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왕이면 >
“뭐야!! 뭔데!? 이거 뭔데, 대체!!”
최근 팀도 잘 나가겠다, 팀이 잘 나가니 경기장 분위기도 좋겠다...
이상하게 쿠어스 필드 직관을 시도할 때마다 지고, 이상하지도 않게 평소에도 훨씬 많이 패배하니 어느새 관심을 접었던 콜로라로 로키스.
하지만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고 신경 쓰지 않는 척하면서도 슬쩍슬쩍 로키스의 성적과 상황은 찾아보고 있었다.
‘안 그래도 몇 년 전에 유명했던 Y-DO를 영입했다고 하던데.. 근데 걔 망했다고 하지 않았었나? 내가 모르던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연평균 1,625만 달러나 주고 데려왔다기에 야구 좀 덜 챙겨보는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싶었다.
그런데 리그가 개막하자마자 굳이 들으려 하지 않아도 사방에서 Y-DO의 이름이 들렸다.
그것도 시즌 내내 꾸준히...
그래도 그가 사랑하는 건 콜로라도 로키스였고, Y-DO는 큰 의미가 없었기에 쿠어스 필드를 다시 찾지 않았다.
하지만... Y-DO의 미친 활약은 확 타올랐다가 곧바로 사그라지는 깜짝 활약이 아니었다.
아마 그렇게 꾸준히 들려왔던 Y-DO의 이름과 그의 활약상이 완전히 꺼진 줄 알았던 로키스를 향한 열정의 잿더미 속에서 아주 작은 불씨를 찾아낸 듯했다.
결국, 애써 외면하던 로키스 관련 소식을 찾아보게 되었으니까.
생각보다 훌륭한 이번 시즌 성적을 보고 기어이 다시 쿠어스 필드에 발을 디디고 말았으니까.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우리 팀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당신은 알아? 당신은!? 혹시 알아요, 무슨 일인지!?!?”
그렇게 근 2년 반 만에 찾은 쿠어스 필드.
그리고 어쩌다 보니 홈 6연전 내내 쿠어스 필드를 찾고 있었다.
[Y-DO의 51호 홈런! 6경기 만에 다시 홈런 한 개를 추가하면서 51호 홈런 고지에 올랐습니다! 일본을 거쳐 메이저리그로 돌아온 1990년의 세실 필더와 동률!]
[개인적으로는 그렇고, 팀 적으로는 오늘 경기 역시 7회에 역전 쓰리런 홈런을 때려내면서 6-4 리드를 가져오고요.]
[그렇습니다! 정말 최근의 로키스는 패배라는 단어를 잊어버린 듯합니다. LA 다저스와의 3연전 스윕을 시작으로 다이아몬드백스전 스윕, 자지언츠전까지 2연승에 이어 3차전마저 역전해냅니다.]
[이대로면... 9연승이죠? 이야... 이렇게 되면 와일드카드 경쟁에서 로키스를 빼놓을 수가 없어요. 9연승이 진행 중인 팀을 어떻게 빼나요?]
[73승 9무 56패. 어느덧 승률 0.566을 찍었습니다. 같은 기간 5승 4패를 기록한 와일드카드 2위 신시내티 레즈와는 고작 2경기 차! 9경기 만에 4경기 차를 줄이는 어마어마한 질주!]
[이러면... 2007년이 생각날 수밖에 없어요. 그때는 저도 10대 초반이었는데, 로키스가 유일하게 반짝였던 시즌이거든요? 그때의 모습이 보여요. 아니, 그때보다 더 반짝거린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거든요?]
계속된 패배와 좌절, 기대와 배신, 쌓여가는 피해 의식에 아예 야구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던 팬마저 쿠어스 필드로 불러들이는 콜로라도 로키스의 마법 같은 9월.
앤서니 모리스와 유영도에게서 시작한 필살기는 아직도 지속 시간이 유지되고 있었다.
어느덧 와일드카드 진출팀을 언급할 때 진지하게 언급되는 수준까지 치고 올라온 지금.
2007시즌, 시즌 막판 13승 1패를 거두고 포스트시즌 돌입 후 7연승을 달리며 21경기 20승 1패를 기록, 월드시리즈 준우승까지 차지했던 로키스의 유일한 전성기였다.
당시의 엄청난 질주에 사람들은 ‘록토버’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는데, 이번 시즌에는 그걸 빗대 ‘록템버’라는 별명이 생겼다.
10월에 미쳤던 당시처럼 9월에 미쳐버렸다는 것.
[개리 반스의 시즌 19호 홈런!!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로키스의 6인방 중 9연승 기간 동안 유일하게 홈런이 없었던 개리 반스까지 홈런을 기록합니다! 내셔널리그에 세 팀 존재하는 100패 페이스의 약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반스까지 터지면서 10연승을 눈앞에 둡니다!]
[로키스에서 이번 시즌 다섯 번째 20홈런 타자가 등장했습니다! 51홈런의 Y-DO, 23홈런의 매그니, 22홈런의 더햄, 21홈런의 가드너에 이어 게일 해니건이 20홈런 고지에 올랐습니다!]
[그렇죠! 역시 로키스에선 Y-DO가 해줘야죠! 연타석 홈런으로 순식간에 홈런 기록을 53까지 늘렸습니다! 로키스 타선이 홈런 군단이라고는 하지만, Y-DO를 제외하면 23, 22, 21, 20홈런이거든요? 20홈런 타자는 많은데, 전부 다 20홈런 근처에 있어요. 사실상 Y-DO의 1인 홈런 군단이죠, 이 정도면!]
완전히 미쳐버린 로키스는 ‘록토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훨씬 더 압도적인 ‘록템버’를 보냈다.
9연승에서 끝나지 않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쿠어스 필드로 불러들여 13연승을 달렸고, 이후 체이스 필드로 이동, 다시 원정 시리즈까지 스윕하며 16연승을 완성했다.
논란은 있지만, 어쨌든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은 1916년 뉴욕 자이언츠의 26연승.
2017시즌, 어마어마한 기세로 22연승을 달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이에 1승 모자란 21연승을 기록한 1935년의 시카고 컵스, 1880년의 시카고 화이트스타킹스.
20연승의 2002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1947년 뉴욕 양키스가 기록한 19연승.
로키스의 위에는 고작 6팀이 이름을 올렸을 뿐이었고, 1977년의 캔자스시티 로얄스가 가까스로 같은 위치에 자신들의 이름을 올려놓은 상황.
하지만 로키스의 기록은 현재 진행형이었고, 최근 분위기를 봤을 때 어지간해서는 꺾이지 않을 듯했다.
물론, 연승행진을 달리는 팀 대부분이 같은 느낌이었겠지만.
“Y-DO는 54홈런 고지에 오르면서 2007년의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3루수 역대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로키스는... 이야... 이게 말이 되나요? 이번 시즌 한때 11경기 차이까지 벌어졌던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격차를 줄인 것도 모자라 오히려 2.5경기 차로 앞섰습니다!”
“와일드카드 1위 신시내티 레즈와도 고작 0.5경기 차... 만약 이대로 로키스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게 된다면 드라마틱한 역전극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겁니다.”
“보통 19연승, 20연승씩 달리는 팀들은 대부분 최소한 지구 우승 정도는 차지했는데, 그건 좀 아쉽겠어요.”
“지구 우승을 노릴 만한 성적은 아니죠. 지금도 전력보다 훨씬 대단한 성적인데, 전반기를 5할 근처에서 마쳤을 때도 비슷한 평가를 들었거든요? 무엇보다 다저스가 지나치게 강한 것도 있고요.”
5할 승률도 어렵다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말했던 2041시즌의 콜로라도 로키스.
실제로 에레라, 페니, 스미스, 커닝햄, 더햄, 반스에 영도까지, 물음표로 가득했던 3년 차 이하의 젊은 선수들과 이제 막 KBO를 정복하고 복귀한 영도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할 거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이들이 동시에 폭발하지 않았다면 5할 승률도 버거웠을 것이기에 전문가들이 틀린 건 아니었다.
그저 이번 시즌 로키스에 영도가 있었고, 우주의 가호가 있었을 뿐.
“원래 로키스를 다룰 땐 항상 Y-DO의 홈런 기록에 초점을 맞췄는데... 이젠 로키스, 팀 자체를 다루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16연승을 달리면서 포스트시즌 진출권으로 들어온 팀인데 언급을 안 할 수가 없죠.”
“하지만 그렇다고 Y-DO를 안 다루는 것도 웃겨요. 54홈런이고 17경기를 남겨뒀는데, 17경기 7홈런이면 로저 매리스의 기록과 동률이 되잖아요. 어떻게 언급하지 않을 수 있죠?”
“... 로키스의 비중을 늘린다는 거지, Y-DO를 중심으로 다루는 건 변하지 않을 겁니다. 와일드카드 경쟁은 로키스와 레즈, 내셔널스, 브루어스까지 네 팀의 관심사지만, Y-DO의 60홈런과 62홈런은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나아가 전 세계 야구팬들의 관심사니까요.”
“크으, 역시 그렇죠? 후반기 58경기에서 22홈런이에요. 후반기 페이스만 보면 시즌이 끝났을 때 정확히 60.44홈런으로 로저 매리스 바로 아래까지 접근한다는 계산이 나와요. 계산보다 1, 2개만 더 치면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특별히 몰아치진 않지만, 시즌 내내 단 한 번의 슬럼프 없이 꾸준히 홈런을 추가해왔던 영도는 어느새 54홈런 고지를 밟았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소수점이 나오다 보니 60.44개라는 계산이 나오는데...
지금 페이스대로라면 아슬아슬하게 로저 매리스의 기록을 넘어서거나, 동률에서 멈추거나, 아슬아슬하게 못 미치거나 셋 중 하나.
몰아치지도 않고 슬럼프도 겪지 않아서 마지막까지 팬들의 심장을 쫄깃하게 하는 완벽한 페이스 조절을 보였다.
“자, 어쨌거나 홈런 군단이든 1인 홈런 군단이든 로키스가 공격 위주의 팀인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Y-DO 역시 이미 홈런 1위는 확실한 상황에서 로저 매리스의 기록에 도전하고 싶을 테고요.”
“그렇겠죠. 로키스 선발진이 홉슨과 에레라, 페니를 앞세워 기대 이상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대 이상이에요. 세 선수 모두 3점대 중후반의 FIP, 3점대 중후반의 ERA를 기록 중입니다. 에이스는커녕 2선발이라 생각해도 좋은 기록은 아니죠.”
“그래서일까요? 이번 시즌 100패 팀 세 팀 중 한 팀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홈 구장, 극단적인 투수친화구장 펫코 파크에서의 성적이 생각보다 좋지 않습니다.”
“절묘하게 1, 2, 3선발 등판 일정에 펫코 파크 원정이 걸렸거든요? 이대로 로키스가 와일드카드 티켓을 따낸다고 했을 때, 포스트시즌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가를 검증하는 무대가 될 수 있어요.”
완전히 붕괴된 서부지구 팀들은 로키스의 엄청난 기세를 막지 못하고 그대로 쓸려나갔다.
하지만 어디 서로 간의 맞대결로만 승패가 정해지던가.
로키스처럼 홈구장 때문에 매번 전력 보강에 실패하지만, 극단적인 홈구장 덕분에 가끔 고춧가루를 뿌리기도 하는 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16연승 중인 로키스를 펫코 파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원래 항상 날카롭고 예민한 데다가 혼자 따로 노는 성격이지만, 선발 경기 날만 되면 평소보다 수십 배는 더 대하기 어려워지는 선발투수님이지만... 오늘은 유독 심한데?”
“... 그냥 욕을 해.”
로키스가 16연승이라는 무시무시한 연승 행진을 달렸지만, 이 과정에서 주목받는 건 분명 영도를 중심으로 한 타선이었다.
실제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타선에는 역사에 남을 만한 페이스로 홈런 기록을 쌓아나가는 선수가 있었고, 타율 TOP 3와 내셔널리그를 대표하는 공수겸장의 유격수가 있었다.
또, ROY 유력 후보, 트레이드 후 폭발한 외야수, 시즌 중반 올라와 펀치력을 보여준 루키 내야수가 있었고, 20도루가 가능한 베테랑 포수도 있었다.
“칼을 간 거지. 우리가 갑자기 치고 올라가는 바람에 선수들 몸값도 같이 올라갔을 텐데, 투수들은 혜택을 거의 못 받았으니까.”
“자기 몫들은 다들 해줬으니까 자기 몫만큼은 올랐겠지.”
“... 너도 차라리 욕을 해라. 사람 마음이 그런가? 옆에 동료들 몸값은 엄청나게 올랐는데, 자기만 그대로면 괜히 억울한 거지. 특히 너! 너 때문에 더 그래. 넌 이제 완전히 전국구 스타 아냐!”
“... 전국구 스타가 될 만큼 활약을 하던지. 쿠어스 필드에서 사이 영, 이 정도면 가능할 텐데.”
“그러니까 욕을 하라고...”
그들도 사람인지라 팀이 주목받을 때 혼자 소외되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특히 메이저리거쯤 되면 어린 시절부터 주목받는 것에 익숙한 선수들이기에 더욱 심했고.
안 그래도 이번 시즌을 끝으로 어떻게든 로키스를 탈출하기 위해 원정 경기마다 자기 PR에 열중했던 제러드 홉슨을 필두로 로키스를 너무 사랑하는 홈보이 브랜든 에레라와 루키 커트 페니 역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이를 갈았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투수친화구장 펫코 파크에서의 경기.
홉슨은 물론이고, 평소 유쾌한 에레라와 깍듯한 페니까지도 평소보다 예민하게, 철저하게 경기를 준비했다.
‘오오, 나왔다, 나왔다.’
‘... 근데 왜 소곤거리는 건데? 그냥 크게 말해도 되는 거 아냐?’
‘그냥 왠지... 분위기가 평소 같지 않아서...’
‘평소랑 똑같은데... 원래 저 얼굴이랑 저 분위기인데 그게 구분이 된다니 대단하네.’
평소 같은 포커 페이스에 평소처럼 다가오는 모든 걸 거부하고 혼자 살겠다는 분위기만 팍팍 풍겨대고 있는데, 대체 어떻게 구분을 하는 건지...
영도는 오늘 또 한 번 느꼈다.
아무리 요즘 주변을 보는 시선이 넓어지고 팀과 동료들에게 조금이라도 신경 쓰기 시작했다지만, 리더감은 절대 아니구나, 라고.
“됐고 일어나. 우리나 준비하자고.”
“아니, 갑자기 일어나면!”
“당신 목소리가 더 커.”
“아, 그랬나...”
어쨌든 제러드 홉슨은 로키스의 에이스였다.
성적이야 홉슨, 에레라, 페니 셋이 큰 차이 없지만, 조금이라도 경험 많고 완성된 홉슨이 중요할 땐 더 잘해주겠지.
인간성이 어떻든, 인간으로서 매력적인 사람이든 아니든.
어차피 친해질 생각도 없고 서로 자기 역할만 해주면 되는 건데 에이스가 저 정도까지 경기에 집중해주는 게 반가우면 반가웠지, 싫어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포스트시즌은 가야지.’
애초부터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주변에서 워낙 기를 쓰고 달려들어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여기까지 휩쓸려 온 건 그렇다 쳐도 이제부턴 그래선 안 되지.
이미 와일드카드 2위까지 올라왔고 1위와도 0.5경기 차이인데 만약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다면...
여기까지 힘들게 올라온 만큼 그 후폭풍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 분명할 터.
남은 17경기는 그 누구보다 집중해서, 사력을 다해서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후폭풍은 감수하고 싶지 않으니까.
영도는 그런 생각으로 홉슨과 해니건을 뒤로 한 채 그라운드로 향했다.
조금이라도 더 몸을 풀어두고 싶어서.
< 이왕이면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