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록토버 >
로키스의 기적적인 19연승 중 대략 10연승 정도쯤 되었을 때, 그때부터 많이 나온 단어 두 개가 있었다.
바로 ‘록토버’와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록템버’였다.
‘록토버’는 사실상 콜로라도 로키스의 최고 전성기이자 팀이 가장 강한 임팩트를 남겼던 2007시즌 막판의 질주를 뜻하는 말이었다.
당시에도 로키스는 마지막 15경기에서 14승 1패를 내달렸고, 포스트시즌 돌입 후 디비전 시리즈와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7연승을 달리며 마지막 22경기에서 21승 1패라는 어마어마한 폭주로 월드시리즈까지 올라갔다.
디비전 시리즈-챔피언십 시리즈의 연속 스윕은 1976년 신시내티 레즈에 이어 당시로선 역사상 두 번째.
와일드카드 티켓이 한 장이었던 시기였기에 동률 끝에 치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포스트시즌으로 취급되지 않았는데, 만약 지금이었다면 포스트시즌 8전 전승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최초의 팀이 될 뻔했다.
2014년의 캔자스시티 로얄스가 아니라.
그만큼 시즌 막판의 기세가 어마어마했고,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포스트시즌에서의 질주가 엄청난 임팩트를 남겼다.
그러나 이번 시즌을 치르면서 ‘록토버’와 ‘록템버’, 어느 쪽의 임팩트가 더 강했는가를 주제로 논쟁이 벌어졌다.
‘록토버’가 대단하긴 했지만, 어쨌든 포스트시즌 진출 과정으로 보자면 로키스는 마지막 15경기,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제외한 14경기 13승 1패를 달리기 전까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5경기 차였다.
반면, ‘록템버’는 프랜차이즈 최다 연승 신기록인 19연승을 세웠고, 8연패에 이은 5승 1패로 어쨌거나 엄청난 임팩트, ‘기적’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임팩트를 남겼다.
그러나 프랜차이즈 최다 연승 신기록이 아무리 대단해도 프랜차이즈 48년 역사상 유일의 월드시리즈 진출엔 밀릴 수밖에 없었다.
30개 팀 중 10개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고 월드시리즈에 모든 것을 거는 시스템에서 개인 스탯이라면 모를까, 팀 평가로는 정규시즌 기록이 아무리 대단해도 월드시리즈 기록과 경쟁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록템버’ 멤버들에겐 포스트시즌이 중요했다.
어쨌든 한 팀의 최전성기를 함께 한 선수라는 평가는 선수로서 탐낼 수밖에 없는 명예였고, 의식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시작된 포스트시즌.
‘록템버’의 평가는 물론, 두 번째 ‘록토버’라는 평가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록토버’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가 2007년뿐 아니라 2041년의 성적까지 포함한 것으로 바뀌어 가는 것.
‘록템버’라는 별명은 2041시즌만의 것이고, ‘록토버’의 의미가 확장된다는 것은 곧 2041시즌이 2007시즌을 넘어서려 한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이유는 하나였다.
[로키스와 컵스의 디비전 시리즈 3차전은 로키스에게 아주 큰 의미가 있는 경기였을 겁니다. 디비전 시리즈를 스윕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렇겠지만, 버나드 케플러마저 오프너 시스템을 벗어나서, 한 명의 온전한 선발투수로서 독립한 듯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그게 아주 중요하죠. 페니-홉슨에 이어 케플러, 나아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등판한 에레라까지 네 명의 선발투수 모두 1회부터 등판해서 자기 몫을 해줬어요. 자기 몫 이상을 해줬다거나, 아주 호투를 펼쳐줬다거나 한 건 절대 아니에요.]
[하지만 자기 몫을 한다는 것, 기대한 만큼의 활약을 펼쳐서 팀의 플랜을 지켜준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로키스의 계산을 제가 알진 못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50% 정도는 Y-DO의 지분일 거거든요? Y-DO가 자신에게 맡겨진 그 엄청난 역할들을 충분히 해내기 때문에, 말도 안 되지만, 그 이상을 해내기 때문에 스윕까지 이어졌을 테고요. Y-DO가 정말 대단해요. 너무 이야기를 많이 해서 오늘은 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어쨌든 Y-DO가 최고입니다.]
로키스와 컵스가 디비전 시리즈에서 만났을 때, 당연히 대부분 사람들이 컵스의 승리를 점쳤다.
다저스가 0.660이 넘어가는 엄청난 승률을 기록했기에 살짝 관심에서 밀려난 느낌이 있었지만, 컵스의 승률도 0.630이 넘었다.
시즌 내내 강팀이었고, 유일한 약점으로 꼽혔던 믿음직한 클로저와 내야 유틸리티 자원 역시 다른 팀도 아니고 로키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메웠다.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도 0.610이 넘어가는 승률을 기록했지만, 정규시즌의 포스, 기세, 팀의 짜임새 등을 봤을 때 내셔널리그 챔피언은 다저스와 컵스 중에서 결정될 거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대부분이 이번 시즌 내셔널리그를 지배했던 다저스와 자웅을 겨뤄볼 만한 팀은 컵스밖에 없다고들 이야기했다.
그런 컵스가 다른 팀도 아니고 로키스에 스윕을 당한 것.
시카고 컵스라는 팀이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 LA 다저스와 함께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전국구 인기팀이라 시청률과 주목도, 관심도가 높은 시리즈였다.
그런 만큼 이런 팀을 스윕으로 잡아낸 로키스가 화제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2041시즌의 ‘록토버’는 있는 단어를 끌어와서 이번 시즌의 기세를 설명하는, 어느 정도 바람이 담겼고, 화제를 만들어내려는 언론의 의도가 담겨 있었다.
아직 ‘록토버’라 부를 정도는 아니고, 더 이상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다시 2007시즌의 로키스에게 고스란히 돌려줄 단어.
그러나 언론에서 의도적으로 붙였다고 해도 언론이 욕심낼 만큼 인상적인 기세를 보여주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나저나 콜로라도 로키스가 무슨 저승사자 같은 느낌입니다. 로키스와 트레이드를 단행한 팀들이 전부 강팀들이었고, 더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거라 평가받던 팀들이었는데, 로키스에 발목을 잡혀 시즌을 끝냈습니다.]
[그렇죠? 요즘 그런 말들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제가 봐도 신기해요. 당연히 저주 같은 건 아니겠지만.]
[카이옌 모타를 주고 발데마르 피자로를 받아간 워싱턴 내셔널스는 경쟁자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로키스에 0.5경기 차 리드를 내주면서 와일드카드 티켓을 놓쳤습니다. 그리고 시카고 컵스. 조던 파인스틴과 프레드 왓슨을 받고 로날드 매그니, 버나드 케플러, 어니 도슨을 넘겨준 시카고 컵스는 완벽한 트레이드였다, 트레이드 시장의 승자였다고 자화자찬했음에도 로키스에 스윕을 내주며 체면을 구겼습니다.]
[특히 버나드 케플러와 로날드 매그니, 두 선수 모두 디비전 시리즈 마지막 경기였던 3차전에서 아주 훌륭한 활약을 보여줬죠? 컵스에서 나온 선수들의 손으로 컵스의 시즌이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파인스틴이나 왓슨이야 그렇다 쳐도, 피자로의 경우에는 로키스 팬들이 꽤 고소해 하는 것 같던데...]
[피자로라는 선수가 15년이 넘는 커리어 내내 백업 포수로만 전전하던 선수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지도가 없었죠. 인지도가 높아진 건 대략 4, 5년 전부터 꾸준히 우승권 팀으로 꼽히는 팀만 돌아다니면서 정작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는 차지하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우승권 팀과의 계약이 이뤄지지 않으면 불성실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고요.]
[이번 시즌에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수비 하나 보고 쓰는 백업 포수인데, 수비도 제대로 못 하는, 아니, 안 하는 것 같다는 말이 많이 들렸죠.]
[그러니까요. 트레이드 이후에는 내셔널스에서 굉장히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본인의 선택적 성실함을 증명했는데, 그러니까 로키스 팬들이 고소해 할 수밖에 없죠. 정작 포스트시즌은 로키스가 갔고, 피자로의 소속팀인 내셔널스는 로키스 때문에 떨어졌으니까.]
영도의 기록 도전과 몬스터 시즌, 시즌 막판의 말도 안 되는 상승세, 이어진 연패와 부활, 그리고 다시 시작된 폭주.
시카고 컵스와의 디비전 시리즈 스윕.
이미 이번 시즌의 로키스는 본인들이 뭘 하지 않아도 언론과 팬들이 알아서 화제를 만들어내는 위치까지 올라섰다.
인기팀이 아니더라도 돌풍의 주인공은 돌풍을 일으킨 그 시기만큼은 어지간한 인기팀 못지않은 인기와 관심을 누리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리고 트레이드 마감시한 직전 이뤄진 두 건의 트레이드는 이런저런 화제를 만들기 딱 좋은 소재였다.
트레이드의 승패는 딱히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내셔널스와의 트레이드는 로키스가 받아온 카이옌 모타가 시즌 막판부터 앤서니 모리스에게 지명타자 자리를 내줬고, 넘어간 발데마르 피자로는 처음부터 백업 포수 역할이었기에 딱히 승자도, 패자도, WIN-WIN도, LOSE-LOSE도 아니라는 평가.
컵스와의 트레이드는 로날드 매그니와 버나드 케플러가 로키스 합류 이후 이전보다 훨씬 성장한 모습으로 팀의 든든한 한 축이 되어주었고, 조던 파인스틴과 프레드 왓슨 역시 컵스의 단점을 메워주었기에 완벽한 WIN-WIN, 이상적인 트레이드 사례로 꼽힐 정도였다.
하지만 문제는 트레이드 이후 팀의 성과였다.
내셔널스와 컵스 모두 로키스 때문에 기대 이하의 성과로 시즌을 마무리했는데, 하필이면 로키스와 트레이드를 진행한 유일한 두 팀이었다.
그리고 컵스는 아무리 못해도 NLCS까지, 내셔널스 역시 망해도 NLDS까지는 진출할 거라 예상되던 팀이었기에 임팩트가 더해졌다.
이번 시즌 내셔널리그에서 가장 크게 실패한 두 팀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
무엇보다 이게 여기서 끝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화제가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이제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에서 LA 다저스를 만나게 될 텐데, 다저스는 로키스와 딱히 트레이드를 진행한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월드시리즈 진출이 아니라 월드시리즈 우승이 아니면 실패라고 평가받는 팀이죠. 팀 연봉이나 정규시즌 승률, 팀의 상황들까지 전부.]
1988년 월드시리즈 우승. 그리고 2041년.
다저스는 항상 강팀이었고,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우승만 지난 30년 중 17회, 와일드카드 포함 포스트시즌 진출은 21회 달성한 팀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월드시리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로키스가 창단 이후 월드시리즈 우승이 없는 몇 안 되는 팀이라지만, 창단년도가 1993년이었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지 못한 기간만 따지면 다저스가 무려 5년이나 더 길었다.
다른 서부지구 팀드로가 마찬가지로 로키스는 언제나 다저스를 타도하는 게 목표인 팀이었다.
그리고 이번 시즌의 로키스는 내셔널리그 강팀들을 전부 실패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에서 두 팀이 만났다.
[그나저나 Y-DO는 로저 매리스의 홈런 기록을 경신하면서 화제의 중심에선 조금 멀어지나 싶었는데, 포스트시즌 시작과 동시에 엄청난 활약으로 소속팀의 폭주를 선두에서 이끄는 데다가 만나는 팀마다 스토리가 생기고, 심지어 월드시리즈에 올라간다고 해도 아메리칸리그에서 어떤 팀이 올라오든 개인적으론 스토리가 있습니다. 이번 시즌의 원톱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놀라울 정도죠. 거의 하늘의 선택을 받은 수준이에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꾸준히 스토리가 나올 수 있겠어요? 하늘이 밀어주는 듯한 시간을 보낸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보스턴 레드삭스가 만났는데, 영도의 이전 소속팀과 영도 영입전에서 두 번째로 적극적이었던 팀의 맞대결로 나름 화제가 되고 있었다.
영도의 활약이 애매했다면 그 정도로 스토리가 나오진 않았겠지만, 어지간히 잘했어야지...
너무 완벽한 시즌을 보냈기에 이전 소속팀, 영입에 로키스 다음으로 적극적인 팀, 이런 수식어만으로도 ‘Y-DO 시리즈’가 만들어졌다.
영도를 이번 시즌의, 메이저리그 2041시즌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으로 만들려는 하늘의 계획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했다.
주인공까지 필요한 승리는 이제 한 자릿수, 단 8승에 불과했다.
< 다시 록토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