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인 >
[인디언스의 빈약한 마운드가 Y-DO의 기록 달성을 전폭적으로 밀어주는 모습입니다. 시리즈 1, 2차전에서 두 경기 연속 멀티 홈런을 터뜨린 Y-DO가 어느새 60홈런 고지까지 한 발자국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빠른 페이스죠. 이게 Y-DO가 홈런을 때릴 때마다 배리 본즈가 소환될 수밖에 없는데, 배리 본즈의 55호 홈런이 117번째 경기에서, Y-DO의 55호 홈런은 또 한 경기 빠른 116번째 경기에서 터졌는데, 60호 홈런은 차이가 꽤 벌어질 듯한 느낌이죠?]
[지금 59호 홈런인데 신시내티 레즈는 122차전을 치르는 중이고, Y-DO는 121번째 경기를 치르는 중. 그런데 60홈런을 노리는 중... 배리 본즈가 55호 홈런부터 60호 홈런까지 꽤 오래 침묵했다고는 하지만, Y-DO가 미친 거죠, 이건. 55호 홈런부터 59호 홈런까지 4일 걸렸다는 겁니다.]
[안 그래도 배리 본즈보다 7, 8경기는 많이 출전할 것 같은데 60홈런 고지에 10경기 가까이 빨리 도달하면... 대체 Y-DO는 몇 개의 홈런을 때리려고 하는 걸까요?]
예상대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영도의 강력한 구름판이 되어주었다.
탄성이 아주... 높이뛰기 경기장에 가져다 두면 세계 신기록이 1m는 더 높아질 강력한 구름판.
배리 본즈의 결장 경기 숫자 때문에 생각보단 여유로운 상황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본즈의 후반기 페이스는 꽤 부담스러웠다.
기록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마음의 부담도 심해지고 조급해질 테니 기록과 차이가 좀 있을 때 최대한 빠르게 달려나가는 게 유리하긴 했다.
그걸 지금 인디언스가 온 힘을 다해 도와주는 중이고.
3연전에서 홈런 6개만 때리겠다던 김진형과의 약속이 어느새 지켜지고 있었다.
영도 본인도 어느 정도는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Y-DO의 첫 타석입니다. 유리 파체코의 2루타로 1아웃 2루에서 타석에 들어서는 Y-DO! 아무리 Y-DO가 대단해도 1아웃 2루에서 1회부터 거르긴 좀 애매하지 않습니까?]
[배리 본즈와 다른 점이죠. 배리 본즈는 장타력뿐 아니라 컨택과 선구안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기에 투수들이 스트라이크를 제대로 못 던졌어요. 그래서 타율과 출루율이 상상을 초월했지만, 어쨌든 홈런을 때려낼 기회 자체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죠.]
[Y-DO의 컨택, 선구안이 본즈보다 부족한 게 홈런 레이스에선 이득이 된다는 뜻입니까?]
[어느 정도는? 물론, Y-DO의 선구안도 굉장히 좋은 편이고 컨택도 파워의 영향을 빼고 순수 컨택만 고려해도 평균은 돼요. 본즈가 너무 대단했던 것뿐이죠.]
본즈의 고의사구가 본격적으로 늘어난 건 73홈런을 때려낸 다음 시즌, 2002시즌부터였다.
2001시즌에는 단일 시즌 홈런 신기록에 도전하는 상황이었기에 상대 투수들도 신기록을 존중해, 그리고 비판을 의식해 대놓고 피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다만, 워낙 본즈의 성적이 궤를 벗어났고 선구안마저 역대 최고 수준이었기에 평소보다 50개 가까이 늘어난 177개의 볼넷을 얻어냈을 뿐.
2004시즌의 본즈는 볼넷 232개, 고의사구만 무려 120개를 얻어내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한 200개 이상의 볼넷, 세 자리수 고의사구를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영도가 컨택과 선구안 부문에서 본즈에게 현격히 밀린다는 게 장점이 될 수도 있었다.
3할이 조금 안 되는 타율, 두려움을 안고 조심스럽게 던지는 투수들을 상대하면서도 100여 개의 볼넷에 그치는 선구안은 투수들로 하여금 희망을 갖게 했으니까.
본즈와 비교하면 영도는 공략법이 보이는 타자였다.
‘너무 대놓고 바깥쪽으로 가는 거 아닌가.’
그러나 그것도 비교적 평범한 승부로 영도를 잡아낼 수 있는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투수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
아무리 크게 잡아도 최소 7할 이상의 투수들에겐 영도 역시 본즈와 마찬가지로 답이 없는 타자였다.
볼넷을 내줘도 좋으니 바깥쪽 일변도의 승부로 어떻게든 장타만 면하고 싶은 그런 타자.
분명 홈런을 때리긴 어려운 공들도 많았지만, 투수의 공을 예측하고 노려서 때리긴 쉬웠으니 장점과 단점이 상쇄된다고 쳤을 때.
영도의 파워는 바깥쪽 공도 까마득하게 넘어가는 초장거리 홈런으로 연결할 수 있었다.
‘아... 잘못 맞았네...’
[바깥쪽 공을 노리고 크게 휘두릅니다! 아! 이번엔 너무 아랫부분을 때린 듯한 느낌! 로켓처럼 바로 위로 치솟았습니다!]
[Y-DO가 무시무시한 파워로 무시무시한 각도의 문 샷을 자주 홈런으로 연결하는 타자입니다만... 이번엔 좀 발사각이 너무 높아 보이거든요?]
[문 샷은 Y-DO의 아이덴티티 같은 전매특허입니다만, 아무래도 이런 타구는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공이 어디 있는 겁니까?]
[로켓 같은 각도로 치솟았다고 했는데 혹시 정말 로켓이었나요? 전혀 보이지도 않고 수비수들도 공의 위치를 잃어버리지 않으려 갖은 애를 다 쓰는 모습인데요?!]
하지만 어쨌든 홈런타자를 상대로 바깥쪽 위주의 승부를 가져가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아무리 영도라 해도 홈런을 노리는 스윙으로 바깥쪽 공을 공략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번 시즌 역시 크게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타율만 지난 시즌과 비슷한 수준, 혹은 그보다 살짝 떨어진 수준에서 유지되는 건 조금 더 노골적으로 장타를 노리기 때문이었고, 지난 시즌에 비해 바깥쪽 공략이 어려워진 건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아니, 그래서 대체 공이 어디 있는 건데! 이런 타구 제일 싫다고. 무조건 잡아야 하는 공이라고 다들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라인드라이브 타구보다 훨씬 잡기 어려운 공!’
하필이면 3루수 김진형 쪽으로 높게 치솟아버린 타구.
그냥 평범하게 높이 뜬 공도 대기의 흐름과 바람의 영향, 햇빛 등의 다양한 이유로 처리하기 어려운데 그런 평범한 타구는 실전에서 절대 존재할 수 없었다.
모든 타구는 타격 과정에서 강한 스핀이 걸리기 마련이었고, 높이 뜨면 뜰수록 그 스핀은 낙구 지점 판단을 방해했다.
그러나 아무리 높이 뜬 타구라도, 아무리 강한 스핀이 걸린 타구라도 팬들이 보기엔 그저 내야 플라이일 뿐이었다.
영도의 괴물 같은 파워가 겹치며 과장 조금 보태서 위로만 100m 가까이 치솟은 타구였지만, 김진형은 이 타구를 무조건 잡아내야만 했다.
‘그만, 이제 그만 좀 얌전해지라고!!’
공중에서 끝없이 흔들리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방해하는 영도의 타구.
계속 고개를 쳐들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니 목도 아프고 눈도 아프고 시야도 흐려지는 느낌이었지만, 김진형은 어떻게든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부여잡았다.
[어어, 불안해 보입니다! 불안해 보이는데요!]
[어려운 타구예요, 어려운 타구지만, 그래도 잡아야죠!]
이제 타구가 슬슬 그라운드 근처로 떨어지고 있었지만, 김진형의 몸은 계속 앞뒤 좌우로 흔들렸다.
김진형의 수비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물론, 메이저리그 기준으로 수비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타구 속도의 문제였지, 타구 속도와 크게 관계없는 상황에선 김진형의 수비력도 좋은 편이었다.
‘그만 좀, 그만 좀 흔들려라!!’
무슨 너클볼도 아니고 무회전 프리킥도 아닌 것이 거의 다 떨어진 마지막 순간까지도 계속해서 흔들리는 영도의 타구에 김진형의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이 짧은 시간에 얼마나 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는지...
[불안한 자세였지만, 그래도 잡아냅니다! Y-DO는 다소 굴욕적일 수도 있는 내야 플라이를 때려도 자신의 파워를 보여줍니다.]
[쉬워 보이겠지만, 절대 쉬운 타구는 아니었거든요? 킴도 잘 잡아줬네요.]
‘하여튼 유영도... 괴물 같은 놈이야. 내야 플라이로 이런 임팩트를 보여주는 게 말이나 되는 거냐고.’
김진형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영도도 사람이고 3할보다 조금 낮은 타율을 기록 중이라 아무리 역사에 도전하는 시즌이어도 7할은 범타였다.
그런데 범타로도 이런 임팩트라니...
이 정도 기량이 있어야 메이저리그에서 역사를 새로 쓰는 선수가 될 수 있구나.
김진형은 새삼스레 영도의 파워에 감탄했다.
‘나 참... 그래도 같은 선수고 포지션도 같은데 이렇게 자랑스럽고 막 그래도 되나... 좀 더 경쟁심을 불태워야 하는 거 아닌가.’
한국 야구의 자존심, 나아가 아시아 야구의 자존심.
같은 선수로서 이러면 안 되는데 점점 영도가 자랑스러운 마음만 커져가고 있었다.
***
[이 경기가 이렇게 됩니다! 유영도 선수의 4타수 3안타, 2루타 3개는 뭐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만, 김진형 선수도 홈런 두 개를 터뜨리면서 오히려 유영도 선수보다 오늘 경기에서만큼은 더욱 강력한 임팩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게 참... 유영도 선수의 활약은 너무 자랑스럽고 대단하죠. 그건 당연한 겁니다. 그런데 유영도 선수는 너무 대단해서 내가 선배고 야구인임에도 팬의 마음으로 보게 된다면 김진형 선수는 선배의 마음, 야구인의 입장에서 보게 되거든요? 그래서 마음이 더 가요. 유영도 선수는 너무 자랑스럽고, 감사한데, 김진형 선수는 대견하네요.]
[아... 확실히 그런 느낌이 있긴 있습니다. 김진형 선수도 너무 대단한 스타고, 유영도 선수가 없었다면 지금 유영도 선수 같은 느낌을 줬을 수도 있지만... 확실히 유영도 선수에게 가려지는 느낌 같은 게 있긴 있습니다.]
[그게 너무 아쉽죠. 정말 성적 너무 좋거든요? 너무 잘하는데 이슈를 너무 빼앗겼어요.]
영도와 김진형의 맞대결.
물론, 두 경기 연속 멀티 홈런을 때려낸 영도가 시리즈의 주인공이었지만, 김진형의 활약도 나쁘진 않았다.
특히 오늘은 멀티 홈런을 때려낸 김진형이 주인공.
그리고 어제 2차전에서는 유형근도 등판해서 7이닝 2실점 호투로 승리투수가 되었고, 반성훈도 두 경기에 등판, 2이닝 무실점으로 완벽히 역할을 해냈다.
메이저리그에서 두 팀이 만났는데 한국 야구를 짊어진 선수가 네 명이고 네 명이 다 같이 날뛰는 시리즈.
안 그래도 영도 덕분에 한국에서 메이저리그 인기가 크게 늘었는데 이후 진출한 선수들까지 다들 날아다니고 영도 이전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던 박희성과 안정규도 꾸준히 자기 몫을 해내는 중이었으니...
메이저리그 시청률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다.
영도의 인기는 미국은 물론 한국, 일본 등 야구가 인기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지붕을 뚫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올스타급 WAR을 기록 중인 유형근, 박희성, 김진형 같은 선수들이 한국에서마저 묻혀버릴 정도로.
[자, 3경기 연속 홈런에 도전하는 Y-DO, 유영도 선수의 아마도 오늘 경기 마지막 타석. 물론, 오늘도 참 인디언스답게 김진형 선수의 멀티 홈런에도 불구하고 12-7, 큰 점수 차로 밀리고 있는데... 그래도 유영도 선수에겐 지금 어떤 홈런이든 중요한 시기 아니겠습니까?]
[유영도 선수라고 해서 항상 접전에서만 홈런을 때려줄 필요는 없죠. 애초에 홈런을 워낙 많이 때리다 보니 당연히 경기가 기운 상태에서 나온 홈런도 꽤 돼요. 그런데! 경기 기울었을 때 때린 홈런은 홈런이 아닌가요? 배리 본즈도 홈런 73개가 다 중요한 홈런이었겠어요? 아니거든요?]
‘오늘은 확실히 나보다 진형 선배, 리코가 더 인상적이었지.’
슬슬 여름도 끝나가고 잠시 부진했던 레즈 선수들도 살아나서 다시 스탯을 쌓아나갔다.
한동안 영도가 팀을 이끌었지만, 아무리 영도가 대단하다 해도 시즌 내내 한 팀을 끌고 갈 순 없는 법.
이제 한 달 동안 고생한 보답을 받을 차례였다.
[알파로와 파체코가 출루하면서 2사 1, 2루 찬스. 유영도 선수에게 60호 홈런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인디언스도 어느 정도는 욕심을 버린 듯하죠? 마운드에는 패전조에 가까운 선수가 올라왔고... 정말 좋은 기회거든요?]
‘내 덕분에 앞뒤로 우산효과를 톡톡히 본다고 하는데... 솔직히 나도 분명히 덕을 보는 게 있지.’
영도 덕분에 파체코와 리코가 크게 덕을 보는 시즌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하지만 앞뒤로 35홈런 타자, 50홈런 타자를 두고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기만 한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영도가 단일 시즌 홈런 신기록 도전에는 분명 신시내티 레즈라는 팀, 그리고 파체코와 리코라는 좋은 타자들의 힘이 분명히 있었다.
[역시! 역시 마지막까지 침묵하지 않는 유영도 선수! 김진형 선수와 맞붙는 인디언스와의 3연전에서 3경기 연속 홈런, 그리고 5번째 홈런을 터뜨립니다! 시즌 60호 홈런!!]
[121번째 출전에서 60홈런이거든요? 본즈보다 계속 한 경기씩만 앞서다가 이번엔 10경기를 앞섰어요! 두 경기마다 하나씩 홈런을 쳐내는 이 두 선수의 기록 경쟁에서 10경기는 절대 적은 차이가 아니거든요!? 절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 이 페이스만 유지하면 됩니다! 더 잘할 필요도 없어요! 딱 지금만큼만!]
신시내티 레즈의 운명을 건 시즌, 이번 시즌에 모든 걸 올인한 레즈였지만, 이제 영도 역시 이번 시즌에 모든 걸 걸어야 했다.
파체코와 리코, 둘이 합쳐 80홈런 페이스로 내달리는 타자들을 앞뒤에 둘 기회는 은퇴할 때까지 다신 없을지도 몰랐다.
배리 본즈의 기록에 도전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
영도 역시 이번 시즌에 모든 걸 걸었고, 모든 힘을 다해 내달리고 있었다.
< 올인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