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저 높은 곳을 향하여 > (137/200)

< 저 높은 곳을 향하여 >

야구가 세계적으로 축구나 농구 등 다른 라이벌 스포츠에 비해 인기를 끌지 못한다는 것, 세계화가 항상 고민거리라는 건 일단 무시하고.

미국 내에서는 그토록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았던 낡은 전통들을 뼈를 깎는 심정으로 버려가면서까지 진행한 여러 개혁들이 MLB의 인기를 다시 NFL에 이은 2위 자리에 올려주었다.

중국 자본에 거의 30% 가까이 잠식되었던 NBA가 중국과의 마찰로 잠시 주춤한 영향도 있었고.

그러나... NBA 최고 스타와 MLB 최고 스타의 인기를 비교하면 이야기가 달랐다.

검색 횟수, SNS 팔로워, 댓글, 조회 수, 광고 수와 계약 규모까지, 모든 부분에서 NBA 스타들이 우위에 있었다.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가 시즌당 치러야 할 경기가 너무 많고, 거의 매일 경기가 펼쳐지다 보니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챙겨보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지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어지간한 골수 야구팬들도 응원하는 팀 말고 다른 팀 선수에 대해선 그리 많이 알지 못했다.

농구도 전국 중계가 많지 않지만, 적어도 최정상급 스타들이 나오는 인기 팀들의 경기는 적지 않게 중계되는 편인데, MLB는 그게 훨씬 심했고.

그리고 하나의 이유를 더 꼽자면 한 선수가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의 차이를 말하는 경우가 있었다.

5명이 뛰고, 에이스라면 48분 중 최소 35, 6분을 뛰고 팀에 따라 팀 공격 지분의 30% 정도를 차지했다.

축구도 야구보다 많은 11명이 뛰지만, 공격과 수비로 역할이 명확하게 나뉘고, 주목받는 선수들은 보통 공격수였다.

하지만 야구는... 혼자 경기를 지배할 수 있는 에이스는 보통 5일에 한 번씩 등판하고, 압도적 기량의 야수라 해도 공격 기회는 쉽게 계산해 1/9이었다.

상대적으로 야구팬 전체를 어우르는 인기를 얻기가 어렵고, 경기에서 차지하는 지분도 한계가 있는 야구선수.

그래서 야구선수의 인기는 보통 중요한 경기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을 남기느냐, 압도적인 한 시즌을 보내느냐, 혹은 역사에 남을 기록이나 상징성을 갖추느냐에 달려 있었다.

첫 번째는 유일한 월드시리즈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돈 라슨 등이 있을 테고, 두 번째는 임팩트 하나로 불멸의 이름이 된 샌디 쿠팩스를 비롯, 배리 본즈, 마크 맥과이어 등의 한 시즌이 있었다.

세 번째는 뭐 베이브 루스, 사이 영, 월터 존슨 등 역사상 최고의 선수를 언급할 때 나오는 선수들이고.

그렇다면 지금의 영도는 어떨까.

[운명이 걸린 마지막 3연전에서 팀의 28득점 중 16타점을 책임진 Y-DO!! 콜로라도 로키스의 기적과도 같은 포스트시즌 진출은 이견의 여지 없이 Y-DO의 손에서 이뤄졌다.]

[40년 만의 60홈런, 7년 만의 두 자릿수 WAR. 2040시즌의 KBO에서 대체 Y-DO에겐 무슨 일이 있었나?]

[80년 만에 새로 쓴 청정타자 역대 단일시즌 최다 홈런! 이제 배리 본즈, 마크 맥과이어, 새미 소사까지 대표적인 세 약쟁이만 남았다!!]

0.305/0.423/0.658, 64홈런 153타점 WAR 10.1

연속 경기 홈런 신기록과 청정 타자 홈런 신기록.

영도의 2041시즌은 압도적이었지만, 역사에 남아 영원히 이어질 정도로 아주 엄청나진 않았다.

중요한 순간마다, 특히 포스트시즌 티켓이 걸린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마지막 3연전에서 보여준 클러치 능력은 무시무시했지만, 이것 역시 로키스 팬들에게라면 모를까,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영원히 남을 만큼 결정적인 장면까진 아니었다.

반면, 64홈런으로 80년 전 로저 매리스의 기록을 갈아치워 청정타자 최다 홈런 기록을 새로 쓴 건 대단했다.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의 홈런 경쟁, 배리 본즈의 압도적인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 당시 열광했던 만큼 실망도 컸던 팬들에게 80년 만에 등장한 청정 타자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한 의미가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기록만큼은 앞으로도 계속 언급될 가능성이 컸다.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은 어쩔 수 없이 앞으로도 배리 본즈의 76홈런일 것이었다. 

그러나 도핑 적발 선수들의 별표 붙은 기록을 별개로 취급하는 경향이 점점 더 강해지고 별표 없는 기록을 꼭 함께 거론하는 것이 최근 추세. 

이런 추세에서 영도의 기록은 앞으로도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 언급될 때마다 분명 함께 언급될 것이었다.

결국, 영도는 이번 시즌에 앞으로도 계속 언급될 역사적인 기록 하나와 역사에 남을 정도는 아니지만, 최소 몇 년은 이어질 임팩트와 환상적인 단일 시즌 스탯을 기록했다.

복귀 첫 시즌부터 전국구 슈퍼스타의 조건 세 가지를 한 번에 달성하고 역대급 슈퍼스타의 조건까지 하나를 챙겨간 유영도.

이렇게 되면 당연히...

“하하하, 죄송합니다. 저도 에이전트인데 왜 바라지 않겠습니까? N사와 계약해서 광고도 찍고 어마어마한 계약금도 챙기면 저한테 떨어지는 것도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Y-DO가 원래 그런 부분에 엄격하고 변화를 원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저도 죽겠습니다. 돈벼락이 눈에 보이는데... 그런데 뭐 어쩌겠습니까? 본인이 계속 거절하는 것을...”

영도를 원하는 전화로 승도의 전화기가 불탈 수밖에 없었다.

야구에서는 비교적 힘을 못 쓰고 있지만, 그래도 세계 최고의 스포츠 기업임을 부정할 수 없는, 야구에서 힘을 못 쓰는 것도 있지만, 안 쓰는 느낌도 분명히 있는 N사부터 시작이었다.

스포츠 분야를 양분하지만, 앞서 말한 팀 내 지분, 그로 인한 노출도의 문제로 야구에는 비교적 소홀했던 N사, A사부터 강한 러브콜을 보내왔다.

야구의 세계적 인기와 슈퍼스타의 영향력을 우려할 때 항상 나오던 게 N사, A사 글로벌 모델의 부재일 정도로 이 두 회사의 글로벌 모델이 된다는 건 곧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음을 의미했다.

그런 두 회사가 러브콜을 보내왔다는 곧 영도가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는 증거였다.

“계속 설득해보겠습니다. 글러브, 배트가 야구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보호구, 스파이크, 언더웨어 등 야구에 필요한 장비가 한둘입니까? 특히 스파이크는 귀사의 대표 분야이기도 하니까 거절하진 않을 겁니다.”

아무리 영도가 변화를 원하지 않는, 특히 징크스 등의 문제로 잘 나갈 때는 더더욱 이를 유지하려는 성격이라지만, 회사 입장에선 수익을 무시할 수 없었다.

장비 하나, 촬영 하나가 곧 무시무시한 수익으로 이어질 텐데 이걸 포기한다는 건... 현대 스포츠 산업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우, 진짜... 한 번 눈 딱 감고 좀 해보지. 한국 중소기업도 배트 잘 만드는 거 누가 몰라? 그런데 그건 돈이 하나도 안 된다고! 누군 배트만 써주면 몇십억씩 준다는데, 무료로 주는 것 말고는 돈 한 푼 못 받는 회사 배트는... 그만 써야지.’

까다로운 고객, 우리 엄마 아들 때문에 승도도 고생이 많았다.

본인에게 맞는 배트를 쓰는 것도 좋지만, 슈퍼스타면 본인의 위치와 영향력을 아는 것도 중요했다.

슈퍼스타가 되었음에도 예전 평범했던 시절 그대로 행동하면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니까.

선수 본인이 아니라서 그렇겠지만, 옆에서 보기에 한국 중소기업의 배트가 특별한 건 없었다.

이름값이 중요한 게 아니고, 그들도 좋은 배트를 만들지만, 세계적인 기업의 배트와 비슷한 품질의 배트를 만든다 해도 딱 그 정도.

본인의 기량이 좋아진 거지, 배트의 문제는 아니었다.

‘징크스 좋고 루틴 좋지. 근데 그게 수십억의 가치가 있는 건지 모르겠네. 기껏해야 2년 쓴 배트인데 2년 전처럼 다시 시도해볼 순 있는 거잖아. 에휴...’

하지만 프로선수라는 게 원래 징크스 덩어리이고, 영도는 그중에서도 심한 편이었다.

그런 선수를 담당으로 두었고, 나아가 가족으로 두었으니 해결법은 이쪽에서 찾는 수밖에 없었다.

연예인의 매니저처럼 프로 선수의 에이전트도 최우선 과제는 선수의 퍼포먼스를 지원하는 것이었으니까.

경제적 이득은 퍼포먼스가 갖춰졌을 때 이를 활용해 창출하는 두 번째 과제.

두 번째를 위해 첫 번째를 희생한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조금 다른 게 승도는 영도가 마음만 조금 바꾸면 첫 번째를 희생하지 않고 두 번째까지 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언제나 선수의 더 큰 이익을 위해 궁리하고 고민하고 설득하는 것까지도 에이전트의 역할.

“어디 가?”

“자료 찾아야지. 빌어먹을 우리 엄마 아들 때문에 가진 영상 다 뒤져서 N사 용품 받아 써도 달라질 거 없다고 설득해야 하니까.”

“너희 엄마 아들... 아, Y-DO?”

“그래, Y-DO. 그 빌어먹을 놈의 형...”

“그래도 너희 어머니 아들 아니었으면 네가 그 경력에 그런 슈퍼스타 에이전트로 일할 수 있었겠냐. 나였으면 감사합니다, 하면서 했겠다. 나한테 넘길래?”

“닥쳐. 우리 엄마 아들이니까 내가 한다. 간다!”

영도 덕분에 점점 더 회사 내에서도 맡은 일이 많아지고 자연스레 회사에 출근하는 날도 많아진 승도.

다만, 입사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출근한 횟수가 많지 않고, 대부분 영도와 함께 살면서 매니저 업무를 하면서 지내왔기에 회사 내에서도 선수의 가족이라고 특별취급받는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영도가 메이저리그 최고 유망주였던 시절에 질투의 대상이었다가, 이후 생각만큼 성장하지 못해 시선 밖으로 밀려났지만.

지난 시즌부터 다시 회사 최고의 고객이 되면서 다시 질투의 시선들이 늘어났다.

그런 시선을 받는 건 영도의 에이전시에 입사했을 때부터 정해진 일이었고, 그걸 극복하는 것도 승도의 역할이었다.

에이전트의 능력은 선수와 회사에 얼마만큼의 이득을 안겨주느냐로 정해지는 만큼 영도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로 성장한, 하지만 아직 그에 어울리는 대우는 받지 못하고 있는 지금이 승도에겐 절대 놓쳐선 안 되는 찬스.

‘비디오만 열 시간 넘게 쳐다보는 건 우리 엄마 아들이나 하는 짓인 줄 알았는데... 뿅! 내가 그러고 있네?’

영도가 동생은 물론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면서 옆에서 보기엔 닮은 점이 외모밖에 없는 정말 다른 형제가 되었지만...

그래도 형제는 형제였다.

영도가 회귀하기 전에도 관련 업계가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은 한국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견실한 에이전트로 성장했던 독하고 성실한 성격의 승도였다.

목표가 정해진다면 얼마든지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

[레드삭스 vs 에인절스, 레즈 vs 로키스. 드디어 시작되는 메이저리그의 가을]

[‘빅 레드 머신’ vs ‘록템버’. 강한 공격력을 앞세운 타격전 기대]

[‘강력한 공격력을 막아라!’, 양 팀 마운드에 주어진 숙제. 과연 장점도, 단점도, 홈구장의 특성마저 비슷한 맞대결의 승자는?]

하지만 영도는 지금 다른 데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역사에 남을 만큼, 피가 튀기는 착각마저 들 만큼 치열했던 와일드카드 경쟁에서 승리했지만, 숨돌릴 틈도 없이 이틀 뒤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러야 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의 상대는 공격력을 앞세운 ‘빅 레드 머신’, 신시내티 레즈.

레즈와 로키스는 다양한 공통점을 공유하는 팀들이었기 때문에 이 맞대결은 둘 중 하나였다.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치열한 승부가 펼쳐지거나 아니면 조기에 승부의 추가 확 기울어 김빠진 결과가 나오거나.

그렇게 무너지지 않기 위해, 조기에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양 팀 모두 철저히 준비했다.

그나마 마지막 두 경기 정도는 주전 선수들의 출전 시간을 조절하며 가을을 준비한 레즈가 조금이라도 유리하긴 했지만...

로키스에는 이번 시즌의 주인공이, 혼자 힘으로 승리와 패배를 결정할 수 있는 절대적인 선수가 있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 외에도 아직 전력이 많이 부족한, 기적을 일으킨 덕분에 포스트시즌에 올라온 로키스가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선 그 절대적인 선수의 절대적인 활약에 기대는 게 유일한 가능성이었다.

가을에도 영도의 어깨는 무거웠다.

그러나 어깨가 무거울 때마다 결과로 보여줬던 선수 역시 영도였다.

시즌 막판 증명했던 클러치 능력, 로키스의 승리를 바라는 모두가 영도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 저 높은 곳을 향하여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