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도라는 인간 >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초의 월드시리즈 우승!! 콜로라도 로키스의 동화는 완벽한 해피엔딩]
[월드시리즈 우승은 하늘이 점지한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콜로라도 로키스의 월드시리즈 우승. 제대로 달려보기도 전에 1등으로 골인한 로키스의 당황스런 행복]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의외의 우승. 이번에도 벼랑 끝 승부 알레르기를 극복하지 못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제물로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초 우승 달성]
- 이게 말이 되나? 진짜로 로키스가 우승을 한다고?
- 7차전까지 가길래 혹시나, 혹시나, 했는데 진짜로? 진짜로 로키스가 우승했어?
- 록토버... 무섭다, 진짜. 이 팀은 대체 뭐야? 월드시리즈 진출하는 시즌마다 이런 식이라고? 월드시리즈가 7차전까지 가서 다들 잊고 있는데, 이번 포스트시즌 전체로 따지면 12승 3패임. 승률 80%
- Y-DO는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선수냐? 이게 선수냐? 이게 선수야? 포스트시즌 15경기 중 10경기에서 홈런 때리고 13홈런. 포스트시즌에 이 정도 활약해준 선수가 있기나 했냐? 아무리 MVP가 확실한 선수라고 해도...
- 정규리그 MVP, 디비전 시리즈 MVP, 챔피언십 시리즈 MVP, 월드시리즈 MVP까지. 정규리그 MVP만 아직 발표 안 났는데, 어쨌든 이거 네 개 다 동시에 획득한 선수는 Y-DO가 최초임. 그러니까 당연히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선수일 수밖에.
ㄴ 디비전 시리즈 MVP가 신설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그렇지...
- 놀랍다. 이러다가 배리 본즈 73홈런도 곧 깰 것 같은데. 홈런 관련 기록은 하나하나 다 깨고 있으니 불가능할 것도 없을 것 같은데.
- 나도 그것까진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가능할 수도?
- 약 없이, 반칙 없이 가능한 거였냐...
- Y-DO 진짜 미쳤네. 진짜로 기록을 깨든 못 깨든 사람들이 가능할 것 같다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미쳤다. 다음 시즌에도 적당히만 하면 라이벌 같은 것도 없어지겠는데?
<유영도 (COL)
<0.303/0.423/0.658 64HR 153RBI WAR 10.1, SS>
<로날드 비어니 (NYM)>
<0.311/0.414/0.599 43HR 128RBI WAR 8.2, SS>
[2041시즌 내셔널리그 MVP 투표 결과입니다! 만장일치로 1위표를 모두 쓸어담으면서 Y-DO가 2041시즌 영광의 주인공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영도는 이번 시즌 월드시리즈 MVP에게 수여되는 윌리 메이스 상을 비롯, 디비전 시리즈,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모두 MVP를 따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월드시리즈까지 포스트시즌 전체의 활약으로 수여하는 베이브 루스 상 역시 영도의 차지였다.
‘타자판 사이 영 상’으로 불리는 행크 애런 상 역시 영도의 것.
그리고 정규리그 MVP까지 따내며 완벽한 시즌을 마무리했다.
2041시즌의 메이저리그는 마지막까지 유영도였다.
아메리칸리그에서 포수로서 오랜만에 MVP를 차지한 칼 앤더슨은 당연히 곁다리 취급.
양대 리그 사이 영 상 수상자인 워싱턴 내셔널스의 코트니 매든이나 LA 에인절스의 브라이언 제너 역시 평소만큼 주목 받진 못했다.
그 정도로 독보적인 MVP였다.
양대 리그 MVP와 사이 영 상 수상자, 이 네 명이 보통 시즌의 주인공들인데, 이번엔 영도와 나머지 세 명의 겸상 자체가 이뤄지지 않을 수준이었다.
[Y-DO! 예상했겠지만, 당신이 MVP입니다. 소감 한마디 해주시죠?]
“음... 좋습니다. 에이스에서 나와 KBO행을 선택할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역시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는 진리를 이렇게 깨달을 줄 몰랐습니다.”
[하하하, 모두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Y-DO가 돌아왔을 때 이렇게 될 거라 예상한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 사람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별로 할 말은 없습니다. 나까지 같은 생각이었는데.”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요? Y-DO의 성적을 쿠어스 필드빨이라 이야기하는 의견들이 좀 있습니다. 그들에겐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요?]
“그것도 별로... 들을 필요 없는 말은 듣지 않아서 그런 말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동안 쿠어스 필드를 홈으로 썼던 선수가 몇 명인데 그들 말대로라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제 위의 기록들은 다 로키스 선수들이었겠습니다.”
MVP 수상이 유력한 선수들의 리액션을 따기 위해 영도의 집으로 출동한 취재진들.
이번 시즌은 영도의 수상이 너무 확실해서 특별히 많은 취재진과 장비가 동원되었고, 사각이 없는 구도에서 영도의 반응을 놓치는 것 없이 100% 송출하는 중이었다.
선수에게 더 집중하는 최근 십여 년의 트렌드답게 MVP 수상자와의 인터뷰 역시 직접적이었고.
[하하하, 역시 건조하지만, 직접적이고, 그래서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Y-DO가 말이 많은 편도 아니고 일부러 화제를 만드는 선수도 아닌데 팬들이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극찬이네요.”
[그럼 이제 정말 많은 팬들이 궁금해할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이제 장기 레이스가 끝났는데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다음 시즌이 시작할 때까지 뭘 하면서 보내실 거죠?]
“글쎄요? 크게 달라지진 않았고, 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년 시즌을 천천히 준비하겠죠. 몸은 쉬어야 하지만, 딱히 쉰다고 하면서 여유롭게 지낼 때 즐길 만한 취미나 특기도 야구 말고는 딱히 없고...”
[스프링 트레이닝부터 생각하면 8개월을 야구만 하고 또? 그렇게 야구가 좋으십니까?]
“이젠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났습니다. 좋아해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습관처럼 하는 겁니다. 안 하면 제 인생 같지가 않아서.”
[와... 그렇게 하니까 이런 성적이 나오는 거군요? 역시... 재능만 가지고 이런 성적이 나오 리 없죠. 당연한 겁니다.]
“감사합니다.”
실제로 영도는 시즌이 끝나고 정규시즌 MVP가 발표되기도 전에 이미 다음 시즌 준비를 시작한 상태였다.
물론, 휴식은 중요하기 때문에 몸을 혹사시키는 방향은 아니었다.
운동은 그동안 혹사당한 몸을 안정적으로 휴식 모드로 바꾸는 마무리 운동 정도만.
준비하는 건 다음 시즌 분석과 전략이었다.
이번 시즌 말도 안 되는 성공을 거뒀지만, 그래도 변화하지 않고 머무르려 하면 당연히 성적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딱히 어떤 목표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프로인 이상 매 시즌 이전 시즌보단 나은 선수가 되고 싶은 게 당연한 욕심.
영도는 이번 시즌보다 발전한 다음 시즌을 위해 끊임없이 준비했다.
딱히 대단한 의무감이나 신념 같은 게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항상 해오던 일이었으니까 습관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발버둥 쳐야 방출까진 당하지 않고 2군에라도 이름을 올릴 수 있던 게 과거의 영도였고, 십수 년 동안의 영도였으니까 습관이 되어버린 것뿐이었다.
예전엔 아무리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도 관심받지 못했고, 지금은 이렇게 안 하고 펑펑 쉬어도 온과 오프가 확실하다며 멋있다고 칭찬받는 위치까지 올라왔지만...
이게 영도의 야구였다.
[좋습니다. 한 시즌 반짝이 아니라 이제부터 Y-DO의 시대가 될 것이라 저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럼 다시 한 번 MVP 수상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아직 영도의 2041시즌은 인정하지만, 영도의 클래스는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시즌 내내 이어진 기복 없는 플레이와 포스트시즌에서의 미쳐버린 활약으로 이 활약이 잠깐이 아닐 수도 있다 믿는 사람들, 완전히 선수의 클래스가 올라왔다고 확신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시즌은 부족했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 MVP 소감 발표를 통해 후자의 비율이 조금이라도 늘어났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MVP 수상이 발표되는 날에도 그전부터 다음 시즌을 준비해온 성실한 야구 바보.
KBO 초기 잠깐 불리다 말았던 별명 ‘수도승’처럼 야구 하나만 생각하고 살아가는 압도적인 괴물을 보면서 다음 시즌부터 꺾일 거라 상상하긴 쉽지 않았다.
“근데 형, 우리만 배경이 너무 휑한 거 아냐? 내가 아까 확인해보니까 다른 선수들은 다 수십 명이랑 같이 있던데.”
“그렇게 복잡해서 뭐해? 가족, 에이전트, 애인 같은 사람들이랑 같이 있는 거 아냐? 난 어차피 발표 끝나고 바로 에드가한테 가야 하는데 불러서 뭐해.”
수상자의 리액션을 따기 위한 촬영.
당연히 취재 대상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그림이 나오고, 선수 본인도 영광스런 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길 원했으니 보통 10여 명 정도가 함께 있었다.
하지만 영도는 고작 두 명, 영도와 승도 뿐이었다.
당연히 영도의 요청이었고, 방송사 역시 본인이 싫다는데 억지로 사람들을 데려다 놓을 순 없었다.
“그래, 그래. 형이 그런 거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 적도 없어. 우리 부모님도 그런 복잡한 거 별로 안 좋아하시는 분들이고...”
“그러니까 축하는 우리끼리 따로 하자고. 이번 주말에 그래서 뵙기로 한 거잖아.”
“주말에 늦지나 마. 이제 모든 게 다 이뤄졌는데 너무 야구만 하지 말고. 슬슬 사람답게 살아야지.”
“시끄러워. 나 간다.”
이 자식이 요즘 좀 말랑말랑해진 걸 또 귀신처럼 알고 자꾸 잔소리한단 말이지.
하여튼 동생 놈이라고 하나 있는 게 눈치는 빨라서 모르는 게 없다니까.
어머니한테는 120% 신뢰받아서 미국 온 다음엔 잔소리 한 번 안 들었는데, 어디서 동생 놈 주제에...
“오늘도! 주말뿐 아니라 오늘도 너무 늦지 마! 형 지금은 무조건 쉬어야 된다고!!”
“몸은 충분히 쉰다! 그냥 남들 취미 생활 같은 거야!”
“그게 직업이지 무슨 취미!!”
“나한테는 취미!! 간다!”
영도는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야구에 할애하는 게 습관이 된 인간이었다.
꼭 몸을 움직이면서 운동하고 훈련하는 게 아니더라도 머리로 분석하고 공부하고 고민하는 시간까지 더해서.
물론, 영도 역시 야구 이외의 취미가 필요하다는 말들을 받아들일 생각은 있었다.
하지만 굳이 억지로 취미를 만드는 것도 웃기고 그렇게 만든 취미가 진정한 의미의 취미라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
그냥 지금처럼 지내는 대신 조금 더 야구 이외의 것에 시선을 두면서 살다 보면 언젠가 어느 하나라도 야구 이외의 관심사가 생기리라 믿었다.
그렇게 되기 전까진...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살아도 되겠지.
애초에 야구를 생각하는 시간이 딱히 스트레스인 것도 아니었다.
그 시간이 막 즐겁고 행복한 것도 아니지만,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이게 유영도라는 선수의 모습이었고, 그 모습을 억지로 바꿔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성격이 좀 말랑말랑해지고 야구에 대한 집착, 광기도 조금 사그라들었지만.
그것 역시 억지로 바꿀 생각은 없었다.
모든 건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흘러가겠지.
‘뭐지? MVP 한 번 받고 월드시리즈까지 우승했다고 득도라도 한 건가? 전혀 나답지 않은 생각이었는데...’
요즘 들어 이렇게 혼자서 피식피식 웃는 경우가 늘어났다.
광기가 사라지면서 부상 이전, 그러니까 회귀고 뭐고 원래대로 순조롭게 성장했을 때의 성격이 드디어 조금씩 섞여 나오기 시작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것도 순리대로... 그리고 또 웃었다.
< 유영도라는 인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