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기둥 > (115/200)

< 기둥 >

‘점점 완벽하게 익어가는 것 같은데...’

8월의 첫날, LA 다저스와의 홈 3연전을 앞두고 언제나처럼 훈련에 매진하는 영도의 모습.

영도는 가볍게 프리 배팅을 가져가면서 꾸준히 타이밍을 맞춰갔다.

후반기 들어 처음으로 시도한 토 탭에 익숙해지기 위해 매일 조금씩 시간을 투자하는 중이었다.

‘토 탭에 아직 완전히 익숙하지도 않은데 성적은 오히려 올라갔고. 홈런도 줄어들지 않았으니 이제부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7월을 마친 시점에서 104경기를 치른 콜로라도 로키스는 49승 6무 49패, 정확히 5할 승률을 유지하고 있었다.

무승부를 받아들인 이후 메이저리그는 무승부를 제외한 승률 계산으로 순위를 정했기에 정확한 5할 승률.

무승부를 제외한 승률이 같을 때 무승부를 패배로 간주한 승률로 순위를 정하고, 이후 상대 전적으로 넘어갔다.

그 과정에서 여름을 맞이한 영도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색했던 토 탭을 장착한 채 천천히나마 스탯을 끌어올렸다.

타율도 2할 9푼에 육박했고, 출루율, 장타율도 미세하게 조금씩 올라갔다.

홈런 역시 39개로 올스타전 이후 17경기에서 7개를 추가, 빠른 페이스를 유지했는데...

이것도 완벽한 100%의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

8월부터 이어질 시즌을 기대하는 이유였다.

‘이제부터는 진짜 달려야지.’

정규시즌 종료까지 58경기가 남은 지금, 콜로라도 로키스는 승률 6할 5푼을 넘보는 LA 다저스와 5할을 살짝 넘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이어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3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자이언츠와는 2경기 차의 시소게임을 벌였지만, 중요한 건 자이언츠와의 경쟁은 아니었고.

현실적으로 로키스가 노려야 하는 건 와일드카드 막차였다.

보통 83승에서 85승 정도에서 마지막 티켓의 주인이 결정되는데, 이를 바탕으로 남은 시즌 동안 최소 6할 승률은 거둬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로날드, 카이옌도 이제 슬슬 로키스에 적응이 끝나가는 것 같고, 버나드도 오프너로 부담을 덜어주니까 피칭이 나쁘지 않아. 조셉은 완벽하고...’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전에서 보여준 대로 이적생들은 팀에 합류하자마자 좋은 활약을 이어갔다.

다만, 아직 팀에 익숙하지 않아 삐그덕대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젠 적응도 거의 끝나가는 상황.

조셉 커닝햄은 클로저로 보직을 옮긴 뒤 드디어 맞는 옷을 입은 듯 조던 파인스틴에 크게 뒤지지 않는 믿음직스러운 수호신으로 자리를 굳혔다.

제러드 홉슨, 브랜든 에레라, 커트 페니라는 듬직한 세 명의 선발과 오프너 이후 등판하는 라미로 볼퀘즈, 버나드 케플러라는 4, 5이닝용 두 번째 투수.

팀의 승리를 위한 최소한의 버티기가 가능해진 선발진.

마지막 약점을 대충 메우고 이적생이 적응을 끝낸...

그리고 로키스가 가진 가장 날카롭고 예리한, 묵직한 무기, 유영도가 이번 시즌 마지막 업데이트를 끝낸 지금.

“어이!! Y-DO!! 프리 배팅 끝났으면 와서 게토레이나 한 잔 하라고!”

“... 무슨 맥주 한잔 하는 것처럼 말하지 말아 줄래.”

“네가 맥주를 안 마시니까 어쩔 수 없잖아?”

“대체 널 보고 누가 진중하고 로맨틱한 성실한 선수라고 말한 건지...”

콜로라도 로키스도 팀의 리더, 게일 해니건과 함께 뛰쳐나갈 준비를 끝냈다.

승률 6할? 쉽진 않겠지만, 충분히 해볼 만은 했다.

해낸 적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비록 30년도 더 지난 옛날 일이지만.

***

[이번 시즌 양 팀의 대결은 항상 긴장감이 넘칩니다. 아무래도 다저스의 유격수 오마르 킵니스와 당시 로키스의 2루수였던 프레드 왓슨의 충돌이 계기였습니다. 비록 프레드 왓슨은 떠났지만, 감정은 떠나질 못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시리즈에서 있었던 벤치 클리어링? 그걸 벤치 클리어링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런 것도 있었죠. Y-DO가 세계를 정리해버린...]

우연인지 운명인지 로키스의 운명이 걸린 마지막 2개월은 LA 다저스와의 3연전으로 시작되었다.

다저스를 쿠어스 필드로 불러들여 후반기 대역전극을 준비하게 된 로키스.

왓슨은 없고, 킵니스만 남았지만, 감정은 남은 두 팀이었다.

“버나드! 오늘 컨디션은 어때? 믿어도 되겠어!?”

다저스의 선발투수는 3선발 케이시 유먼.

이에 맞서는 로키스의 선발은 좌타 일색인 다저스의 상위타순을 상대할 오프너, 좌완 언더핸드 케네스 제임스.

그리고 그에게 마운드를 이어받을 버나드 케플러였다.

“컨디션은 괜찮은데... 쿠어스 필드 첫 등판이라 그게 좀 걱정 됩니다.”

“아, 맞다. 지난번 홈 6연전 때는 한 번 걸렀지?”

“예. 원정에서만 두 번 나왔고, 홈 등판은 처음이라 신경이 좀 쓰이네요.”

버나드 케플러는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의 좋은 유망주였지만, 시카고 컵스에선 이번 시즌 데뷔 예정이 없던 선수였다.

9월 이후 확장 로스터 때 올라와서 한두 번 정도 기회를 받았을까?

제대로 된 경쟁은 다음 시즌부터 시작했을 유망주.

하지만 로키스는 이 정도 완성도의 유망주를 놀릴 여유가 없었다.

안 그래도 부족한 선발투수인데, 이번 시즌에는 일단 오프너 이후 두 번째 투수로 활용하며 경험치를 먹이고 다음 시즌부터 제대로 선발투수로 키워볼 생각이었다.

일단, 스토브 리그 때부터 몸을 만들어 놓은 선수가 아니었기에 애지중지하면서 잭 스미스, 레이 카레도, 데일 마르티네즈 등 다른 3, 4이닝용 투수들과 교대로 기회를 주는 상황.

그렇다 보니 원정 3연전, 홈 7연전, 다시 원정 7연전으로 이어진 7월 일정에서 홈 등판이 없었다.

“쿠어스 필드는 분명 까다로운 구장이지. 투수들은 다들 여기서 한 번만 뛰어보면 혀를 내두르면서 돌아갔고...”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제러드도 그랬고, 덴버 홈보이인 브랜든도 혀를 내두르고... 이번 시즌 ROY 후보라는 커트도 쿠어스 필드는 어렵다고 겁만 계속 주던데요.”

“어쩔 수 없어. 나는 야수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투수라 해도 할 말은 겁주는 것밖에 없겠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거든.”

“에휴... 어쨌든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최선을 다할 테니 뒤만 좀 부탁하겠습니다.”

“으하하하, 좋아! 루키면 그런 게 있어야지. 루키는 배짱 좋게 자기 할 일 하고, 나머지는 베테랑들한테 맡기고... 엉!? 그게 잘 돌아가는 팀 아냐!?”

“그렇게 반갑게 부탁을 들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버나드 케플러는 자신의 한계와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쿠어스 필드에서 수비 도움 없이 투수 혼자 무쌍을 찍는다?

그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것인지를, 어지간한 능력으로는 흉내도 못 낸다는 것을, 자신은 그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다.

‘저런 마인드면 맥없이 터지진 않겠는데.’

실력이 안 돼서, 컨디션이 안 좋아서 무너지는 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

그런 건 야수들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야수로서 가장 힘 빠지는 건 투수가 판단부터 잘못해서 자멸하는 것이었다.

자멸하지만 않고 버텨준다면야... 로키스 야수진의 힘으로, 쿠어스 필드의 힘으로 얼마든지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었다.

“야! Y-DO! 여기 루키랑 같이 게토레이 한잔하고 가! 버나드, 저 친구가 어쩌면 네 목숨줄을 쥐고 있는 사람일 수 있어. 가서 잘 보여. 혹시 알아? 홈런 하나라도 더 쳐줄지.”

“잘 부탁합니다, Y-DO.”

“게일... 대체 왜 그러는 건데? 갑자기 왜 게토레이에 꽂혔어? 그리고 1회부터 나가서 삼진 먹고 들어온 주제에 뭔 잘난 척을 그렇게 해.”

“... 나만 삼진 먹었나? 너도 땅볼 치고 들어온 거 아냐? 어휴, 키스도 떨어졌네... 게토레이만 마시고 바로 나가야겠다. 버나드! 2회부터 부탁한다.”

“예. 1회는 이대로 끝났지만, 다음 타석에서 도와주실 거라 믿습니다.”

“Y-DO. 얘가 막 부담 주는데? 당돌해, 아주?”

“부담 주는 게 아니라 당연한 말을 한 거지. 우리가 할 게 안타, 홈런 말고 뭐 있나.”

영도와 게일 해니건.

한 명은 로키스 타선의 에이스, 한 명은 로키스 야수진, 나아가 로키스 선수단의 정신적 지주.

버나드 케플러가 의도한 건 아닐 테고, 리더다운 오지랖의 넓이를 자랑하는 게일 해니건이 만든 판이었지만.

어쨌거나 큰 힘이 되어줄 두 선수가 경기 전 게토레이 한 잔을 함께 하며 긴장을 풀어주는 상황.

메이저리그 세 번째 등판을 앞둔 루키, 케플러에겐 이보다 더 듬직할 수가 없었다.

[조금 전, 해니건, Y-DO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과연 그게 케플러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2회 초, 선두 타자, 메인 도나르를 상대합니다.]

[해니건, Y-DO면 로키스 타선의 알파와 오메가죠. 가드너, 와그너도 있지만, 아무래도 에이스와 리더는 그 두 선수니까요.]

[두 선수와의 대화를 통해 무언가를 얻었다면 로키스에 큰 힘이 될 겁니다. 여전히 선발진이 약한 팀인데 케플러가 기대만큼만 성장해준다면... 그게 마지막 퍼즐이 되어줄 수도 있습니다.]

[후반기 시작 이후 9승 8패인데, 5할을 넘길 수 있는 팀은 얼마든지 6할까지 갈 수 있어요. 작은 변화만 있다면 말이죠.]

‘도나르는 패스트볼보다 브레이킹볼 쪽에 약점이 있는 편이라 그나마 다행인가.’

장타력이 뛰어나지만, 컨택 능력 자체는 평범한 타자.

다저스의 4번 타자, 메인 도나르는 모든 피칭의 기본인 패스트볼에 강하고 선구안이 좋아 브레이킹볼 약점을 가리는 스타일이었다.

버나드 케플러도 미드라인 스타터급 재능인 만큼 플러스 피치로 도배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플러스 급의 체인지업과 보통 수준의 슬라이더, 커브를 던지는 포 피치 투수.

[슬라이더에 헛도는 도나르의 배트! 처음 만난 투수여서 그런지 타이밍을 잡는 게 어려워 보입니다.]

[정교한 타자는 아니니까요. 처음 만난 투수를 가진 기량으로만 공략할 수 있는 타자는 아니죠.]

평범한 커브, 슬라이더, 90마일 초반의 패스트볼.

하지만 그렇게 카운트를 잡고 결정구로 던지는 체인지업이 위력적인 투수.

버나드 케플러는 당장 에이스급으로 성장하긴 어려워 보였지만, 자기 몫을 충분히 해줄 만한 무기는 갖추고 있었다.

‘그렇지. 그거지!’

[3루수 Y-DO 앞으로 천천히 굴러가는 타구. 여유롭게 잡아 1루에서 잡아냅니다.]

[이제 Y-DO도 수비에서 안정감이 느껴져요. 공격에서도 그렇지만, 수비에서도 기대보다 훨씬 좋은 모습입니다.]

1회 초, 다저스가 자랑하는 공포의 좌타 라인을 손쉽게 요리한 케네스 제임스에 이어 케플러까지.

경기 초반, 로키스 투수진은 강력한 다저스 타선을 상대로 다른 곳도 아닌 쿠어스 필드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작정하고 잡아당긴 날카로운 타구! 하지만 Y-DO가 몸을 날립니다! 파울라인 타고 외야로 나가는 타구를 건져 노스텝으로 1루에!! GET-YA!!]

[캐칭도 완벽했고, 어깨는 환상적! Y-DO, 수비에서도 이러면 대체 어쩌나요? 진짜 MVP 받으러 달리는 건가요!?]

영도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MVP 레이스 1, 2위를 다투는 이유 중 하나, 생각보다 좋은 수비로 케플러의 짐을 덜어준 것.

“Y-DO!!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 믿어.”

트레이드 후 안정화 시기를 거쳐 이제는 늦기 전에 질주를 시작해야 하는 콜로라도 로키스.

8월의 첫 경기, 초반 2이닝부터 뭔가 달라진 모습으로 기대감을 키웠다.

< 기둥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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