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후폭풍 > (128/200)

< 후폭풍 >

‘결국 이렇게 되나...’

하지만 무너져가는 팀을 혼자서라도 지탱해보겠다던 영도의 결심은 바로 다음 경기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펫코 파크 3연전은 로키스 타선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상흔을 남겼다.

타격감도, 피로감도... 펫코 파크 3연전을 겪은 로키스 타선은 이전 19연승을 달리던 시기의 모습이 아니었다.

[Y-DO가 안타를 치고 출루했습니다만... 가드너와 더햄이 이번에도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2루타와 볼넷, 안타까지 4타석 중 3회나 출루했지만, 단 한 번도 후속타를 때려내지 못한 로키스 타선의 집중력이 많이 아쉽습니다.]

[펫코 파크 원정이 다른 의미에서 치명타를 안긴 것 같네요. 다들 타격감이 좋았던 시기라 좋은 타구들을 만들었는데, 그게 다 범타가 되어버리니까 그동안 잊고 있었던 피로가 덮친 것 같아요. 오랜만에 서부를 벗어나면서 비행 거리로 인한 피로도 있을 테죠.]

[확실히 9월 들어 몸이 가장 무거워 보입니다. 정말 이대로 끝인 겁니까? 19연승에서 이렇게 아쉽게?]

[끊길 때가 되긴 했어요. 당연히 끊길 수밖에 없는 거고, 오히려 진작 끝나는 게 정상인데, 로키스가 대단했던 거죠. 다만, 로키스처럼 팀적인 완성도가 부족한 팀이 흐름 한 번 제대로 타서 이렇게 긴 연승을 달리면, 연승이 끊겼을 때 후유증이 아주 심하게 오거든요?]

9회 초, 2아웃 주자 2루에 스코어는 1-6.

사실상 로키스의 연승은 여기까지일 확률이 99% 이상이었고, 이제 연승 이후를 대비할 때였다.

믿을 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연승으로 포스트시즌 진출권까지 올라오긴 했지만, 로키스의 전력은 5할 승률 정도가 어울리는 수준.

19연승은 달콤했고, 환상적이었지만, 이제 그 후폭풍에 대비해야 했다.

완성되지 않은 전력임에도 영도와 타선, 그리고 루키들의 동시다발적인 대폭발로 여기까지 올라왔지만, 완성되지 않은 전력이다 보니 연승을 위해 희생한 것들이 많았다.

안 그래도 쿠어스 필드 때문에 다른 팀 선수들보다 두 배는 피로가 쌓이는데 휴식도 취하지 못했고...

결국,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이었다.

팀 전체적으로 체력 저하와 피로 누적으로 인한 침체기를 맞으리라는 건 기정사실이었고, 이를 어떻게 버텨내느냐에 모든 게 달려 있었다.

어떻게든 버텨내면 어떻게든 포스트시즌에서 또 한 번의 기적을 노려보는 거고, 버텨내지 못하면...

[아... 헛스윙 삼진. 로날드 매그니의 삼진을 끝으로 콜로라도 로키스의 19연승 행진이 종말을 고합니다. 하지만 멋있었습니다. 충분히 환상적이었습니다. 비록 연승은 이렇게 끝났지만, 로키스의 기적과도 같은 질주는 오랫동안 기억될 겁니다.]

[그렇죠. 19연승 자체도 충분히 놀랍고 믿을 수 없는데, 19연승의 주인공이 로키스라는 게 더욱 놀라웠어요. 로키스는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해줬고, 즐겁게 해줬습니다. 화끈한 공격 야구의 진수를 보여줘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이변에 이변, 기적에 기적을 거듭하며 연승을 이어온 로키스였지만, 더 이상의 기적은 없었다.

흐름과 분위기, 기세까지 한 번에 다 잃어버리고 잊고 있던 체력적인 한계까지 자각하게 된 로키스 타선은 마지막 기회마저 무기력하게 흘려보냈다.

로키스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5번째로 긴 연승 기록을 남기면서 완벽했던 3주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99% 확률로 끔찍할 것이 분명한 정규시즌 마지막 3주를 맞이했다.

***

‘숨이 막히는군.’

경기 종료 후의 라커룸.

연승이 끊겼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무기력하게 졌기 때문에 분위기가 이 모양이라고 말하는 건... 핑계겠지.’

치열하게 마지막까지 시소게임을 벌이다 아깝게 패배했다면 뭐가 달랐을까.

그랬으면 대기록을 너무 아깝게 놓쳐버린 아쉬움에 더 큰 후유증이 왔을지도 몰랐다.

그냥 어떤 식으로든 19연승 정도의 대기록이 끊기면 허탈함이 라커룸을 지배하는 게 당연했다.

‘이 팀은 이제부터가 문제야.’

문제는 연승 기록 중단 이후 필연적으로 찾아올 침체기를 길게 이어가지 않고 끊어줄 준비가 되어있느냐는 것인데...

준비라고 해도 별것 없었다.

그냥 팀으로서의 완성도, 그동안 해온 것들, 기본적인 전력이 좋으면 아무리 침체기가 와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승리를 쌓아갈 수 있을 터였다.

‘전력은 빈약하고, 로스터는 얇고, 심지어 너무 젊기까지... 첩첩산중, 설상가상이 이런 건가.’

준비가 안 되었어도 19연승이 눈앞에 있으면 일단 먹고 봐야 했다.

연승 이후 찾아올 낭떠러지가 무섭다고 19연승을 안 먹는 건 부모님이 먼저 돌아가시는 게 무서워서 먼저 의절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평범하게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하는 것으로도 부족하고 욕설이 섞여야 설명이 가능할 정도의 바보짓.

로키스는 그 정도의 바보가 아니었기에 일단 먹었고, 이제 탈이 날 차례였다.

“후우... 끝났군.”

“이제 출발선에 온 거다. 레즈, 내셔널스와 조금이라도 앞선 상황에서 다시 출발하는 거지.”

“오... 그렇게 들으니까 좀 긍정적인 느낌이네.”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해라. 무슨 말을 하든 안 들린다는 표정과 말투거든.”

승률과 승차만 놓고 보면 로키스의 상황도 절대 나쁘지 않았다.

어느덧 레즈와 1.5경기 차, 내셔널스와 3.5경기 차까지 벌린 와일드카드 순위 1위로 올라섰으니까.

로키스의 앞에 펼쳐진 길은 불구덩이와 지옥뿐이고, 다른 두 팀은 탄탄한 전력답게 시즌 내내 꾸준한 승률을 보여주었기에 불안하긴 했지만.

남은 경기가 고작 14경기뿐이었기에 그래도 한숨 돌릴 순 있었다.

“얼굴 펴. 그렇게 주장 좋아하고 리더 좋아하는 사람이 정작 이렇게 중요할 때 그러고 있으면 안 되지.”

“... 그래, 안 되지. 억지로 거짓말로라도 분위기 띄워야지.”

어차피 팀 분위기가 바닥까지 떨어진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때로는 거짓말이 필요했다.

거짓 격려, 거짓 파이팅, 거짓 희망이 필요할 때도 있었고, 지금이 바로 그런 타이밍이었다.

영도의 말 한마디에 곧바로 표정을 바꿔 얼굴에 미소를 띠우는 해니건도 대단했다.

한 팀의 리더로서 모두의 신뢰와 지지를 받을 만한 인물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자, 자!! 왜 이렇게 다들 죽상이야? 우리만 맨날 이기면 다른 친구들한테 미안하잖아? 하루 정도는 져줘야 쟤들도 신난다고 야구하지. 우린 야구 인기와 선수 숫자를 유지하기 위해 숭고하게 희생한 거야. 우리만 맨날 이기다가 다들 은퇴해버리면 어떡해? 안 그래? 안 그래, 키스?”

“... 가드너라고 부르시죠.”

“... 지금 그게 중요해!? 지금 내가 이 한 몸 희생해서 어떻게든 분위기 살려보겠다고 노력하는 게 안 보여? 그치?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제리?”

“... 난 그 애칭 싫어하는데.”

“... 그럼... 제러드?”

“홉슨.”

“그래, 홉슨. 에휴... 수비의 핵이라는 놈이나 에이스라는 분이나 왜 이렇게 협조를 안 해주실까. 이 팀의 클럽하우스 리더 자리는 너무 어려운 자리야, 제기랄!”

가드너와 홉슨이 쉽게 자신의 애칭과 이름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걸 해니건이 모를 리 없었다.

다 알고 있지만, 오히려 이를 이용해 스스로 웃음거리가 되어 팀 분위기를 어떻게든 살려보겠단 발악이었다.

‘가드너는 몰라도 홉슨은 의외인데. 그래도 장단은 맞춰주네.’

아무리 가드너와 홉슨이 스스로 겉돌며 자신이 인정하는 동료와만 교류하는 선수들이라 해도 해니건의 의도까지 모를 리는 없었다.

스스로의 선택으로 겉도는 것뿐이지, 눈치가 없거나 사회성이 부족한 게 아니니까.

자신에게 없는 리더십과 희생정신을 갖춘 해니건에게 존경심에 가까운 무언가를 가진 가드너야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를 도와주는 게 이상하지 않지만.

홉슨은 확실히 의외였다.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반응이었지만, 최악의 분위기에서 평소와 같은 반응을 보여줬다는 것부터가 이런 반응을 원했던 해니건에게 장단을 맞춰준 것이니까.

‘다들 욕심은 있다, 이거지...’

영도는 가진 바 기량도 충분했고, 체력적으로도 여유가 있었다.

19연승 기간에도 다른 선수들과 다르게 특별히 체력을 당겨 쓰지도, 실력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지도 않았다.

그저 해오던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줬을 뿐.

그렇기에 연승 중단의 후폭풍도 다른 선수들보다 작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요즘 좀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팀 성적에 목매지 않는 스타일이라 지금도 많이 아쉽긴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닌, 딱 그 정도였다.

“나는 아직 힘도 남아있고, 정신적으로도 당신 만큼의 충격은 받지 않았으니 버틸 수 있어. 하지만 오래는 못 버티니까 최대한 빨리 추슬러서 돌아와.”

“... 알았어. 고맙다, Y-DO. 진짜 이번 시즌 너 없었으면 나나 팀이나 어떻...”

“거기까지. 우리 2절, 3절까진 가지 말자고. 간지러운 건 취향도 아니고.”

“... 그래. 경기에서 보여줄 테니 조금만 고생해.”

아무리 멀쩡해도 영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상대도 바보가 아니라면 영도만 집중적으로 견제할 테니까.

하지만 팀에 승리를 안겨줄 순 없어도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은 있었다.

동료들이 돌아올 때까지 최대한 중심을 잡고 버텨주면서 최소한의 흐름과 기세를 유지해주는 것.

잘만 버텨낸다면 언젠가 팀이 흐름을 찾았을 때 예열 시간 없이 바로 끓어오를 수 있을 터.

이제 곧 경쟁자들에게 따라잡힐 테니 시즌 막판 와일드카드 경쟁을 다시 겪어야 할 테고, 그 고비를 넘어서도 포스트시즌을 치러야 했다.

버텨내면서 다시 달아오를 때까지의 예열 시간을 없애주는 건 굉장히 어려우면서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었다.

***

[연승 후 연패... 콜로라도 로키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2-6으로 패배하며 2연패 수렁]

[결국 Y-DO도 막지 못한 로키스의 스윕 패배. 19연승 뒤 4연패. 로키스가 이상하다]

[다저스전 2연패, 연승 중단 이후 6연패!! 레즈에 와일드카드 1위 자리 내주고 브루어스에게 2위 자리까지 내준 데 이어 내셔널스에게마저 0.5경기 차 추격 허용!!]

[아아... 결국... 기적과도 같은 19연승 이후 악몽과도 같은 8연패. 같은 기간 3승 2무 3패 기록한 내셔널스에 0.5경기 차 리드 내줘... 다시 와일드카드 순위 4위로...]

[Y-DO, 8연패 기간 출루율이 무려 0.533. 상대 투수들의 노골적인 견제 속 안타와 볼넷으로 최대한 자기 몫은 해냈으나...]

-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라고? 19연승? 그리고 8연패? 우리보고 어쩌라는 거야!!

- 욕도 못하겠어. 그래서 더 빡친다고! 19연승의 기억이 있으니까 도저히 욕을 못해! 그래서 속이 터져, X발!!

- 난 욕한다. 이 X 같은 새X들, 쓸모없는 새X들, FXXX... Y-DO 홈런이 57개에서 멈췄어, 이 벌레 같은 새X들 때문에!! 누가 보상할 거냐? 60홈런 기회가 또 언제 올지 모르는데!!

- 확실히... Y-DO한테는 다들 무릎 꿇고 사과해야겠다. Y-DO만 거르면 다들 타석에 바게트 가지고 들어가서 투수들이 상대를 안 해주잖아.

- 그래도 혼자 야구 하면서 출루율 0.533... 시즌 출루율도 0.400 넘었네. 하여튼 진짜 야구 잘한다.

- 아직 안 늦었어! 6경기 남았고, 다시 서부로 돌아온다고! 브루어스랑 2.5경기야! 우리가 19연승으로 따라잡았을 때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욕하지 말고 응원하자. 욕은 결과 나오고 해도 늦지 않아!

- 그래. 우리가 응원해야지, 누가 응원해줘?

- 솔직히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욕하면 안 되지. 승률 50%만 넘어도 성공이라던 팀이 여기까지 왔고, 무엇보다 환상적인 19연승을 우리한테 보여줬는데 어떻게 욕을 하지? 포스트시즌 못 가도 우리 선수들은 멋있었어.

- 다른 것보다 난 꼭 60홈런이 보고 싶어... 가능하면 62홈런도 보고 싶고... 6경기 3홈런도 어려운데 5홈런은 더더욱 욕심이겠지만, Y-DO니까 기대해볼래.

- 10경기 11홈런도 때린 선수다. 6경기 5홈런? 불가능할 것도 없지!

< 후폭풍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