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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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동원 >

“돌아버리겠네, 진짜... 하필이면 다른 기록도 아니고 배리 본즈, 그 인간 기록이라서 볼넷이라도 내줬다간 또 볼넷 내줬다고 난리일 거고...”

레즈와의 홈 3연전을 준비 중인 워싱턴 내셔널스의 에이스이자 지난 시즌 사이영 위너, 코트니 매든은 거칠게 머리를 긁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번 시즌에도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뉴욕 메츠와 함께 치열하게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두고 다투는 중요한 상황이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건 영도를 상대해야만 한다는 것.

배리 본즈와 달리 상대하는 방법이 보이는 타자라지만, 역사적인 기록에 도전하는 타자이기에 피해가고 싶어도 피해갈 수가 없었다.

특히 매든처럼 사이 영 위너, 리그 NO.1을 다투는 투수라면 더더욱 그랬다.

다른 투수가 조심스러운 피칭 끝에 볼넷을 내주면 Y-DO가 워낙 대단한 타자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매든 같은 투수는 평소처럼 던지다가 볼넷이 나와도 쫄보다, 겁먹었다, 비겁하다는 비난이 쏟아질 게 분명했다.

오만하고 다소 찌질한 비호감 성격과 당시까지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심했던 인종차별까지.

그런 악조건들을 안고 뛰었던 배리 본즈마저 홈런 신기록에 도전할 땐 투수들이 정정당당하게 붙어주었다.

그러니 메이저리그의 흑역사라 할 수 있는 배리 본즈의 이름을 지우기 위해 내달리는 영도를 상대할 땐 당연히 투수들도 쉽게 피해갈 수 없었다.

싫어도 정정당당하게 붙어줘야 했고, 역대급 괴물과 상대하기 위해 머리가 터져기 직전까지 준비하고 대비해야 했다.

사이 영 위너에게도 영도와의 대결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대결이었다.

“젠장. 지난 시즌 도니의 성적이 왜 이렇게 별로였나, 했더니... 같은 지구에 Y-DO가 있어서였나.”

“하하하, 그럴 수도. 홈런 몇 개 맞으면 너희 정도 수준에선 FIP가 수직으로 뛰어오를 테니.”

“크리스, 같은 타자로서 뭐 해줄 말 같은 건 없나? 타자니까 그래도 뭔가 보이는 게 있을 수도 있는데.”

“없지. 첫 번째, 기본적으로 난 수비 덕분에 MVP 후보까지 가는 거지, 단순 공격력으로만 보면 Y-DO는커녕 로날드나 아놀드한테 상대도 안 돼. 둘째로는 난 컨택형이지 홈런 타자가 아니라고. 저런 선수는 어떤 삶을 사는지 나도 모른다는 거지.”

워싱턴 내셔널스는 사이 영 위너 코트니 매든과 MVP급 유격수 크리스 맥키니가 이끄는 팀이었다.

그리고 30홈런 타자 로기 쿤과 데미안 포터도 받쳐주는 데내셔널스도 이 타이밍에 한 번은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껴봐야 했다.

지난 시즌엔 영도의 로키스에 밀렸고, 이번 시즌 역시 내셔널리그에서 가장 전력 평준화가 심한 지구에서 경쟁하느라 와일드카드 경쟁에서 로키스, 컵스에 밀리는 중.

영도고 나발이고 지금 그런 것 신경 쓸 때가 아니고 1승이라도 더 챙겨야 하는데 내셔널리그 전체 승률 1위 레즈와의 3연전.

거기다가 에이스마저 포함한 투수들은 파체코, 영도, 리코로 이어지는 레즈의 ‘레드 머신즈’를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었고...

전체적으로 내셔널스의 상황은 복잡했다.

반면, 신시내티 레즈는 30여 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0.650에 육박하는 승률로 2위 시카고 컵스와의 격차를 10경기 차까지 벌려놓은 상태였다.

컵스도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 로키스와 반게임 차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중인데도 격차가 10경기.

이 정도면 레즈의 지구 우승은 거의 확정된 것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지금 레즈는 모든 구성원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영도의 홈런 신기록을 지원하는 중이었다.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새로 쓸만한 괴물을 키워내도 터질 때쯤이면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스몰마켓으로서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물론, 세계 최초의 프로야구팀인 만큼, 아직 낭만이 살아있던 70년대에 무시무시한 전성기를 보냈던 만큼 메이저리그 역사의 꼭대기에 이름을 남긴 선수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야구 역사상 최초로 지금과 같은 형태의 포수 미트를 사용, 포수 수비의 대세를 양손 캐칭에서 한 손 캐칭으로 바꿔버리는 등 현대 야구의 포수 수비 스킬을 완성한, 그러면서도 역대 포수 홈런 순위 5위, 본인이 은퇴하던 시기에는 1위를 기록했던, ‘가장 완벽한 포수’, 자니 벤치.

찰리 게링거와 함께 라이브볼 시대 최고의 2루수 쌍두마차로 꼽히며 완벽한 OPS형 히터로서의 모습을 보여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평가가 높아지고 있는 조 모건.

신시내티에서 나고 자란 홈보이이자, 홈보이로서 19년의 선수생활을 모두 신시내티 레즈에서만 활약한 프랜차이즈 스타, 유격수 최초의 30-30을 달성하고 골드 글러브 3회, 실버 슬러거 9회를 차지한 ‘빅 레드 머신’ 시대 이후 최초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 배리 라킨.

비록 도박에 연루되어 영구제명되긴 했지만,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 안타, 출장, 타석, 타수, 아웃 기록을 가지고 있는, 사생활에선 더 이상 추해질 수 없을 만큼 추해졌지만, 신시내티 지역 팬들과 언론의 지지로 위의 세 명과 함께 ‘프랜차이즈 4’로 선정, 영구 결번과 구단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원조 안타 기계’, ‘찰리 허슬’, 피트 로즈.

이들 모두 메이저리그 역사의 꼭대기를 차지하는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보면 알 수 있듯 선수 본인의 충성심이 아니었다면 지킬 수 없었을 배리 라킨을 제외하면 모두 ‘빅 레드 머신’ 시절의 선수들이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강의 타선으로 꼽히는 ‘빅 레드 머신’ 구성원들을 제외하면 배리 라킨이 유일한 명예의 전당 헌액자고, 그나마 그 근처로 평가될 만한 선수도 조이 보토 한 명밖에 없었다.

‘빅 레드 머신’ 시대 이후 60여 년 동안 단 한 명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와 한 명의 명예의 전당‘급’ 선수.

어쩌면 영도와 함께하는 이 시즌이 향후 100년 동안 가장 영광스러운 시즌일지 몰랐고, 그런 만큼 레즈 역시 최선을 다해 영도의 기록을 서포트하고 있었다.

코트니 매든을 비롯한 내셔널스 투수들, 그리고 내셔널리그의 투수들은 선수들부터 코칭스태프, 구단 직원들까지 40, 50명이 나서서 밀어주는 영도를 막아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야구는 기본적으로 1대1 승부가 기본인 스포츠라서 동료들이 도우려 해도 방법이 한정적이라지만... 40, 50명이 달려들면 그래도 유의미한 수준의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신시내티 레즈 이적은 영도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뤄졌지만... 결과적으로 완벽한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체사레 몬도, 데미안 포터, 데릭 제퍼슨을 얻은 로키스에게도, 영도와 함께 월드시리즈 우승을 바라보게 된 레즈에게도.

그리고 팀 전체의 서포트를 받아 홈런 신기록에 도전하게 된 영도에게도 역시.

***

‘아니, 씨X... 저 거북이 새X가 1루에서 저 지X을 떠는 게 대체 말이나 돼?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데!!’

다음 날, 선발로 마운드에 오른 코트니 매든은 결국 참지 못하고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평소 욕설을 거의 내뱉지 않는, 신사적인 성격으로 유명한 코트니 매든에게 흔치 않은 일이었다.

[사실, 굉장한 짜임새를 갖춘 타선을 완성한 레즈이기에 파체코, Y-DO, 리코를 2, 3, 4번에 배치한 건 당연한 선택이라고 다들 말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파체코와 리코는 타석에서 공격적으로 달려드는 전형적인 선수들이라 우산효과를 다소 포기하더라도 출루율이 높은 Y-DO를 2번에 두는 게 맞지 않느냐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파체코의 2번 배치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되었습니다.]

[0.260 근처의 타율로 0.325 근처의 출루율을 기록하면서 25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주던 선수가 0.279/0.353/0.527로 29홈런을 기록 중이죠. 30경기가 남았고요. 뒤에 Y-DO와 리코가 있다는 안정감이 타석에서의 인내심을 키워준 것 같아요. 둘의 우산 효과까지 받으면서 기본적인 스탯도 올라가고 인내심까지 좋아지면서 또 올라가고... 30세의 나이에 엄청난 성장을 이뤄냈죠.]

[리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리코는 0.270/0.330/0.570 정도로 40홈런 가까이 때려내던 타자였는데, 현재는 0.283/0.366/0.629로 43홈런... Y-DO의 영입으로 지금의 ‘레드 머신즈’가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머지 두 선수의 성장까지 이끌어냈어요.]

[하하, 지금 좀 보세요. 파체코는 정말 발이 느린 선수거든요? 그런데 1루에서 지금 끝없이 움직이고 있어요. 도루는 절대 못해요. 하늘이 무너져도 도루는 안 됩니다. 그런데 저렇게 움직이면 아무리 느린 주자라도 투수는 신경이 쓰이거든요?]

‘대체 Y-DO한테 뭘 받았길래 저렇게까지 도와... 아니지, 프로 선수로서 커리어 하이를 만들어주고 대박의 기회까지 만들어줬는데 저 정도는 당연히 해줄 수 있겠지. 젠장... 난 그렇게 해줄 사람 없나.’

수비가 안 되는 반쪽짜리 타자라 공격력에 비해 많이 아쉬운 4년 70M의 FA 계약으로 레즈에 합류한 타자.

하지만 아무리 수비가 안 돼도 양대 리그에서 모두 지명타자를 받아들인 시대에서 지금과 같은 성적이면 거의 1.5배 이상의 계약을 따낼 수 있었다.

2년 뒤 다시 FA 자격을 얻는 파체코에게 영도는 그야말로 은인과 같았다.

그러니 출루했을 때 지나치게 게으르다고 지적받던 그가 그 느린 발로 부지런히 빨빨대는 것이었고.

‘파체코... 감동적이네. 아주 눈물이 다 난다.’

영도 역시 타석에서 그런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면서도 참 고마웠다.

형편없는 스피드, 형편없는 주루 능력으로 그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어떻게든 도와주겠다고 저렇게 빨빨댄다는 게 참...

메이저리그 홈런 타자들에게선 절대 볼 수 없는 모습인데, 저런 모습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현재 레즈의 분위기가 얼마나 좋은지, 영도의 기록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저렇게까지 해주는데 기대에 부응하지 않을 수가.’

‘적당히 해라, 새끼들아. 꼴 보기 싫어서 내가 절대 홈런은 안 맞는다.’

같은 모습을 보고 영도는 힘을 냈고, 매든은 흥분했다.

특히 매든 본인은 각오를 되새겼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보단 흥분한 것에 가까웠다.

아무리 지난 시즌 사이 영 위너라 하더라도 매든 역시 사람이었고, 현재 팀의 상황과 영도에 대한 부담감 등으로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상태였다.

이런 상태로는 냉정을 유지할 수 없는 게 정상이었다.

속상해 할 필요는 없었다.

냉정을 잃지 않아도, 100%, 120%의 공을 던져도 얻어맞는 투수가 한 트럭은 넘어야 단일 시즌 홈런 신기록을 노릴 수 있는 거니까.

적어도 매든은 그들보단 분명히 나았다.

사이 영 위너의 자존심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였다.

[바로 지난 시즌 사이 영을 수상했던 코트니 매든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Y-DO의 강렬한 홈런! 60호 홈런 이후 8경기 동안, 이번 시즌 들어 가장 긴 기간 침묵했던 Y-DO가 다시 홈런 레이스를 이어갑니다!]

[그래도 129경기 째에서 61호 홈런이에요. 배리 본즈는 131번째 출전에 60호 홈런을 때렸으니까 아직도 많이 앞서는 거거든요? 잠깐 홈런이 멈췄다고 조급해하지 말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쭉 이어갔으면 좋겠네요.]

[조급한 마음 같은 건 경기력에 도움이 안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평정심이 중요합니다.]

[그렇죠. 평소 해왔던 대로.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훈련처럼. 그게 중요한 거죠. 기량은 이미 충분해요. 지금까지 다 보여줬습니다, Y-DO의 자격은.]

< 총동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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