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두대 >
[내셔널스가 어제 패배를 겪으면서 이제 모든 메이저리그 팬들의 이목이 오로지 이 경기에만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 경기에서 로키스가 승리하면 로키스는 무조건 2위로 와일드카드 티켓을 따냅니다. 이 경기에서 브루어스가 승리하고 내셔널스가 메츠에게 승리를 거둔다면 0.5경기 차로 내셔널스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고, 로키스는 브루어스와 승차 없는 4위로 떨어지죠.]
[어쨌든 내셔널스는 일단 오늘 경기를 이기고 이 경기의 승패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로키스는 이기면 끝, 브루어스 역시 이 경기에서 이기고 내셔널스의 패배를 기도해야 합니다.]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두 팀도 아니고 세 팀이 엮여 와일드카드 막차 경쟁을 펼치다니... 이번 시즌 와일드카드 경쟁은 진짜 흥미로웠어요.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것도 정말 재미있습니다.]
어제 내셔널스가 패배하면서 피 말리던 와일드카드 경쟁의 경우의 수가 더욱 복잡해졌다.
현재 로키스가 87승 9무 65패로 2위 자리를 지켰고, 87승 8무 66패의 내셔널스가 0.5경기 차로 3위였다.
로키스와 시즌 마지막 162차전을 치를 브루어스가 85승 11무 65패로 1.0경기 차 4위.
내셔널스가 만약 오늘도 패배한다면 이 경기의 승자가 무조건 와일드카드 마지막 티켓을 따낼 수 있었다.
내셔널스가 승리한다면 로키스가 승리할 경우 로키스가, 브루어스가 승리할 경우 내셔널스가 막차로 포스트시즌에 합류하는 상황이었고.
무승부의 도입으로 인해 승차가 같아도 승률까지 같은 상황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덕분에 마지막 경기까지 치르면 아무리 치열한 경쟁이 이어졌어도 결국 승자는 나왔고.
지금 로키스, 내셔널스, 브루어스가 마지막까지 0.5경기 단위의 경쟁을 이어가는 것 역시 무승부 때문이었다.
[어쨌든 세 팀 모두 일단 마지막 경기를 무조건 이기고 봐야 합니다. 오늘 지는 팀은 미래가 없어요. 로키스와 브루어스는 각각 4일씩 쉰 에이스들을 결국 마운드에 올렸고, 내셔널스 역시 3일 쉰 에이스 코트니 매든을 불펜 대기시켰습니다.]
[비교적 여유가 있었던 레즈는 와일드카드 결정전 단판에 대비해 에이스를 아꼈고, 에이스를 아끼면서도 와일드카드 1위 자리를 가져가며 홈 어드밴티지에 에이스 등판까지 굉장히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거든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대비한답시고 에이스를 아꼈다간 결정전도 못 나갈 판인데.]
[레즈도 로키스처럼 에이스의 무게감은 살짝 떨어지는 편이죠. 준수한 2선발급 토드 칸터가 에이스 역할을 맡고 평범한 2선발이 2선발, 약간 아쉬운 2선발급 투수가 3선발. 2선발급 투수가 다수 포진한 선발 로테이션이 정규시즌에선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만, 포스트시즌엔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그나마 다행이죠. 로키스든 내셔널스든 브루어스든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두 팀 다 모든 걸 올인한 경기.
어쨌거나 이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두 팀 모두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되는 상황이라 뒤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보통 와일드카드 결정전 단판에 에이스를 출격시키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 상황에서 그건 꿈 같은 이야기.
로키스는 비교적 홈에서 약하지만, 그래도 부동의 에이스인 제러드 홉슨을, 브루어스는 경기장 밖에선 트러블 메이커지만, 마운드에만 서면 이보다 믿음직스럽기도 어려운 에이스, 테오 제퍼슨을 마운드에 올렸다.
‘더럽게 꼬였어. 오늘 브랜든이 나오고 이틀 뒤에 제러드가 나가는 게 베스트였을 텐데.’
안 그래도 에이스의 무게감에서 많이 밀리는 로키스인데, 사실, 로키스는 홈과 원정에서 에이스가 달랐다.
덴버 홈보이답게 그 악명 높은 쿠어스 필드에서 3점대 중반의 FIP를 기록, 3점대 후반의 원정 성적보다 쿠어스 필드 성적이 더 좋은 브랜든 에레라가 이번 시즌 로키스의 홈 에이스였다.
원정 FIP가 3점대 초반인 홉슨의 홈 FIP는 4점대 초반.
어지간했으면 아마 에레라를 홈에서 쓰기 위해 자이언츠전에선 내보내지 않고 아꼈겠지만...
로키스에겐 그런 여유 따윈 없었고, 3점대 후반의 원정 FIP도 로키스에선 두 번째로 좋은 성적이었다.
[제시 에르난데즈의 날카로운 스윙! 벼락같은 스윙으로 날카로운 타구를 만들어냅니다. 쭉쭉 뻗어서... 좌측 담장을 넘기는 솔로 홈런! 제시 에르난데즈의 35호 홈런이 정말 중요한 경기에서, 1회 초부터 나왔습니다!]
[오늘처럼 중요한 경기에선 선취 득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아까 말했죠? 비록 1점 홈런이지만, 이건 커요.]
그리고 영도가 느낀 불안함은 기우가 아니었다.
밀워키 브루어스 타선의 핵이자 현재 메이저리그에 얼마 남지 않은 우타 빅뱃, 브루어스의 좌익수 제시 에르난데즈가 홉슨의 초구를 노려쳐 시즌 35호 홈런을 때려낸 것.
‘빌어먹을 놈의 쿠어스 필드. 이래서 이 팀이 싫어.’
홉슨은 쿠어스 필드에서 등판할 때마다 전력을 다했다.
쿠어스 필드가 싫다지만, 이미 마음이 떠났다지만, 프로로서 자기 성적을 제 손으로 망치는 미친 짓을 할 리가.
등판하기 전부터 심적으로 지고 들어가는 게 문제고, 그나마 자신 있는 원정 경기를 홈 경기보다 더 열심히, 필사적으로 치렀던 게 문제지.
홉슨은 성격이 어떻든 마운드에서만큼은 프로답게 최선을 다했고, 최선을 다해서 4점대 초반의 홈 FIP를 찍었다.
[아무래도 오늘 경기... 쉽게는 안 끝나겠는데요? 1회 초부터 홈팀의 에이스가 홈런을 허용하면서 심상치 않은 하루를 알립니다.]
[테오 제퍼슨은 그래도 믿을 만한 투수지만... 멘탈이 좋지 않은 편이라 중요한 경기에 내보낼 때마다 뭔가 불안한 감이 있죠. 브루어스 입장에선 조용히, 평소처럼만 해주길 바라겠습니다만...]
홈에서 약한 홈팀의 에이스.
평소에는 다른 팀 에이스 부럽지 않은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잊을 만하면 중요한 경기 때 임팩트 있는 깽판을 쳐주는 원정팀의 에이스.
그리고 1회 초부터 나온 홈런.
두 팀이 에이스를 내보내며 총력전을 예고한 경기이기도 했지만, 두 에이스들의 특성상 까딱 잘못하면 난장판이 될 수도 있는 경기였다.
일단 1회 초 시작은... 심상치 않았다.
[로키스도 최대한 빨리 따라가야 합니다. 오늘 같은 경기는 리드를 빼앗긴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위험해집니다. 심리적으로 쫓기는 순간 좋은 플레이가 나올 수 없거든요?]
[그렇죠. 바로 그거예요. 그래서 언제나 선취점이 중요한 거죠.]
1회 초, 홉슨은 홈런을 허용한 이후 볼넷과 안타까지 내주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어쨌든 추가 실점 없이 이닝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1회 말, 로키스가 반격을 시도했다.
[크으, 이거죠! 경기장 바깥에서 자꾸 이런저런 논란을 일으킴에도 우리가 테오 제퍼슨을 포기할 수 없는 건 바로 이런 모습 때문이거든요? 이 환상적인 싱커 좀 보세요.]
[최근에는 싱커와 투심 패스트볼의 경계가 많이 흐려졌고, 어렵고 위험한 정통 싱커는 투심에게 자리를 내줬지만, 제퍼슨은 몇 안 남은 정통 싱커볼러죠. 그런데 투심도 던지고 수준도 굉장히 높아요. 비슷한 궤적의 공이 6, 7마일의 구속 차이를 두고 날아오니 타자들은 힘들죠.]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교타자 게일 해니건도 첫 타석부터 싱커에 적응하긴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투수 앞 땅볼로 체면을 구긴 해니건이 물러나고 2번 타자, Y-DO가 등장합니다.]
[Y-DO는 믿을 수 있죠. 특히 쿠어스 필드의 Y-DO는 뭐... 이번 시즌 61홈런 중 쿠어스 필드에서 35개, 원정에서 26개를 때려냈어요.]
일단 경기 초반의 제퍼슨은 평소의 제퍼슨이었다.
강력한 싱커와 투심 패스트볼을 앞세워 힘으로 윽박지르는 투수.
과거 그렉 매덕스나 카를로스 잠브라노를 보는 듯한 궤적의 공을 앞세워 해니건을 요리하고 영도를 맞이했다.
[OPS 1.050을 넘어가는 선수한테 할 말은 아니겠습니다만, 쿠어스 필드의 효과가 없진 않았습니다. 홈 OPS는 1.150이 넘고, 원정 OPS는 1.000에 조금 못 미치죠.]
[그런데 그 정도 차이는 흔하지 않나요? 웬만한 선수들이 홈에서 더 강한 건 사실이고, 고산지대에서 이동해야 하는 어려움까지 고려하면 더없이 훌륭한 원정 성적 같은데요.]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어쨌든 쿠어스 필드에서 강한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제퍼슨도 Y-DO는 쉽게 상대할 수 없을 겁니다.]
[반대로 로키스는 Y-DO만 믿고 있겠죠. 이런 경기에 에이스를 내보내면 보통 에이스를 믿겠지만, 로키스는 홉슨보다 Y-DO에게 훨씬 많은 기대를 걸고 있을 겁니다.]
로키스 소속 타자들이 원정을 떠날 때 얼마나 큰 고충을 겪는지 알려진 이후, 홈/원정 OPS 차이가 0.200 이하일 경우 산에서 내려가도 그 정도 성적을 찍어줄 수 있는 타자라 인정받는 경우가 많았다.
영도의 홈/원정 OPS 차이는 0.180 정도.
이 정도면 쿠어스 필드의 효과는 톡톡히 보면서 원정에서도 훌륭하게 감각을 유지해 잘 버텨냈다고 볼 수 있었다.
‘확실히 좋은 공이긴 한데... 이상해. 왜 공이 이렇게 커 보이지?’
8연패에서 탈출한 자이언츠전 이후 5경기에서 4홈런.
영도는 지금 분명 컨디션이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어쨌거나 좋은 기억밖에 없는 쿠어스 필드.
쿠어스 필드에서만 35개의 홈런을 때려냈으니 홈 경기마다 자신감이 넘쳤고, 넘치는 자신감은 실제 컨디션과 기량에도 영향을 주었다.
올라온 컨디션과 넘치는 자신감.
제퍼슨의 공은 평소처럼 위력적이었지만, 지금의 영도에겐 흔히 하는 말처럼 수박만 하게 보였다.
[맞는 순간 홈런일 수밖에 없는 Y-DO 특유의 문 샷! 제시 에르난데즈의 홈런에 대한 대답입니다! 펜스를 훌쩍 넘어 2층 관중석으로 사라지는 타구, Y-DO! 드디어 62홈런 고지에 오릅니다!]
[이야... 시즌 종료까지 6경기를 남겨놓았을 때 57홈런. 6경기에서 5홈런이 필요한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기어이 62호를 때려내네요. 대단합니다, Y-DO.]
[무려 80년 만에 로저 매리스의 청정 타자 최다 홈런 기록이 깨졌습니다!! 그리고 Y-DO에게 남은 기회는 최소 3타석, 최대 4타석! 62홈런 기록이 더욱 늘어날 여지까지 남아있습니다.]
[Y-DO의 대단함을 이야기하라면 며칠이 걸려도 다하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가장 대단한 부분 중 하나는 이렇게 부담스러운 상황, 기록이 걸린 초조하고 조급한 상황을 오래 끌지 않는다는 겁니다. 60홈런 고지에 올라선 이후 로저의 61홈런 기록과 동률로 끝낼 수 있을까 했더니 바로 다음 날 61호 쳐버리고, 오늘도 보세요. 모두가 주목하는 62호 홈런, 얼마나 부담스러웠겠어요? 그런데 첫 타석부터 해치워버리잖아요. 이 얼마나 대단한 배짱이고, 대단한 멘탈입니까.]
시즌 마지막 경기, 모두가 주목하고 기다리는 62호 홈런.
사실, 영도가 워낙 무신경한 성격이라 그렇지, 웬만한 선수들이었다면 초조함, 조급함, 부담감, 긴장감 등등에 먹힐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럴 때 시야가 좁아지긴커녕 공이 수박만 하게 보일 정도로 컨디션이 좋다는 것부터 말이 되지 않았다.
KBO에서는 단일 시즌 최다 홈런, 최고 WAR을 기록하며 제츠에게 23년 만의 한국 시리즈 우승을 안긴 것.
빅리그 복귀 이후 연속 경기 홈런, 3루수 역대 최다 홈런, 청정 타자 최다 홈런 등 수많은 기록을 갈아치운 것.
이렇듯 두 시즌 내내 엄청난 관심과 주목도, 기대감에 휩싸인 채 수많은 기록에 도전해 모든 도전에서 성공적인 결과물을 만든 가장 큰 이유는 강한 멘탈이었다.
[그런데 1회 초부터 양 팀 핵심 타자들의 홈런이 나오다니... 진짜 심상치 않은데요? 양 팀 에이스가 출격했는데 설마 타격전이 되나요?]
[그럴 수도 있다는 의견이 있긴 했습니다. 에이스들이 나오지만, 불안 요소가 없는 투수들은 아니라서 강팀의 에이스가 맞붙는 경기치고는 타격전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그런데 진짜로 경기 초반 분위기가 의미심장합니다.]
제시 에르난데즈의 홈런으로 밀워키 브루어스가 먼저 기세를 올렸지만.
영도가 1회 말에 바로 동점 홈런을, 그것도 62호 홈런이라는 대기록으로 장식하면서 쿠어스 필드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동점 홈런에 62호 홈런이란 상징성까지 가졌으니 1회부터 시작된 양 팀 핵심 타자들의 대결에선 영도가 KO승을 거뒀다고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조금 더 각을 잡고 진지한 자세로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조금만 눈을 떼면 경기 흐름을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겠습니다.]
[워낙 중요한 경기라서 그럴까요? 초반부터 아주 난리네요.]
어쨌거나 라이트팬을 사로잡는 건 화끈한 타격전이었다.
마운드가 무너지고 자멸해서 시작되는 타격전이 아니라 타자들이 잘 때리는, 7, 8점 정도에서 끝나는 타격전.
오늘 경기는 두 팀은 물론, 메이저리그 나머지 28개 팀 팬들도 지켜보는 경기인 만큼 타격전을 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62홈런도 나왔으니 63홈런을 원하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 경쟁의 최종 승자를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타격전이 될 것 같다는 소식에 기대를 품고 찾아오는 사람들까지 늘어나고...
로키스와 브루어스의 운명이 걸린 시즌 마지막 경기.
안 그래도 많았던 시청자 수는 줄어들기는커녕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고만 있었다.
< 단두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