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군만마 혹은 애물단지 >
[드디어 계약 완료!! 유형근, 4+2년 보장 금액 7,500만 달러, 최대 8,500만 달러에 신시내티 레즈 합류 확정!]
[초반 4년 4,500만 달러 보장, 최대 4,800만 달러. 옵트아웃 미발동시 이후 보장금액 2년 3,000만 달러, 최대 3,700만 달러. 에이스도 없고 무시할 수도 없는 선발진 완성]
[신시내티 레즈, 새로운 국민 구단 등극? 유영도에 이어 유형근, 심지어 반성훈까지 영입!! 1+1년 최대 1,000만 달러에 계약 체결!!]
“... 네가 왜 여기 있냐.”
“계약을 했으니까? 크으, 진짜 일이 이렇게 되네. 형이랑 이번엔 같은 팀 해보고 싶다니까 바로 같은 팀도 되고... 이번 시즌은 시작부터 느낌이 좋은데?”
신시내티 레즈는 스토브리그를 영도 영입으로 끝내지 않았다.
아니, 영도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더더욱 적극적으로 전력 보강에 나섰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앞으로 3, 4년을 두고 꾸준히 대권에 도전했겠지만, 영도가 영입되면서 이번 시즌 무조건 대권을 차지해야만 했다.
일단 레즈 전력은 지난 시즌을 기점으로 어느 정도 완성된 상태였다.
중소마켓의 한계상 아주 완벽하게 갖춰진 전력은 아니었지만, 중소마켓이자 매 시즌 TOP 5안에 무조건 들어가는 극단적인 타자친화구장을 쓰는 팀으로선 이보다 더 탄탄한 전력을 갖추기도 어려울 정도.
그래서 레즈는 없는 살림을 탈탈 털어 선발진을 또 한 번 보충했다.
로키스보다는 그래도 좀 낫지만, 레즈 역시 리그를 지배하는 수준의 선발투수는 어차피 영입할 수 없는 팀.
준수한 2선발급의 카를로스 사뇰, 평범한 2선발급의 토드 칸터, 뛰어난 3선발급의 제이미 리로 1, 2, 3선발을 갖췄던 레즈는 이미 빡빡하게 채웠던 팀 샐러리를 쥐어짜 2, 3선발급이라는 평가의 유형근까지 영입했다.
에이스로만 비교하면 하위권, 원투펀치로 평가해도 중하위권이지만, 4선발까지 묶으면 순식간에 상위권으로 올라가는 기형적인 선발 로테이션.
레즈는 어차피 타선을 앞세우는 팀이었기에 이 정도 선발 로테이션이면 대권에 도전해볼 수 있었다.
부족한 부분은... 어렵게 영입한 영도에게 맡겼고.
“진형이 형도 이번에 인디언스랑 계약했던데요? 2+1년에 2,600만 달러였나?”
“보장금액은. 옵션 다 받으면 3,200만 달러.”
“크으... 아메리칸리그 최하위권 팀이라 그런지 베팅도 과감하네요. 2년 뒤에는 형도 FA로 초장기 계약 때릴 테니 FA 신청하긴 최적의 타이밍이고.”
“너한테도 전화해서 투덜댔냐.”
“네. 그러더라고요. 형 때문에 계약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그래서 4년 계약도 들어왔었는데 2+1년으로 했다고 들었어요. 하여튼 형 때문에 몇 명이 고생하는지...”
“내 탓은 아니니까.”
유형근과 반성훈 외에도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팀을 구하던 한국 선수들, 김진형과 안정규 역시 그래도 어렵지 않게 계약을 체결했다.
김진형은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최하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계약했고, 안정규는 같은 지구 우승팀 미네소타 트윈스로 5년 7,000만 달러에 합류했다.
김진형도, 안정규도 생각보다 좋은 조건이었다.
김진형의 계약은 아시아 출신 야수치고는 훌륭한 편이었고, 안정규 역시 33세부터 37세 시즌을 커버하는 3선발급 투수의 계약인 걸 생각하면 훌륭했다.
이번 시즌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의 시작은 더없이 훌륭했다.
“근데 혼자 서부지구에 있는 희성 선배님 빼면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그중에서도 신시내티 레즈에 세 명,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에 두 명이네요?”
“기자들은 편하겠네.”
“아... 그러네? 그래도 한국보단 몇 배는 더 멀지만.”
“너도 고생 좀 할 거다. 여기선 서울에서 부산 정도 원정 거리면 옆집 원정 같은 느낌이니까.”
물론, 좋은 조건으로 계약했다고 끝은 아니었다.
모든 계약이 그렇듯 한국 선수들 역시 계약이 이뤄진 이후가 진짜 시작이었으니까.
약자멸시가 어려운 선수들의 높은 평균 기량, 너무나도 먼 이동 거리, 분석도 어렵고 경험으로 상대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팀과 선수들.
아시아에서 넘어온 선수들을 괴롭히는 요소는 산처럼 쌓여 있었다.
좋은 계약을 따내며 좋은 위치에서 시작할 순 있겠지만, 미국 스포츠답게 어마어마한 돈이 오가는 리그에서 1, 2천만 달러는 큰돈이 아니었다.
물론, 아까운 돈이고 작지 않은 타격이었지만, 눈물을 머금고 포기할 수 있는 돈.
한국 야구의 발전과 한국 야구의 저변 확대를 위해선 당장의 좋은 계약 조건에 만족하지 말고 이제부터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 했다.
“미리 와서 보니까 어때? 팀 분위기는 괜찮나.”
“오... 형 의외인데요? 형이랑 같이 뛴다고 성호 선배님이나 규영이 형한테 물어봤는데... 팀 분위기 이런 거 신경 쓰는 사람 아니라고 했는데?”
“이제 배가 불러서? 배가 부르니까 이제 슬슬 좋은 사람인 척 위선도 좀 떨고 하려고.”
“... 농담하는 사람도 아니라고 했는데.”
“제츠 시절에도 막판엔 농담 잘했는데. 두 사람이랑 전화 좀 해봐야겠네.”
“오! 드디어 보는 건가요? 전설의 벤치 클리어링?”
메이저리그 스프링 트레이닝은 항상 투수와 포수들이 일주일 정도 먼저 모이고 이후 야수조가 합류하는 시스템이었다.
유형근과 반성훈은 투수였기 때문에 먼저 스프링 트레이닝에 합류했고, 이미 팀 분위기를 일주일 정도 먼저 익힌 상태였다.
“여어, YG! 이따가 나도 소개해줘! Y-DO랑 같은 팀이라니... 오랜만에 막 설레는데?”
“크하하하, 나도! 나도 천하의 Y-DO랑 말이라도 해보고 싶어! 슈퍼스타!! 나의 영웅, 나의 희망!!”
“말론! 우리 에이스한테 그게 무슨 실례입니까! Y-DO, 미안해요! 이따가 YG랑 같이 보자고요!!”
그때, 레즈의 원투 펀치, 카를로스 사뇰과 토드 칸터, 그리고 주전 포수 말론 버드가 지나갔다.
그리고 세 선수 모두 유형근에게 허물 없는 친근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에이씨... YG는 찝찝하니까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는데...”
“하긴. 네 이름도 부르기 어렵긴 하네.”
“어차피 형은 무조건 Y-DO니까 ‘유’라고 부르라 했더니 그건 2인칭 대명사랑 헷갈린다고 안 되고, 형, 근, 둘 다 발음 어려워서 안 되고... 제일 발음하기 쉬운 게 YG라고 자꾸 YG라 불러서...”
“그건 그렇고 벌써 친해진 건가. 대단한데?”
“사람이랑 친해지는 건 또 내 특기죠. 내가 진짜 나 싫어하는 사람은 못 봤다니까?”
“대단하네. 확실히 그건 내가 절대 못 하는 거야.”
서울 제츠 시절에는 손성호가, 콜로라도 로키스 시절에는 게일 해니건이 있었다.
두 선수 모두 모두에게 신뢰받는 팀의 클럽하우스 리더였고, 사교성이 다소 부족한 영도와 팀을 이어주었다.
반면, 신시내티 레즈는 로키스 이상의 젊은 팀이었고, 클럽하우스 리더가 존재하지 않았다.
센시오 리코가 가능성은 보이지만, 이제 겨우 풀타임 3년 차, 24세의 젊은 선수이기에 리더 역할까지 수행하긴 어려웠다.
지금은 아쉬운 대로 주전 포수 말론 버드가 클럽하우스 리더 역할을 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OPS 0.700도 안 되는 수비형 포수라 성적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었고.
“이번에는 네 덕 좀 봐야겠다. 앞으로도 계속 친하게 지내면서 나도 좀 끼워줘.”
“오오... 천하의 Y-DO가, 절대영도가 나한테 부탁을 하다니... 당연히 들어드리죠. 나만 믿으세요.”
“그래. 부탁 좀 할게.”
“그런데 형도 그런 거 신경 써요? 그냥 나 혼자 잘하면 된다, 이런 거 아니었나?”
“여유.”
“와... 역시 사람은 성공하고 봐야 한다니까? 사람이 이렇게 착해지나?”
“딱히 팀 신경 쓰는 게 착한 건 아니지만. 그냥 시야가 넓어진 거지.”
“내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면 얼마나 좋은 사람이 될지 상상도 안 되네. 노벨 평화상이라도 받는 것 아닌가 몰라.”
제대로 된 클럽하우스 리더와 함께한 두 시즌 동안 워낙 큰 성공을 거뒀기에 불안하긴 했지만.
어쨌든 다른 선수들과 관계를 이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영도의 맹활약이 팀 전체의 사기 증가로 이어지려면 어쨌든 끈은 이어져 있어야 했다.
물론, 독불장군처럼, 독고다이로 혼자 질주해도 같은 팀인 이상 당연히 어느 정도의 영향은 주겠지만, 영도의 활약에 크게 기대야 하는 레즈 입장에선 그 영향력을 최대한 키워야 했다.
유형근과 반성훈의 영입은 분명 그들 자체로도 큰 도움이 되겠지만, 영도와의 관계를 아예 고려하지 않았다고도 볼 순 없었다.
“이런 거 하라고 돈 많이 받는 거 아니겠어요? 내가 또 이런 거 잘하거든. 성훈이 형도 적응하게 도와주고.”
“뭘 또 그렇게까지. 네가 잘하니까 많이 받은 거지.”
“하아, 근데 진짜 불안하긴 불안해요. 19세기에 창단한 팀이 21세기 절반이 지난 지금까지 사이 영 상 수상자가 없는데... 대체 구장이 얼마나 투수한테 지옥 같으면...”
“그러니까 너한테 돈 많이 준 거지. 너도 일부러 팀 융화에 신경 쓰고 그럴 필요는 없어. 네 성적이 먼저니까.”
“크으... 형한테 조언 듣는 것도 되게 오랜만이네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조언해주더니... 형도 츤데레, 뭐 이런 건가? 그거 유행 오래 전에 지났는데.”
“... 그래. 넌 일부러 친해지려고 안 해도 잘 친해지겠다. 뒤에서 욕하는 사람은 무조건 있겠지만.”
“흐흐흐... 나대서?”
“그래.”
"안 그래도 몇 번 듣긴 했는데... 신경 안 써요."
꼭 운동선수가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은 타지에서의 생활을 어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해외에서 성공하려면 실력이나 운, 노력 이전에 성격이 중요했다.
일단 일상생활이 편해야 자기 분야에서의 커리어도 잘 풀리기 마련이니까.
일상생활이 불편하고 먹는 것, 자는 것, 인간관계 이런 기본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면 아무리 대단한 실력이 있어도 커리어를 풀어나가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유형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사막에다 떨어뜨려도 손난로 팔아서 먹고살 인간이었다.
‘재수 없는 천재 과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푼수일 줄이야.’
이걸 푼수라고 하는 것도 좀 아닌 것 같긴 했다.
KBO 시절 확인했듯 ‘노력하는 천재’에 가까웠고, 노력하는 천재가 성격까지 좋으니...
외모도 귀엽게 잘 생겨서...
‘옛날이었으면 내가 딱 싫어하고 질투했을 스타일이네.’
“왜요? 왜 그렇게 쳐다보십니까?”
“그냥 봤다. 원래 내 시선이 이래, 인마.”
“오! 친근감! 우리 이제 좀 많이 친해진 것 같은데요?”
그런데 이 정도가 딱 좋았다.
더 친해지면 피곤해질 것 같으니까.
이쪽에도 선을 두고 저쪽에도 선을 두고 양쪽을 딱 이을 수 있는 그 정도만.
“그런 의미에서 우리 같이 운동이나 하러 갈까요!? 형이랑 나랑 같이 훈련하는 첫날인데 그 정도는 해도 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끝나고 같이 저녁도 한 끼...”
... 쉽지 않아 보였다.
하필이면 요즘 또 많이 말랑말랑해져서 예전처럼 웃는 얼굴 보면서 칼 같이 끊기도 어렵고...
망했다.
< 천군만마 혹은 애물단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