.
그리고 단 한 시즌의 활약으로 영도를 영웅이라고, 레전드라고 불러주는 두 팀의 팬들 역시 진심을 다해 영도를 응원했다.
40년 만의 60홈런에 이어 41년 만의 신기록, 139년 역사의 갱신을 앞둔 영도의 행보는 점점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었다.
< 기대하는 사람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