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각자의 감정 > (144/200)

< 각자의 감정 >

<다 때려 부숴! 야구 X발, 다 집어치우라 그래! 이기지도 못하는 거, X발, 경기장만 좋아서 뭐하라고!>

<그러니까! 이렇게 비싼 구장이 뭐가 필요하냐고! 이거 갖다 팔아서 기부나 해, 형편없는 새X들!!>

<이딴 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이 X같은!! 병X!!>

“다저스타디움 근처에서 산발적인 폭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저스가 또 한 번의 실패를, 그것도 처참하게 겪으면서 팬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비록 다저스는 물론 로키스까지도 경기 후의 소요 사태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판단, 어느 정도 대처를 해놓은 덕분에 크게 번지진 않았습니다만, 다저스타디움 주변을 완벽히 지켜내진 못했습니다.”

“그래도 주요 시설들은 어떻게 잘 지켰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최선을 다해 경기 전부터 이런 소요 사태에 대비했음에도 막아내지 못한 다저스 팬들의 분노를 위로해야 할까요... 참, 이게... 참... 안타까워요.”

“물론, 절대 해선 안 되는 일이고, 이런 폭력적인 행동으로 해결되는 건 당연히 없습니다. 차라리 조금 더 조직적이고 이성적인 요구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요. 근데... 이해가 돼요. 당연히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지만, 다저스 팬이라면 이해가 돼요. 그게 참 문제예요.”

“가슴이 아플 정도입니다. 제가 다 답답해요. 대체 다저스가 뭐가 문제일까요? 투자를 안 하나? 아니면 그렇게 투자해서 데려온 고액 연봉자들이 못하나? 성적이 안 좋나? 해당되는 게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런데 정말 딱 하나, 딱 하나 월드시리즈 우승만 못 해요.”

다저스의 처참한 몰락 이후 당연히 모든 야구팬들의 관심이 다저스에게로 쏠렸다.

실패도 반복되면 관심이 집중되기 마련인데, 서울 제츠가 그랬던 것처럼 리그 내 최정상을 달리는 인기와 꾸준하다 못해 과학적인 현상으로까지 보이는 계속된 실패가 더해지면 컬트적인 관심을 넘어 모두의 관심으로 이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

다저스 팬들에겐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좌절감을 또 한 번 안겨주고, 전력과 인기, 돈까지 뭐 하나 부족한 게 없는 다저스를 질투하는 팬들에겐 사이다와 같은 청량함을 안겨주는 또 한 번의 실패.

다저스 팬들은 결국 이번만큼은 참지 못한 채 실력 발휘에 나섰고, 타 팀 팬들은 건수를 잡았다는 듯 신나게 놀려댔다.

다저스는 분노했고, 그것만으로도 힘든데 놀림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이 더해져 폭발, 심각한 상황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만, 그 바로 직전 단계를 찍은 뒤 식어갔다.

“반면, 로키스 팬들은 쿠어스 필드 주변에 자리 잡고 34년 만의 프랜차이즈 통산 두 번째 월드시리즈 진출을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조금이라도 다저스가 연상되는 사람이 보이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방어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아, 맞아요. 저도 봤거든요? 굉장히 재미있던데요? 로키스 팬들이 지금 팀을 얼마만큼 사랑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 같았어요.”

“와일드카드 경쟁에서 떨어뜨린 내셔널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떨어뜨린 레즈, 디비전 시리즈의 컵스, 챔피언십 시리즈의 다저스까지. 시즌 막판부터 로키스와 경쟁한 모든 팀들이 팬들과 멀어졌습니다. 무슨 저승사자도 아니고...”

“그나마 레즈는 좀 낫죠. 리빌딩 후 포스트시즌에 올라가는 게 목표였던 팀이고 우승권 전력까진 아니었기에 어쨌든 목표는 달성했으니까요. 그런데 나머지 팀들은... 특히 컵스랑 다저스는... 어휴...”

2041시즌의 저승사자, 자연재해, 움직이는 저주.

쿠어스 필드로부터 단련되다 못해 동기화까지 되어버린 로키스는 홈구장에서 익힌 저주를 만나는 팀들마다 뿌리고 다녔다.

올라가면서 커진 기대감만큼이나 반작용은 커졌고, 내셔널스와 레즈에 비해 컵스, 다저스, 특히 다저스가 치러야 했던 대가는 무시무시한 수준.

과연 다저스가 이번에 입은 타격을 다음 시즌까지 복구할 수 있을지 의심될 정도로 후폭풍이 대단했다.

지난 시즌에 이어 FA 시장도 변변찮고, 샐러리 여유도 없고, 팀도 거의 완성된 상황에서 어떻게 전력을 보강해야 팬들의 분노를 잠깐이라도 달랠 수 있을지, 그리고 분노를 잠재울 유일한 방법인 월드시리즈 우승을 가져올 수 있을지... 

다저스 프런트는 이미 머리가 깨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로키스의 저주는 내셔널리그 팀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었다.

“다저스가 팬들을 달래는데 모든 힘을 집중하는 동안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역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리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면서 ‘Y-DO 시리즈’가 완성되었습니다.”

“에이스도 참... 아예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으면 그래도 감당할 수 있었겠죠. 그런데 포스트시즌에 올라온 이상 무조건 로키스보다는 높이 올라가야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거예요.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내내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렸겠지만, 월드시리즈가 가장 부담스러울 거예요.”

“어휴... 차라리 Y-DO가 적당히만 잘했으면, 정규시즌에도, 포스트시즌에도 적당히만 잘했으면 에이스도 상황이 좀 괜찮았을 텐데 너무 잘하니까. 상상을 초월할 만큼 잘하니까 에이스가 뭘 어떻게 하겠습니까.”

“Y-DO만 있었으면 우승인데 방출이 말이 되는 거냐!!! 고 외치는 팬들의 비난에 대답할 말이 없죠, 지금. Y-DO 없이도 무조건 우승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수밖에 없어요.”

시리즈 전까지는 그래도 압도적인 탑독으로 평가되었고, 팬들 역시 팀의 전력과 성과에 강한 자부심을 보였던 레즈, 컵스, 다저스와도 달랐다.

에이스는 미네소타 트윈스와 보스턴 레드삭스를 꺾고 월드시리즈 진출까지 이뤄냈음에도 영도와 로키스가 아직 살아남았다는 것 때문에 웃을 수가 없었다.

영도가 그냥 평범하게 30, 40홈런 정도 때려주고 대충 홈런 1위에 MVP급 활약을 펼쳤다, 정도였다면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진 않았을 것이었다.

그 정도였다면 “선수 관리에 살짝 실수가 있었다, 그래도 월드시리즈 진출을 이뤄내지 않았느냐”면서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영도의 활약이 도가 지나쳤다.

기록이란 기록은 전부 다 깨면서 만장일치 MVP가 거의 확실시되고 심지어 전력이 약하다는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에서도 하위권으로 꼽히던 팀을 월드시리즈까지 이끌어버렸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해 수억 달러를 쓴 에이스도 아직 신구장 개장 이후 월드시리즈 우승이 없는데, 로키스는 고작 3년 3,300만 달러로 월드시리즈 진출을 이뤄낸 것.

심지어 이번 시즌 끝나고 트레이드로 유망주를 패키지로 털어오면 사실상 돈 한 푼 안 쓰고 역대급 괴물을 써먹은 것과 다름없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Y-DO를 방출한 에이스의 판단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실수였다고도 생각합니다. 자리가 없으니 내보낸다? Y-DO 정도의 선수는 죽어도 끌어안고 같이 죽어야죠.”

“1루와 코너 외야를 소화하는 공갈포. 사실, 시장에 많은 건 맞아요. 빅리그 데뷔 후 5시즌 동안 성장하지 못한 선수가 갑자기 터질 확률도 낮은 것도 맞아요. 그런데 또 Y-DO 정도의 재능은 그래도 기다려야 하는 것도 맞아요.”

영도 없이도 월드시리즈 진출을 이뤄낸 에이스인데, 영도까지 있었다면 이런 불안함 없이 당연히 정상에 올랐을 것이라 생각하는 팬들의 비판은 당연했다.

무엇보다 영도라는 선수 자체가 에이스의 팜 출신이고, 에이스가 배출한 몇 안 되는 역대급 유망주이다 보니 반작용이 더욱 크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고.

애초에 재능 하나는 뛰어났던 선수인 만큼 영도를 방출할 때부터 대부분의 에이스 팬들이 부메랑을 걱정했다.

워낙 파워가 대단한 선수라 컨택이 아주 조금만 성장해도 분명 엄청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거라며 팀을 비난했고, 실제로 영도는 그들이 걱정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크고 강력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어쨌거나 이번 시즌 메이저리그는 Y-DO 덕분에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합니다. 개막전과 동시에 10경기 연속 홈런으로 신기록 행진의 포문을 열더니 이런저런 기록들 다 깨고 19연승에 로키스의 프랜차이즈 사상 두 번째 월드시리즈 진출에 마지막엔 Y-DO 시리즈까지... 시즌 전체가 Y-DO를 위한 헌정 시즌인 듯한 느낌까지 납니다.”

“참 대단하죠. Y-DO와 로키스가 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반대로 이들과 맞붙는 모든 팀들은 그만큼의 부담감을 안고 경기에 임할 수밖에 없죠. 절대적인 전력은 분명 로키스가 항상 밀리는데, 분위기는 항상 앞서고 들어가는 이유 중 하나일 거고요.”

시카고 컵스는 당연히 이길 거라 생각했지만, 무너졌다.

LA 다저스는 원래부터 포스트시즌을 무서워하는 팀이었고, 1차전에서 에이스가 부상으로 이탈하는 등 악재가 겹치며 무너졌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Y-DO가 있는 팀에겐 절대 패배할 수 없다는 부담감을 안고, 절대 빅마켓이라 할 수 없는 구단 사정에도 불구하고 신구장 개장 이후 두 차례에 걸쳐 드라이브를 걸어온 후폭풍에 휩쓸리기 전 무조건 한 번은 월드시리즈를 차지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안고 시리즈에 임했다.

로키스를 상대한 팀 중 정신적으로 가장 쫓기는 팀이었고... 그래서 분위기가 묘해졌다.

다른 팀들은 모르겠지만, 로키스만큼은 분위기와 흐름, 멘탈적인 부분에서 앞서 모든 승리를 따냈다.

만약 월드시리즈에서도 로키스가 흐름을 쥐고 간다면.

에이스의 이러한 정신적 부담감과 압박감은 생각보다 큰 대가를 치르게 될지도 몰랐다.

***

“허... 네가 이렇게 무지막지한 타자가 되어 돌아올 줄이야... 스프링 트레이닝 때도 어느 정도 알아보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으니 네가 어떻게 알까.”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영도의 이전 소속팀인 만큼 지인들도 꽤 많았다.

친구라고 할 만한 선수는 당연히 거의 없지만, 이번 시즌 애슬레틱스의 3선발로 좋은 모습을 보여준 믹 고든은 그나마 친구라 부를 수 있었다.

스프링 트레이닝 때 로키스와 애슬레틱스가 만난 적 있었고, 그때 믹 고든이 등판해 영도에게 홈런 한 방을 얻어맞았다.

당시에도 그는 이번 시즌 영도의 성적이 심상치 않을 거라 직감했는데, 실제 성적은 그보다 두 배는 더 대단했다.

“어쨌든 너 때문에 우린 진짜 큰일 났다. 팬들이 얼마나 분노했는지 넌 상상도 못 할걸.”

“내가 상상할 필요는 없는 일이지.”

“하긴, 그것도 그래. 어쨌거나 그러니 월드시리즈는 우리가 가져갈게. 그거라도 안 가져가면 진짜 홈구장에 매달릴지도 몰라. 프런트까지 해서 한 50명 정도?”

“그렇게 생각하든지. 너랑 내가 결정한다고 그대로 이뤄질 것도 아닌데 쓸데없는 힘 쓰기 싫다.”

믹 고든의 말에서 현재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선수들과 관계자들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을 유추할 수 있었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따내지 못하면 홈구장에 매달리게 될지도 모른다니...

모든 구성원이 그런 생각으로 시리즈에 임한다면 로키스도 쉽게는 이기지 못할 듯했다.

‘그 부담감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면 말이지. 다저스는 집념과 부담감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던 시기를 놓쳐서 완전히 무너졌는데, 애슬레틱스는 어느 정도 시기를 지나고 있을까.’

부담감, 긴장감, 집념, 이런 감정들은 양날의 검이었다.

다저스와의 챔피언십 시리즈는 이런 감정들이 부정적으로 작용했을 때 어떤 참사가 벌어지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시리즈였다.

과연 에이스는 어떨까.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새로 쓴 거물을 방출로 내보내고 그 선수를 다시 월드시리즈에서 만난, 중소마켓임에도 무리해서 천문학적인 투자를 단행한 부담감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시기일까.

아니면... 이미 부정적인 시기로 넘어왔을까.

“에휴... 간다. 요즘 너 내보내고 데려온 선수가 저놈들이냐면서 척이랑 알버트가 하도 욕을 먹어서 너랑 오래 이야기하면 눈치 보여.”

“음? 둘 다 30홈런 넘기지 않았나?”

“그랬지. 그런데 둘이 친 홈런 합쳐도 너한테 안 되니까. 이게 다 너 때문이라고.”

“... 흠. 미안하진 않지만, 안 됐네. 둘 다 잘했는데 말이지. 평소 성적보다 못한 것도 아니고.”

다른 선수들은 몰라도 그 둘만큼은 좀 흥분해서 평정을 잃었으면 좋겠다.

조금 미안하지만,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동료들에게 우승반지를 끼워주고 싶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거겠지? 설마 그 둘 때문에 쫓겨났다고 개인적인 유감 같은 게 남아있는 건 아니겠지.’

월드시리즈에서 이전 소속팀을 마주한 영도 역시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방출당할 만했으니까 방출당했고, 유감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인간인지라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진 않은 듯했다.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게 달라서 그런 걸까.

팀을 위해서 정규시즌이나 포스트시즌이나 200% 이상의 역할을 해냈고, 로키스라는 팀 자체가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하는 팀이라고 생각했는데...

증명할 건 다 증명했으니 다시 내 성적만 신경 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에이스에게만은 지기 싫었다.

< 각자의 감정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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