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준비된 무대 >
자이언츠와의 시리즈 첫 경기에서 앤서니 모리스의 솔선수범 덕분에 분위기가 돌아왔다고는 해도, 다시 연승을 달리기엔 이미 로키스 선수단이 많이 지쳐 있었다.
그래도 자이언츠와의 3연전을 2승 후 1패로, 위닝 시리즈로 마무리한 로키스는 덴버로 돌아와 홈에서 밀워키 브루어스를 맞이했다.
다행히 로키스가 2승 1패를 기록하는 동안 브루어스는 1승 1무 1패를 기록하며 85승 11무 63패를 기록, 85승 9무 65패의 로키스와 1경기 차까지 차이가 좁혀졌다.
다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는데, 로키스가 위닝 시리즈를 거둬 동률을 만들어도, 무승부가 많은 브루어스가 승률에서 앞선다는 것.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의 수는 일단 브루어스를 스윕하고 내셔널스가 남은 세 경기에서 한 경기라도 패배해주는 것이었다.
내셔널스가 한 경기라도 패배한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브루어스를 스윕한 로키스와 승수는 같지만, 무승부 하나가 적고 패배가 많아 0.5경기 차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었다.
와일드카드 1위 레즈와 2위 브루어스의 승차가 1경기.
와일드카드 2위 브루어스와 3위 내셔널스는 0.5경기.
와일드카드 3위 내셔널스와 4위 로키스가 또 0.5경기.
그리고 1경기 차로 경쟁하는 브루어스와 로키스가 시즌 마지막 3연전을 치르는 일정.
이보다 더 완벽하고 긴장되는, 그래서 흥미진진한 와일드카드 레이스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양대리그 사이영상과 MVP 경쟁이 생각보다 일방적일 거라 예상되고,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 경쟁도 나름대로 치열했지만, 마지막 3연전을 남겨두고 사실상 윤곽이 드러난 상황.
정규시즌 막판 모든 관심은 내셔널리그 와일드카드 경쟁, 그리고 영도의 홈런 기록에 쏠려 있었다.
둘 다 영도와 관련된 이슈들이었고, 이는 곧 시즌 마지막 순간의 주인공이 영도라는 뜻이었다.
[4-5, 브루어스에 1점 차로 뒤져있는 로키스의 7회 말 공격. 아웃 카운트 없이 해니건이 안타로 출루한 상황. 신중하게 사인을 교환하고 던집니다! 호쾌한 스윙!]
[설마 또 가나요!? 오늘 4타점 중 3타점을 책임진 Y-DO가 또 해내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또 한 번 해내는 Y-DO! 시즌 60호 홈런! 이번 홈런으로 로키스의 포스트시즌 희망을 한 번 더 살려냈습니다! 그리고 40년 만에 등장한 60홈런 타자가 됩니다!]
[Y-DO... 진짜 혼자 다 하네요! 혼자 다 해요! 오늘 경기 포함 남은 세 경기에서 전부 승리해야만 와일드카드를 노려볼 수 있는 로키스이기에 경기 막판까지 한 점 차로 끌려간다는 건 굉장히 불안한 일이잖아요? 오늘도 Y-DO가 로키스를 구원합니다!]
자이언츠전 첫 경기에서 멀티 홈런을 터뜨리며 멈췄던 홈런 공장을 재가동한 영도는 두 경기 동안 숨을 고른 뒤 쿠어스 필드로 돌아와 다시 한 개의 홈런을 추가했다.
이걸로 2041시즌 60번째 홈런.
모두가 기다려온 60홈런 고지에 올라섬과 동시에 벼랑 끝에서 떨어지기 직전이었던 로키스까지 끌어올렸다.
[타율 0.300 돌파, 출루율도 0.410을 훌쩍 넘었고, 장타율도 0.650에 육박하는 성적을 기록 중입니다. 홈런도 기어이 60개를 찍었고, WAR 역시 9.8을 넘어선 상황. 내셔널리그 MVP가 꽤 유력하다고 봐야겠죠?]
[아무래도 그렇죠. 1위표 만장일치가 나오느냐, 마느냐의 문제지, 사실상 MVP는 Y-DO의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니까요. 비어니의 성적도 MVP에 충분히 어울리지만, 아무래도 팀 성적도 그렇고 임팩트도 그렇고 아쉬운 부분이 조금씩 있죠. 뭔가 한 2% 정도씩?]
[확실히 비어니 역시 3/4/6에 43홈런, WAR 8.2로 몬스터 시즌을 보내고 있는데... 이번 시즌엔 이상하게 관심을 받지 못한 느낌입니다.]
[이러니까 결국 야구는 홈런이라는 거예요. 43홈런도 이번 시즌 내셔널리그 2위, 양대리그 통합 3위의 훌륭한 기록인데, 1위가 60개를 때려버리니...]
1위표 몰표가 나오느냐, 마느냐가 문제일 뿐, MVP 수상은 확정적이란 의견들까지 스물스물 언급되던 상황에서 40년 만의 60홈런은 이에 쐐기를 박는 한 방이었다.
뉴욕 메츠의 중견수이자 지난 시즌 MVP, 로날드 비어니가 지난 시즌보다도 발전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로키스보다 훨씬 탄탄한 전력을 갖춰 포스트시즌 유력 후보로 꼽혔던 메츠를 이끌고 5팀 간의 와일드카드 경쟁에서 가장 먼저 탈락하면서 동부지구 3위에 그친 팀 성적에서마저 영도에게 크게 밀렸다.
예년 같았으면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WAR 1위를 기록할 만한 성적을 찍고도 개인 성적에서마저 영도에게 크게 밀렸고.
연속 경기 홈런 신기록, 40년 만의 60홈런, 80년 만의 청정 타자 홈런 신기록에 도전하는 등 스토리와 임팩트에서마저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62홈런 도전 때문에 아직도 영도의 한 타석 한 타석에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
그들 모두가 이미 영도를 MVP로 확신하고 있었다.
[일단, 브루어스와의 3연전 첫 경기는 로키스가 가져갔습니다. 이번 시리즈를 모조리 쓸어가야만 포스트시즌을 노려볼 수 있는 콜로라도 로키스, 일단 내일로 희망을 이어갑니다.]
[Y-DO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경기였습니다. 6-5, 한 점 차 승리에서 혼자 5점을 책임지는 원맨쇼. 8연패 기간만 딱 빼면 이번 시즌 내내 보여준 모습이죠?]
시즌 종료까지는 이제 두 경기, 즉, 이틀.
메이저리그와 전문가들, 팬들의 관심을 독점한 로키스가 또 한 번의 기적을 노리고 있었다.
***
[아메리칸리그 포스트시즌 진출팀 확정! 지구 우승팀 에이스, 트윈스, 양키스에 와일드카드로 레드삭스, 에인절스 합류]
[포수 타격왕 BOS 칼 앤더슨, 47홈런으로 아메리칸리그 홈런왕 차지한 DET 앨런 밀러 제치고 생애 첫 MVP 차지할 듯]
[NL 사이영에 WSH 코트니 매든, AL 사이영에 MIN 닉 카슨 유력]
[NL ROY 프레드릭 더햄(COL)과 채드 더글라스(PHI)의 2파전 구도. AL에선 BOS 타이런 베커의 독주]
[신시내티 레즈, 시즌 161차전 승리로 와일드카드 2위와 최소 2경기 차까지 차이 벌리며 드디어 와일드카드 레이스 1위 확정! 역대급 와일드카드 경쟁의 첫 번째 승자]
4월부터 9월까지. 장장 6개월에 걸친 정규시즌도 슬슬 마무리되는 타이밍.
정규시즌이 끝나가다 보니 슬슬 포스트시즌 진출 팀들과 개인 수상자들의 윤곽이 드러났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부문도, 한 명이 독주하는 부문도 있었고, 관심받는 부문도, 소외된 부문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 시기의 주요 관심사는 포스트시즌일 수밖에 없었다.
기나긴 정규시즌은 월드시리즈 우승팀을 가리기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내셔널리그의 피 튀기는 와일드카드 경쟁에 왜 모두의 관심이 몰리는 건지 생각해보면 간단했다.
일단, 신시내티 레즈는 사람 미치게 하는 와일드카드 경쟁에서 가장 먼저 빠져나갔다.
승률 0.570을 넘을 때까지 와일드카드 2위조차 확정 짓지 못해 체력 안배는 생각조차 못했다는 게 억울하겠지만...
아직 경쟁 중인 세 팀 중 0.570에 육박하는 승률을 기록하고도 탈락해야 하는 두 팀에 비하면 사정이 훨씬 나았다.
“이거 완전히 우리 형 영웅 되는 그림인데...”
“영웅은 무슨... 어쩌다 그렇게 된 거지.”
“원래 영웅은 어쩌다가 되는 거야, 몰랐어? 스파이더맨이 거미한테 물리고 싶어서 물렸나? 다들 그렇게 영웅이 되는 거라고.”
“어휴, 하여튼 누가 입으로 먹고사는 놈 아니랄까 봐 말은.”
콜로라도 로키스 역시 161차전을 치렀다.
그리고 꼭 승리해야만 희망을 이어갈 수 있는 경기에서 또 이겨냈다.
브루어스와의 3연전 중 2차전에서도 로저 매리스의 기록과 동률을 기록하는 61호 홈런 포함 팀의 7득점 중 4점을 책임진 영도의 활약으로 승리한 로키스는 브루어스를 1경기 차로 따돌렸다.
내셔널스마저도 승차는 없었지만, 승률에서 앞서며 다시 와일드카드 2위로 복귀한 콜로라도 로키스.
하지만 로키스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내셔널스가 남은 두 경기 중 한 경기는 패배해야 했고, 낮 경기를 마치자마자 급하게 집으로 돌아온 영도는 승도와 함께 내셔널스의 경기를 시청하고 있었다.
“근데 나 지금 진지해. 꼭 이겨야만 포스트시즌에 갈 수 있는 거였잖아? 근데 1차전에서 6점 중 5점, 2차전에서 7점 중 4점을 혼자 뽑았는데... 그런 선수가 영웅이 아니면 누가 영웅이야?”
“그냥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라니까? 굳이 영웅을 만들어야 한다면 19연승의 시작과 8연패의 끝을 장식한 모리스겠지.”
“아! 안 그래도 앤서니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 언성 히어로, 보이지 않는 영웅이라고. 진짜 영웅은 원래 어쩌다가 된다고 몇 번을 말해? 결정적인 순간 결정적인 역할만 하면 그전까진 찌질했어도 영웅이야. 피터 파커처럼.”
“... 너 스파이더맨한테 무슨 원수라도 진 거냐? 왜 자꾸 스파이더맨을 걸고 넘어져?”
“찌질한 영웅의 대표 같은 거니까. 그런데 형은 결정적인 장면 이전에도 훨씬 멋있었으니까 이보다 더 영웅적인 영웅이 어디 있겠어?”
“에휴, 마음대로 생각해라. 사람들이 알아서 판단하겠지.”
“사람들이 알아서 판단해서 지금 난리 난 건데... 이미 난리야. 내일도 형이 결정적으로 활약해서 로키스를 포스트시즌으로 이끌 거라고.”
8회가 진행되는 내셔널스와 뉴욕 메츠의 경기.
0.550에 육박하는 승률로 억울하게 와일드카드 진출에 실패한 뉴욕 메츠가 내셔널스에게 화풀이 중이었다.
8회에 7-3, 뉴욕 메츠가 결정적인 고춧가루를 뿌리기 직전.
그걸 보고는 영도보다 승도가 더 흥분해서 난리였다.
“형! 형은 내일 꼭 홈런을 쳐야만 해. 그리고 이겨서 와일드카드에 나가야만 해!”
“뭐, 그렇게 된다면 좋겠지.”
“그렇게 되면 좋은 게 아니라 꼭 해야 한다니까? 61홈런도 훌륭하고, 이겨서 와일드카드 티켓까지 따낸다면 완벽하겠지만... 거기서 62홈런까지 성공하면 역사가 되는 거라고!!”
“그래, 안다니까? 아는데 그게 내가 원한다고 되겠어?”
“빌어! 물이라도 떠다 놓고 빌어! 하느님으로 안 되면 부처님, 알라의 가호까지 빌어서라도 해야 한다고!”
“흥분하지 마라, 승도야. 에이전트 하겠다는 놈이 그렇게 쉽게 흥분하면 안 되지.”
역사에 남을, 당사자들에겐 최악의 와일드카드 경쟁.
역사에 이미 이름을 남긴 로키스의 19연승.
그리고 8연패로 시련을 겪고 다시 살아나 5경기 4승 1패, 마지막 대역전극까지 1승만을 남겨둔 상황.
로키스의 이번 시즌은 영화였고 드라마였다.
61홈런을 때려내며 결정적인 순간마다 활약한 영도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었다.
와일드카드 경쟁팀과의 마지막 3연전에서 스윕 이외의 선택지는 없었던 로키스에 거의 혼자 힘으로 2연승을 선물하며 작품의 클라이맥스를 위한 빌드업도 완벽했다.
승도는 이렇게 완벽히 준비된 무대에서 62홈런으로 로저 매리스의 기록까지 경신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그게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형이기에 더더욱 멋지고 완벽한, 당연히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완전무결한 클라이맥스.
가족으로서, 형제로서, 그리고 영도의 경제력을 책임진 매니저와 에이전트로서.
도저히 흥분하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끝났어! 메츠가 잡았어!! 내셔널스가 졌다고!!”
“그래... 내셔널스가 졌단 말이지...”
자신들이 와일드카드 경쟁에서 탈락한 만큼, 같은 지구의 라이벌 내셔널스가 진출하는 꼴을 볼 수 없었던 것일까.
뉴욕 메츠가 161차전에서 기어이 워싱턴 내셔널스에 제대로 고춧가루를 뿌려버렸다.
“형! 내 말 알아들었지? 꼭 명심해! 내일 홈런 때리고 이기는 거야, 알았지!?”
형을 위한 완벽한 무대가 드디어 준비되었음을 확신하고 흥분한 유승도.
“일단 이기는 것부터 생각해야지. 그때그때 이길 확률을 가장 크게 높이는 타격으로 접근하는 게 맞아.”
동료들과 함께 달렸던 19연승의 기적을 해피 엔딩으로 끝낼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의 미소를 지은 유영도.
“그래, 내가 너무 흥분한 건 맞는 것 같아. 그래도... 이건 정말 다신 없을지도 모를 기회야.”
“나도 알아. 슈퍼스타는 재능으로 만들어지지만, 영웅은 하늘이 점지해주는 거라고들 하더라. 솔직히 나도 좀 얼떨떨한데, 너는 어떻겠냐. 원래 감정이 풍부하니까 흥분할 수밖에 없었겠지. 이해한다.”
형제는 동시에 똑같은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이번 세대의 하늘은... 유영도를 주인공으로 임명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 준비된 무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