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0 > (125/200)

< 50 >

[지금 생각해보면 부상 위험까지 감수해가며 95마일 포심에 골반을 가져다 댄 앤서니 모리스의 투혼이 트리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영향이 없진 않겠죠. 앤서니 모리스가 한국 나이로 벌써 39세거든요? 손성호 선수보다도 나이가 많은데, 부상 한 번이면 그대로 은퇴까지 이어질 수 있는 나이잖아요. 그런 선수가 몸을 아끼지 않고 내던지는데 가뜩이나 컨디션 좋은 로키스 타자들이 이렇게 반응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에요.]

[상대가 LA 다저스 아닙니까? 포스트시즌은 이미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지만, 확장 로스터 적용 이후 유망주를 적극적으로 쓰려면 그래도 몇 승 더 하는 게 좋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예 힘을 못 씁니다.]

[어제도 오늘도 클로저가 등판할 필요조차 없는 일방적인 경기가 이어지고 있어요. 어제는 13-7, 오늘은 12-5. 2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이라니... 로키스 공격력이 정말 무섭네요.]

마치 게임에서 기를 99%쯤 모았다가 마지막 한 대를 때려 100%를 채우고 필살기를 쓰는 것처럼.

모리스의 살신성인이 100%를 채웠고, 로키스 타선은 필살기를 시전했다.

[역시 우리 유영도 선수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모리스가 인상적인 투지를 보여주긴 했지만, 유영도 선수의 역전 쓰리런 홈런이 아니었다면 그냥 투지로 끝났을 일이었습니다.]

[그랬다면 그건 그냥 다저스 입장에선 해프닝, 로키스 입장에선 불완전 연소였겠죠.]

[사실, 지난 시즌에도 서울 제츠에 23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겨주고 제츠 관련 모든 기록들, 나아가 KBO 관련 기록들까지 싸그리 갈아치우고 메이저리그에 와있는 선수 아니겠습니까? 레코드 브레이커! 히스토리 메이커의 전설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이어집니다.]

[50홈런, 60홈런은 물론이고 로저 매리스의 청정 타자 홈런 신기록까지 도전 중이니까요. 로키스도 창단 43년 동안 월드시리즈 우승이 없는 팀인데, 혹시...]

모리스의 투혼이 로키스의 에너지를 100%로 만들어줬다면, 필살기 커맨드를 입력한 건 영도의 홈런이었다.

에너지만 100%를 모아도 커맨드가 입력되지 않으면 필살기가 나갈 리 만무.

영도의 홈런이 커맨드였고, 이후 로키스 타선 전체가 필살기 버프를 받아 펄펄 날았다.

루키 페드로 케인에게 7이닝 무실점으로 꽁꽁 묶였던 타선은 이제 없었다.

물론, 시리즈 2, 3차전에는 다저스에서 5선발과 임시 선발을 내세웠지만, 다저스에서 그 정도면 타 팀의 3, 4선발과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로키스 타선의 상승세는 상대 투수의 수준을 언급하며 깎아내릴 이유도, 근거도 없었다.

지금 로키스는 분명 미쳐 있었다.

[어우, 기록 경신, 레코드 브레이커로서의 활동은 계속된다는 걸 이런 식으로 보여주는 건가요? 유영도 선수, 3경기 연속 홈런에 오늘 경기 멀티 홈런까지 터뜨리며 시즌 50호 홈런을 달성합니다.]

[크으... 2035시즌 뉴욕 양키스의 제리 페이지 이후 처음으로 나온 50홈런 기록이 유영도 선수, 한국 출신 선수에게 나오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있을까요?]

이런 최근 기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영도의 50홈런.

이번 시즌에만 세 번이나 다저스에게 시리즈 스윕을 빼앗았다고 자축하는 50호 홈런.

<>

<>

2035시즌 이후 5년 동안 없었고, 6시즌 만에 드디어 등장한 50홈런 타자.

주인공은 메이저리그 역사에 도전할 만한 파워 잠재력을 가졌다고 평가받았지만, 성장이 정체되어 표류했던.

그러나 메이저리그를 떠나 충격적인 KBO 진출을 선언한 뒤, 그동안 정체되었던 성장이 폭발적으로 이뤄지면서 65홈런과 함께 KBO의 타격 관련 기록들을 우수수 갈아치우고 복귀한 돌아온 괴물.

심지어 이런 선수를 연평균 1,625만 달러 수준으로 영입했으니...

막말로 연평균 4,000만 달러짜리 선수여도 50홈런을 기록하면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을 텐데, 1,625만 달러...

덴버, 나아가 콜로라도 주, 나아가 미국의 한인 커뮤니티, 다시 나아가 미국의 야구팬들이 뜨겁게 열광하고 있었다.

***

[역대 58번째, 32명째, 그리고 6시즌 만의. Y-DO, 단일 시즌 50홈런 기록! 내셔널리그 3루수 역대 단일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 그리고 남은 경기는 30경기!!]

[Y-DO의 멈출 줄 모르는 홈런 페이스... 홈런 1개 더 추가하면 1990년 세실 필더와 동률, 2개 더 추가하면 아시아 야구를 경험하고 컴백한 선수 중 최다 홈런 신기록!]

[“대체 Y-DO의 기록이 몇 개야!?”, 잠깐 눈 감고 뜨면 작성되는 새로운 기록에 언론들 취재 경쟁 불붙어]

[드디어 찾은 아시아권 슈퍼스타!! 메이저리그, 유럽에 이어 아시아권 슈퍼스타까지 찾아내며 미뤄둔 세계화에 박차 가할까]

- 미친... 아, 이제 힘이 좀 빠졌구나, Y-DO도 사람이구나, 하면 다시 몰아치고, 또 힘 빠졌구나, 이젠 진짜 사람이겠지 생각하면 또 몰아치고... 뭐야? 지금 우리 조련하는 거야?

- 조련하면 좀 어때! 얼마든지 조련당해도 좋아!!

- 로키스 놈들... 부럽다... 우리 팀에도 저런 홈런타자 있었으면!!

- 이번 시즌 메이저리그 홈런 군단은 우리 레즈인데, 왜 최고 홈런 타자는 로키스에 있냐!!

- 야. 로키스. 어차피 안 되는 와일드카드 티켓 같은 거 붙잡지 말고 놔줬어야지. 저렇게 무시무시한 타자가 고작 로키스에서 썩는 게 불쌍하지도 않냐?

ㄴ 222222 우리 레드삭스였으면 이미 양키스의 한심한 제리 페이지는 물론이고, 뉴욕의 남자라면서 배트 말고 다른 방망이나 휘두르고 다니는 놈보다 인기 많았을 텐데...

ㄴ 3333333333 대신, 레드삭스가 아니라 우리 컵스였어야지.

ㄴ 위에 두 놈들 뭔 개소리냐? Y-DO는 이미 팀빨 볼 수준은 지났지. 약쟁이였지만, 본즈나 맥과이어가 팀이 전국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전국구라고 봐야 하나.

ㄴ 카디널스도 내셔널리그에서 인기로는 TOP 5에 들어가지 않나?

- Y-DO의 유일한 단점은 팀이 로키스라는 것. 로키스 생각하면 이번 시즌 Y-DO의 홈런 기록이 어디까지 쌓일지, 그리고 다음 시즌에 어디로 이적할지, 두 개만 궁금함.

ㄴ ... 팩트로 때리지 마... 로키스 팬이지만, 우리도 알고 있다구... 그래도 이번 시즌 끝날 때까지만 좀 행복하게 놔두면 안 될까?

ㄴ 아아... 미안... 앞으로는 안 할게...

[‘KBO 수준이 특별히 낮았던 게 아니었구나...’, 지난 시즌 못지않은 무시무시한 홈런 페이스에 놀란 한국 야구계]

[6시즌 만의 50홈런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특급 유망주!! 메이저리그 역사를 새로 쓸 거라던 팬들의 기대에 7년 만에 부응한 유망주의 모습에 美 전역이 들썩]

[한-미 커리어 통산 200홈런 고지 오른 유영도! 혹시... 지난 시즌 서울 제츠 소속으로 때려냈던 65홈런 그대로 기록하고 메이저리그 통산 150홈런 고지 오를까?]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메이저뽕 오지게 맞아서 지난 시즌 절대영도 개까던 놈들 다 어디 갔냐? 메이저에서 2할, 20홈런 따리가 OPS 1.3에 65홈런 찍었다고 KBO X나 무시하더니 지금 어떻게 된 거냐?

- 메이저리그에서 OPS 1.0에 50홈런... WAR 두 자릿수 거의 확정적... 대체 이런 선수가 어떻게 한국인 핏줄에서 나왔지?

- 응, 미국 선수.

ㄴ 그러니까 한국인 핏줄이라고 X끼야. 부모님 다 한국 분인데 제대로 읽고 좀 지X해라, X랄을 해도.

- 유영도는 그냥 미친 거임. 아마 앞으로 10년, 20년, 50년, 100년, 1,000년이 지나도 유영도 같은 선수 헬반도에서 안 나온다.

ㄴ 당연한 거 아님? 그래도 1,000년 정도면 또 모름. 우리의 소드마스터 척이 현대 시대에 태어나면 저 정도 피지컬은 가지고 태어날 수도...

ㄴ 와! 소드마스터 척 아시는구나!

- 그래도 이번 시즌 메이저 통산 150홈런 고지는 좀 어렵다고 본다. 대신 다음 시즌까진 찍을 듯. 이번 시즌 한 195홈런 정도 치고 다음 시즌에 250홈런 찍자.

- 이번 시즌 끝나면 어디로 갈까? 로키스도 유영도로 이득 조금이라도 보려면 1년 렌탈로 팔아야지, 반년 렌탈은 손해가 너무 크다

- 연장 계약 생각하면 양키스, 레드삭스, 다저스가 최고고, 그런 것 없이 1년 딱 뛰고 나올 거면 어딜 가든 상관없지. 컵스도 괜찮을 듯

49홈런과 50홈런 사이에는 절대 넘을 수 없는 높디높은 벽이 존재했다.

안 그래도 10경기 연속 홈런이 나왔던 시즌 초반부터 일각에서 조금씩 제기되기 시작해 현재까지 이번 시즌 메이저리그의 핵심 이슈로 꾸준히 언급되었던 영도의 50홈런 기록.

8월을 끝내는 마지막 날, 영도는 기어이 50홈런 고지에 올랐고, 당연히 전 세계의 메이저리그 팬들이 열광했다.

시즌 내내 화제의 중심이었는데 열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메이저리그에서 고전하다가 KBO 진출 직후부터 폭발한 영도 때문에 고생했던 한국 야구팬들이 기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메이저리거라지만, 고작 저 정도 수준 선수에게 리그 전체가 탈탈 털렸다면서 그릇된 메이저리그 부심을 가진 이들에게 같이 탈탈 털렸기 때문.

그래서 최근 한국 야구 커뮤니티에선 그릇된 메이저리그 부심을 가진 팬들, 흔히 말하는 ‘메쟈뽕’에 취한 이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KBO 65홈런 타자가 MLB에서도 60홈런 정도 때린다고 놀려대는 다른 야구팬들 앞에서 할 말이 없어지자 알아서 몸을 사리기 시작한 것.

조금의 틈만 보이면 다시 나타날 워리어들이지만, 일단 지금은 커뮤니티가 깨끗해졌고, 그런 것까지 영도의 인기에 더해졌다.

“형, N사에서 스폰서 계약...”

“내가 그런 거 안 하는 거 알지? 난 내가 쓰는 장비만 쓰니까 그 회사들이나 돌면서 계약해.”

“아니, 아무리 그래도 계약 규모가... 형 배트는 특히 국산 중소기업 배트 쓰...”

“그래서? 그래서 돈 때문에 N사랑 계약하고 다음 시즌 홈런 30개만 치라고?”

“... 알았어. 적당히 규모 맞춰서 계약 제의해볼게...”

“그래. 난 네가 부탁한 것처럼 야구만 잘할 거야. 나머진 알아서 해. 알지?”

“... 그래도 무기는 쥐여줘야 뭘 알아서 하든 말든 하지...”

“50홈런 치고 30경기 남긴 선수가 소속 선수인데 그것보다 더 대단한 무기가 있나?”

보통 인기가 올라가면 선수는 이를 통해 연봉 외에도 각종 스포츠 계약과 광고 계약 등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얻지만...

영도는 야구에 집중한다고 여러 가지 제약을 걸어두었기에 생각만큼 이득이 크지 않았다.

회사 입장에선 한국을 넘어 미국과 북미, 야구팬 한정으로 아시아, 유럽, 오세아니아 등에서 엄청난 붐이 일어난 지금 최대한 노를 젓고 싶겠지만...

“돈은 야구 잘하면 따라오는 거지, 내 야구에 지장이 가면서까지 벌고 싶진 않아. 알잖아? 네가 받아들여야지.”

“... 에휴, 누가 뭐랬나...”

“받아들이기 싫으면 언제든지 말해. 받아들여준다는 회사 다시 찾으면 되니까.”

“어우! 그런 말은 하지도... 아니다, 갈 때 이번에도 나 데리고 가줄 거면 마음대로 해도 돼.”

안 그래도 시즌 내내 수많은 취재진과 함께했는데, 50홈런 이후에는 그게 적은 숫자였구나, 싶을 만큼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개인 휴대폰은 이미 전원을 꺼둔 지 오래고, 승도 역시 처음으로 에이전트란 직업에 질린다는 기분을 느꼈을 정도.

하지만 그런 관심에도 영도의 시선은 다음 경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실제로도 눈으로 다음 경기 상대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투수진을 분석 중이었고.

언론과 팬들의 주목과 무시, 비난까지 모두 받아봤기에 관심이 아무리 커져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도 영도는 다음 목표인 55홈런, 60홈런, 두 자릿수 WAR, 그리고 최근 들어 조금씩 신경 쓰기 시작한 팀의 와일드카드 진출만을 생각했다.

시간을 거스른 덕분에 여러 가지 이득을 얻었지만...

아마 가장 큰 이득은 어지간한 일에 흔들리지 않을 단단한 정신력일 수도 있었다.

< 50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