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접전의 끝 > (135/200)

< 접전의 끝 >

이 경기는 공식적으로 2041시즌 정규시즌의 끝을 장식하는 162차전이었다. 

하지만 로키스와 브루어스에겐 지난 161경기와 완전히 관련이 없는, 완전히 독립적인 단판 토너먼트 느낌이었다.

로키스는 이 경기에서 승리하면 모든 것을 가져가고, 브루어스는 일단 이 경기에서 승리해야 내셔널스의 패배라도 기대해볼 수 있는 상황.

그러니 포스트시즌에서도 탈락이 걸린 마지막 경기에서나 할 법한 전략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었다.

예를 들면 퀵 후크 후 불펜 총동원이라거나...

하지만 제러드 홉슨과 테오 제퍼슨은 각 팀의 에이스였다.

불안 요소가 있고 기대를 배반하는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에이스들이지만, 그래도 각 팀에서 가장 믿음직한 투수들.

선발진이 특별히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브루어스에서 제퍼슨은 2선발과 실력 차이가 큰 절대적 에이스.

홉슨은 고정 선발이 셋이고 나머지 두 명이 3년 차, 1년 차인 로키스 선발진의 유일한 30대이자 베테랑이었다.

그러니까... 양 팀 모두 퀵 후크의 가능성을 절대 닫아두지 않으면서 고려는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에이스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쉽게 버리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무엇보다 혹여나 와일드카드 티켓을 따내면 이틀 뒤 다시 단판으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러야 했다.

일단 오늘 경기에서 승리해야 의미 있을 일이지만, 에이스가 나와서 와르르 무너진 것도 아닌데 퀵 후크까지 해가며 아랫돌 빼서 윗돌 고일 순 없는 노릇.

“... 속에서 자꾸 신물이 올라오려고 하는데...”

“하하... 이래서 포스트시즌은 선발 놀음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그러게. 아주 돌아버리겠어. 돈 라이스! 코트니 매든! 너무 부럽다, 진짜.”

“확실한 에이스가 왜 중요한 건지 포스트시즌 모드에 들어오니까 절실하게 느껴지네요.”

아시아권과는 달리 메이저리그에선 에브리데이 플레이어인 야수의 가치가 투수보다 높은 편이었다.

한 팀의 최고 인기 선수는 보통 야수인 경우가 많았고.

일반적으로 아시아권에서 ‘에이스’에 대한 환상이 더 많고 강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도 포스트시즌 같은 단기전은 마운드가 강한 팀이 유리하다는 인식은 같았다.

타격에는 필연적으로 사이클이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소위 ‘계산이 서는’ 투수들이 주역으로 떠오르는 것.

로키스의 선발진은 이번 시즌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였지만, 안정감과 경험의 부재라는 치명적인 단점들이 있어 포스트시즌에 올라가도 오래 살아남긴 힘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니 메이슨 콕스 감독이 돈 라이스 같은 절대적 에이스를 부러워하는 것도 이해할 수밖에.

“나도 포스트시즌은 처음이라 요즘 잠을 못 자. 초보 감독이 선수들 덕분에 너무 일찍 높은 자리까지 올라와서 고생 제대로 하는 거지.”

“확실히 이번 시즌은 선수들, 특히 Y-DO 때문에 팀 전력에 과분한 위치까지 올라온 느낌이 강합니다.”

40대의 젊은 단장과 감독, 제프리 에녹과 메이슨 콕스의 플랜에서 로키스의 본격적인 포스트시즌 도전은 다음 시즌부터였다.

그러나 영도의 합류 이후 시소게임 끝에 패배했어야 할 경기들을 가져오는 경우가 늘었고, 분위기를 가져오는 가장 쉽고 강력한 수단, 홈런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자연스럽게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결과가 나왔다.

선수는 물론, 프런트와 코칭스태프도 준비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상승세.

능력 있는 프런트, 코칭스태프 덕에 팀이 잘 만들어져서 이변도 일어났겠지만, 어쨌거나 그들도 새롭게 여러 가질 배워가는 시즌이었다.

그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시행착오는 어쩔 수 없고.

[아... 결국 여기서 또 적시타를 허용하는 제러드 홉슨. 4회는 조용히 넘겼지만, 5회에 다시 1점을 내줍니다.]

[브루어스가 다시 한 점 차 리드를 가져가네요. 하여튼 오늘 경기... 예상대로 치열합니다. 두 팀 모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경기죠.]

“후우... 빈센트에게 준비하라고 전해. 아무래도 더 이상은 힘들겠어.”

“예. 알겠습니다. 다행히 갑자기 흔들린 게 아니라 경기 초반부터 쭈욱 흔들려줘서 불펜투수들 워밍업이 진작에 끝났네요.”

“그게 다행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겠지.”

“... 예. 딱 그겁니다...”

그래도 역시 과분한 위치에 오른다는 건 참 힘든 일이었다.

매일매일 속에서 올라오는 신물, 쓴물과 싸워야 하는.

물론, 그렇다고 신물, 쓴물 안 올라오게 딱 예상한 대로, 계획한 대로의 성적을 기록하는 것과 지금 중 선택하라면 지금을 선택하겠지만.

어쨌거나 이 바닥 사람들은 전부 승부사였다.

언제나 이기는 게 좋았고, 높이 올라가는 게 좋은 사람들.

매일을 스트레스와 싸우고 강박, 징크스와 싸우더라도 더 높이 올라가고 싶다.

그런 그들에게 이번 시즌은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를 기회였고, 건강 좀 버리더라도 꽉 붙잡아야 할 찬스였다.

***

[4-3으로 밀워키 브루어스가 앞선 상황에서 5회 말 로키스의 공격이 진행되겠습니다. 이번 이닝이 양 팀에게 굉장히 중요한 이닝이 될 듯합니다.]

[그렇죠. 9번 애커슬리부터 시작해서 해니건, Y-DO로 연결되는 타순이거든요? 특히 Y-DO의 타석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62호 홈런에 이어 63호 홈런까지 때려냈기 때문에 이제 기록에 대한 부담감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기록을 세우니까 또 다른 지켜봐야 할 이유를 만들었어요. 이 선수가 대단한 게 본인이 의도해서 이슈거리를 만들고 관심을 모으는 스타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조용하고 묵묵하고 성실하게 야구만 하는 선수인데, 이상할 정도로 이 선수에게서 관심이 떠나질 않죠. 신에게 사랑을 받는 건지, 본인 기량이 너무 대단해서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건지 하여튼 시즌 내내 주인공말고는 맡질 않았어요.]

[오늘은 브루어스의 에이스, 테오 제퍼슨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만약 이번 타석에서도 Y-DO가 큰 타구를 만들어낸다면 그 순간이 오늘 경기의 하이라이트가 될 겁니다.]

[브루어스도 Y-DO의 타석을 경계하는지 불펜을 가동하기 시작했어요. 두 번째 홈런 이후 제퍼슨도 조금 흔들리는 모습이 있었잖아요? 실점은 하지 않았고, 여전히 공도 위력적입니다만... 본인이 자꾸 어려움을 초래했죠.]

선수들 개개인의 절대적인 기량은 그리 뛰어나다고 볼 수 없지만, 적어도 하나씩은 특별한 장점들을 갖춘 로키스의 하위타선.

시즌 막판부터 조금씩 카이옌 모타를 밀어내고 주전 지명타자 자리를 차지한 모리스는 뜬금 장타를, 우익수이자 9번 애커슬리는 ‘0번 타자’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뛰어난 선구안과 출루율을 자랑했다.

‘멘도사 라인’의 타율로 팬들의 인식과 달리 언제나 생각보다 높지 않은 리그 1번 타자 평균에 육박하는 출루율을 기록하는 애커슬리에게...

흔들리는 투수는 꽤 먹음직스러운 먹이였다.

[아아... 제퍼슨의 레퍼토리가 단순해지고 있습니다. 구위는 오히려 경기 초반보다 강해진 느낌이라 공격적으로 달려드는 선수에겐 여전히 공포스럽지만, 애커슬리가 그런 타자는 아니지 않습니까?]

[욕심 없이, 심지어 배트까지 살짝 짧게 쥐었죠? 어떻게든 투수를 괴롭히겠다는 노골적인 모습인데... 그냥 강하게 던지겠다는 마음만 가득한 코너워크 밋밋한 스트라이크, 생각보다 티가 많이 나는 볼... 아무리 그래도 애커슬리 역시 메이저리거인데 너무 무시하는 거죠, 이건.]

[밋밋하다고는 했지만, 애커슬리도 기량 차이 때문에 제퍼슨의 무시무시한 볼을 인플레이 타구로 연결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골라는 냈습니다.]

[모리스와의 승부도 지금과 똑같았지만, 그땐 현명한 선택이었어요. 모리스는 한 방 장타가 무서운 선수라 힘으로 찍어누르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애커슬리도 똑같이 상대하면 안 됐죠. 이러면 보세요. 해니건을 더블 플레이로 잡지 못하면 주자 있는 상황에서 Y-DO가 또 나와요. 그리고 해니건을 더블 플레이로 잡는다? 거의 불가능하죠.]

덕아웃에서 나와 대기 타석의 대기 위치에서 감각을 조율하던 영도가 본격적으로 대기 타석에 자리 잡았다.

그 순간, 마운드 위 테오 제퍼슨의 표정도 싹 바뀌었다.

다만... 호흡이 가빠지고 콧구멍이 커진 것이... 

긍정적인 변화로 보이진 않았다.

[크으, 이게 진정한 괴물의 등장이죠. 대기 타석에 모습을 드러내기만 해도 상대 팀과 관중들의 분위기가 완전히 변하는 선수. Y-DO가 진정한 NO.1, 괴물,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다는 걸 이제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곳은 로키스의 홈구장입니다. Y-DO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바로 분위기가 바뀌는 걸 보세요. 비록 이 중요한 경기, 중요한 순간 리드를 빼앗긴 상황이지만, Y-DO가 등장한 이상 어떻게든 해줄 것이란 저 강한 믿음. 선수로서 팬들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지... 참 궁금합니다.]

[저도 궁금하네요. 커리어 통산 400개가 넘는 홈런을 때려냈지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반응이라...]

[아...]

예상대로 영도의 타석이 가까워질수록 제퍼슨의 흔들림도 심해졌다.

제퍼슨의 성격을 생각하면 두렵다거나 꺼려진다거나 해서 흔들리는 건 아닐 터였다.

아마 최대한 빨리 영도와 맞붙어서 이번에야말로 본인이 위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것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해니건과의 승부도 서두르는 것 같은데...

[욕심내지 않고 또 한 번 가볍게 밀어내는 게일 해니건! 어차피 핵심은 제퍼슨과 Y-DO의 맞대결이고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는 상황. 해니건은 해니건답게 영리한 타격으로 더 좋은 기회를 만들어줬습니다.]

[너무 급해요. 본인이 얼마나 대단한 투수인지 설득하려면 빠른 승부가 아니라 결과로 말해줘야죠. 빠르게 들어가면 뭐하나요? 주자가 쌓이는데.]

이번에는 브루어스 덕아웃이 혼란에 빠질 차례였다.

그들 역시 제퍼슨의 단점을 모를 리 없었다.

상식적으로 방송국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전력분석팀에 어마어마한 금액을 투자하는 구단들이 모를 리가.

다만, 기록이 어떻든 제퍼슨은 에이스였고, S급은 아니더라도 A+급의 성적은 항상 찍어줬던 만큼 한 타자에게 연타석 홈런을 허용하고도 잘 던진 경기 역시 많다는 게 문제였다.

연타석 홈런이라는 게 이미 홈런 2개이고, 무너진 경기가 많다는 건 조기 강판된 경우도 많다는 뜻일 텐데, 그러고도 5점대 방어율이면 그렇게까지 높진 않았으니까.

그래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빠르게 투수를 바꿔주어야 하는지, 아니면 조금 더 제퍼슨을 믿어야 하는지.

로키스에서 홉슨이 차지하는 비중보다 브루어스에서 제퍼슨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컸기에 브루어스 코칭스태프들이 더 머리가 아프고 골치 아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머리가 아프고 골치가 아플 정도로 고민이 길어지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믿음의 야구도 좋지만, 빠르고 과감한 결단이 단기전에선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다.

그러나 포스트시즌만 되면 약해지는 ‘새가슴’의 대표주자, 클레이튼 커쇼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에이스에 대한 기대감을 접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빠르고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감독은 대단하다.

하지만 다른 투수도 아니고 에이스 등판 경기에서 빠르고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다.

브루어스 코칭스태프는 일반적인 다른 사람들처럼 빠르고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못했고...

[또 한 번 작정하고 휘두르는 Y-DO의 무시무시한 스윙! 이전 타석과 똑같은 모습입니다!]

[제퍼슨의 피칭 레퍼토리가 지난 타석과 같으니 Y-DO도 좋은 결과를 만든 접근법을 바꿀 이유가 없죠!]

[그리고 이전 타석과 똑같은 거대한 포물선의 문 샷! 이번에는 2층 관중석까지 날아가진 못했지만, 무슨 상관입니까? 2층 관중석에 떨어지든 펜스를 겨우 훑고 외야 불펜에 떨어지든 홈런은 홈런입니다!]

[쓰리런! 6-4! 드디어 로키스가 1회 이후 처음으로 리드를 잡고 가네요!]

[64호 홈런! 이제는 2001년의 새미 소사와 함께 역대 홈런 순위 공동 5위로 올라갑니다!]

[참... 대단하네요. 역대 공동 5위라니... 악명 높은 스테로이드 시대도 아니고 플라이볼 혁명 시대도 아닌데 그 시대를 따라잡다니...]

최악의 결과와 마주했다.

아니, 최악의 결과인 줄 알았다.

일단 흐름을 끊기 위해 마운드에 올라갔지만, 제퍼슨이 5회까지는 직접 해결하고 싶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영도가 잘 때렸을 뿐, 제퍼슨의 구위는 여전히 살아 있었기에 아웃 카운트 두 개 정도는 맡겨도 될 거라 판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단이 느렸던, 두 번이나 있었던 기회를 전부 다 놓쳐버린 대가는 생각보다 참혹했다.

[아악!! 머리 쪽으로 향하는 빈볼! 빈볼입니다! 발끈한 가드너를 온몸으로 가로막는 윌리엄 구심! 그리고... 퇴장! 퇴장입니다!]

[어? 어어? 제퍼슨, 본인 잘못이거든요!? 본인이 100% 잘못한 건데 왜 자꾸 본인이 화를 내나요? 수긍하고 들어가야죠!]

브루어스는 절실히 느꼈다.

최악이라고 예상한 순간에도 그보다 더 아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 접전의 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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