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이로운 >
[3루 방향 날카로운 타구! 멋지게 걷어내면서 점핑 스로! Y-DO가 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추가점을 막아냅니다!]
[역시 어깨는 예전 수비가 별로라는 평가를 받았을 때부터 좋았죠? 완전히 빠져나가는 타구를 따라가서 쭉 뻗어 잡아내고 뒤로 뛰면서 1루까지. 정말 수비 많이 늘었어요.]
[벌써 오늘만 말도 안 되는 수비가 두 개, 어렵진 않았지만, 까다로웠던 수비가 한 개. 그리고 무조건 실점하는 위기에서 두 번이나 팀을 구해냈습니다. 덕분에 5회 초까지 4-3, 로키스가 1점 차 리드를 지킵니다.]
[대단하면서도 안쓰럽고, 안쓰러우면서도 경이롭고... 참 혼자 여러 가지 해요. 가끔은 이런 선수가 등장했다는 게 그냥 놀라워요. 내가 동시대를 살아가며 이 선수의 활약을 보고 있다는 게 감사하기도 하고.]
[이번 시즌 같은 모습을 길게 길게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한 시즌이라 가끔 불안한데, 이런 선수가 오랫동안 지금과 같은 활약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그렇죠. 야구팬이라면 다들 똑같은 생각을 할 거예요. 모두가 자신만의 이상적인 선수, 꼭 보고 싶은 선수의 모습이 있겠지만, Y-DO는 다르죠. 취향? 성향? 그런 것 다 필요 없고 보편적인 이상형이니까요.]
영도가 활약하기 시작하면서 귀신같이 로키스가 우세한 분위기에서 경기가 이어졌다.
달라진 거라고는 홈런 하나뿐인데, 홈런과 장타율을 빼면 득점, 타점, 출루율 등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데 이랬다.
하긴, 영도 본인도 수비에서 날아다니는 걸 보면 홈런의 영향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데, 동료들이라고 다를까.
이래서 WAR이 비슷해도 홈런 타자에게 프리미엄이 붙을 수밖에 없었다.
수치화가 안 된다고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같이 시합을 뛰는 입장에선 홈런이 갖는 영향력이라는 게 있었다.
흐름을 만들고 반전시키는, 좋은 흐름은 증폭시키고 상대의 기세를 꺾는 그런 영향력.
홈런에는 그런 게 있었다.
“좋아. 네 덕에 분위기 딱 잡혔어. 이번에도 아까처럼 네 앞에서 딱 나가줄 테니까 한 번 더 부탁한다, 친구.”
“아까는 미안한 척이라도 하더니 이제 그런 것도 없나.”
“신경 안 쓰기로 했거든. 각자 할 수 있는 걸 하고 할 수 있는 만큼 기대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부탁 좀 할게? 으하하하.”
5회 말 선두 타자는 다시 한 번 게일 해니건.
4-3, 1점 차 리드는 경기 흐름과 양 팀의 상태를 봤을 때 당연히 불안한 상황.
이번 시리즈에서 제 몫을 해주는 로키스 타자는 영도 외엔 해니건과 매그니, 모리스 정도였다.
매그니를 트레이드로 데려오지 않았다면 정말로 큰일 날 뻔했던 상황.
그런 만큼 해니건과 매그니, 모리스는 영도처럼 자기 몫 이상을 해주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기 역할은 무조건 해줘야만 했다.
영도가 뛰쳐나가고 해니건, 매그니, 모리스가 자기 역할은 해주는 상황에서 한두 명 정도가 더 나와줘야만 했다.
자기 역할이라고 해봐야 딱 그 정도고 지금 로키스 로스터 수준에선 구성원 전원이 자기 역할을 해내야 겨우 선수들 사이클이 평범하게 돌아가는 월드시리즈 우승후보급 팀들과 비슷하게 붙어볼 수 있는 정도인데 고작 세 명?
그나마 모리스는 자기 역할을 해도 한계가 뚜렷한 선수.
영도가 아무리 미쳐서 날뛴다고 해도 도와주는 동료가 세 명이면 너무 부족했다.
안 그래도 부족한데 여기서 한 명이라도 더 빠져나가면 그땐 천하의 영도도 방법이 없었다.
특히 그게 영도를 제외하면 팀 내에서 지분이 가장 큰, 그리고 가장 믿을 수 있는 해니건이라면 타격이 너무 컸다.
도저히 감당이 안 될 만큼.
[오늘은 그래도 해니건의 안타가 계속 중요한 순간에 나오고 있습니다. 월드시리즈가 시작한 이후에도 내셔널리그 타율 TOP 5 답게 계속해서 안타를 생산했지만, 뭔가 자꾸 조금씩 타이밍이 아쉽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오늘은 계속 선두 타자로 나와서, 무엇보다 Y-DO의 앞에서 계속 찬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죠. 이보다 더 절묘할 수가 없고. 로키스는 다른 거 없어요. 누누이 이야기했고, 여러분의 귀가 아프도록 이야기했지만, 로키스는 무조건 일단 베이스를 채운 다음 Y-DO 타석에서 기도해야죠. 제발 적시타 좀 쳐달라고.]
해니건은 역시 믿을 만한 동료였다.
하긴,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해니건마저 배신했으면 제아무리 영도라 해도 조금은 힘이 빠졌을 텐데 역시.
본인은 리더로서 영도의 짐을 덜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영도를 제대로 도와주는 사람은 그였다.
‘좋아. 일단 해니건을 불러들이는 걸 목표로.’
인간적으로 여기서 또 홈런을 치는 건 쉽지 않을 테고.
그래도 점수는 내줘야 할 것 같고.
적어도 지금 아웃 카운트가 한 개도 없으니 3루까지 보내면 아무리 이후 타자들이 베다드를 까다로워해도 홈으로 돌려 보내주긴 하겠지.
[잡아당겨서 3루 쪽으로! 아! 유넬 페레즈의 아쉬운 수비! 살짝 반응이 늦었습니다! 굴절된 타구가 3루 덕아웃까지 깊숙이 빠집니다. 3루수와 우익수가 급히 달려가지만, 해니건은 2루 돌아 3루, Y-DO 역시 2루로 달립니다!!]
[해니건은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고, Y-DO가 중요하거든요? Y-DO도 아주 느리진 않아요!?]
3루수가 잡을 수 있는 타구였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에러로 기록될 정도로 쉬운 타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또 2루타 이상의 장타가 될 타구는 아니었는데 글러브 맞고 덕아웃으로 튀면서 차라리 아예 못 잡는 것만 못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영도는 언제나처럼 헬멧이 뒤로 날아갈 만큼 온 힘을 다해 뛰었다.
객관적으로 빠른 발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에나 필사적이었던 그답게 그 느린 발로도 베이스 하나를 더 얻으려 필사적으로 달렸던 영도였다.
지금도 아슬아슬한 경합 타이밍이지만, 달렸다.
쿠어스 필드에서는 기회가 있을 때 어떻게든 1점이라도, 베이스 하나라도 더 얻어내야만 했으니까.
[2루! 2루에서... 세이프! 세이프입니다! 이렇게 또 베이스 하나를 더 얻어내는 Y-DO의 공격적인 베이스 러닝!]
[언제나의 Y-DO죠? 포스트시즌 들어서 안타보다 홈런이 너무 많이 늘어서 잘 안 보인 장면이었는데 Y-DO는 원래 이래요. 원래 어떻게든 한 베이스라도 더 가겠다고 미친 듯이 뛰는 선수죠.]
[어쨌거나 이렇게 되면서 5회 말 노아웃에 2, 3루 찬스가 만들어졌습니다. 외야 플라이 한 방이면 1점, 안타 하나면 2점. 홈런이면 3점입니다.]
[여기선 최소 2점을 뽑아야 본전이죠. 2점 못 뽑으면 점수 내고도 흐름 다 빼앗겨요. 그러니까 홈에서 에이스의 축제를 봐야 한다는 뜻이죠.]
4-3 리드, 무사 2, 3루의 찬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오늘도 베다드는 나쁘지 않았다.
영도에게 홈런 두 방, 3타점을 내준 게 치명적이었을 뿐.
물론, 보통은 그걸 부진했다고 이야기하지만, 어쨌든 쿠어스 필드임을 감안했을 때 베다드의 피칭은 분명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부진했다고 이야기할 만한 성적에 5이닝 4실점, 그리고 무사 2, 3루.
이 정도면 투수가 바뀌는 게 당연했다.
이 경기는 그냥 평범한 정규시즌 경기가 아닌 월드시리즈였고, 그냥 이렇게 둔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월드시리즈 6차전은 중간에 이동일을 두고 이틀 뒤 오클랜드의 홈구장에서 열렸다.
불펜 투수들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우익수 방향 깊은 외야 플라이로 타점을 추가하는 키스 가드너. 2루 주자 Y-DO 역시 한 베이스를 더 가서 1아웃 3루 찬스를 이어갑니다.]
[포스트시즌 들어 아주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ROY 1순위로 평가받던 정규시즌만큼의 활약은 아닌 프레드릭 더햄. 그래도 외야 플라이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중견수 쪽 짧지 않은 외야 플라이로 1타점을 추가, 로키스가 6-3으로 앞서갑니다.]
하지만 불펜 투수들이 등판했음에도 노엘 베다드의 최종 성적은 5이닝 6실점이 되고 말았다.
물론, 에이스 투수들이 특별히 못한 것도 아니고 로키스 타자들 역시 특별히 잘한 건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어쨌든 1이닝 2득점.
최소한 로키스 타선은 해니건과 영도가 만든 기회를 걷어차진 않았고, 이것만으로도 오늘 경기의 흐름은 가져올 수 있었다.
에이스의 에이스는 내려갔고, 로키스의 에이스는 흔들리면서도 어떻게 버티는 상황에서.
홈팀의 3점 리드는 작지 않았다.
***
[콜로라도 로키스, 최악의 위기에서 일단 빠져나왔다. 10-7 승리로 오클랜드행 비행기 끊어...]
[혼자서 4안타 2홈런 7타점 폭발한 Y-DO의 원맨쇼. 로키스의 승리에는 언제나 Y-DO의 원맨쇼가 필요하다]
[Y-DO의 활약 없인 승리도 없는 로키스의 현 상황. 과연 월드시리즈 우승 자격 있나?]
영도의 원맨쇼가 펼쳐지자 로키스도 오랜만에 승리를 따냈다.
물론, 문제점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혼자서 7타점을 올렸는데 3점 차 승리, 3, 4타점을 올리면 패배.
그래도 어쨌든 최악의 결과는 피할 수 있었다.
로키스는 벼랑 끝에서 살아나며 에이스를 위한 축제 때문에 홈구장을 빼앗길 위기에선 벗어났다.
여전히 팀 상황은 좋지 않았고, 남은 원정 2연전 중 한 경기라도 내주면 무너지는 상황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단은 한숨을 돌렸다.
그게 영도의 원맨쇼 덕분이든 어떻든 승리는 승리.
이틀 뒤에는 이틀 뒤의 흐름이 생길 테고, 흐름과 분위기, 기세라는 건 바꾸는 게 쉽진 않지만, 반대로 한순간에 180도 달라질 수도 있었다.
이틀 뒤 로키스 선수단이 어떤 분위기와 흐름, 기세를 탈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걸 기대하며 오늘의 승리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 된다.
선수는.
“일단 프레드릭을 6번으로 내리고 4번 로날드, 5번 앤서니로 가지. 프레드릭이 월드시리즈의 중압감에 눌리는 것 같아. 루키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지.”
“타일러 젭슨이라면 공략할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젭슨도 36세 아닙니까? 아무리 자기 관리의 신이고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라 해도 10월 말입니다. 2차전을 아주 현미경을 대고 분석 중이니 무조건 찾아내겠습니다. 에이스의 원투 펀치는 분명 체력에서 구멍이 뚫립니다. 그렇게 만듭니다.”
“에이스 중심 타선의 스윙이 3차전보다 5차전에서 확실히 커졌네요. 매일 경험하는 우리도 쿠어스 필드에서 나간 첫 번째 원정 시리즈마다 고전하는데, 에이스라고 별 수 있겠어요? 이거 공략할만하겠어요.”
코칭스태프와 프런트, 그리고 이외의 모든 부서는 잠들지 않았다.
아주 작은 틈이라도 발견하고 그걸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서, 로키스의 밤은 오늘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금까진 결과가 좋지 않았지만, 남은 두 경기에선 다를 거라 믿으면서.
그렇게 모든 구성원이 같은 방향을 보고,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렸다.
로키스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48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 프랜차이즈 최초의 월드시리즈 우승.
유영도라는 거대한 존재와 함께 하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 기회를, 다신 찾아오지 않을 신이 주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 경이로운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