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언더독 > (120/200)

< 언더독 >

“형. 이제부턴 좀 위험한 거 아냐? 9월에는 다시 같은 지구 팀들 위주로 붙으니까 비교적 널널하다지만, 8월 남은 일정이 지옥인데?”

“포스트시즌을 노린다면 8월 잔여 일정이 최악이긴 하지.”

"그러면 포스트시즌 안 노리려고 그랬어? 요즘 분위기가 이렇게 좋은데? 아니, 성격은 나도 잘 알지만, 그래도 좀 욕심이라는 걸 가져봐라. 팀을 포스트시즌에, 그것도 로키스 같은 약팀을 올려보낸다고 생각해 봐. 죽을 때까지 돈 걱정이랑은 안녕이라니까?"

"지금도 돈 걱정은 안..."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3연전을 2승 1무로 마무리한 로키스는 58승 7무 52패로 승률 0.527, 후반기 18승 1무 11패로 승률 0.621을 기록 중이었다.

와일드카드 막차 가시권을 83승으로 본다면 남은 45경기에서 25승이 필요한 상황.

절대 쉽진 않겠지만, 후반기 로키스의 페이스를 봤을 때 불가능하지만은 않아 보였다.

“시끄럽고! 내 말 들어봐. 이번 시즌 내셔널리그는 완전 미쳤어. 세 개 지구 1위 팀이 전부 6할 승률을 훌쩍 넘기고, 서부 지구 빼면 나머지 2개 지구 2, 3위들이 다 5할 7, 8푼이야. 이게 말이 돼?”

문제는 이번 시즌 내셔널리그에 역대급으로 심각한 전력 양극화가 나타났다는 것.

후반기 들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까지 무너지면서 지구 1, 2위를 제외한 서부지구가 완전히 붕괴된 것이 가장 큰 원인. 

지구 꼴찌팀들, 파이리츠, 말린스, 파드리스가 100패 페이스로 신나게 내달리는 것도 문제였다.

이런 꼴찌 팀들을 잡아먹은 상위권 팀들의 승률은 자연스럽게 확 뛸 수밖에. 

서부지구 세 팀까지 잡아먹은 중부, 동부지구 2, 3위 네 팀 중 세 팀의 승률이 0.570을 넘겼으며, 나머지 한 팀도 0.560에 육박했다.

결국, 로키스는 0.527의 낮지 않은 승률에도 불구하고 와일드카드 순위 2위와 6.5경기 차 6위에 그쳤다.

4위와도 5.5경기나 차이 날 정도로 상위권 팀들의 승률이 심상치 않은 지금, 로키스의 8월 잔여 일정은 전부 상위권 팀들과의 맞대결이었다.

“진지하게 포스트시즌을 목표로 한다면 오히려 이런 일정에 감사해야지. 이길 때마다 승차가 한 경기씩 줄어드는데.”

와일드카드 2위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홈 3연전, 승률 6할이 넘는 시카고 컵스와의 홈 3연전.

홈 6연전을 끝내고 밀워키로 날아가 와일드카드 3위 브루어스와 원정 3연전, 그리고 다시 워싱턴으로 날아가 3연전.

끝나면 홈으로 돌아와 이번 시즌 승률 1위 LA 다저스와의 3연전.

굳이 만나서 좋을 것 없고, 와일드카드 경쟁팀도 아닌 시카고 컵스와의 3연전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중간중간 약팀이 섞였다면 더 좋았을 강팀과의 15연전이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내셔널스, 브루어스와의 격차를 빠르게 좁힐 기회이기도 했다.

다저스는... 그 압도적인 전력과 승률에 비해 생각보다 이번 시즌 좋은 기억이 많은 팀이었고.

“아주 이상적인 말이네. 좋게만 생각하면 하나도 틀린 게 없는 말이지만... 글쎄...”

“글쎄고 나발이고 일정은 나왔고, 우린 이겨야 하는 거지. 포스트시즌... 가는 게 너한테도 좋은 거 아냐?”

“우리야 형이 클러치 상황에서, 팀이 정말 필요로 할 때 잘해주면 좋지. 중요할 때, 그리고 포스트시즌에 강한 선수는 몸값에 프리미엄이 붙으니까. 단순히 스탯만 잘 찍히는 게 아니라 팀에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는 선수.”

“그러니까. 내가 오랜만에 팀 승리도 좀 신경 쓰면서 하겠다, 이거야. 그렇다고 뭐가 달라질 건 없겠지만... 최고의 팀 플레이는 결국 최고의 개인 플레이 아니겠냐.”

“마음대로 해. 팀에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는 선수까지 되어준다면야 좋지만, 회사 분위기는 이미 배가 부르다는 분위기거든. 형한테 더 바라는 것도 미안하고 염치 없다는 분위기더라. 이미 너무 잘해줘서.”

“하긴... 나도 예상 못 한 성적인데. 그러고 보면 에드가가 참 대단한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야. 아직 3할은 못 찍었지만, 50홈런은 넘을 것 같으니 틀렸다고 하기도 뭐하니까.”

이미 타율도 2할 9푼에 육박하고 OPS는 0.970을 넘어 꿈의 1.000을 향해 내달리는 중.

WAR 역시 후반기 30경기 만에 2.0 가까이 쌓으며 6.0을 넘겼다.

FA 선수 기준 몸값 계산으로 5,000만 달러, 연봉조정 기준 3,300만 달러만큼의 활약을 117경기 만에 해낸 상황.

이 정도면 팀에 승리를 가져다주고, 포스트시즌, 월드시리즈 우승을 가져다주고... 이런 것들 다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미 줄 수 있는 몸값의 한계치까지 박박 긁어 투자해야 데려올 수 있는 선수인데, 거기서 더 몸값을 올려도 투자 금액의 한계 때문에 더 챙겨줄 수도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로키스에서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했으면 좋겠다. 어차피 딱 보니까 이번 시즌이 로키스에서의 마지막 시즌인데, 월드시리즈 우승은커녕 지구 우승도 없는 로키스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안겨주고 떠나는 거지! 40년 만의 60홈런은 덤이고 청정 타자 최다 홈런 신기록은 옵션! 그러면 바로 이 시대 메이저리그의 대표 영웅이 되는 거거든!”

“그래, 그렇게만 된다면 아무리 아시아계라 해도 영웅은 무조건 되겠다. 그게 가능만 하다면 말이지.”

“왜 불가능할 거라 생각해? 와일드카드 티켓만 잡아봐! 후반기 로키스보다 승률 높은 팀이 있어? 어차피 야구는 흐름이고, 후반기 기세가 포스트시즌으로 이어지는 거 아닌가?”

“후반기 기세는 확실히 좋긴 하지. 당시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전반기가 많이 아쉬워서 그렇지.”

후반기 30경기 승률 0.620.

아직 와일드카드 티켓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후반기 기세가 워낙 좋다 보니 슬슬 로키스를 와일드카그 후보로 꼽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45경기에 6.5경기 차.

사실, 포스트시즌 진출팀이 가려지는 시즌 막판쯤 되면 한 게임 차 줄이는 데 3주는 걸린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만큼 시즌 막판에는 한 경기 차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

그런데도 미약하게나마 로키스를 와일드카드 경쟁의 다크호스로 꼽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건 그만큼 후반기 로키스의 기세가 무섭다는 뜻이었다.

정말 어려운 상황이지만, 어떻게든 와일드카드 막차 티켓만 따낼 수 있다면.

무시무시한 후반기 기세에 마치 기적과도 같은 포스트시즌 진출 스토리까지 더해진다면.

콜로라도 로키스의 마지막 종착점이 어디일지는 그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좋아! 그럼 형 말대로 좋은 기회니까 일단 내셔널스부터 두들겨 패버려! 차례대로 두들겨 패면 뭐라도 되겠지.”

“뭐야? 아까는 이미 만족해서 욕심 안 내도 된다더니.”

이젠 그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콜로라도 로키스의 시즌은 영도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어차피 영도가 좋아하는 개인 성적 역시 60홈런을 향해 내달려야 하는 상황.

영도의 성공과 로키스의 성공은 이제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한몸이 되어 있었다.

***

“아니, 대체 왜!! 대체 왜 우린 저런 투수가 없는 건데!!”

콜로라도 로키스를 서포팅하는 대표적인 스트리머 Rocky-Venom, 본명 메이슨 쉬크.

그는 평소처럼 수천 명의 시청자와 함께 로키스 경기를 시청하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원래 유쾌한 방송을 지향하는 그였기에 로키스가 패배한다고 해도 진심으로 짜증 내거나 화를 내는 경우는 잘 없었는데, 오늘 경기는 예외였다.

“빌어먹을 놈의 매든 놈!! 왜 쿠어스 필드에서 에이스 놀이를 하고 지X이야, X랄이!!”

와일드카드 티켓 확보를 위해 매우 중요한 내셔널스와의 홈 3연전.

로키스는 당연히 필리스전에 아껴둔 에이스 제러드 홉슨을 1차전 선발로 내보냈다.

문제는 내셔널스 역시 로키스를 경계해 에이스 코트니 매든의 등판 일정을 조정했다는 것.

비교적 여유롭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격차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후반기 기세가 무섭고 다음 달부터 상대적으로 쉬운 일정이 이어지는 로키스를 한 번 꺾어주겠단 의도였다.

“지더라도 타격전이면 말을 안 해, 답답해 뒤지겄어, 아주! 우리 홉슨도 쿠어스 필드에서 오랜만에 잘 던졌는데, 왜 이러는 거야!!”

- LOLOLOLOL 이게 로키스지. 상대 에이스가 적당히만 던져도 거의 못 이기고, 평소처럼 던지면 절대 못 이기는 팀...

-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 코트니 매든, 언제나처럼 8이닝 1실점으로 마무리... 그것도 쿠어스 필드에서!!

- 정말 기적이 일어나서 와일드카드전에 진출해도... 워싱턴 내셔널스랑은 만나면 안 돼. 차라리 똑같이 공격으로 맞붙는 신시내티 레즈가 낫지.

- 지금 그거 걱정할 때냐. 누가 됐든 한 팀이 박살 나면 감사합니다, 하고 들어가야지.

- 아직 9회 말 남았다!! 왜 다들 끝난 것처럼 벌써부터 우는 소리들이야!?

- 그래! 9회 말! 오늘 쟈니 헨슨 컨디션 안 좋아서 못 나온다며! 데미안 루이스는 세이브 상황마다 삽질하기로 유명한데, 지쳤는지 요즘 폼도 좀 떨어져서 충분히 공략할 만하잖아!

“9회 말 선두타자 누구야!? 개리 반스? 두 명만 출루하면 Y-DO 나오네? Y-DO까지만 이어가면 할 만해!”

8회 말 종료 시점에서 1-4.

이 정도면 사실 패배 확률이 90%는 넘어간다고 봐야 했지만...

최근의 로키스 팬덤은 이 정도로는 포기하지 않았다.

분위기도 워낙 좋고 승률이 6할을 훌쩍 넘어가는 만큼 역전승도 자주 나오기 때문.

특히 언제나 어디서나 큰 거 한 방을 때려주는 영도가 있었기에 3점 차 정도는 한 번에 뒤집을 수 있었다.

로키스 팬들은 제발 9회 말에 두 명만 출루해주길, 영도까지 기회가 이어지길 기도했다.

[아니, 개리 반스가 이런 타자였습니까? 내셔널스의 프라이머리 셋업, 데미안 루이스를 상대로 끈질기게 버팁니다.]

[0-2 카운트로 몰렸을 때, 평소의 반스였다면 그냥 물러났을 겁니다. 장타력이 뛰어나지만, 정교함과 참을성, 선구안은 부족한 편이잖아요? 그런데... 어느새 3-2 카운트까지 끌고 왔어요!]

[아무래도 팀 분위기가 좋으니까 선수 한 명 한 명이 모두 자기 기량 이상을 발휘하는 모습입니다. 역시... 야구는 기세 싸움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기어이 골라내면서 0-2에서 베이스 온 볼스! 크으... 로키스, 역시 심상치 않아요.]

포기하지 않은 건 로키스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

지난 시즌까지,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전반기까지만 해도 9회 말에 3점 차까지 밀리면 내심 포기하고 마지막 공격에 임했던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후반기 질주가, 기회만 넘겨주면 어떻게든 해줄 듯한 듬직한 간판타자, 영도의 존재가 그들을 바꿔놓았다.

[카이옌 모타의 타석에서 대타가 들어옵니다. 컨택 원 툴이라 평가받지만, 그거 하나로 팀 내 유망주 순위 5위까지 올라온 극단적 교타자 모 보핸... 은 2루수 땅볼로 물러납니다. 하지만 1루 주자 반스는 2루까지.]

“후우, 다녀온다. 절대 네 앞에서 경기를 끝내진 않겠어.”

어쨌든 모 보핸이 혼자 죽으면서 더블 플레이 가능성은 사라졌다.

일단 타격 한정 두 번째로 좋은 성적을 기록 중인 해니건까지 기회가 이어졌고, 해니건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영도에게 기회를 이어주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나섰다.

‘확실히 끈끈한 무언가가 생겼어. 포기하는 듯한 느낌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네.’

사실, 많이 이길 때 분위기가 안 좋은 팀이 어디 있을까.

로키스 역시 계속해서 이기니까 자연스레 팀 분위기가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드는 동료들.

냉정하게 생각하면 여전히 패배할 확률이 훨씬 높은 경기지만, 이상하게 아직까진 질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자세가 완전히 무너지면서 엉덩이 쭉 빼고! 팔만 뻗어서 건드린 타구가 애매하게 굴러갑니다!]

[아웃이냐 세이프냐! 아웃이면 내셔널스의 승리, 세이프면 Y-DO의 등장... 아아!!]

[1루에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 판정은 어떻게 됩니까! 세이프! 세이프입니다!! 수 싸움에서 완전히 패배했지만, 집념으로 건드리고 집념으로 생존한! 그야말로 집념과 집착으로 얻어낸 내야 안타!]

[이러면 Y-DO가 나오죠! 3점 차에 주자 2명, 타석엔 Y-DO! 마치 누군가 일부러 만든 듯한 상황인데요!?]

완전히 속았음에도 마지막까지 공에서 눈을 떼지 않고 스윙 궤적을 조절한 경이로운 컨택 능력.

그리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전력으로 질주해 슬라이딩까지 시도한 강한 집착.

해니건은 악으로 깡으로 내야 안타를 만들어내며 약속대로 영도에게 마지막 기회를 넘겨주었다.

“... 그거 알아? 1루는 마지막까지 서서 들어가는 게 빨라.”

“... 뭐래?”

뜬금없는 영도의 말에 내셔널스 포수 호드리구 페냐가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지만.

그의 대답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1루는 슬라이딩하는 것보다 마지막까지 스피드를 살려 베이스를 밟고 지나가는 게 빠르다는 걸 해니건도 모를 리 없었다.

그런 것까지 생각할 정신이 없었다는 뜻이었고, 그만큼 절박했다는 뜻이었다.

‘그 정도 집념이면... 그래, 내가 보답해준다!!’

- 따---악!!

< 언더독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