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끝이 보인다 > (152/200)

< 끝이 보인다 >

[Y-DO의 쓰리런 홈런이 터졌을 때, 10-5가 되었을 때 누군가는 7차전을 떠올렸을 겁니다. 그러나... 칼이 뭐라고 했습니까? 제가 동의하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이 경기는 그렇게 쉽게 끝날 경기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콜로라도 로키스의 불펜. 로키스의 불펜은 최선을 다했어요. 정규시즌 중에는 계속 콜업과 강등을 반복하면서 무려 27명의 투수가 20이닝 이상을 던졌거든요? 이 부문 최다 기록이에요.]

[몸값이 싸고 숫자도 많은 불펜투수. 안 그래도 비시즌부터 불펜투수들을 끌어모은다 싶더니 실제로 쏠쏠하게 써먹은 모습이었죠.]

[바로 그거예요. 그런데 27명이 20이닝을 넘겼다? 이게 뎁스가 두껍다는 말은 되지만, 불펜투수 WAR, FIP를 따지면 중상위권밖에 안 돼요. 그럼 이건 무슨 말이냐? 준수한 투수들은 많지만, 압도적인 불펜 에이스급 투수가 많은 건 아니라는 뜻이죠.]

[그런데 선발투수가 소화해주는 이닝은 많지 않은 편이고, 쿠어스 필드의 스트레스, 피로 누적과 싸우면서 실력도 최고는 아닌, 많이 지친 불펜이 포스트시즌에는 승격, 강등을 통한 체력 관리도 못 받는다. 한계가 올 때도 됐습니다. 3차전부터 이어진 타격전의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데, 그럴 만합니다. 불펜 투수들의 잘못은 아니에요.]

[고만고만한 투수들을 끌어모아 숫자로 밀어붙였다지만, 포스트시즌엔 그 고만고만한 투수들이라도 줄을 세워야죠. 근데 뭐 어쩌겠어요? 그런 홈구장을 쓰는 것, 이런 전략을 세워야 했던 것, 그런 것까지 모두 포함한 게 팀의 전력이에요. 로키스의 전력이 이 정도인 거죠.]

9회 초, 12-11.

로키스가 기록한 안타가 16개, 사사구가 6개.

에이스가 기록한 안타가 15개, 사사구가 4개.

홈런은 영도와 유넬 페레즈, 3루수가 각각 한 개씩.

쿠어스 필드에서 벗어난 첫 경기라 타선이 침묵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쿠어스 필드의 스트레스, 압박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마운드가 먼저 무너졌다.

선발, 불펜 할 것 없이 양 팀 마운드가 동시에 무너지며 두 팀 합쳐 20점이 넘어가는 난타전.

전광판의 숫자가 늘어갈수록 양 팀 팬들의 심장도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왔다 갔다 했다.

[에이스도 7차전은 정말 가기 싫을 겁니다. 7차전도 7차전이지만, 에이스는 벼랑 끝 경기에서 28번 중 27번 패배한 팀입니다.]

[디비전 시리즈 5차전에선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팀. 한 번이라도 패배하면 탈락하는 벼랑 끝 경기에선 28번 중 27번 패배한 팀. 21세기 이후에는 단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팀. 이 정도면 기분 탓이다, 미신이다, 하면서 넘길 수가 없죠. 원래 프로 스포츠라는 것 자체가 미신과 징크스라는 비과학적인 것들을 루틴이라는 멋진 껍데기로 감싸고 숨기는 바닥인데.]

[꼭 7차전이어서가 아니라 디비전 시리즈에선 2승, 챔피언십, 월드 시리즈에선 3승을 내주면 바로 다음 경기에서 4승째를 내주는 팀이 에이스입니다. 그러니까 더욱 6차전에 모든 걸 쏟아부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두 팀 모두 내일 경기를 생각하지 않고 모든 걸 투입하는 중이죠? 만약 이 경기에서 로키스가 승리하면 내일 경기가 제대로 펼쳐질 지도 확신할 수 없어요. 하지만 그렇게 해야죠. 지금 내일 생각할 때는 아니잖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7차전까지 가야 하는 콜로라도 로키스.

무슨 일이 있어도 7차전만은 피하고 싶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그러니 6차전부터 모든 걸 쏟아부을 수밖에 없는 양 팀.

오늘 모든 걸 쏟아부어도 내일 7차전이 되면 또 남은 무언가가 있을 테고, 그 남은 것들을 끌어모아 다시 전부 쏟아부으면 되겠지.

메이저리그 팀이 설마 한 경기 못 치를까.

“Y-DO!! Y-DO!! Y-DO!! Y-DO!! Y-DO!!”

“Y-DO!! 넌 할 수 있어!! 여기서 하나면 되는 거라고!!”

[로키스 덕아웃이 시끄럽습니다. 모든 염원을 모아 선두타자 Y-DO를 응원하는 모습이 참... 오늘 경기, 이 순간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저럴 수밖에 없죠. 몸값이 수천만 달러라고 해서 사람이 아니게 되나요? 다들 이기고 싶고, 간절하면 뭐라도 해보고 싶은 거죠. 본인들이 직접 타석에 나설 순 없으니 직접 타석에 나서는 선수를 위해서 뭐든.]

‘나 혼자 7점을 냈는데 팀은 12점. 아무리 각오했다고는 하지만 말야.’

[월드시리즈 들어와서 로키스의 득점은 지금까지 45점. Y-DO의 타점은 27개. 정확히 팀 득점의 60%를 혼자 담당했습니다.]

[타점의 신화가 무너졌다지만, 어쨌든 선수 평가에선 한계가 있을지 몰라도 의미가 아예 없는 기록은 아니죠. 그리고 아무리 한계가 있어도 60%까지 되어버리면 의미를 부정하는 것도 웃기고. 이번 월드시리즈, 나아가 이번 시즌의 로키스는 그냥 Y-DO예요. 그냥 Y-DO로 끝.]

각오는 했지만, 답답하기도 했다.

물론, 혼자 팀 득점의 60%를 담당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았다.

그러고도 패배하는 경우도 많았고.

당연히 기준이 한 경기라면 많았다.

월드시리즈가 벌써 6차전이 끝나가는데 팀 득점의 60%를, 경기당 평균 거의 5타점씩 찍어줬는데 2승 3패.

오늘도 7타점인데 한 점 차.

각오도 했고, 그래서 뭐 어떻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지만, 심리적으로 버거운 건 사실이었다.

‘이러니까 내가 팀 승리를 신경 안 쓰려고 했던 거였지.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팀 생각까지 하는 건 힘들었으니까.’

그래, 이제야 기억이 났다.

이젠 시간이 많이 흘러서 기억도 나지 않던, 승부욕과 팀을 위한 마인드까지 버렸던 그 이유가.

‘그런 걸 생각하면 지금 이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잃어버렸던 걸 찾은 것 같아서.’

두 시즌 연속 몬스터 시즌을 보내면서 여유가 생겼기 때문일까.

잃어버렸던 걸 돌려받았다고 생각하니 이 부담감도 아주 나쁘지만은 않았다.

심리적 부담감과 피로감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대로 느껴지지만, 그 힘든 것까지 반가운 느낌이랄까?

이제야 수십 년 전 꿈꿔왔던 야구선수의 모습이 되어가는 그런 말랑말랑한 느낌.

항상 삭막하고 딱딱하고 휑한 세상에서 살았는데, 오랜만에 훅 들어온 말랑말랑이었다.

[아, 대런 콜! 또 저 무식한 스윙에 걸렸습니다! 이번 월드시리즈에서만 두 번째! 맞춰잡는 대런 콜의 피칭이 적어도 이번 월드시리즈에선 통하지 않습니다!]

[이번 포스트시즌 12번째 홈런이고요. 이게 대체 말이나 되는 숫자인가요? 배리 본즈가 8개였는데?]

“뭐야, 이게? 진짜 이게 말이나 되는 거냐고!!”

“우리 같은 선수 아니야?! 왜 나랑 다른 스포츠를 하는 것 같지!?”

“자괴감!! 하지만 너무 믿음직스러워!!”

“상상도 못 한 일이 자꾸 일어나는데!? 이러다 7차전 가면 정말로 그... 으읍!!”

“입 닥쳐!! Y-DO처럼 해줄 거 아니면 입방정이라도 떨지 마!!”

13-11, 9회 초에서 1점 차를 2점 차로 벌리는 결정적인 홈런.

그런 만큼 로키스 덕아웃의 리액션도 격렬했다.

계속 신뢰가 쌓이는데 말도 안 되는 활약이 멈추질 않으니 이젠 절대적인 신뢰가 쌓였고.

슬슬 영도만 있으면, 영도를 어떻게든 도와주기라도 하면 승리할 수 있겠다는 확신 같은 게 생겨났다.

“웃냐? 요즘 좀 자주 웃는다?”

“홈런 쳤으니까 웃지. 이런 상황에서 홈런 치면 웃는 게 정상 아닌가.”

“말도 길어지는 것 같고... 점점 사회성이 좋아지는 것 같은데?”

“사회성... 그래, 뭐. 그럴 수도.”

딱딱하고 건조한 성격 역시 말랑말랑을 포기하면서부터 형성된 것이었으니 자연스럽게 조금씩 촉촉해지는 듯했다.

일주일 내내 수 시간씩 붙어있으니 동료들도 눈치채는 게 당연하겠지.

특히 안 그래도 동료들을 매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영도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하는 해니건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별론가.”

“아니, 보기 좋지. 성적만 떨어지지 않는다면야.”

“그건 모르겠는데. 독기는 줄고 여유는 늘어난 것 같은데, 이게 좋은 건가.”

“성적이 여기서 더 좋아질 수가 있을까. 그래서 성적은 모르겠고 인간으로선 확실히 더 좋은 거겠지.”

성적은 모르겠고, 인간으로선 확실히 더 좋아졌다.

‘아직 완전히 욕심을 버리진 못했나 보네. 좋게만 들리지 않는 걸 보니.’

좋게만 들리지 않아서 안심이었다.

선수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대부분의 프로 선수라면 인간으로서 조금 감점이 되더라도 선수로서 가산점을 받고 싶어할 테니까.

다행히 독기든 여유든 둘 다 프로에게 필요하다고 평가되는 가치들이라 큰 문제는 없을 테고.

프로로서 꼭 필요한 욕심까지 사라지진 않았다는 확신이 생겨서 안심.

이 정도 변화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삼진! 삼진입니다! 요앙 페르난데즈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경기를 마무리하는 조셉 커닝햄! 콜로라도 로키스가 6차전을 잡아내며 그토록 기다리던 7차전으로 시리즈를 끌고 갑니다!]

[에이스는 큰일 났네요. 7차전만큼은 절대 가고 싶지 않았을 텐데...]

[두 경기에서 혼자 15타점을 기록한 Y-DO의 힘입니다. 1승 후 3연패. 사실 모두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이번에야말로 해냈구나, 했을 타이밍에 2연승. Y-DO가 로키스를 살렸고, 기어이, 기어이 꼭대기에 올려놓으려 합니다.]

[이번에 로키스가 월드시리즈를 가져가면 왕좌에 앉는 게 로키스일지 Y-DO일지 모르겠네요.]

“오늘도 이렇게 이기긴 했는데... 만족들 할 수 있겠어?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아예 안 올지도 모르는 신이 주신 기회인데? 아니, Y-DO가 준 기회인데?”

이겼다. 7차전이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영도를 제외한 그 누구도 만족할 수 없었다.

“Y-DO에게 미안한 건 그렇다 치자. Y-DO 혼자 너무 고생하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그냥 미안한 게 아니라 많이 미안한데... 우리도 다 프로잖아. 월드시리즈 우승? 좋지. 당연히 좋지. 모두의 목표고, 나의 목표였는데.”

7차전 승률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기 위해, 그리고 최대한 많은 동료가 아쉬움 없이 시즌을 마무리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번에도 역시 해니건이 나섰다.

“하지만 다들 욕심 없어? 이렇게 Y-DO 혼자 우승했다는 소리 들으면서 괜찮아? 2041시즌 월드시리즈 우승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아니면 Y-DO라는데 그런 소리 듣고도 자존심 안 상해?”

로키스 선수들도 다들 진지한 표정으로 해니건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들 프로였고, 다들 같은 생각을 한 번씩은 해봤다.

콜로라도 로키스의 두 번째 록토버, 원조 록토버보다 훨씬 강렬했던 두 번째 록토버 멤버가 되었지만, 마지막에 너무 모양 빠지는 게 아닐까.

너무 Y-DO, 한 선수에게 의존하는 팀이 된 게 아닐까.

“못하고 싶어서 못하는 사람은 없지. 나도 알아. 몸이 안 따라주는 거고, 운이 없었던 거고. 그래서 지금까지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내일이면 이제 정말 끝이다. 집에 가서 최선을 다해 쉬고, 최선을 다해 자고, 최선을 다해 좋은 것만 먹고, 최선을 다해 편안한 상태로 와. 그리고 최선을 다해 준비해서 최선을 다해 뛰어. 그럼 다 끝이니까.”

영도에게 미안해서, 영도에게 보답하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내가 만족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힘내자.

로키스의 리더가 동료들을 깨웠다.

< 끝이 보인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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