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에이스의 빈틈 > (134/200)

< 에이스의 빈틈 >

<이 자식이! 내가 먼저 잡았어!!>

<무슨 소리야, 내 손이 한참 전부터 먼저 닿아 있었는데!>

[하하하, Y-DO의 62호 홈런볼을 둘러싼 실랑이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군요. 그럴 만합니다. 저 홈런볼의 가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클 거거든요.]

[사실, 60호 홈런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40년 만에 나온 60홈런이다 보니 경쟁이 과열되었는데, 62호 홈런은 아무래도 더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사실, 홈런 애호가들에겐 아쉬움이 많았을 거예요. 50홈런도 2035시즌이 마지막이었고, 그때도 52홈런이라 좀 아쉬운 게 있었거든요. 그동안 수집가들의 욕구를 자극하는 홈런볼이 없었고, 아마 다음 시즌 나올 것 같은 제리 페이지의 500호 홈런볼 정도만 기다렸을 텐데... Y-DO의 등장이 얼마나 반갑겠어요.]

[그러니까 저 공을 둘러싼 실랑이가 1회 말부터 2회 초, 2회 말에 3회 초까지 이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62홈런의 임팩트는 예상했던 대로 엄청났다.

예상한 만큼의 임팩트라고 해도 무난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62호 홈런과 함께 세상이 뒤집힐 걸 이미 예상했을 뿐.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이미 세상은 뒤집혀 있었다.

TV 중계, 뉴미디어 중계, 인터넷 커뮤니티, 베이스볼 펍 등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마다 난리가 났고, 62호 홈런을 두 눈으로 지켜본 감동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 때문에 서버가 다운된 곳도 있을 정도.

[Y-DO가 40년 만의 60홈런을 넘어 80년 만의 청정 타자 최다 홈런 신기록 고지에 오른 만큼 오늘 경기의 승리까지 가져간다면 완벽한 마무리일 텐데 말이죠.]

[하하하, 브루어스 입장에서 보면 62홈런을 허락했으니 오늘 경기의 승리와 포스트시즌 진출 정도는 양보해달라 말하고 싶을 겁니다.]

[62홈런 신기록 달성도 정말 극적이었잖아요. 그런데 이번 시즌 와일드카드 경쟁 역시 역사에 남을 접전이고. 그러니까 이걸 동시에 이뤄낸다면 Y-DO의 2041시즌이 아주 오래오래 언급되고 기억될 것 같아서 하는 말이죠. 딱히 응원하는 팀은 없지만, 역사적인 시즌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겨요.]

[물론, 로키스가 승리한다면 그렇게 되겠죠. 하지만 제러드 홉슨의 피칭이 뭔가 불안합니다. 시즌 내내 로키스의 단점으로 지적되던 불안한 에이스가 이렇게 중요한 순간 발목을 잡는 겁니까?]

하지만 62홈런은 62홈런이고 경기는 경기였다.

무엇보다 이 경기의 승패로 와일드카드 2위 자리, 포스트시즌 마지막 티켓이 결정되는 중요한 경기.

62홈런으로 팬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얼마나 큰 여파를 불러일으켰는지.

지금 경기를 치르는 양 팀 선수들에겐 다른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다.

정작 가해자와 피해자인 두 팀만 느끼지 못하는 62홈런의 여파.

하지만 당사자인 만큼 영향이 없을 순 없었다.

62홈런의 무게감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신경 쓰지 못한다고 해서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가볍지 않았다.

다만, 오늘은 에이스 제러드 홉슨의 상태가 좋지 않아 브루어스 타자들이 62홈런의 무게감을 버틸 수 있었을 뿐.

[매 이닝 1점씩 내주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홉슨과 달리 Y-DO에게 내준 솔로 홈런 이외에는 단 한 명의 주자도 출루시키지 않았습니다. 역시 갑자기 돌아버리는 주체할 수 없는 광기를 제외하면 제퍼슨 역시 그 어떤 에이스들과 비교해도 밀릴 게 없는 톱클래스입니다.]

[그 광기만 빼면 테오 제퍼슨도 사이 영 한 번은 가져갔겠죠. 매 시즌 그 광기를 주체하지 못해 본인 분에 못 이겨 서너 경기씩 제대로 말아먹는데, 그것만 아니었으면 뭐...]

[매 시즌 그 서너 경기의 임팩트가 너무 강하긴 했습니다. 그렇게 서너 경기 말아먹고도 FIP 2점대 후반을 찍어주는 투수니까 멀쩡했으면 사이 영을 탔을 거란 예상도 충분히 할 수 있죠.]

[그래도 그렇게 마음을 놓으면 또 예상치 못한 돌발 행동을 보여주잖아요? 이 선수의 경기를 볼 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마운드에서 내려갈 때, 아니, 마운드에서 내려간 이후에도 긴장을 놓으면 안 돼요. 스펙타클한 선수입니다, 아주.]

3회 초까지 1-3 리드를 잡은 밀워키 브루어스.

점수 차는 크지 않지만, 매 이닝 1점씩 추가하는 그 분위기, 흐름과 기세 때문에 브루어스가 많이 유리한 것처럼 느껴졌다.

3회 말 선두타자인 8번 카이옌 모타와 9번 고든 애커슬리까지 순조롭게 잡아먹은 테오 제퍼슨.

제퍼슨을 어떻게든 흔들어야 하는 상황.

다시 돌아온 게일 해니건의 어깨가 무거웠다.

‘포스트시즌... 포스트시즌... 내 생애 첫 포스트 시즌.’

로키스에서 포스트시즌을 가장 원하는 사람을 한 명만 꼽으라면 당연히 게일 해니건이었다.

해니건의 이번 시즌은 언제나와 같이 최고였다.

3할 3푼대의 타율로 내셔널리그 타율 4위, 아메리칸리그 포함 TOP 10을 거의 확정했고, 21홈런과 32도루로 3할, 20-30, OPS 0.953을 기록 중이었다.

WAR도 6.3으로 이번 시즌 역시 모범 FA의 면모를 자랑했지만...

본인은 팀이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에 생각만큼 잘해내지 못했다고 자책 중이었다.

실제로도 영도와 함께 이렇다 할 슬럼프 없이 자기 역할을 꾸준히 잘해냈지만, 어떤 시기든 팀을 이끌었던 시기가 없었다.

이번 시즌 로키스는 영도의 팀이었다.

영도나 해니건이나 기복 없이 꾸준했지만, 그렇기에 해니건은 영도를 넘어선 적이 없었다.

맨 앞에서 타선을 이끄는 영도의 바로 뒤, 2인자 자리에서 가드너, 더햄, 나중에 합류한 매그니 등과 함께 영도를 쫓았던 게일 해니건.

리더로서 꼭 해줘야만 했던 8연패의 중단.

8연패를 끝내준 것도 해니건이 아닌 모리스였다.

모리스가 흐름을 끊고 영도가 뒤집으며 8연패 이후 4승 1패, 그리고 오늘 5승 1패를 노리는 상황.

‘우리 팀 최고의 선수가 Y-DO라는 걸 부정할 생각은 없어. Y-DO가 우리 팀에 와줘서 가장 고마워하는 선수가 나일 거라 확신할 수 있다고.’

질투심이나 시기심 같은 어정쩡한 감정이 아니었다.

로키스를 너무 사랑하기에, 로키스의 리더라는 자리가 너무 좋고 자랑스럽기에 그에 어울리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아쉬움을 느낄 뿐.

‘오늘 단 한 경기라도, 앤서니처럼 내가 주인공이 되진 않아도 팀 승리를 위한 계기를 만드는 정도라도.’

장타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자신은 영도처럼 한 방 장타로 경기 흐름을 180도 뒤바꿀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다.

단타와 2루타 위주의 중장거리 타자.

중장거리 타자는 결국 영도 같은 주인공 옆 2인자 자리, 최고의 조력자 자리가 어울렸다.

동료들이 이미 베이스를 채우고 있거나 베이스를 채운 자신을 홈으로 들여 보내줘야 의미가 생기는 중장거리 타자.

중장거리 타자에겐 중장거리 타자만의 역할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뒤에는 한 시즌 만에 이 시대 최고의 홈런타자로 인정받은 괴물, 'Absolute-Zero' 유영도가 있었다.

‘그래. 주인공은 못 되어도 주인공한테 기회 정도는 만들어줘야지. 내가... 이 팀의 리더인데!!’

생각한 건 깔끔하게 맞아 나가는 라인 드라이브 타구였지만... 테오 제퍼슨의 공은 끝이 너무 지저분했다.

그래도 끝까지 커트해가며 끊어내고 버티던 해니건은 제퍼슨에게 8개의 공을 끌어냈다.

최소한 투구 수라도 늘리겠다, 하지만 웬만하면 베이스도 밟고 싶다.

마지막 경기에서만큼은 평소보다도 더 잘하고 싶다.

지금까지 잘해왔지만, 최소한 앤서니 모리스만큼이라도 중요한 경기에서 중요한 장면을 뽑아내고 싶다.

자괴감과 아쉬움을 원동력으로 하는 해니건의 집중력이 하늘에 닿았다.

[마지막까지 공에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가볍게 갖다 맞추는 스윙! 3루수와 유격수 사이! 절묘한 코스로 빠져나갑니다! 오늘 경기 로키스의 두 번째 안타!]

[해니건도 항상 자기 스윙을 가져가는 선수지만, 에이스급 투수나 그날따라 유독 볼이 좋은 투수를 상대할 땐 이런 식으로 갖다 맞추는 스윙도 잘하죠. 워낙 컨택 능력이 좋다 보니 필요할 때 스윙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말도 안 되는 짓까지 해요, 이 선수가.]

[로키스의 두 번째 안타로 2아웃 주자 1루, 그리고 첫 번째 안타의 주인공이자 첫 번째 타점의 주인공인 Y-DO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자, 이제부터 시작이죠? 일단 타순 한 바퀴 돌았고, 로키스의 상위 타순, 특히 1, 2번은 리그에서 가장 위력적인 라인업이에요. 가드너, 더햄, 매그니로 이어지는 클린업도 리그 최고의 1, 2번과 충분히 발을 맞출 수 있는 대단한 선수들이고.]

‘여기서 장타 한 번 더 날려서 점수만 뽑아내면 일이 좀 풀릴 것 같은데.’

테오 제퍼슨은 어떻게 보면 참 일관적인 선수였다.

그가 무너지는 경기들은 야구 외적인 감정의 충돌을 제외하곤 대부분 비슷했다.

자존심이 하늘을 뚫어버리는 미스터 자의식, 제퍼슨은 같은 타자에게 연달아 얻어맞는 걸 제일 싫어했다.

같은 타자에게 연달아 얻어맞는 순간, 자기 분을 못 이겨 흔들리는 경우가 대부분.

특히 같은 타자가 연달아 때려낸 타구들이 전부 결정적인 장면으로 이어진다면, 자신에게 때려낸 안타로 점점 그 경기의 주인공이 되어간다면.

제퍼슨의 예정된 붕괴를 기다리기만 하면 끝이었다.

‘공이 위력적이긴 한데... 솔직하네.’

절대 얻어맞지 않겠다는 제퍼슨의 마음이 잔뜩 들어간 공.

그 의욕이 눈에 보일 정도로 잔뜩 들어가서 위력 자체는 지금까지 제퍼슨이 던진 공 중 가장 강력한 축에 들었지만.

‘볼은 안 던지게?’

원래도 스트라이크/볼 비율이 극단적이라는 게 장점이자 단점인 투수가 바로 제퍼슨.

그런데 어떻게든 영도를 잡아내겠단 마음이 차고도 넘쳐 주체할 수가 없었는지...

스트라이크/볼 비율을 정의할 수가 없었다.

분모가 0인 수는 일반적으로 배우는 분수에선 아예 정의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이러니까 톱클래스와 진정한 톱 사이의 벽을 못 넘지.’

‘타격은 타이밍, 투구는 타이밍을 빼앗는 것.’

최고의 투수가 되기 위해선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영리한 수 싸움이 필수적이었다.

제퍼슨은 공의 위력만 놓고 보면 지금 이 시대를 지배하는 투수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거나 우위라는 소리까지 듣는 선수였다.

괜히 그를 언급할 때 ‘마스터’ 그렉 매덕스의 이름이 나오는 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제대로 된 매덕스의 후계자가 되기엔 그는 자기 감정에 지나치게 솔직했다.

[마음먹고 온 힘을 다해 휘둘렀습니다! 누구 한 명 잡겠다는 무지막지한 스윙! 살짝 빗맞았습니다만, Y-DO는 이런 홈런을 몇 개씩이나 만들어내지 않았습니까!? 거대한 포물선을 그리는 문 샷!]

[이 정도 각도의 타구가 2층 관중석으로 떨어지는 걸 대체 언제 봤나 싶네요. 만약 이 타구가 라인 드라이브로 맞았으면 어디까지 날아갔을까요?]

[63호 홈런으로 이번엔 1999년의 새미 소사와 함께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공동 6위까지 올라갔습니다. 위에는 2001년의 배리 본즈와 새미 소사, 1998년의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 1999년의 새미 소사까지 세 선수의 다섯 시즌밖에 없습니다.]

[제퍼슨이 워낙 스트라이크만 던지면서 볼이라는 걸 모르는 것처럼 던지다 보니 그냥 휘두른 거죠. 자신이 있었던 거예요. 자신의 힘이면 스트라이크 존 안에 들어오는 공은 꼭 정타로 맞추지 않아도 맞출 자신이 있고, 적당히만 맞추면 꼭 홈런은 아니라도 멀리 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공 끝의 지저분함, 역회전이 걸리는 투심과 싱커의 무브먼트와 스터프로 승부하는 테오 제퍼슨.

각도가 큰 브레이킹볼을 즐겨 던지지 않은 제퍼슨이 편집증적으로 스트라이크만 던진다면 영도로선 땡큐였다.

다른 타자들은 배트에 맞춰도 범타가 되니까 제퍼슨을 어려워하지만, 영도는 달랐으니까.

[테오 제퍼슨이 한 타자에게 계속 얻어맞는 걸 못 견뎌한다는 건 이제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지금 제작진이 건네준 자료를 보니까 한 타자에게 연타석 홈런을 맞았을 때의 통산 FIP가 거의 5점대에 육박합니다.]

[참... 이렇게 알기 쉬운 선수가 또 있을까요? 이렇게 알기 쉽고 감정에 솔직하니까 이 선수를 미워할 수가 없어요. 사고뭉치고 트러블 메이커, 클럽 하우스의 악동인데도 팬들이 대놓고 싫어하지 않는 게 신기한데, 이런 걸 알고 보면 이해가 되죠.]

테오 제퍼슨의 얼굴이 순식간에 터질 듯 달아올랐다.

영도의 투런 홈런으로 3-3, 동점이 되었지만, 꼭 점수가 아니더라도 이 경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걸 느끼지 못한 사람이 없었다.

계산이 서지 않는, 불안 요소를 품은 채 마운드에 오른 두 에이스가 나란히 불안 요소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 에이스의 빈틈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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