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시즌, 그리고 다음 >
“기존 선수들 연봉 조정안은 이 정도면 될 것 같고... FA 시장은 어떻지? 데려올 선수들이 좀 보이나?”
“데려올 선수라... 일단 FA 시장이 그렇게 풍년이 아니라서 우리 같은 팀한테는 더 불리합니다. 무리하면 데려올 수 있었던 수준의 선수들도 배짱을 부리는 중이라.”
“팀이 젊어서 연봉 조정 대상 선수들도 많지 않아 좀 편하려나, 했는데... 역시 하나가 편하면 다른 게 말썽을 부리는군.”
“아무래도 그렇죠. 브랜든, 커트, 버나드가 성장해준 덕분에 한숨 돌렸지만, 그래도 선발진 보강도 필요하고 지명타자, 우익수도 보강이 가능하면 한 번 노려봐도 괜찮고... 무엇보다 3루수가...”
“3루수라...”
“이젠 결정해주셔야 합니다. 단장님도 이미 알고 계시죠? 3루수. 새로 영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로키스가 영도를 영입한 건 원래는 이번 시즌을 위해서였다.
2042시즌이 되면 그동안 끌어모은 유망주들이 터지면서 한 번쯤 포스트시즌을 노려볼 수 있을 거라 예상했으니까.
거기서 영도까지 더해지면 천운이 겹쳤을 때 월드시리즈도 한 번쯤 기대해볼 수 있겠다, 그렇게 판단했으니까.
하지만 2041시즌에 모든 게 이뤄졌다.
영도가 미쳐버린 활약으로 팀 전체를 홀려버렸고, 영도에게 홀린 팀은 자신들도 모르게 마지막 순간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서 있었다.
“후우, 그래... Y-DO는 최고의 선수고 최고의 퍼즐이지만... 우리에겐 너무 과분한 퍼즐이지.”
“예. 로키스 정도의 팀이 2연패를 노리는 건 너무 지나친 욕심입니다. 솔직히 20년 안에 두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에 성공한다 해도 말도 안 되는 성과죠. Y-DO와 함께 갈 근거가 없습니다.”
로키스도 그렇지만, 전력 보강과 리빌딩의 이유는 어떤 팀이든 같았다.
월드시리즈 우승, 결국, 구단이 진행하는 모든 프로젝트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해서였다.
로키스는 바로 그 최종 목표를 이뤄냈고, 이젠 월드시리즈 우승보다 다음을 설계할 때였다.
연평균 5천만 달러 이야기까지 나오는 유영도, 로키스는 영도의 연봉을 감당할 수 없었다.
물론, 유영도라는 선수의 스타성을 감안하면 팀에 벌어다 주는 이득으로 연봉의 상당 부분을 충당할 수 있겠지만, 영도가 잠깐이라도 주춤하면 바로 팀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올 수 있었다.
지금이 바로 프런트의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교과서적인 역할이 필요한 때였다.
영도를 잡고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을 내면서 매 시즌 위기가 찾아올까 전전긍긍하는 게 아니라 영도를 포기해서라도 무조건 얻을 수 있는 이득을 극대화시키는 것.
너무나도 대단한 일을 해냈고, 한 시즌 만에 팀의 전설이 되어주었기에 로키스 프런트도 영도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제프리 에녹 단장 역시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최대한 많이 뜯어내. Y-DO의 가치를 최대한 올려주는 것, 우리가 Y-DO에게 보답할 유일한 방법은 그것뿐이니.”
“우리도 그래야 이득을 크게 볼 수 있고 말이죠.”
“그렇지. 투수 유망주는 즉전감에 가까운 선수들로, 야수 유망주는 포텐셜과 실링 우선으로 평가해. 어차피 야수 쪽은 한동안 자리도 없어.”
“게일은 이후를 준비할 필요가 있고, 고든도 미래가 확실치 않으니 외야 유망주 위주로 살펴보겠습니다.”
“아니, 칼튼 자리, 포수가 우선이야. 그리고 어차피 다들 젊으니 객관적으로 실링과 가치가 가장 높은 선수들부터 고려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당장 4선발 이상 맡길 수 있는 선발 유망주가 최우선이고.”
“알겠습니다. 어차피 Y-DO를 데려가려면 데리고 있는 유망주 다 털어야 제안이라도 해볼 수 있다는 걸 다들 알 겁니다. 우린 그중에서 고르기만 하면 됩니다.”
과분한 욕심을 부려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월드시리즈 2연패를 노리기보단 트레이드 시장에 내놔 100% 확률로 상대 유망주를 쓸어담겠다.
영도가 상대라면 언터처블은 없었다.
유망주 평가 전체 1위의 특급 유망주라 할지라도 영도를 데려오기 위해선 흔쾌히 내놓을 수밖에 없을 터.
로키스는 월드시리즈 우승과 Y-DO라는 행운을 적극 활용, 반짝 우승팀이 아닌 꾸준한 강팀으로 발돋움하려 했다.
“... 제러드는 안 팔리겠지?”
“안 팔립니다. 기량만 놓고 보면 탐내는 팀들이 좀 있겠지만, 워낙 계약을 세게 걸어놔서.”
“그래. 기량 문제는 아니니까 7월 정도 되면 포스트시즌 급한 팀들이 달려들겠지.”
“그때 우리가 선수를 파는 입장이 되는 건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은데...”
“포스트시즌도 노릴 수 있으면서 제러드도 트레이드할 수 있을 만큼 선발진이 갖춰지는 게 최고지. 대기 중인 유망주가 없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제러드급의 투수가 또 나오겠습니까? 3년 동안 브랜든, 커트, 버나드까지 우르르 나온 게 말이 안 되는데 설마 또?”
유망주가 한 번에 폭발하는 것도 그렇고, 월드시리즈도 그렇고.
순조롭게 이뤄지는 리빌딩과 리빌딩이 끝나기도 전에 최종 목표를 달성하는 등 로키스는 분명 순풍을 만나 순항하는 중이었다.
비록 스몰마켓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빅마켓도 아닌 팀 사정상 영도와의 인연은 여기까지겠지만, 로키스의 시간은 앞으로도 짧지 않게 이어질 듯했다.
***
“참 부지런하십니다. 어떻게 MVP 발표되고 바로 여기 오실 생각을 합니까? 그때부터 벌써 며칠 쨉니까?”
“원래 야구 잘하려면 주변 코치, 전문가들 괴롭히는 게 최고입니다. 나 자신은 충분히 열심히 괴롭히고 있고. 혹시 저 때문에 제대로 못 쉬시는 겁니까?”
“우리 같은 사람이야 시즌 중에 열심히 쉬는 거 아니겠습니까. 비시즌이 한창 일복 터질 시즌이고 어차피 쉴 타이밍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크게 성공한 만큼 이제 또 그걸 유지할 방법이 필요한 타이밍이라.”
어느새 영혼의 듀오가 된 듯한 영도와 에드가 펜서.
둘 다 워커홀릭 성향이 강해서 그런지 어쩌다가 듀오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다음 시즌 목표가 뭡니까?”
“조금이라도 더 발전하는 것. 모든 선수의 당연한 목표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어떤 방향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고 싶으십니까? 홈런? 출루율? 아니면 타율?”
“글쎄요. 그건 이제 의논을 좀 해봐야겠죠. 우리 팀, 그리고 에드가랑.”
사실, 영도의 성적에서 뭘 더하고 뺄 건 없었다.
그냥 유지만 해도 언제나 최고일 수밖에 없는 성적이고, 더 이상 발전하고 말고 할 게 없었다.
그럼에도 계속 발전을 도모하는 건 한 번 찍힌 성적이 계속 유지될 거라 믿는 건 지나치게 낙관적인 믿음이기 때문이었다.
장타율의 발전을 원하냐, 출루율의 발전을 원하냐 하는 것들은 결국 대놓고 말하면 “다른 게 다 떨어져도 이것 하나만큼은 이번 시즌 정도 수치에서 유지하길 원하는 것”을 고르라는 말이었다.
“그게 뭐 의논까지 할 것 있겠습니까? Y-DO는 당연히 장타율부터 챙기고 가는 거지.”
“그냥 평범한 고민입니다. 장타율은 어차피 내 장점이고, 감사하게도 파워를 타고났으니 굳이 애쓰지 않아도 컨택, 선구안만 어느 정도 잡으면 당연히 올라갈 기록이 장타율인데.”
“그럼 더 올리면 되는 것 아닙니까? 장타율 0.658이니까 다른 걸 올리지 말고 장타율 0.658이니까 0.700까지 올리면 되는 거고.”
“역시 그 방향이 맞을까요. 개인적으로도 장타와 홈런은 포기할 수 없긴 합니다만.”
꼭 내 장점을 다소 포기하더라도 단점을 보강하겠다, 그런 뜻은 아니고 흔히 하는 그런 고민이었다.
결국, 내가 어떤 방향을 선택할지 대충 감은 오지만, 그래도 다른 방향을 생각은 해보게 되는 그런 고민.
시즌을 치르면서 아직 컨택이 부족하다는 것, 조금 더 스트라이크존을 넓힐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차피 이번 시즌 내내 폭주하는 동안 나 자체의 급이 올라갔다는 건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홈런 개수와 장타율은 스트라이크 존만 넓혀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고, 출루율은 스트라이크 존을 지금처럼 설정하면 유지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래도 역시 장타율이 우선이겠죠. 장타율 높은 타자는 언제나 자연스럽게 출루율도 올라가니.”
“정답이라고 하긴 어렵겠지만, 정답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Y-DO도 알겠지만, 결국 야수는 장타입니다. 그런 장타력을 타고났는데 다른 길이 필요하겠습니까.”
“아무래 생각하고 고민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 해도 결국 홈런으로 돌아오긴 합니다. 홈런을 칠 수 있는 타자가 다른 것까지 해내려고, 가치가 더 낮은 걸 해내려고 고민하는 게 맞는 건가 싶고.”
“아마 다른 선수들이 들으면 배부른 고민이라고 욕할 겁니다. 당신이나 나는 아직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믿고, 그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진지하게 고민하는 거지만.”
모르긴 몰라도 꿈의 비율 스탯 3/4/5를 찍고 30-30을 기록하는, 골드글러브의 단골 수상자이기까지 한 완벽한 5툴 플레이어도 다른 것 포기하는 대신 50홈런을 선택할 수 있느냐 물으면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할 것이었다.
당장 메이저리그 역사에 다신 없을 신이 빚은 야구선수, 완벽한 5툴 플레이어였던 배리 본즈도 홈런 욕심에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걸었다
그게 홈런의 가치였다.
그 누구보다 많은 홈런을 때려낼 능력이 되는데 다른 방향을 볼 이유가 있을까.
꼭 운동선수여서가 아니라 장점 보강과 단점 보완의 양자택일은 우리 모두의 숙제.
그리고 모두가 내심 정답을, 최소한 자신의 마음이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있는 질문이기도 했다.
영도의 마음은 장타율 쪽에 가 있었다.
“스트라이크 존을 넓히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스트라이크 존은 좀 넓히고, 토 탭도 조금 더 본격적으로 해보고, 백스윙도 조금 키워보고. 지난 2년 동안 비시즌마다 그랬던 것처럼 또 한 번 고생하면 뭐든 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2040시즌 시작 전처럼 처음부터 다 뜯어고치는 것도 아닌데.”
“에드가가 알아서 잘 해주리라 믿습니다. 에드가와 함께 하면서부터 커리어도 활짝 폈는데 내가 어떻게 안 믿겠습니까.”
“오... 근데 처음 만났을 때, 지난 시즌 만났을 때, 이번 시즌 만났을 때 계속 느낌이 달라집니다? 이게 성공한 사람의 바이브, 뭐 그런 겁니까?”
“역시 여유 그런 건 성공에서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호오... 농담까지. 역시 지켜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같이 노력하는 재미도 있고... 이거 이러다가 다른 선수는 못 맡게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선수 못 맡을 것 같으면 바로 말하면 됩니다. 우리 팀에 자리 만들어드릴 테니.”
영도와 에드가의 협업은 항상 대성공이었다.
2040시즌도, 2041시즌도 영도는 자신이 있는 곳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냈고, 에드가는 뒤에서 영도라는 작품을 빚었다.
그리고 2042시즌 역시 에드가는 영도를 빚기로 했고, 영도는 에드가에게 또 한 번 자신을 맡기기로 했다.
혹시 또 알겠는가.
이 선택과 이 만남이 또 한 번의 역사로 이어질지.
‘또 한 번의 역사라... 다음 목표로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다음 시즌 준비도 좋지만, 슬슬 다음 목표를 찾는 것도 급한 상황.
메이저리그의 역사.
적당히 긴 시간이 필요한 장기적인 플랜이고, 어렵고, 지금처럼 계속 노력해야 가능성이라도 보일 것 같고.
나쁘지 않아 보였다.
< 다음 시즌, 그리고 다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