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인사 > (146/200)

< 인사 >

“역시 월드시리즈까지 혼자 힘으로 캐리하는 건 조금 어려웠던 걸까.”

“이제 고작 1차전이고, 1차전도 안 끝났는데요, 뭘.”

“맞습니다. 이제 고작 세 타석 들어섰을 뿐입니다. 8회에 기회도 한 번 더 있을 것 같고.”

월드시리즈는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야구 관련 일정을 통틀어 가장 크고 명예로운, 가장 절대적인 경기였다.

매 시즌 와일드카드 대진이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양 팀의 흥행성과 관심도에 따라 수많은 돈이 왔다 갔다 하면서 항상 사무국이 함박웃음을 짓는다, 울상을 짓는다는 기사가 나오지만, 어쨌든 아무리 비인기팀끼리 붙어도 야구 관련해서 월드시리즈만큼의 수익과 관심도를 끌어오는 순간은 없었다.

그리고 이번 월드시리즈는 인기 팀들의 경기는 아니었지만, 로키스의 폭주, 영도가 시즌 내내 끌어올린 주목도, 로키스와 에이스, 영도 사이에 만들어진 스토리 등으로 인해 생각보단 훨씬 많은 관심을 모았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다저스, 컵스, 레드삭스, 양키스 같은 메가마켓들의 월드시리즈에 비하면 그렇게 큰 관심이나 경제적, 사회적 여파를 일으키진 못했다.

그러나 로키스와 에이스, 두 중소마켓의 월드시리즈라서 걱정했던 것치고는 화제성이 대단했다.

로키스와 에이스의 선수 구성을 봤을 때, 그리고 스토리를 봤을 때 이런 관심과 화제성은 전부 영도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선수를 평가하는 기준은 잠재력-기량-성적을 지나 스타성과 흥행성으로 이어졌고, 영도 역시 이러한 위치에 와 있었다.

잠재력, 기량, 성적은 증명했고, 개인 스탯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를 통해 팀에 승리와 성공, 트로피를 가져다줄 수 있는 선수라는 것까지 증명한 것.

그래서 이번 월드시리즈는 유영도라는 선수의 스타성, 흥행성을 증명하는 시리즈였는데...

로키스와 에이스를 데리고 이 정도 반응을 끌어냈다?

월드시리즈가 가까워지면서 언론에서 영도를 다루는 경우가 급격히 늘어났는데, 이는 대중들의 관심에 민감한 언론이 영도에게 확신을 가졌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우승까지 하면 그 순간 끝인데... 그 순간 최소 4억 달러 나오는 건데 말이야.”

“지금 Y-DO가 26세죠? 2015년 8월생이니까 26세. 다음 시즌 시작할 때도 26세인데 잘만 하면 5억 달러짜리 계약도 나올 것 같은데요.”

“5억 달러부터 일단 노려야죠. 포장만 잘만 하면 연평균 5,000만 달러 가까이 뽑아낼 수 있을 것 같은데. 26세면 10년 계약, 아니 13년, 14년씩 계약하자고 해도 하겠다는 팀 많겠죠.”

영도의 평가가 실시간으로 쭉쭉 올라가는 이 시점에서 이번 월드시리즈를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보는 이들은 따로 있었다.

바로 영도의 에이전시인 TPK, 그중에서도 수장 테더 파커를 위시한 임원들이었다.

TPK가 아주 큰 에이전시는 아니지만, 역대급 재능 Y-DO의 에이전시로 6, 7년 전부터 조금씩 떠올랐고, 덕분에 탄탄한 중견급 에이전시로 발돋움한 상태였다.

젊고 역사도 길지 않은 데다 대형 에이전시와 다르게 아직 업계에 뛰어들던 시기의 감성과 열정, 따뜻함이 남아있는 이들은 성공의 발판을 마련해준 암흑기 간판, 영도에게 부채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젠 관리하는 선수도 두 자릿수로 늘어났고, 업무도 적지 않아 3시간 동안 펼쳐지는 경기를 직접 관람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적어도 영도의 경기, 그것도 월드시리즈만큼은 한데 모여 1회부터 시청 중이었다.

“이렇게 보고 있으니까 옛날 생각나네. 옛날엔 빅리그도 아니고 마이너리그 경기를 이렇게 모여서 보고 있었는데.”

“매번 그랬던 건 아니지만, 일이 없는 날은 마이너리그 경기를 1회부터 9회까지 다 봤었죠. 일이 없던 날이 많아서 그렇지...”

“으하하하, 진짜 그때 생각나네. 그땐 참 Y-DO의 타석 하나하나에 천국도 갔다가 지옥도 갔다가 했는데 말이죠.”

물론, 그때와는 영도도, 에이전시도 많이 달라졌다.

영도는 전 세계 야구계를 넘어 야구의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당시의 기대치를 채워가는 중이고, TPK 역시 내일을 장담할 수 없던 신생 기업에서 탄탄하게 자리 잡은 중견 기업이 되었다.

그러나 결국 하는 일은 똑같았다.

영도는 열심히 야구 했고, TPK는 열심히 영도의 가치를 높였다.

“이봐, S-DO. 넌 5억 달러, 가능하다고 생각해?”

“아... 음... 가능하지 않을까요? Y-DO가 그걸 원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 자리에 승도 역시 자리하고 있었다.

사실, 승도가 영도 덕분에 어릴 때 일을 시작해서 그렇지, TPK에서의 경력만 따지면 거의 창업 공신급이었다.

경력, 스펙의 문제로 직급 자체가 높진 않았지만, 그런 걸 감안했을 땐 높은 편이기도 했고.

그러나 사무실 출근보다는 영도를 옆에서 케어하는 게 주 업무였던 만큼 아직 임원진이 불편했다.

워낙 변죽도 좋고 넉살도 좋다 보니 오랜 시간 함께 한 테더 파커와는 친한 사이였지만, 임원들의 대부분은 에이전시가 커지면서 외부에서 영입한 케이스다 보니 아무래도 거리가 있었다.

‘아오, 대체 내가 왜 여기 있는 건데... 내가 우리 형 동생이긴 하지만, 우리 형이 내 말을 듣냐고...’

대체 자신은 왜 여기에 있을까...

영도에게 VIP 티켓도 받았고, 야구선수 출신인 만큼 야구장 분위기도 좋아하는데 대체 왜...

경기장에서 직접 보는 건 야구를 즐기러 가는 거고, 에이전시 업무를 위해선 당연히 비싼 카메라를 활용한 중계로 보는 게 낫다지만...

어차피 내가 여기서 주장한다고 들어줄 것도 아니면서.

“5억 달러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어? 나이가 있는데.”

“근데 생각해보면 정말 Y-DO는 나이가 깡패네요. 이 나이에 벌써 저렇게 올라가면...”

“26세에 통산 홈런도 149개. 어지간한 선수가 22세에 데뷔해서 매 시즌 30개씩 때려야 나올 수 있는 수치야. 엄청 고생해서 커리어 손해도 많이 본 것 같은데, 정작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다니까요?”

“이러니까 일부러 못해서 고의로 방출당했다는 음모론까지 나오는 거였군. 따져보니 그런 생각이 들만도 하겠어.”

“그러게요. 방출당한 게 신의 한 수네요. 물론, 정말 이득 본 건 옵트아웃까지 감안한다 해도 1년이지만, 이번 시즌 끝나고 연장 계약할 수도 있는 거고, Y-DO 정도면 연장 계약 규모가 FA 계약과 크게 차이 나지도 않을 테니.”

“일이 풀리려니까 이렇게도 풀립니다, 참. Y-DO는 이제 돈방석에 앉는 일만 남았어요.”

‘이런 말 할 거면 지금이라도 리키 헨더슨 필드로 보내주지... VIP석에서 신나게 보고 싶은데...’

영도의 활약으로 업계 중견으로 올라선 TPK 에이전시.

TPK 에이전시가 중견에서 탑으로 올라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당연히 이번에도 선봉장은 영도였다.

폭주하는 영도 덕분에 또 한 번의 기회를 얻게 된 TPK의 사내 분위기는 이미 구름 위를 걷고 있었다.

***

[비록 오늘은 Y-DO가 아쉬운 성적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번 포스트시즌 내내 보여준 Y-DO의 활약은 상상을 초월한 수준입니다. 혼자서 팀에 승리를 안겨줄 수 있는 선수임을 완벽하게 증명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Y-DO는 더 이상 증명이 필요 없는 선수이긴 했어요. 플루크도 플루크 나름이지, 64홈런에 WAR 두 자릿수를 대부분 공격 지표로 넘긴 타자에게 무슨 증명이 필요해요? 커리어 하이일 순 있지만, 성적 조금 떨어져도 계속 최고일 텐데. Y-DO에게 필요했던 건 중요한 순간 혼자서 팀에 승리를 안겨줄 수 있다는 증명이었고, 완벽하게 해냈죠.]

[리그 탑클래스까지 성장하면 그럴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몸값이 크게 달라지죠. 그걸 증명해야 진짜 슈퍼스타가 될 수 있는 거고, 몸값도 그에 걸맞게 올라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포스트시즌 전까지만 해도 Y-DO의 다음 FA 계약 때 연평균 계약이 3,500만 달러 정도에서 이뤄질 거란 예상이 많았죠. 엄청난 성적이지만, 한 시즌이고, 다음 시즌에도 리그 정상급 성적을 유지한다 해도 2년은 좀 불안하니까. 그런데 포스트시즌 8연승을 달리는 동안 기하급수적으로 뛰어서 이젠 5,000만 달러 이야기까지 나와요. 그게 ‘팀에 승리를 안겨주는 선수’의 가치예요.]

영도 정도의 선수와 FA로 장기계약을 체결하려면 엄청나게 큰 마켓과 돈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팀들은 언제나 월드시리즈 제패가 목표일 수밖에 없었고, 팀에 우승을 안겨줄 수 있는 선수에게 어마어마한 돈 보따리를 풀었다.

162경기를 치렀을 때 비슷한 성적을 기록하는 선수라도 승리를 안겨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몸값 차이가 말도 안 되게 벌어지는 경우도 있을 정도.

그런 상황에서 팬과 전문가들의 예상 몸값이 극단적으로 뛰어오른 건 영도가 그만큼 엄청난 활약을 보여줬다는 뜻이었다.

그런 선수가 경기 내내 침묵했을 땐 조심해야 했다.

이번 타석이 결정적인 순간일 수 있으니까.

[중요한 순간입니다. 애커슬리가 다시 한 번 본인의 눈을 자랑하며 출루에 성공했고, 3-2로 에이스가 앞선 8회 초 상황에서 Y-DO가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니까 8회 초 1아웃 2루에 클로저 대런 콜을 올린 거죠. 다저스의 실패 요인 중 하나로 지나치게 보수적인 용병술을 꼽잖아요? 그걸 참고한 것 같아요.]

노엘 베다드는 멋진 피칭으로 7이닝 2실점 호투를 펼쳤고, 제러드 홉슨 역시 누가 원정 경기 아니랄까 봐 6.1이닝 3실점으로 좋은 피칭을 선보였다.

1점 차의 치열한 경기, 8회 초 1사 2루, 드디어 주자를 앞에 둔 채 영도가 타석에 들어섰고... 에이스는 과감하게 클로저를 올렸다.

‘지저분한 볼 끝으로 먹고사는 투수들은 상대하기 쉬운데.’

극단적인 크로스 스텝을 활용한 지저분한 볼 끝과 서클 체인지업.

에이스의 클로저 대런 콜은 클로저치고 빠르지 않은 92마일대의 패스트볼을 던지지만, 어지간하면 정타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번 시즌을 치르며 수도 없이 증명했듯 영도는 빗맞아도 장외 홈런을 때려낼 수 있는 선수였다.

영도를 상대할 땐 큰 낙차의 변화구로 삼진을 노리는 투수가 그나마 선방했고, 맞춰 잡는 투수는 예외 없이 고전했다.

‘그래도 진짜 많이 더럽긴 해. 당연히 테오 제퍼슨급은 아니지만.’

당연하지만, 영도 역시 적당히 빗맞아야지, 제대로 빗맞으면 내야 플라이를 때리기도 하고 투수 앞 땅볼을 때리기도 했다.

한 팀의 클로저로 안정적인 활약을 보여준 만큼 대런 콜은 분명 좋은 투수였고.

그러나 테오 제퍼슨급은 아니었다.

선수층이 무지막지하게 두터운 메이저리그에선 대부분의 불펜 투수는 선발 투수 수업에서 밀려난 선수들이었다.

그 이유가 부상이든 개인 기량 문제든 어쨌거나 좋은 투수들은 대부분 선발 투수에 도전했고, 이게 몸값과 선수 평가, 명예의 전당에서도 나타났다.

애초에 대런 콜이 베니 슈스터 같은 특급 클로저도 아니었고...

에이스가 이런 상황에서 대런 콜을 믿을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수순이지만...

[역시! 역시 또 이렇게 됩니다! Y-DO가 맞춰 잡는 투수들을 상대할 때 가끔 보여주는 무지막지한 스윙! 주자를 쌓기보다 자신이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그대로 드러나는 무지막지한 스윙이 이번에는 홈런으로 이어집니다! 이번 포스트시즌에만 8번째 홈런! 2002년의 배리 본즈, 2011년의 넬슨 크루즈, 2033년의 제리 페이지에 이어 역대 네 번째로 단일 시즌 포스트시즌 8홈런 고지에 올랐습니다!]

[경기로 따지면 7경기인데, 이것도 2002년 배리 본즈의 8경기에 이어 공동 2위 기록이거든요? 그런데 고작 9경기에서 7경기 홈런이에요. 앞으로 최소 3경기가 더 남았는데, 이 기록도 깰 것 같네요.]

[Y-DO의 손에 걸리면 이런저런 기록들의 수명이 다 끝나버립니다. 단일 포스트시즌 최다 홈런 기록도 아마 깨질 듯합니다.]

[이러니까 Y-DO가 미쳤다는 거예요. 2041시즌은 Y-DO의 시즌이라는 말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죠. 개막부터 월드시리즈까지 전부 Y-DO가 시즌을 이끌고 있어요.]

역사를 새로 써가는 영도의 폭주를 막기엔 대런 콜은 너무 무게감이 없었다.

이 시기만 아니었다면 대런 콜도 충분히 좋은 투수고 영도를 막아낼 수 있는 투수였지만, 지금의 영도는 안 그래도 무서운 선수가 이런저런 버프까지 둘둘 두른 듯한 느낌이었다.

꼭 대런 콜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영도는 그냥 막을 수가 없는 선수였다.

[결국, 오늘도 Y-DO가 경기를 뒤집었습니다. 최근 페이스를 봤을 때 슬슬 Y-DO가 한 건 해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은 했습니다만, 이번에도 해낼 줄은 몰랐습니다. 19연승 당시부터 미친 듯 달리고 있는데, 슬슬 멈춰 설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요. 거의 40, 50경기째 이런 페이스가 이어지는데, 이 정도면 그냥 이게 평범한 컨디션이라고 봐야 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아... 컨디션이 올라온 게 아니라 선수 자체의 클래스가 상승한 거란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봐야 할 수도 있다는 거죠. 자세한 건 몰라요. 하지만 타격은 무조건 사이클이 따라오는데, 시즌의 거의 1/3 동안 유지한 사이클을 정말 사이클이라고 봐야 하느냐는 거죠.]

영도의 경이로운 폭주, 경이로운 한 달은 오늘도 이어졌다.

경이로운 한 달이라는 말도 경이로운 두 달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 아예 이 정도면 그냥 경이로운 선수인 거지, 이번 한 달, 두 달만 경이로운 게 아니지 않냐는 말도 나왔다.

‘좋아. 연승이 끝까지 계속될 순 없겠지만, 1차전부터 끊길 순 없지. 가장 중요한 게 1차전인데.’

2차전은 내줄 수 있겠지만, 1차전은 꼭 잡고 싶었다.

일단, 오클랜드 홈팬들 앞에서 1차전 원정 경기를 잡아 충격을 주고 싶었고, 증명하고 싶었던 사심도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월드시리즈 1차전, 심지어 원정 경기를 잡고 간다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연승은 끊겨도 9연승까지, 월드시리즈 1차전까지는 꼭 잡고 싶었고, 일단 기회는 만들었다.

‘뒤는 피셔와 커닝햄이 알아서 잘 해주겠지.’

에이스의 클로저, 대런 콜은 실패했지만, 우리 쪽은 절대 실패하지 말기를.

홈을 밟고 돌아와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며 생각했다.

수비는 남았지만, 어쨌든 야구라는 스포츠의 한계상 자신의 주요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 인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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