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영웅을 맞이하는 방법 > (162/200)

< 영웅을 맞이하는 방법 >

아무리 늦어도 4월 중에는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세리머니가 펼쳐지는 게 일반적이었다.

지난 시즌의 여운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다시 한 번 기쁨을 만끽하고, 시즌 개막의 설렘이 사라질 즈음에 우승 반지 세리머니를 통해 분위기를 다잡는 의미였다.

하지만 2041시즌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세리머니는 5월 25일에 열렸다.

평소보다 꽤 늦은 타이밍이었지만, 이유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지금은 비록 우리와 함께하지 못하지만, 단 한 시즌, 지난 시즌의 엄청난 활약으로 로키스에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안긴!! 콜로라도의 영웅, ‘A-Zero’, 유!! 영!! 도!!]

5월 25일은 콜로라도 로키스와 신시내티 레즈의 이번 시즌 첫 맞대결이 쿠어스 필드에서 펼쳐지는 날이었다.

즉, 로키스를 떠난 영도가 처음으로 쿠어스 필드에 돌아오는 날이었다.

콜로라도 로키스는 말로만 영도를 영웅, 레전드로 대우하는 게 아니었다.

진심을 다해 영도를 사랑했고, 우승 반지 세리머니를 한 달 이상 늦추더라도 영도가 있는 곳에서 우승 반지 세리머니를 열고 싶어 했다.

로키스 구단만 영도를 대우해주는 게 아니었다.

이젠 원정팀 소속으로 쿠어스 필드를 찾았음에도 쿠어스 필드를 가득 메운 로키스 팬들은 영도에게 아낌없는 함성과 환호, 기립박수를 보내주었다.

영도는 구단도, 선수들도, 팬들도 인정하는 로키스의 영웅이자 레전드였다.

“크으... 우리 Y-DO... 이번 시즌은 지난 시즌보다도 더 미쳤던데? 이제 겨우 50경기 넘겼는데 25홈런이라니...”

“로키스도 요즘 좋던데요, 뭘.”

“우리야 뭐... 네가 남겨주고 떠난 유산들이 다들 괜찮더라. 체사레, 데미안... 둘 다 대박이더라고.”

“그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했죠.”

영도를 떠나보냈지만, 디펜딩 챔피언 콜로라도 로키스의 2042시즌 초반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제러드 홉슨, 브랜든 에레라, 커트 페니, 체사레 몬도, 버나드 케플러.

로키스가 다시는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를 완벽한 선발 로테이션이 결정적이었다.

특히 홉슨을 제외한 나머지 네 선수는 아주 어린 선수들이었고, 이번 시즌 처음으로 연봉 조정 자격을 얻은 에레라를 제외하면 페니가 풀타임 2년 차, 케플러와 몬도는 1년 차에 몬도는 ROY 자격이 있는 순수 루키.

강해진 선발 로테이션과 원래 강했던 불펜, 지난 시즌의 탄탄한 타선에서 영도를 제외한 핵심 선수들을 지켰고, 영도의 빈자리를 채운 데미안 포터 역시 쿠어스 필드 효과를 받아 30홈런 페이스를 보여주는 중...

성적이 나쁘기가 더 어려웠고, 젊은 선수들 위주의 팀이었기에 리빌딩을 선언했을 때 유망주를 당겨오기도 쉬웠다.

반지를 건네주는 제프리 에녹 로키스 단장의 표정이 밝지 않으면 이상한 상황이었다.

“우리 버리고 가니까 좋냐!? 좋아!? 로키 산맥에서 내려가니까 표정 좀 좋아 보인다?”

“좋긴 무슨... 나 이제 겨우 풀타임 5년 차다. 팀에서 가라면 가는 거지, 버리긴...”

“Y-DO!! 이번엔 안 봐줍니다! Y-DO 없어도 우린 강하다고요! 봤죠?”

“브랜든... 여전하네.”

“죄송합니다. 브랜든은 원래 저런 사람이니까 Y-DO가 이해해요.”

“센시오 리코는 얼마나 잘하죠? 저랑 차이가 큰가요?”

로키스 선수들은 반년 만에 만난 영도를 열렬히 환영해주었다.

게일 해니건, 브랜든 에레라, 커트 페니, 프레드릭 더햄, 그 외에도 많은 선수가 다가와 밀린 이야기를 빠르게 꺼내놓았다.

키스 가드너, 앤서니 모리스 같은 과묵한 선수들 역시 따로 말을 걸진 않았으나 옅은 미소라도 지은 채 조용히 근처에 서 있는 등 모두가 영도를 반기고 있었다.

“적당히 해, 적당히. 같은 팀일 땐 이보다 든든할 수가 없었는데 다른 팀 되니까 이보다 무서울 수가 없네. 53경기 25홈런이 대체 말이나 되는 숫자냐?”

“잘 모르겠지만... 81경기 39홈런. 그것도 한 번 깨볼까 생각은 하고 있다.”

“오... 좀 변했다? 전에는 하루하루 살아남는 게 목표라느니 메이저리그에 자리 잡는 게 목표라느니 나 같은 평범한 선수들 복장 터지는 말만 하더니... 이젠 대놓고 메이저리그 역사를 새로 쓰는 게 목표다, 이거냐?”

“사람인데 변해야지. 내 위치를 잘 알고 그에 맞춰 변해야 성장하는 거니까.”

로키스의 상황이 좋다지만, 레즈는 그보다 한 수 위였다.

당연히 영도 덕분이었다.

53경기 25홈런으로 배리 본즈가 가지고 있던 전반기 최다 홈런 기록 39홈런에 도전 중이었고, 자연스럽게 같은 시즌 작성된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 73홈런 기록 경신에도 관심이 쏠리는 중.

이번 시즌은 올스타전 일정이 살짝 밀려 전반기 경기 수만 97경기에 달했기에 전반기 39홈런은 어렵지 않게 달성할 거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대중은 항상 그 이상을 기대하는 법.

불명예스러운 배리 본즈의 73홈런 기록이 깨어지길 바라는 대중들은 그가 39홈런을 기록했던 81경기 전에 39홈런을 때려주길 기대하고 있었다.

당시에도 전반기 일정은 87경기였으나 2001년 당시 이미 36세였던 본즈가 6경기에 결장한 것.

팬들은 최소한 87번째 경기 전에 39홈런을 넘겨주길 바랐고, 이왕이면 81번째 출전 경기 전에 넘겨주길 원했다.

그만큼 팬들은 배리 본즈의 기록을 누군가 없애주길, 그래서 앞으로 언급될 일을 최대한 줄여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본즈의 기록은 너무나도 압도적이었고, 40년 동안 그 누구도, 근처까지도 다가서지 못했다.

그리고 등장한 Y-DO라는 괴물.

영도에 대한 관심이 미국 전역을 뒤흔드는 건, 전 세계 야구팬들을 들썩이게 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가 디펜딩 챔피언인데 관심을 못 받는 것 같아. 원래 인기 많았던 다저스, 컵스 같은 팀이나 조금 관심받고 내셔널리그 팬들의 모든 관심이 너, 그리고 레즈한테 쏠린 것 같아서 좀 씁쓸하다, 이거지.”

“역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니까.”

“그래! 나 욕심쟁이다! 한 번 겪어보니까 예전으로 돌아가기 힘든 걸 어쩌라고!”

“누가 뭐랬나. 인간은 다 그렇다는 거지.”

73홈런 당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도 예년에 비해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이번 시즌 레즈는 그 이상이었다.

배리 본즈 이외에는 지구 우승도, 와일드카드도 획득하지 못했던 당시 자이언츠와 달리 이번 시즌 레즈는 53경기에서 34승 2무 17패, 0.667의 고승률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승률도 승률이지만, 영도가 보여준 지난 시즌 월드시리즈 우승 청부사 신화가 또 한 번 이어질지도 관심거리.

그만큼 지난 시즌 로키스의 월드시리즈 우승 과정에서 보여준 영도의 활약이 장기적으로도, 단기적으로도, 중요한 순간의 임팩트로도 완벽했기 때문에 개인 성적은 물론 팀 성적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메이저리그가 아무리 메이저 스포츠고 팬이 많아도, 어느 정도 세계화가 이뤄졌어도 팬들의 관심은 무한하지 않았다.

영도가 개인에 대한 관심과 팀에 대한 관심을 싹 쓸어갔으니 나머지 팀들, 특히 내셔널리그 팀들은 예년보다 관심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이왕 관심 다 가져간 거 이번 시즌에 끝내라. 다음 시즌, 또 다음 시즌에도 계속 이어지면 우리도 힘들어.”

“당연히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니 이번 시즌에 끝내고 싶지. 내가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다면 73홈런이 뭐야. 80홈런도 치고 싶다.”

“80홈런... 진짜 하는 거 아냐? 지난 시즌이랑 이번 시즌 보면 다음 시즌쯤 80홈런도 가능할 것 같은데.”

“가능하면 좋겠네.”

“그래, 행운을 빌게! 그러니까 꼭 이번 시즌에 끝내고 다음 시즌엔 관심 좀 토해내!”

“당신도 행운을 빌어. 포스트시즌에서 보자고.”

다이아몬드가 200개, 보랏빛의 자수정이 80개.

이번 콜로라도 로키스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에 들어간 보석의 개수였다.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기념, 로키스는 과감하게 투자해 화려한 반지를 제작했다.

‘이게 그렇게 많은 선수들의 목표라는 거지?’

뭐... 예쁘긴 예쁘네.

메이저리그의 새로운 역사를 쓰면서 반지도 한 번 열 손가락마다 하나씩 끼워볼까.

그것도 꽤 괜찮은 목표면서 커리어 전체를 투자할 만한 가치와 난이도가 있을 것 같은데...

“Y-DO! Y-DO!! 예전 팀 선수들이랑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오래 해!!”

“... 리코, 또 왜 그러는데. 뭐가 문제야.”

“예전 동료들이랑 대화가 너무 많았잖아! 그러니까 대체 무슨 이야기 한 건데?”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그냥 밀린 이야기 좀 한 거지. 지난 시즌 이야기도 좀 하고.”

“지난 시즌 이야기를 왜 하는 거냐고! 지금은 우리 팀인데! 우리랑은 그렇게 많이 대화하지도 않잖아!”

“... 왜 그러는데, 대체...”

자기만의 세계가 확실하다고? 팀의 중심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 팀을 떠난 체사레 몬도, 데미안 포터랑 절친한 사이였기에 벽을 세운다?

‘어떤 새끼가 그딴 식으로 지껄인 거지. 깊은 대화 한 번 나눠봤으면 좋겠는데.’

자기만의 세계가 확실한 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게 자기만의 세계일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러나 나머지 두 개는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최근 센시오 리코는 영도를 팀의 핵심이자 간판으로 100% 인정했다는 듯 살가운 모습을 보였고, 지난 시즌 프레드릭 더햄이 보여준 모습 이상으로 공손한, 영도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진짜 적응 안 된다. 무슨 구속하는 여자친구야?”

“... 내 말이...”

팀 합류 초반부터 리코와 빠르게 친해졌던 유형근과 굳이 친해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영도.

두 사람은 최근 리코가 보여주는 모습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도 영도가 없는 곳에선 카리스마 있는 척하면서 클럽하우스 리더가 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게 더 어색했다.

영도야 그렇다 치더라도 유형근을 비롯한 나머지 동료들 역시 영도 앞에서 보여주는 리코의 모습에 당황하는 중이었으니까.

“뭔데? 둘이 무슨 일 있었어? 너무 갑자기 저러는 거 아냐?”

“있었을 리가. 내가 딱히 동료들이랑 에피소드 만들고 그런 스타일은 아닌데.”

“그럼 왜 저러지? 그냥 너무 충격받아서 저러는 건가?”

“무슨 충격.”

“형이 너무 잘하니까. 자기가 최고인 줄 알면서 살다가 너무 압도적인 괴물을 만났을 때 당황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그런 거 있잖아, 왜.”

“그건... 그럴 수도 있겠지.”

본인 능력에 강한 자부심을 가진 선수가 명백히 본인보다 위에 있는 선수를 만났을 때 충격받는 경우는 간혹 있었다.

특히 실패 한 번 없이 승승장구, 빅리그마저 데뷔 첫 시즌부터 곧바로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리코에겐 이번이 첫 번째 충격이었다.

물론, 그보다 성적이 좋은 선수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커리어와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 거지, 시간이 흐르면 자신보다 위에 있는 선수들을 모조리 따라잡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니 53경기에서 25홈런을 때려낸 영도를 옆에서 지켜보며 받은 충격이 생각보다 강했을 순 있었다.

홈런은 물론이고 타율, 출루율, 장타율, 심지어는 수비와 주루 센스까지 무엇 하나 영도보다 앞서는 게 없었으니까.

“그렇게까지 큰 충격이었나. 대체 얼마나 충격을 받았으면 사람이 저렇게까지 변하는 거지...”

“... 그렇다고 형이 너무 또 진지하게 받으면 센시오가 두 번 충격받을 것 같은데...”

“아, 그런가. 농담이었나.”

“아니, 뭐... 아예 농담인 건 또 아닌데... 그리고 꼭 충격이 아니라 큰 도움을 받아서 순해진 걸 수도 있지. 유리도 그렇지만, 솔직히 형이 영입되면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선수가 센시오잖아? 우산효과가 이렇게 대단한 건지 난 처음 알았네.”

53경기 25홈런의 영도가 너무 독보적이어서 그렇지, 센시오 리코 역시 53경기 16홈런, 50홈런 페이스로 내달리는 중이었다.

원래 40+홈런 포텐셜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선수이기도 했지만, 지난 두 시즌 동안 37홈런, 38홈런이었는데 순식간에 50홈런 페이스.

풀타임 데뷔 이후 7시즌 동안 평균 25홈런 정도를 때려냈던 유리 파체코 역시 35홈런에서 40홈런까지 노려볼 수 있는 페이스로 달리는 중이었다.

그만큼 영도의 영입 이후 앞뒤에 배치된 리코, 파체코가 누리는 우산 효과가 엄청났고, 이로 인해 태도가 변했을 수도 있었다.

“뭐, 됐다. 이유가 뭐 중요하겠냐. 그냥 도저히 적응이 안 된다는 게 중요하지...”

“... 그렇죠. 대체 언제까지 저럴 건지... 그래도 틱틱대는 건 아니니까 그나마 낫지 않아요? 어쨌든 형을 좋아는 하는 거잖아.”

“... 팀으로선 나쁘지 않겠지만...”

“그냥 형이 좀 참아요. 사이 좋으면 팀 성적도 잘 나온다면서. 고작 1년인데 그냥 참으면 되지.”

“아, 진짜 적응 안 되는데.”

“괜찮아, 괜찮아. 살다 보면, 경험하다 보면 다 적응합니다. 사람이 다 그렇더라고.”

< 영웅을 맞이하는 방법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