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환점 >
[콜로라도 로키스! 심상치 않습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홈 시리즈 스윕과 6연승, 5할 승률 -1을 달성하기 직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동안 훌륭한 페이스로 5할을 향해 달려갑니다!]
[5할이면... 후반기 상황에 따라 포스트시즌 진출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거든요? 물론, 와일드카드를 노려봐야 하겠지만, 와일드카드도 포스트시즌이에요!]
TOP 3와 적지 않은 격차가 있지만, 어쨌든 신인왕 후보 TOP 5에 들어갈 만한 활약을 펼치는 루키 선발 커트 페니.
마찬가지로 TOP 5급 활약의 루키 1루수 프레드릭 더햄.
선발로 실패해 오프너 2번째 투수로 전향한 중고 루키들의 나쁘지 않은 활약.
미쳐버린 영도의 맹활약과 가드너, 해니건, 와그너가 영도와 함께 이끄는 믿음직스러운 타선.
그리고 쿠어스 필드의 악몽을 등판할 때마다 겪으면서도 어떻게든 버텨주는 홉슨, 에레라, 볼퀘즈 등의 선발진.
처음부터 숫자를 꽉꽉 채워 부상 위험을 최소화한 채 질보다 양으로 밀어붙이는 벌떼 불펜까지...
로키스는 분명 전체적으로 전력이 강하다고는 볼 수 없었지만,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보다는 강한 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나오는 영도의 홈런포는 분위기, 흐름, 기세 등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강한 영향을 미치며 예상보다 강한 전력이 훨씬 강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윤활제가 되어주었고.
“이것 참... 너무 빨리 터졌는데요...”
로키스의 젊은 단장, 제프리 에녹은 필리스를 상대로 홈 스윕과 6연승을 눈앞에 둔 자신의 선수들을 바라보며 미묘한 뉘앙스의 웃음을 지어보였다.
당연히 팀의 성적이 예상을 뛰어넘은 게 싫진 않았다.
하지만 너무 빨랐다.
“이번 시즌에 커트와 프레드릭이 터져주고, 다음 시즌에 개리와 자야가 터져서 대권에 도전했어야 하는데...”
“개리는 이번 시즌부터 조금씩 터지는 것 같고, 자야도 이번에 AA로 올라가 데뷔전을 꽤 잘 치렀습니다.”
“그게 문제예요, 그게. 개리, 자야까지 터지면 대권에 도전할 수 있다는 생각까진 맞았는데... 개리가 이번 시즌에 터지니까 달리지 않을 수가 없어.”
“Y-DO의 기량이 저희의 상상을 뛰어넘었습니다. 2+2를 제안하긴 했지만, 최악의 경우 연장계약으로 잡아둘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3년 전, 에녹이 로키스의 단장 자리에 앉자마자 진행한 일은 유망주 수집이었다.
어차피 애매한 전력, 핵심 선수들은 물론, 어정쩡한 선수들까지 전부 다 털어내고 유망주를 끌어모으면서 3년 후를 기약했다.
언제나 예상과 현실은 조금씩이라도 달라지는 법.
지난 시즌이 끝났을 때, 선발투수들의 잇따른 실패로 목표 시즌을 1년 늦춰 2042시즌으로 잡았고, 그에 맞춰 팀을 구성했다.
그리고... 상상을 완전히 뛰어넘어버린 영도의 활약이 에녹의 구상을 강제로 1년 만큼 당겨버렸다.
“망했죠, 뭐. 연장계약은 절대 불가능하고, 몸값이 3,000만 달러 넘는 것 아닐까, 재미있게 지켜보고만 있습니다. 어차피 달려들지 못할 선수, 재미라도 있어야죠.”
“3,000만 달러라... 50홈런 넘기고 다음 시즌에도 넘기면 3,500만 달러도 넘지 않겠습니까. 나이도 어린데...”
“쿠어스 필드에서 뛴 선수라고 후려지만 않으면 가능할 수도 있겠죠. 나이도 어리고 3루수고.”
영도가 자꾸 져야 하는 경기에서 이겨주니까 팀의 기세가 올라가고, 팀의 기세가 올라가니까 신인들이 상대적으로 부담 없이 성장 기회를 잡고...
신인들이 부담 없이 성장하니까 팀 성적이 좋아지고.
팀 성적이 좋아지니까 가해지는 견제와 부담이 줄어든 영도가 다시 져야 할 경기를 이겨주고...
자꾸 경기를 이겨주니까 현장에선 욕심을 내고, 현장에서 정당한 욕심을 부리니까 내년 시즌을 생각하고 마지막 담금질 중이었던 유망주, 개리 반스까지 탈탈 털어 올려줄 수밖에 없고...
되는 팀의 전형이었지만, 웃을 수만은 없었다.
이번 시즌 흐름이 좋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계는 있었다.
로키스는 월드시리즈를 가져오지 못할 팀이었다.
“다음 시즌까지는 쓸 수 있겠습니까?”
“어유, 못 쓰죠, 절대. 저 선수 하나 들이대면 모든 팀의 유망주들을 예외 없이 전부 다 당겨올 수 있는데 다음 시즌까지 어떻게 씁니까. BA 1위고 나발이고 Y-DO 들이밀어서 얻어와야죠.”
“그럼 이번 시즌이 Y-DO를 로키스에서 보는 마지막 시즌이 되는 겁니까?”
“확신은 할 수 없지만요. 또 알아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FA로 내보낸다고 해도 다음 시즌까지 끌고 갈지.”
영도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성공해버렸고, 유망주 패키지라도 얻기 위해선 다음 시즌 중에라도 트레이드를 시도해야 했다.
원래 예상대로 다음 시즌에 대권을 도전할 전력이 갖춰진다면 공짜로 내보내도 기쁘게 내보낼 수 있겠지만... 글쎄.
다음 시즌을 확신할 수 없기에 이번 시즌에도 달리긴 달려야 했다.
그냥 구색만 맞추는 게 아니라 이번 시즌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간절하게.
“계속 알아보세요. 선발투수, 코너 외야수, 지명타자까지... 채워 넣어야 하는 포지션이라면 어디든지.”
“카드는 어디까지 생각하고 계십니까?”
“선발진, 1번부터 4번 타순까지. 이렇게만 빼면 누구든지.”
“...! 와그너도 포함인 겁니까? 주전 포수인데?”
“100%는 아니지만, 호세가 80% 정도는 해줄 수도 있어요. 물론, 우리가 셀러도 아니고 유망주 받자고 하는 트레이드가 아닌 만큼 칼튼은 비싸서 안 팔리겠지만.”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중요 포지션부터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유망주 패키지 대신 즉시 전력이나 즉시 전력에 가까운 유망주를 받아오려면 다소 손해를 감수해야겠지만...
도전도 못 해보고 다시 리빌딩에 들어가는 것보단 나을 테니 어쩔 수 없이 도전은 해봐야 했다.
기둥뿌리만 제외하고 어디든 팔아서 조금 더 완성도 높은 전력을 갖추겠다는 에녹 단장의 선택이 과연 성공으로 이어질 것인지...
3주 남은 트레이드 데드라인까지 로키스 스카우트팀은 그야말로 갈려 나갈 예정이었다.
***
[2041시즌 메이저리그 전반기 한국인 메이저리거 활약상 평가]
유일신 유영도(콜로라도 로키스)
: 0.283/0.375/0.583 32홈런 WAR 4.2
기쁨별 박희성(LA 다저스)
: 0.272/0.379/0.407 2홈런 17도루 WAR 2.2
시몬스 안정규(시카고 컵스)
: 6승 5패 ERA 3.68 FIP 3.83 91K WAR 1.9
아시아 수호신 조유성(볼티모어 오리올스)
: 15SV 4BSV ERA 3.10 FIP 3.02 WAR 0.8
- 유영도는 진짜 신인가...
- 저 정도면 신이다. WAR 1당 연봉으로 계산하면 이미 밥값 했음. 2,000만 달러 정도니까... 심지어 FA 선수 WAR로 계산하면 거의 4,000만 달러 정도 했다고 봐도 됨.
- FA가 아니라 연봉조정 대상 선수로 계산해도 몸값 넘어가다니... 이게 진짜 절대영도의 위엄이군
- 박희성도 솔직히 잘했다. 거의 커리어 하이 페이스인데 완전히 묻혀버렸네
- 아무래도 박희성은 주루+수비로 WAR 버는 유형이니까. 타격 성적만 놓고 보면... 많이 아쉬움.
- 그래도 박희성도 시즌 끝날 때 4.0 근처는 하겠는데? 이 정도면 5, 6년에 1억 달러 어떻게 안 되나?
- 유영도랑 박희성이랑 같이 FA인데... 이 페이스면 유영도가 두 배 이상 더 받을 듯
- 두 배가 뭐냐. 심지어 나이도 유영도가 5살 어림. 유영도는 첫 번째 FA, 박희성은 두 번째 FA 정도 나이인데, 몸값 차이 어마무시하겠지?
- 박희성 FA 첫 시즌이 33세 시즌일 텐데, 차라리 이번 시즌 끝날 즈음 다저스랑 연장 계약하는 게 낫다고 본다. 동양인에 수비, 주루 위주 중견수가 33세면 FA 시장에서 가치 높기 어려움.
- 최근 이 정도 나이의 중견수치고 롱런한 선수가 없고, 최근이 아니라 역사상으로 봐도 확률 50%는 되려나? 중견수한테는 운동 능력이 엄청 중요하고 박희성은 특히 수비는 늙지 않는다 쳐도 주루 능력이 결정적이라...
- 근데 니네들 왜 안정규랑 조유성은 언급도 안하냐?
- 안정규는... 언제나처럼 평범하게 잘하고, 조유성은 이제 들어와야지. 1+1로 계약했지? +1도 못 챙겨 먹을 듯. 나이도 벌써 서른여섯이고...
- 불펜투수가 한국, 일본 거쳐 메이저리그에서 6년 뛰고 총 풀타임으로만 15년 뛰었으면 미친 거지. 조유성은 할 만큼 했다. 대우 받으면서 편하게 은퇴 준비하자.
- 그래도 유영도는 홈런 더비 누구랑 함? 홈런 더비에 이름 있던데...
- 홈런 더비 그까짓 것 좀 안 하면 안 됨? 홈런 더비 때문에 망하는 선수들 많은데...
“아무리 내가 백수라지만 이래도 되는 거야? 앙? 공 던져달라고 일주일 전에 부탁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이 자식아!”
“미안해요, 조던. 사실 그냥 팀에서 준비해주는 사람이랑 대충 나가려고 했는데, 승도가 그러면 안 된다고 해서. 의미 있는 사람을 생각하다 보니까 조던밖에 생각이 안 났어요.”
올스타전이 펼쳐지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 오라클 파크.
영도는 올스타전 전야제로 펼쳐질 홈런 더비에 초청되었고, 함께 할 투수로 조던 알루를 선택했다.
가장 먼저 영도를 인정해준 베테랑이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고전하던 영도를 살뜰히 챙겨준 은인이었고, 이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배팅볼러를 부탁한 것.
“나 밖에 생각이 안 나긴... 솔직히 말해. 브라운 씨한테 부탁했다가 거절당한 거지?”
“... 그래도 조던이 두 번째예요.”
원래는 고등학교 시절 은사였던 오스카 브라운에게 가장 먼저 부탁했지만...
브라운은 60이 훌쩍 넘은 나이와 조용히 즐기고 싶다는 본인의 의사로 거절했고, 두 번째로 찾은 게 조던이었다.
“야구 인생 내내 여기저기 너무 돌아다니고 지쳐서 잘 쉬고 있는데... 날 또 마운드에 세워?”
“에이, 푹 쉬었을 텐데요.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조던인데 쉰다고 야구 안 봤을 리도 없고. 솔직해집시다, 우리. 그동안에도 메이저리그 계속 챙겨봤지 않습니까.”
“... 그래. 이제야 좀 즐겁게 그냥 야구만 즐기면서 챙겨봤지. 내가 다시 마운드에 설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좋지 않습니까, 오랜만에. 설렁설렁 옛날 생각도 나고, 부담도 없고.”
“예전에는 홈런만큼은 절대 안 맞으려고 던졌는데, 어떻게든 홈런 맞으려고 마운드에 서는 건 처음이라 재미있긴 해. 올스타전 무대에 서는 것도 거의 10년 만인 것 같고... 재미는 있지. 그러니까 왔지, 재미라도 없었으면 절대 안 왔어.”
지난 시즌 독립리그 무대를 마지막으로 20년 넘게 입어온 유니폼과 글러브를 벗은 조던 알루.
43세의 나이에도 독립리그의 열악한 일정까지 소화하며 선수생활을 지속할 만큼 그 누구보다 야구를 사랑하는 야구인이었다.
“그리고 조던도 팬들 앞에서 마지막 인사 정도는 해야죠? 그래도 메이저리그에서 222승이나 거둔 대투수인데, 아무리 조용히 누적만 쌓아온 투수라 해도 222승이 누구 개 이름도 아니고...”
“... 22년 뛰면서 222승이 뭐 대단하다고... 패전도 222패고, 방어율 4점대에 FIP는 아예 4점대 중반인 그저 그런 투수였지.”
“그래도 222승은 대단한 겁니다. 안 그래도 점점 승리가 찬밥 취급 당하면서 누적 승리 기록도 쭉쭉 떨어지는데, 앞으로 200승 투수가 얼마나 나오겠습니까.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될 기록입니다.”
“나야 자부심은 있지. 남들이 인정을 안 해줘서 그렇지.”
메이저리그에서만 22시즌, 11개 팀의 유니폼을 갈아입으면서 통산 222승 222패.
올스타전 1회 출장
메이저리그 노익장의 상징인 제이미 모이어에 비견될 만큼 조용히, 하지만 꾸준히 선수 생활을 이어온 그였다.
하지만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11시즌을 소화하며 4회의 WAR 5.0 초과 시즌을 만들고,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의 5시즌 동안 팀의 전성기를 함께 하며 리스펙트를 얻은 모이어보다도 알루의 커리어가 더욱 조용했다.
모이어는 커리어 WAR 총합이 50.0에 육박했지만, 알루의 그것은 40이 조금 안 되는 수준.
무엇보다 시애틀 매리너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며 공식 석상에서 커리어를 정리할 기회를 얻었던 모이어와 달리 알루는 마지막까지 조용했다.
“어차피 브라운 선생님도 거절하셨고, 조던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할 자리도 만들어주고 싶어서 부탁한 겁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잠깐 시간도 좀 내주라고 할 테니까 짧은 인사라도 준비해요.”
“인사는 무슨... 누가 내 인사 같은 것 듣고 싶어하겠어? 하하하.”
“한 명이라도 듣고 싶어한다면 해야죠. 23년입니다, 23년. 설마 한 명 없을까...”
“후후... 그런가...”
조던 알루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그 속의 설렘을 숨기진 못했다.
23년이었다. 1, 2년도 아니고 10년도 아닌, 23년.
23년 동안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활약했는데, 제대로 인사할 기회도 없이 몇백 자의 편지와 간단한 인터뷰로 커리어를 마무리한 게 아쉽지 않을 리 있을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 덕분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
영도는 생각에 빠진 알루에게 혼자 생각할 시간을 주기로 했다.
< 반환점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