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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낌없이 주는 > (116/200)

< 아낌없이 주는 >

[다시 Y-DO부터 시작하는 4회 말 콜로라도 로키스의 공격. 지금까지는 득점도 없고 안타, 출루도 많지 않은 소강상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쿠어스 필드에서 이런 경기가 이어질 확률은 높지 않죠. 쿠어스 필드를 무시하지 마라!!]

‘케플러가 길게 던져봤자 5회까지일 테니... 부탁을 받은 게 있으니 해주려면 여기인데.’

이제 와서 루키를 위해, 팀을 위해 책임감을 느낄 리는 없지만.

어쨌거나 경기 전에 나눈 대화가 있으니 부탁을 들어주려면 여기선 하나 해줘야겠다, 정도의 생각은 했다.

승리가 아무리 똥값이 된 시대라지만, 그래도 여전히 투수에게 첫 승의 의미는 각별했으니까.

지난 두 번의 등판에서 아직 승리를 수확하지 못한 케플러이기에 다른 곳도 아닌 홈 데뷔전에서 승리를 따내고 싶다는 생각 정도는 하고 있을 터.

‘그 정도는 아무리 무정한 나라도... 신경 써줄 수 있지.’

어차피 한 타석, 한 타석에 목숨을 거는데 목숨에 시계 하나 정도 더 거는 느낌으로 신경 좀 더 써주는 거지.

목숨 잃으면 시계가 무슨 소용일까...

[커브만 세 종류를 던진다는 커브 마스터 케이시 유먼. 오늘도 역시 유먼의 커브가 춤을 춥니다.]

[커브는 정말 흔한 구종이고, 역사가 오래된 구종이지만, 그런 만큼 제대로 구사했을 때의 위력은 여전히 무시무시하죠. 커브를 제대로 던지지 못한 투수들이 고민하다가 만든 게 슬라이더니까요.]

‘느린 12-6, 평범한 1-7, 슬러브에 가까운 것까지. 아예 슬라이더도 던지니까 골이 아프긴 하네.’

커브 마스터라 불릴 자격이 있는 케이시 유먼의 피칭.

그나마 90마일 전후에서 구사되는 평범한 포심이 아니었다면 투수 왕국 LA 다저스의 3선발이 아니라 훨씬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투수였다.

‘12-6을 노리면 11-7까지 칠 수 있고, 11-7을 노리면 슬러브까지 칠 수 있고. 포심, 슬라이더야 딱 봐도 궤적부터 다르고.’

포심 비율 30%대 중반, 슬라이더 비율 10% 근처, 나머지 50% 중반이 3종류의 커브.

물론, 건드릴 수 있다는 것과 제대로 공략할 수 있다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고, 이게 케이시 유먼의 맞춰 잡는 비결이자 다저스의 3선발 자리를 차지한 무기였지만.

다양하고 위력적인 커브를 활용한 ‘장인’으로서의 피칭이 나머지 단점을 가려주었지만.

그는 결국, 다저스의 ‘3선발’이었다.

[살짝 배트 위쪽에 맞고 솟아오른 타구! 하지만 Y-DO의 파워! 쿠어스 필드의 힘으로 멀리 뻗습니다! 뻗고, 뻗고, 또 뻗다가... 넘어갑니다! 이번에도 멀리 떠나버린 타구에게 마지막 인사를! Y-DO, 40호 홈런으로 8월을 시작합니다!!]

[아직 60경기 가까이 남았는데 40홈런이라... 산술적으로 60홈런을 가볍게 넘길 수 있는 페이스예요.]

‘커브 장인’의 소위 ‘폼’이 나는 그림자를 제외하면 메이저리그 선발투수 평균에 못 미치는 구위와 포심이 드러났다.

정타를 쉽게 허용하지 않는 만큼 장타를 많이 맞는 건 아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파워를 갖춘 선수들에겐 빗맞은 타구를 끌어내고도 타구가 외야로 빠져나가는 걸 지켜봐야만 하는 투수.

케이시 유먼이 3선발인 이유 중 하나였다.

[Y-DO라면 유먼의 공 정도는 조금 빗맞아도 펜스까지 날려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현실이 되었습니다. 물론, 쿠어스 필드의 힘도 없진 않았겠죠.]

[역시 두 번째 타석의 Y-DO, 4, 5, 6회의 Y-DO는 괴물이에요. 정말 수많은 장점이 있는 선수지만, 체력도 괴물 같은 선수라는 게 보이는 기록이죠? 안 그래도 여름 이후 후반기에 강한데, 같은 의미에서 선발투수가 슬슬 지치고 두세 번째 만나는 4, 5, 6회에 강력할 수밖에 없는 선수입니다. 그냥 그렇게 설계된 괴물, 로봇 같은 거예요.]

“.. 분명히 빗맞은 것 같은데... 저런 게 한두 번이어야 운이 좋다고 넘어가지, 심심하면 나오니까 그냥 실력인 거 아냐.”

“받아들여.”

아직 영도 본인도 가끔 믿기 어려운데, 다른 사람이 보기엔 어이가 없겠지.

그래도 케이시 유먼 정도는 빗맞춰서 넘기는 게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영도를 제외하고도 꽤 많은 선수가 보여준 적도 있었고.

“어쨌든 난 오늘 할 만큼 했네. 해니건, 루키한테 잘난 척했던 게 슬슬 민망해질 때가 된 것 같은데.”

“... 시끄러워. 아직 두세 타석은 더 남았어.”

[가드너! Y-DO에 이어 백투백 홈런을 기록하는 키스 가드너! 시즌 23호 홈런으로 Y-DO의 짐을 함께 들어줍니다!]

[Y-DO, 가드너가 30홈런이 가능할 것 같고, 해니건, 더햄, 매그니, 반스는 20홈런에 도전할 수 있을 것 같고... 역시 콜로라도 로키스 타선은 참... 어쨌거나 건강하게 시즌만 치르면 스탯이 올라가긴 합니다.]

[물론,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말이죠. 특히 해니건과 반스는 좀 위험하지 않습니까?]

[대신 해니건은 타율이 높죠. 반스는 루키고.]

프레드릭 더햄, 개리 반스, 두 명의 루키가 동시에 터지고 트레이드로 데려온 로날드 매그니가 이적 전보다 좋은 활약을 펼치고.

1,650만 달러를 주고 데려온 영도가 갑자기 3,000만, 3,500만 달러짜리 선수들과 경쟁하며 MVP급으로 각성하고.

콜로라도 로키스가 클로저까지 팔아가며 승부를 건 이유가 있었다.

아마도 다시 이런 기회를 잡으려면 굉장히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만큼 완벽한 기회.

유영도, 제러드 홉슨, 라미로 볼퀘즈, 칼튼 와그너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연봉조정자격을 얻을 브랜든 에레라, 로날드 매그니, 고든 애커슬리 등과의 계약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

[더햄의 2루타 이후 이어진 무사 2루 기회에서 로날드 매그니의 투런 홈런이 또! 4회 말에만 아웃 없이 연속 4안타, 그것도 3홈런을 포함한 연속 4안타를 몰아치면서 4점을 뽑아내는 콜로라도 로키스! 역시 로키스 타선에 한 번 불이 붙으면 무시무시합니다!]

[여긴 쿠어스 필드니까요. 로키스 타선이 쿠어스 필드에게 공격받는 건 내구성, 체력, 부상의 문제거든요? 그리고 원정 경기 감각이고. 딱 홈 경기 스탯만 생각하면 로키스 투수진은 몰라도 타선에겐 분명 큰 도움이 됩니다!]

“좋아!! 다저스 잡고 쭉쭉 가자!!”

“쭉쭉 가려면 리더도 적당한 역할 맡아서 해줘야 할 텐데.”

49승 6무 49패.

아직 5할을 벗어나지 못한 승률이지만, 로키스의 분위기는 좋았다.

메이저리그 복귀 첫 시즌부터 에드가 펜서 코치가 말해준 커리어 하이급 성적을 이미 넘겨버린 영도의 기분도 좋았다.

이제 그 좋은 분위기를 실제 성적으로 연결하고, 쭉쭉 내달려 후반기 6할 이상의 승률로 이어가야겠지만...

실제 승률로 이어가기 전, 꼭 갖춰놔야 하는 분위기가 좋으니...

후반기 6할 승률이라는 어려운 목표를 잡았음에도 전망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저 빌어먹고 무식하게 힘만 센 놈을 왜 못 잡고 자꾸 내보내는 건데...’

프레드 왓슨의 얼굴을 무릎으로 찍으면서 왓슨이 개리 반스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결국 시카고 컵스로 트레이드되는 계기를 제공한 오마르 킵니스.

킵니스 때문에 왓슨은 지금 시카고 컵스에서 내야 유틸리티 플레이어가 되었지만, 킵니스 역시 잃은 게 없는 건 아니었다.

‘X발, 내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팀 분위기 끌어올리려고 살짝 터프하게 플레이했을 뿐인데...’

왓슨의 얼굴을 무릎으로 찍은 것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킵니스가 사고 친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다저스가 도덕적으로 대단히 올바른 팀도 아니었으니까.

킵니스의 그런 행동이 도움이 된다면 다저스도 얼마든지 넘어가 줄 수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하지만 킵니스는 선을 넘었고, 도움은커녕 팀의 자존심을 땅에 떨어뜨렸다.

아직까지 살아있는 몇 안 되는 불문율,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더라도 무기, 특히 배트를 들고 달려들어선 안 된다는 엄격한 불문율을 어겼고.

심지어 그런 짓을 하고도 영도에게 단번에 전기 충격받은 개구리처럼 뻗었으니...

수비 하나만 봐줄 만했던 선수인데 이런 굴욕과 비난까지 감수해가면서 지킬 정도의 선수는 아니었던 것.

킵니스는 곧바로 다저스의 특급 유망주, 저메인 루츠 육성에 이용되기 시작했다.

‘저 X새끼 때문에...’

저메인 루츠는 타격 재능이 수비 재능보다 앞선다고 평가받는 유격수 유망주.

다만, 보통 마이너에서 포지션을 정리하고 올라오는데, 루츠의 경우 유격수 수비가 아예 안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타격이 유격수를 미련 없이 포기할 정도까지 대단한 건 또 아니라서 아직도 유격수와 3루수 사이에서 고민 중이었다.

그 과정에서 킵니스는 2루와 유격수를 오가며 3루와 벤치를 오가는 잭 헤링과 함께 이래저래 시달렸다.

볼넷으로 1루를 밟은 영도를 죽일 듯 째려보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키스 가드너의 타구는 2루 쪽으로! 더블 플레이성 타구! 직접 태그하려 달려드는 2루수 킵니스!]

‘...X새끼!!’

이 분노를 어떻게든 풀지 않으면 속이 터져 죽을 것 같다.

킵니스는 그런 생각으로 왼손에 낀 글러브에 오른손을 더했다.

태그가 조금 거칠어도... 큰 문제는 없잖아?

‘오호라.’

하지만 영도도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이번 시리즈 내내 킵니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집중하던 로키스 선수단이었다.

태그가 늦어지는 걸 감수하고 두 손을 다 가져다대는 데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는 게 더 이상했다.

[1루 주자 태그 아우...웃? 킵니스! 1루 주자 Y-DO를 태그하고 그대로 밀려 넘어집니다! 달려오는 Y-DO의 힘을 버텨내지 못한 오마르 킵니스!]

[아니, 그러니까 태그를 왜 저렇게 한 거죠? 한 손으로 살짝 스치듯이 태그했으면 더블 플레이로 이닝 끝내고도 남았어요!]

힘을 강하게 싣는다는 건 당연히 자신이 감수해야 하는 힘도 강해진다는 것.

이것이 바로 작용-반작용의 법칙.

영도는 태그 타이밍에 맞춰 순간적으로 오른쪽 어깨에 힘을 확 주었고, 실수인 척 두 손을 강하게 휘둘렀던 킵니스는 본인의 상상과 달리 영도가 전혀 밀려나지 않으면서 두 배로 강해진 반탄력을 견뎌내지 못했다.

[아무 말 없이 지긋이 킵니스를 내려다보다가 몸을 돌리는 Y-DO! 킵니스, 또 한 번의 굴욕, 같은 선수에게 연달아 당하는 치욕입니다!]

[아아... 킵니스... 대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같은 선수에게 두 번씩이나 이런 치욕을... 아아...]

영도는 단 한마디도 없이 킵니스에게 인생 최대의 치욕을 안겨주었다.

킵니스는 차마 고개조차 들지 못한 채 분노로 몸을 떨었고...

안 그래도 5-1까지 벌어진 점수 차를 좁히기 위해 최대한 수비를 짧게 끝내야 했던 다저스 벤치 역시 분노로 몸을 떨었다.

[4번 타자 더햄의 장타! 1루 주자 가드너, 2루, 3루 돌아서 홈으로!! 들어옵니다! 콜로라도 로키스의 6번째 득점! 6-1로 달아나는 로키스!]

[이런... 이러니까 이닝을 끝낼 수 있을 땐 다른 생각하지 말고 끝내고 봐야 해요. 이게 뭔가요? 쓸데없는 짓 하다가 갈 길 바쁜 팀에 찬물을 끼얹는 거죠, 이게.]

“좋아!! 야! 돌아오기 전에 2루 보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들어와!!”

“으하하하, 키스! 언제부터 이렇게 유머 감각이 넘쳤어? 인사하란다고 진짜 인사해!? 으하하하!!”

신난 건 로키스 벤치밖에 없었다.

< 아낌없이 주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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