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업셋 >
[상위타순에서 이쯤 뭔가 해줘야만 합니다! 정말 여기서도 해주지 못하면 심각한 문제가 무조건 따라올 겁니다. 이제는 정말 심각한 상황이에요.]
[8회 초에 3점 차. 그리고 4번 타자 메인 도나르부터 시작. 이미 팀의 핵심 타자인 제임스 프레스톤의 타석은 사실상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고 도나르가 뭔가 해줘야죠. 다저스 타선이 탄탄하다고는 하지만, 누가 뭐래도 다저스는 마운드 위주의 팀이거든요?]
[하위타순으로 가면 힘이 꽤 많이 떨어지죠. 8회에 여기서 따라가는 점수가 나오지 않으면... 더 말하는 것도 충격입니다. 정말로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거예요. 혹시나, 혹시나, 설마... 하던 상황이.]
[정말로 설마, 설마 했죠. 어제 경기가 끝났을 때도 설마 오늘 끝날까, 했어요. 그런데...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거든요?]
- 다저스가 다저스타디움에서의 경기를 놓치면 위험해질 수도 있다.
이건 챔피언십 시리즈가 시작되기 전에도 나오던 이야기였다.
다저스의 승률이 절대적으로 높지만, 시리즈를 예상할 때 “무조건 다저스가 이길 거예요”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콜로라도 로키스가 쿠어스 필드에서 보여준 강력함을 거론하며 위기감을 만든 정도.
물론, 로키스는 정말로 쿠어스 필드에서 강했지만, 그게 다저스와의 전력 차를 넘어설 정도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 다른 경기도 아니고 1차전을 내주고 돈 라이스까지 이탈한 상황에서 2차전까지 내주면 정말 위험할 수 있다.
이건 1차전이 끝난 이후 나왔던 의견이었다.
시리즈 시작 전보다는 진지해졌지만, 그래도 다저스가 승리할 거란 예상이 바뀐 건 아니었다.
다저스가 이기겠지만, 로키스의 전력, 그리고 분위기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대단하다는 것까진 인정하는 흐름.
그래도 여전히 시리즈 승자로 예측된 건 다저스였다.
- 홈에서 두 경기를 전부 내줬고, 선발투수가 아무리 대단해도 그 위력을 100% 발휘할 수 없는 쿠어스 필드에서의 3연전. 이젠 진짜 다저스가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2차전까지 로키스의 승리로 끝난 이후에는 정말로 상황이 심각해졌다.
다저스타디움 2연전에서 보여준 로키스의 전력과 응집력, 집중력이 너무나도 강력했고, 다저스는 이번 포스트시즌에도 실망스러웠다.
에이스의 이탈 이후 정신을 못 차리는 게 너무 눈에 보였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설마, 설마 다저스가 이렇게 무너지겠어? 하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현실과 인식에는 언제나 시간 차가 있기 마련이니까.
- X됐다.
그리고 어제 경기가 끝난 뒤, 커뮤니티가 폭발했다.
쿠어스 필드로 이동 후 가진 첫 경기이자 다저스의 차세대 에이스 페드로 케인이 로키스의 차세대 에이스 커트 페니를 상대로 가진 리벤지 매치.
뚜껑을 열어본 결과, 페드로 케인은 다저스의 에이스 자격을 150% 증명했다.
디비전 시리즈에선 잘 던지더니 챔피언십 시리즈가 되자마자 첫 등판부터 탈탈 털렸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3차전마저 로키스에게 넘어간 순간, 지금까지의 모든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강하게 잡아당긴 타구! 3루 라인을 타고 빠져나가지... 못했습니다! 못했어요! 걸렸습니다! Y-DO의 환상적인 다이빙 캐치! 이런 타구로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다저스는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것도 출루가 안 된다면 대체 뭘 어떻게?]
[칼의 말처럼 다저스는 딱 그런 상황에 빠진 것 같습니다. 대체 내가 뭘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지? 어떻게 하면 5차전으로 갈 수 있지? 이것도 안 된다고? 하는 느낌이죠.]
[로키스는 정반대고요. 지금처럼만 하면 월드시리즈에 가겠구나, 하는 것 같아요. 원래 이번 시즌 수비 지표가 굉장히 좋은 팀이거든요? 그동안 Y-DO를 앞세운 공격력에 가려졌지만, 로키스는 수비도 좋은 팀이에요. 그 공격력이라는 것도 상위 타순에 한정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제는 로키스라는 팀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Y-DO를 위시한 상위타순이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보여주지만, 하위타순은 겨우겨우 자기 몫만 하는 정도다? 그런데 그 자기 몫이 시즌 막판부턴 하위타선에게 더 바라긴 어려운 수준이 되었고, 마찬가지로 딱 자기 역할 정도만 해주던 선발진? 물론, 여전히 그냥저냥 자기 몫 정도 하지만, 타선과 발맞추는 수준이 대단해요. 뭐... 어쩌죠, 이제?]
[그러게요. 아니, 막말로 그냥 이기는 팀이 강한 팀이에요. 그런데 우리처럼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설명해야 먹고 사는 거거든요? 짧게 잡아도 최근 한두 달 정도는 죽겠습니다, 아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로키스의 승리가 눈앞으로 다가온 순간, 이제는 로키스를 다시 한 번 평가할 필요가 있었다.
다저스를 잡았으면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2041시즌 포스트시즌의 로키스는 월드시리즈 우승후보 1순위 다저스를 잡아낼 만했던 팀이라는 걸.
그러나 다저스를 잡아낸 것까지 생각하고 봐도 여기저기 구멍이 보인다는 게 문제였다.
구멍이 보이는 걸 안 보인다고 할 순 없으니 이번엔 다저스 선수단이 아니라 팬들에게 인지부조화가 일어났다.
아니, 분명히 강해 보이는 팀이 아닌데 이상하게 자꾸 패배를 잊은 것처럼 이기고 다니니까 강해 보이는데 왜 강한지 알아보려고 뜯어보면 또 약점들이 보이는.
이제는 중요한 순간마다 영도가 큰 건 하나씩 해내고 그렇게 끌어올린 분위기를 바탕으로 이긴다는 설명도 충분하지 않았다.
오늘 경기가 이렇게 끝나면 월드시리즈까지 한 일주일 정도가 남는데, 일주일 내내 아마 일주일 내내 로키스의 전력을 분석하는 기사들이 쏟아질 예정이었다.
“1점만 더 추가하면 끝나는 거 아닐까. 진짜로 우리 월드시...”
“닥쳐, 개리!! 거기서 더 이상 말하지 마!”
“으읍! 게일! 왜요!? 뭐가 문제인데요!?”
“원래 그런 건 입 밖으로 꺼내는 거 아니라고! 프레드! 버니! 너희 둘 다 조용히 해! 개리랑 너희, 셋 다 조용히 하라고!!”
개리 반스, 프레드릭 더햄, 버나드 케플러.
이번 시즌 데뷔한 세 명의 신인들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데뷔 첫 시즌부터 월드시리즈 진출이 눈앞에 보이는데 제정신을 유지하는 게 더 이상했다.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올해 쓸 정신력을 다 썼는데 갑자기 약팀이던 소속팀이 19연승을 달리다가 8연패를 달리더니 다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고 거기서 또 8연승으로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한다고?
기쁘고 행복하다 못해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그래서 가장 일반적인 징크스 중 하나인 ‘완전히 이뤄지기 전까진 설레발 금지’를 잠시 잊었고, 해니건의 지적을 받았다.
해니건은 아주 소소한, 미미한 징크스에 기대서라도 월드시리즈 무대에 서고 싶을 만큼 간절했다.
지금 월드시리즈에 진출해도 사실 늦은 감이 있으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이해는 하는데... 월드시리즈가 대단하긴 하네.’
그런 징크스 같은 것에 전혀 흔들릴 것 같지 않은 앤서니 모리스마저 내심 동의한다는 듯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징크스 덩어리’라고 할 만한 존재가 바로 영도였지만, 영도는 개인 성적과 관련된 징크스만 심할 뿐, 다른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역시 보통 선수들이라면 이런 사소한 징크스들까지 전부 신경 쓰이겠지.
다른 것도 아니고 월드시리즈가 코앞인데 그럴 수밖에 없을 거야.
영도는 그냥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저렇게 불안함을 못 놓는다면 하나 더 해줘야지. 8회 말에 1점이라도 더 뽑으면 다들 안심할 테니.’
점수 차와 관계없이 이기고 있는 팀이 마지막 공격 이닝에 1점이라도 추가하면 경기 분위기가 크게 기울어지는 느낌이 있었다.
포스트시즌에서, LA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부드럽게 이겨본 경험이 없어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불안하다면.
‘마음을 편하게 해주면 되지, 뭐. 아무리 불안해도 마지막 수비에 4점 차면 인간인 이상 막겠지.’
8회 말, 콜로라도 로키스의 선두 타자는 2번 유영도.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시작 후 출루율이 6할에 육박하고 홈런도 4개, 장타율도 거의 10할에 달하는 괴물 같은 타자.
그런데 1점이라도 내주면 거기서 끝이라 선두타자를 절대 내보낼 수 없는 상황.
[다저스의 클로저, 베니 슈스터가 숨을 크게 몰아쉽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지금 컨디션의 Y-DO를 상대하려면 저럴 수밖에 없을 겁니다.]
[... 으읅... 아, 죄송합니다. 잠깐 상상했더니 나도 모르게 몸이 떨리네요.]
1, 2차전은 너무 크게 져서 등판 기회가 없었고, 3차전도 계속 리드를 빼앗긴 채 끌려왔지만, 감각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1이닝을 소화했던 베니 슈스터.
오늘 역시 8회 말이 되자 슈스터가 올라왔다.
세이브고 나발이고 오늘 지면 끝인데 가장 위력적인 불펜 투수를 아껴봤자 X만 되니까...
‘얘네 패배의식이 장난 아닌데? 정규시즌에 만났을 땐 아무리 지고 있어도 이런 느낌은 전혀 없었는데.’
포스트시즌마다 실패했기 때문일까.
1, 2차전이야 점수 차가 일찌감치 벌어졌으니 그렇다 치지만, 3차전과 4차전은 충분히 한 번의 빅이닝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점수 차임에도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투수들의 공에서 자포자기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더 이상 실점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느껴지지만, 그 이상은 없는 공들.
뭔가 잘은 모르겠지만, 다저스가 계속해서 실패한 이유를 어느 정도 알게 된 느낌이었다.
수호신이라는 클로저도 이 정도인데 뭐...
[예, 가네요. 갑니다. 이번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만 네 번째 홈런입니다. Y-DO, 기어이 포스트시즌 장타율 1.000을 찍으려는 것 같습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과 디비전 시리즈 4경기에서 3홈런,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4홈런, OPS 1.5는 옛날에 넘어갔고, 2.0을 노리려는 건지... 다저스는 진짜 보기 싫겠어요. 뭐 저런 선수가 다 있나요? 원래부터 다저스 상대로 강했던 선수지만, 포스트시즌 들어오니까 그냥 미쳐버렸네요.]
영도가 손톱이 깨진 돈 라이스의 공을 받아쳐 홈런으로 연결한 순간부터 다저스의 붕괴가 시작되었다면 베니 슈스터의 타구를 받아쳐 펜스를 넘긴 순간 다저스의 마지막 기둥까지 무너졌다.
안 그래도 대부분의 동력을 잃은 다저스에게 이번 홈런은 지나치게 치명적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진짜! 진짜 끝났어!! 진짜 오늘 끝났다고!!”
“앤서니 어디 있어, 앤서니!! 앤서니이이이!!!!!”
“게일! 게일! 게일은 또 어디 간 거야!?!?!?”
이변은 없었고, 경기는 8-4, 로키스의 승리로 끝났다.
디비전 시리즈에 이어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연속 스윕.
2007년의 록토버에 이어 프랜차이즈 역사상 두 번째 월드시리즈 진출이자 두 번째 월드시리즈 무패 진출.
2014년 캔자스시티 로열스에 이어 와일드카드 결정전 포함 8연승으로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한 두 번째 팀.
콜로라도 로키스의 월드시리즈 진출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수만 명의 팬이 최대한 그라운드에 가까워지려 1층 관중석으로 달려들었다.
[어이구... 로키스 팬들이 내야를 둘러싼 그물에 걸려있습니다. 어유, 위험합니다. 조심해야 할 것 같은데요.]
[프랜차이즈 역사상 두 번째, 34년 만의 월드시리즈 진출이고 48년 만의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기대해봐도 좋을 분위기잖아요? 저럴 만도 하죠. 팬이라면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해요. 하지만 조금 진정하고 조심하면서 안정에 신경 써야 해요. 사고는 절대 일어나면 안 됩니다.]
< 업셋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