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승부처 > (121/200)

< 승부처 >

[아악! 갑니다!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큰 타구! 중견수가 쫓아가는데... 아악! 펜스 윗부분을 때리고 튕겨 나옵니다! 다시 확인해봐야겠지만, 일단 홈런 사인은 나오지 않았고, 1루 주자 해니건은 3루를 돌았습니다!]

[Y-DO는 2루까지 서서 들어갔네요. 일단은 2타점 2루타. 3-4까지 쫓아가는 장타가 나왔는데... 아아, 정말 아슬아슬하게 안 넘어갔네요.]

[아아... 10cm만 높았어도! 10cm만 높았어도 동점 쓰리런 홈런이 되었을 텐데 로키스를 응원하는 입장에선 정말 아쉽겠습니다.]

‘너무 정타로 맞았어. 조금만 아래를 때렸으면 무조건 넘어갔을 타구인데.’

영도라고 해도 모든 장타가 홈런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2사 1, 2루에서 2타점 2루타면 굉장히 좋은 결과였지만...

고작 몇 cm 때문에 2루타가 되었다는 것, 몇 cm만 높았어도 동점이 되었으리라는 것 때문에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영도는 클러치 상황에서 2타점 2루타로 100점짜리 이상의 결과를 만들고도 뭔가 불만족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승도 정도가 아니면 그 누구도 영도의 표정에서 기분을 읽을 수 없겠지만.

[그러면 이제 폭탄은 프레드릭 더햄에게 넘어옵니다. 과연 더햄이 클러치의 무게를 버텨낼 수 있을지...]

[클러치 상황에서의 스탯 자체는 나쁘진 않습니다. 시즌 성적보다는 조금 낮은 편이지만, 애초에 루키라서 유의미한 차이가 발생할 만큼 스탯이 쌓인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중요한 순간에 특별히 약한 것도 아니에요. 어떤 상황에서든 꾸준하죠.]

[루키가 그 정도 해주면 더 바랄 것도 없지 않습니까? 성적 자체도 ROY 유력 후보로 꼽힐 만큼 대단하고요.]

[다만, 임팩트는 조금 부족하긴 한데... 어쩌면 Y-DO가 원망스러울 수 있겠네요. 로키스로 향하는 모든 관심을 다 가져가버려서...]

어쨌거나 영도의 2루타로도 마지막 1점을 따라잡지 못한 로키스로선 더햄의 타석이 매우 중요해졌다.

남은 아웃 카운트는 1개, 점수 차이도 1점.

다행히 영도가 2루를 밟아준 덕분에 짧은 안타 하나로도 동점을 노려볼 수 있는 상황.

[원바운드 공. 데미안 루이스, 확실히 최근 폼이 좋지 않습니다. 안 그래도 9회를 어려워하는 투수인데...]

[클로저의 가벼운 부상, 9회를 어려워하는 프라이머리 셋업의 아쉬운 최근 폼, 하필이면 만난 와일드카드 경쟁의 다크호스까지. 내셔널스가 쉽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노려라. 과감하게 돌려.’

굳이 따지자면 프레드릭 더햄은 영도와 비슷한 과였다.

물론, 기량이나 재능 말고 성격이.

루키임에도 감정 기복이 거의 없는 정교하고 노련하고 냉정한 플레이가 장점인 프레드릭 더햄.

이런 멘탈적인 부분이 전체적으로 무난하고 눈에 확 띄는 장점은 부족한 더햄을 ROY 후보로까지 올려놓았다.

[역시 타격 타이밍은 기계처럼 잡아내는 더햄! 일단 그라운드를 반으로 갈랐습니다!]

[하지만 외야가 전진한 상태거든요? 아직 몰라요!]

‘이건 무조건 뛰는 거지!’

빠른 땅볼 타구로 2루 베이스 옆을 스치는 안타를 만들어낸 프레드릭 더햄.

내셔널스도 실점을 방지하는 데 모든 초점을 맞추었기에 외야가 전진한 상태였다.

2아웃이라 맞는 순간 바로 뛰었지만, 타이밍은 아슬아슬하게 아웃에 가까웠다.

그러나 영도는 단 0.1초의 고민도 없이 3루를 박차고 홈으로 쇄도했다.

코치 역시 당연하다는 듯 미친 듯이 팔을 돌렸고.

9회 말 2아웃의 1점 차.

언제나 그렇듯 다음 타자가 아무리 좋은 타자여도 안타가 나올 확률보단 아웃될 확률이 2배 이상 높았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홈으로 뛰어야 했다.

‘믿는다, 포터!!’

크리스 맥키니, 로기 쿤과 함께 내셔널스 타선을 이끄는 중견수 데미안 포터.

비교적 낮은 2할 5, 6푼대의 타율은 30+홈런이 있으니 단점도 아니었다.

그의 진정한 단점은... 어깨가 약하다는 것.

수비 실수에 기대는 주루 플레이는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절대 해선 안 되는 플레이겠지만.

지금은 믿을 게 그것밖에 없었다.

[살짝 3루 쪽으로 치우치는데요!]

‘저리 꺼져, 인마.’

포터는 영도의 기대에 부응했다.

짧은 타구임에도 투 바운드로 홈에 도착했고, 방향도 3루 쪽으로 치우쳤으니까.

이제 다음은 영도의 몫.

‘먼저... 간다!’

[호드리구가 받아서 급히 쫓아와 몸을 날려보지만! 닿지 않았습니다! 닿지 않았습니다!! Y-DO가 피했습니다!]

[배를 앞으로 쭉 내밀면서 허리를 활처럼 휘어 피했죠! 호드리구는 잘했어요! 잘 받았고, 빠르게 복귀했지만, Y-DO가 생각보다 빠르고 민첩했던 거예요!!]

[역시 홈에서 세이프 판정! 콜로라도 로키스! 9회 말 1-4로 뒤지던 경기를 2아웃 이후 연속 안타로 4-4, 동점을 만들어냅니다!]

[이게 바로 야구는 ‘9회 말 2아웃부터’의 예시죠! 역시 야구는 재밌어요, 재미있는 스포츠입니다!]

영도는 생각보다 빨랐고, 포터의 송구는 생각보다 빠졌다.

그리고 그 이전에 분위기에 제대로 올라탄 로키스 타선은 생각보다 무서웠고, 생각보다 응집력이 강했다.

내셔널스가 잠깐 보여준 약간의 틈.

그 정도의 틈이면 충분히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다.

“좋아! 우리가 분위기 완전히 먹었어!!”

“이대로 역전하자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조셉! 조셉! 이제 너한테 달린 거야, 알지!?”

당연히 로키스 덕아웃의 분위기는 더 이상 끓어오르기 어려울 정도까지 달아올랐다.

점수는 동점이지만, 1-4에서 4-4로 쫓아간 로키스는 축제 분위기, 내셔널스는 초상집.

이대로 로키스가 역전한다 해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만큼 양 팀 분위기는 극과 극으로 벌어졌다.

[로키스... 무섭습니다! 이 경기를 기어이 타이 브레이커로 끌고 갑니다!]

[기세가 오른 팀이 왜 무서운지 로키스가 제대로 보여주는 거죠. 9회 말 3점 차, 그것도 내셔널스 정도의 강팀을 상대로 9회 말 3점 차면 거의 뒤집히는 경우가 없는데, 그냥 9회 말도 아니고 9회 말 2아웃 이후 연속 안타로 이걸 잡아버렸어요.]

12회 말까지 연장을 치러도 팀 당 무승부는 많아야 2, 3경기 정도인데 이번 시즌 로키스는 어쩌다 117경기 만에 7개의 무승부를 쌓았을까.

점점 짧아지는 시청 시간, 타 종목 대비 지나치게 긴 경기 시간에 대한 불만, 어떻게든 젊은 층에 다가가려 했던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초조함...

여러 요소가 겹치면서 메이저리그는 그토록 고집했던 ‘전통’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KBO처럼 연장전을 12회 말로 제한했다.

하지만 9이닝을 3, 4시간 동안 치르는데, 연장전을 또 1시간을 치른다는 것에 불만을 가지는 팬들이 많았다.

‘이왕 이럴 거면 아예 축구의 승부차기, 아이스하키의 슛 아웃처럼 심장이 쪼그라드는 긴장감과 경기 시간 단축,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규정을 도입하자’는 의견에 따라 적용된 것이 2010년대부터 시범적으로 도입되었던 ‘타이 브레이커’, 한국어 번역 ‘승부치기’였다.

물론, ‘시간제한 없는 끝장 승부’를 자랑스럽게 여기던 올드 스쿨 팬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조금만 지루해도 채널을 돌려버리는 시대의 변화, 야구 외에도 볼 게 많은 매체의 변화, 젊은 층의 취향 변화 등을 이길 순 없었다.

시간은 모든 감정을 무디게 했고, 지금에 와서는 올드 스쿨 팬들의 불만도 무뎌져 승부치기도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다.

[양 팀 모두 마지막 기회만을 남겨두었습니다. 선공에 나선 내셔널스는 9번 페냐, 1번 올슨을 베이스로 내보내고 2번 로기 쿤부터 시작합니다.]

[내셔널스는 경기를 이대로 끝낼 수 없죠. 이대로 끝나면 무승부로 끝나도 오늘 못 자요.]

서로 에이스 카드를 꺼내 든 상황에서 로키스는 무승부만 거둬도 이득이긴 했다.

제러드 홉슨은 코트니 매든에 비해 두세 계단은 떨어지는 투수였으니까.

상대적으로 조급하고 억울한 건 내셔널스 쪽이었다.

[아아!! 크리스 맥키니까지 삼진으로 물러납니다! 조셉 커닝햄의 무지막지한 괴력! 파인스틴의 빈자리는 이제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파인스틴? 그게 누구죠? 로키스 팬들의 마음속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상승세의 이유가 아주 뚜렷합니다. 루키 셋이 나와서 셋 모두 ROY 투표 TOP 7에 들어갈 만한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한 번 실패했던 2, 3년 차 선수들이 보직을 옮겨 살아나고, 기존 잘해주던 선수들은 계속 잘해주니까 당연히 팀 성적이 좋아질 수밖에요.]

[신입생 Y-DO도 잊어선 안 되겠죠.]

하지만 보직 변경과 동시에 다른 선수가 되어버린 듯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이기 시작한 커닝햄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로기 쿤이 좌익수 플라이, 크리스 맥키니가 삼진.

내셔널스가 자랑하는 30+홈런 3인방 중 2명이 벌써 맥없이 떨어져 나갔다.

2루 주자를 3루까지 보내긴 했지만, 2아웃이 된 시점에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고 다들 생각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의외로 그게 의미가 있었다.

[뚝 떨어지는 슬라이더에 헛스윙... 아! 패스드 볼! 패스드 볼! 볼 빠졌습니다! 3루 주자 로기 쿤, 홈으로 쇄도하고 호세 발베르데는... 던지지 못합니다! 5-4로 다시 앞서나가는 워싱턴 내셔널스!]

[아... 루키에겐 너무 부담스러운 순간이었나요? 팀 동료들이 거의 패배했던 경기를 여기까지 끌고 와주니까 본인도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몸이 굳은 것 같습니다. 사실, 발베르데 포수는 주전인 와그너는 물론 트레이드로 팀을 떠난 피자로보다도 수비는 훨씬 좋다고 평가받은 루키 포수거든요?]

[중요한 순간에 경험 부족을 드러내며 패스드 볼로 결정적인 실점을 허용하고만 호세 발베르데. 어쩌면 오늘 경기의 승패를 가르는 치명적인 실책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역시 모든 문제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나오죠. 발베르데가 수비에서 실수를 할 줄이야...]

해니건이 시작하고 영도가 터뜨리고 더햄과 커닝햄이 이어갔던 로키스의 무시무시한 기세.

커닝햄의 역투에 힘입어 무실점으로 마무리하는 듯했던 승부치기에서 나온 믿었던 수비형 포수, 호세 발베르데의 실책, 실점으로 이어진 실책은 이런 무시무시한 기세를 싸늘하게 얼려버렸다.

다행히 커닝햄이 흔들리지 않고 다음 타자를 잡아내며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냈지만...

[아! 빗맞았습니다! 유격수 크리스 매크니가 대쉬, 2루로, 다시 1루에! 더블 플레이! 여기서 또다시 믿었던 선수 쪽에서 찬물을 끼얹습니다...]

[아... 어이없게 1점을 내주긴 했지만, 1점이면 그래도 잘 막은 거거든요. 승부치기에서 2점, 3점 나오는 게 드문 일은 아닌데, 여기서 해니건이 더블 플레이를...]

한 번 얼어붙은 분위기는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그토록 믿었던, 9회 말을 뜨겁게 달궜던 폭풍의 시작을 알린 해니건마저 더블 플레이로 찬물을 들이부은 상황에서...

‘이기려면 홈런, 무승부라도 하려면 무조건 안타인가.’

2번 타자, 영도가 타석에 들어섰다.

오늘 경기 승패는 물론이고, 오늘의 허탈함이 내일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여기서 끊어줘야 하는 중요한 역할.

타석으로 향하는 영도의 뒷모습에서 로키스 동료들과 팬들의 시선이 떨어지질 않았다.

< 승부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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