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웅이 필요한 시간 >
[Y-DO, 또 한 번 훔쳐온 팀의 승리. 월드시리즈 1차전, 원정 경기에서 승리하며 팀에 우승 확률 66% 안겨]
[콜로라도 로키스의 멈추지 않는 폭주. 포스트시즌 시작 이후 단 한 번의 패배 없이 9연승]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도 일단 실패했다. 안 그래도 심상치 않은 로키스의 기를 살려버린 에이스, 괜찮을까?]
- 역시 Y-DO!! 진짜 Y-DO는 미쳤어! 미쳤다고! Y-DO는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니, 일부러 하려고 해도, 조작하고 하려고 해도 있을 수가 없는 일 아냐??
- 그냥... Y-DO 때문에 고민하지 마. 적어도 이번 시즌까지, 이번 포스트시즌까지는 고민할 필요가 없어. 어차피 이해할 수 없을 거거든.
- 이럴 수가 있냐? 어떻게 중요한 순간마다 한 건씩 꼭 해주는 거야? 사람이 저럴 수 있다고?
- 5억 달러 소리 들린다. 마이크 트라웃이 4억 달러 시대를 연 게 벌써 22년 전인데, 지금까지 4억 달러 넘긴 선수는 네 명밖에 없었음. 그 정도로 트라웃이 어마어마한 선수였는데, 5억 달러 시대를 여는 선수로 Y-DO 정도면 크게 부족하지 않은 듯
ㄴ 당연! 40년 만의 60홈런이고 80년 만의 청정 타자 최다 홈런인데 Y-DO 아니면 누가?
- 마이크 트라웃도 두 자릿수 WAR은 딱 3시즌 있었음. 커리어 하이는 10.2고. Y-DO가 3루수고 트라웃이 중견수라 수비 가중치 비슷한데, WAR에서 수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비슷비슷해서 Y-DO가 트라웃보다 못할 게 없음.
ㄴ 트라웃이 좋은 중견수였지만, 최고는 아니었듯이 Y-DO의 수비도 딱 그 정도지.
ㄴ 엄밀히 따지면 트라웃보다 Y-DO의 수비가 딱 한 단계에서 반 단계 정도 아래 아닌가? 트라웃이 60이면 Y-DO는 55 정도?
- 근데 5억 달러 소리 들린다는 게 뭔지는 너무 잘 알겠다. X발... 5억 달러면 대체 얼마냐?
- 이번 시즌 끝나면 바로 트레이드 시장 난리 나겠네.
- Y-DO 같은 선수가 딱 양키스, 레드삭스, 다저스, 컵스 같은 월드시리즈 노리는 강팀들이 환장하는 선수지.
ㄴ 꼭 강팀들만 환장하진 않지. Y-DO는 큰 경기에만 강한 것도 아니고 그냥 정규시즌부터 끝까지 최고니까 그냥 팜 탄탄한 팀이 1년이라도 쓰고 싶어서 데려갈 듯.
- 지금 팜 순위가 어떻게 되더라? Y-DO 데려가려면 TOP 10급 유망주 1, 2명에 TOP 50에서 100급 유망주 섞어서 3, 4명 정도는 털어야 할 것 같은데?
ㄴ 한 시즌 렌탈이니까 그 정도면 되겠지. 두 시즌이라도 남았다간 그냥 마이너 선수단 통째로 팔아야 했을 듯.
ㄴ 레인저스, 레이스, 카디널스가 아마 TOP 10급 유망주 있으면서 TOP 100에 6명 이상 데리고 있을걸? 양키스, 자이언츠, 말린스도 5명 정도 있을 거고.
ㄴ 카디널스는 그레고리 있으니까 빼고 나머지 다섯 팀이 유력하겠네. 레이스, 말린스는 전력도 약하고 돈도 없으니 데려갈 이유가 없고, 자이언츠도 아직 리빌딩 안 끝났고... 레인저스 아니면 양키스인가?
ㄴ 로키스가 질보다 양으로 업어온다면 또 모르지. 그럴 확률은 거의 없지만.
- 근데 너네 이번 시즌 월드시리즈 우승팀엔 관심 없냐? 왜 다들 Y-DO 이야기밖에 안 함?
ㄴ 로키스 이야기가 곧 Y-DO 이야기 아님?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Y-DO 이야기만 하면 로키스 이야기는 끝인 것 같은데...
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른 애들도 못하는 건 아닌데 Y-DO가 너무 욕심쟁이라 혼자 다 먹었지
어쨌든 월드시리즈는 메이저리그의 1년을 정리하는 최후의 축제였다.
야구가 너무나도 지역 중심의 스포츠라 아무리 최고의 선수라 해도 미국 전역에서의 인지도는 20% 중반을 못 넘기지만, 그래도 월드시리즈는 미국 전체의 축제였다.
정규시즌 경기까지 다 챙겨보진 않아도 월드시리즈만은 챙겨보는 사람들이 꽤 많았으니까.
하지만 이번 시즌의 유영도는 달랐다.
야구라는 종목의 한계가 있다지만, 이번 시즌의 영도는 그 수준을 넘어섰다.
40년 만의 60홈런, 80년 만의 청정 타자 최다 홈런.
기록 자체만으로도 대단했고, 리그 차원에서도 이때다, 하고 밀어줬으니 오랜만에 선수 개인에게 야구팬 전원의 관심이 집중된 시즌이었다.
라이트 팬에게는 홈런 타자의 임팩트가 훨씬 강하고, 홈런 타자의 인지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사실은 아니었다.
마이크 트라웃이 최고이던 시절, 최고의 홈런 타자 중 한 명이 지안카를로 스탠튼이었는데, 2001년 이후 가장 60홈런에 가까운 59홈런까지 쳐냈던 그의 인지도는 트라웃의 전국 인지도가 21%였을 때 뉴욕 양키스 이적 직후에도 13%에 불과했으니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으니까 전국적인 관심을 받는 거지, 그냥 홈런만 잘 때려서 이뤄진 건 아니었다.
물론, 영도가 최초의 70홈런 타자가 등장했던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의 홈런 경쟁 시기, 배리 본즈가 73홈런을 때려내던 시기만큼의 인기를 끈 건 아니었다.
‘40년 만의’ 60홈런, 80년 만의 ‘청정 타자’ 최다 홈런처럼 최초의 기록도 아니었고, 조건 없는 최고도 아니었으니 한계는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기록이 나온 것 자체가 너무 오랜만이었고, 독보적인 홈런타자가 등장한 것도 오랜만이었다.
선수의 몸값을 형성하는 아주 큰 요소 중 하나가 팬들의 관심인 만큼 5억 달러 시대를 열게 된 이유와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게 된 이유는 같았다.
중요한 순간, 중요한 경기에서의 임팩트는 우승을 노리는 팀들만큼이나 팬들에게도 강렬하게 남기 마련이니까.
“어쩔 수 없어요. 이게 흐름이라는 게 정말 무서운 거거든요? 한순간에 마치 좋았던 시간이 없었던 일처럼 싹 사라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1, 2차전에서 노엘 베다드와 타일러 젭슨에게 눌리면서 흐름이 완전 끊긴 거죠.”
그러나 영도의 활약과 별개로 로키스의 폭주는 한풀 꺾인 상태였다.
로키스는 타선의 힘으로 여기까지 올라왔지만, 기적적인 질주를 이어가는 동안 수많은 위험 요소들이 쌓인 상태이기도 했다.
“애초에 ‘폭주’였잖아요? 폭주가 무슨 뜻이죠? 원래는 못할 행동을 앞뒤 생각 없이 그냥 질러버린다, 뭐 그런 느낌의 단어잖아요? 로키스가 딱 그랬죠. 우리 영도는 그냥 정규시즌보다 약간 잘한 정도였지만, 나머지 선수들은 분명 이상할 정도로 컨디션이 좋았어요. 이런 건 딱 한 번 참교육 받아서 호되게 혼나면 바로 정상으로 돌아오거든요.”
- 확실히 아재 말대로 어제 3차전은 너무 무기력했음. 1, 2차전에 오클랜드 1, 2선발한테 탈탈 털렸던 게 컸던 듯.
- 타격감 다 죽었지. 오클랜드 1, 2선발 무섭더라.
- 무서울 거 없다고 X나 까불던 10대들이 무서운 형 만나서 참교육 당하고 급격히 개념 찾은 느낌. 갑자기 개념 있고 공손해짐. ㅋㅋㅋㅋㅋ
- 이게 너무 맞다 ㅋㅋㅋㅋㅋ 딱 그 느낌이네
- 이거 괜찮겠냐? 2, 3차전 연속으로 털렸는데 2연패도 2연패지만, 너무 흐름이 확 끊겼는데? 로키스는 흐름 하나로 여기까지 온 팀인데...
“아마 로키스나 영도도 이런 상황이 언제든지 올 수 있다는 걸 생각했을 거예요. 사실 굉장히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거든요. 프로 무대에서 흐름이 끊길 땐 원래 이런 모습이에요. 갑자기 집중력을 잃고 실책이나 어이없는 플레이가 이어지는 경우거나, 이렇게 상대에게 막히면서 끊기거나.”
- 생각하면 뭐해, 답이 없는데...
- 로키스가 원래 마운드, 타선 다 강한 팀인데 잠깐 어디 문제가 생겨서 그걸 분위기와 흐름, 기세로 메꾼 팀이면 또 모르지. 근데 그거 아니잖아?
- 마운드는 20%, 타선은 2% 부족한데 그걸 기세 하나로 땜빵한 팀이 로키스. 흐름 끊기면 끝이지.
- 솔직히 영도 아니었으면 월드시리즈가 뭐냐? 서부지구 4위면 감지덕지였지.
- 만약 이번에 로키스 우승 못 했다고 욕하는 애들 있으면 인간 아님. 사람 포기해라.
체력적인 부담, 로스터의 빈약함, 특급 에이스의 부재, 중소 구단에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주전과 벤치의 격차 등등...
기세 하나로 수많은 약점을 숨긴 채 달려왔지만, 이제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시기가 찾아왔다.
오클랜드 에이스의 원투 펀치는 비록 전성기는 지났지만, 그만큼의 경험이 쌓이고 정신이 단단해진 선수들이었다.
이들은 노련하게 로키스 타선의 흐름을 억제했고, 그렇게 흐름이 끊기자 곧바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리기엔 너무 많았던 단점들이 한 번에 드러났다.
“비록 제가 영도의 사생팬으로 유명해졌지만, 지금은 예전으로 돌아가서, 전문적이고 냉정한 예상을 해볼게요. 솔직히... 로키스. 쉽지 않아 보입니다. 1차전은 잡았지만, 2차전, 3차전. 2연패거든요? 쿠어스 필드에서도 벌써 한 경기를 졌어요. 로키스가 과연 쿠어스 필드에서의 패배를 버틸 수 있느냐 물으면 솔직히 잘 모르겠거든요.”
영도를 가장 적극적으로 응원하는 사람 중 한 명인 오일도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전반적인 분위기는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사실, 서로 원정에서 1승씩 챙긴 정도라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조금 유리하긴 하지만, 예년 같았으면 이렇게 확 기울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로키스는 뚜렷한 한계를 순간적인 흐름으로 극복하며 올라온 팀이었기에 모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로키스가 주춤하며 약점을 드러내기만을.
그리고 약점이 드러난 순간, 기다렸다는 듯 부정적인 의견을 쏟아냈고, 이게 또 젊은 팀인 로키스의 분위기에 영향을 끼쳤다.
흐름이라는 게 무서워서 좋을 땐 한도 없이 좋다가 나쁠 땐 또 한도 없이 나빠지기 마련.
비록 원래 강한 팀이 아니어서, 인기 팀이 아니어서, 명문 팀이 아니어서 로키스의 선전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쓴 기사인 것도 맞지만, 그게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방식과 글에 담긴 뉘앙스가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불쾌해서 그렇지, 사실 90%는 맞는 이야기였다.
“로키스의 돌파구가 아예 안 보이는 건 아닙니다. 보여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데 하늘이 무너진 정도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 구멍이 뭐냐? 하나예요. 하나밖에 없어요. 그게 뭐냐? 뭐겠어요? 당연히 유영도지.”
결국, 상황은 180도 바뀌었지만, 결론은 같았다.
로키스는 흐름이 좋을 때도 영도에게 기대면서 여기까지 왔고, 흐름이 좋지 않을 때도 영도의 활약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유영도가 미쳐주는 수밖에 없어요. 로키스가 우승은 됐고 앞으로 1승이라도 추가하려면 유영도가 무조건 미쳐줘야 할 겁니다. 근데 솔직히 이 말을 하는 것도 영도한테 미안해요. 아니, 사람이 정도가 있지... 미안한 것도 미안한 거고, 안쓰럽기도 해요. 메이저리그를 가도 저 꼴이냐, 참... 메이저리그 갈 땐 좀 강팀으로 좀 가지.”
이젠 안쓰러울 정도였다.
영도의 합류 전 로키스의 2041시즌 시뮬레이션 결과와 실제 승률 사이에는 거의 1할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즉, 정규시즌에도 영도는 미쳐 있었고, 와일드카드 결정전, 디비전 시리즈, 챔피언십 시리즈에도 영도는 미쳤다.
보통 우승하려면 꼭 미치는 선수가 나와야 한다, 기존의 에이스, 핵심 타자는 당연히 기대만큼의 활약을 해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미친 선수가 나와줘야 우승할 수 있다는 건데...
로키스엔 에이스가 없었고, 미친 선수도 없었다.
핵심 타자인 영도가 미치기까지 했고, 불안한 에이스, 아니, 1선발이 내주는 점수만큼 다시 점수를 가져오기까지 했다.
우승에 가장 필요한 3가지 요소, 그 3요소를 전부 영도가 해내고 있었다.
영도가 깔아놓은 흐름을 타고 같이 날뛰어준 동료들은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
정규시즌, 와일드카드, 디비전 시리즈, 챔피언십 시리즈, 월드시리즈까지 너무나도 많은 짐을 혼자 지고 걸어왔고, 아직도 그 짐을 같이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
[아아... 결국,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쿠어스 필드에서 2연승을 달립니다. 시리즈 전적 3승 1패, 1패 후 3연승으로 드디어 그토록 기다리던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기 직전입니다.]
[음... 역시 여기까진 올 수 있어도 마지막 한 걸음은 무리였던 걸까요? 월드시리즈까지 올라올 순 있지만, 마지막 한 걸음은 참... 준비되지 않은 팀에겐 허락되지 않는 건가요? 안타깝습니다. Y-DO를 앞세워서 정말 강력한 임팩트를 남겼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어서지 못하는 걸까요? 영화라면 여기서 로키스가 우승하는 게 맞는데...]
월드시리즈 4차전, 로키스는 분투했지만, 결국, 쿠어스 필드에서 또 한 번 패배를 적립하고 말았다.
‘후우... 우승은 못 하더라도 X발, 홈에서 끝낼 순 없겠지. 그래도 그게 팬들에 대한 예의니까...’
영도는 최선을 다했고, 패배한 2, 3, 4차전에도 본인의 역할 이상을 해냈다.
홈런은 없었지만, 기록지에서 홈런이 0이라는 걸 빼면 크게 다른 스탯도 없었다.
이쯤 되면 아무리 영도라 해도 지치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홈팬들이 그렇게 고대하던 월드시리즈를 홈팬들 앞에서 끝낼 순 없었다.
지금의 영도에겐 그 정도 의리는 있었다.
옛날의 유영도가 아니니까.
그리고 약간의 덤을 올리자면 가능한 한 마지막까지 기회를 붙잡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동료들 역시 월드시리즈 우승을 고대하고 있었으니까.
몸이 안 따라주는 걸 뭘 어쩌겠나.
그들보단 조금이라도 나은 이쪽에서 조금 더 열심히 구르는 수밖에.
축구처럼 무슨 ‘보이지 않는 영웅’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팀을 위해 희생하는 포지션도 아니니 활약하면 곧 내 몸값이 올라가는 건데 그까짓 것 못할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죽어라 구르라는 건데... 굴러보지, 뭐. 월드시리즈 끝나면 3, 4개월 쉬는데 내 체력이면 그 정도야.’
누구도 나눠 들어주지 않는 짐? 그까짓 것 며칠 정도는 충분히 더 짊어질 수 있지.
지금까지도 한 번도 방심한 적 없고, 마음을 비운 적도, 포기한 적도 없었지만, 항상 언제나처럼 한 타석 한 타석에 최선을 다해왔지만.
영도는 다시 한 번 굳게 다짐하며 짐을 챙겼다.
내일을 위해 최대한 푹 쉬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려야 했으니까.
< 영웅이 필요한 시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