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욕심의 결과 > (110/200)

< 욕심의 결과 >

“도대체가... 이번 시즌에만 벌써 몇 번째야. 점수 차이가 이렇게 벌어졌는데 뺄 수가 없으니...”

8회 말, 스코어는 10-3.

콜로라도 로키스는 7점까지 점수 차를 벌렸고, 사실상 오늘 경기를 가져갔다.

그리고 선두 타자로 다시 한 번 영도가 들어서며 5번째 타석에 돌입, 다시 한 번 히트 포 더 사이클의 완성을 노렸다.

“어차피 내일은 휴식일 아닙니까. 그리고 Y-DO는 힘만 괴물이 아닌 건지 이 시점에도 너무 멀쩡하고... 잘 됐죠. 키스나 칼튼 같은 선수들을 쉬게 해줄 수 있으니.”

“그렇지. 그렇긴 한데... 뭔가 이번 시즌은 시즌 끝날 때까지 전력으로 달려야 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물론, 마지막까지 포스트시즌을 노려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거니까 좋은 조짐이긴 한데... 로스터가 두껍질 않으니.”

32승 5무 39패. 딱히 좋은 성적은 아니지만, 내셔널리그 서부에선 3위였고, 보통 승패 마진 +7, 8 정도면 와일드카드 막차를 노려볼 수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가능성은 있는 성적이었다.

여름이 다가오며 다시 페이스를 끌어올린 영도와 점점 리그에 적응해가는 다수의 루키 선수들 덕분에 로키스는 전반기보다 후반기가 더 기대되는 팀.

그래서 콕스 감독은 철저히 체력을 관리해주었고, 일단 승패가 어느 정도 정해졌다 싶으면 철저한 로테이션으로 주전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었다.

쿠어스 필드의 악몽은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피하기 쉽지 않았으니까.

“아무리 체력 관리가 중요하다지만, 이럴 때까지 빼버리면 팬들에게 맞아 죽겠지. 이왕 이렇게 된 것, 꼭 결과로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Y-DO는 잘할 겁니다. 지금까지 실망시킨 적이 없으니.”

히트 포 더 사이클이 무게감 있는 기록은 아니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름의 임팩트가 있었다.

달성만 할 수 있다면 무조건 좋고 의미가 있는 기록.

타석에 들어서는 영도에게 경기장의 관중들, TV, 인터넷을 통해 지켜보는 팬들, 커뮤니티에서 활동 중인 키보드 전사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였다.

"이번에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이번 타석을 마지막으로 교체해줘. 언제 어떻게 경기에 나설지 모르는데, 에르쿨레스의 경기 감각도 살려줘야지."

"알겠습니다. 에르쿨레스야 베테랑이니... 알아서 잘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 알지. 눈에 보이지 않는 역할이지만, 그런 역할에서도 최선을 다해주니까 나도 믿을 수 있는 거고. 참... 미안하고 고맙지."

"우리 팀에선 멀티 포지션 가능한 백업 야수가 더욱 중요하니까요. 에르쿨레스 같은 선수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어쨌거나 공격 기회는 이번 8회말이 마지막일 확률이 99.9% 이상.

9회 초에 7, 8점씩 내주지만 않으면 9회 말은 없었다.

체력 안배도 뭐 물 건너갔으니... 억울하지라도 않게 3루타로 깔끔히 끝내주기를.

콕스 감독과 코칭스태프, 다른 팀 동료들도 영도의 3루타를 응원하고 고대했다.

‘왜들 이렇게 기대하지... 나한테 3루타는 600타석에서 두어 번 나오는 건데.’

기대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1/300의 확률 때문에 너무 마음을 졸이는 게 안타까워서 든 생각일 뿐.

기대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마음까지 졸이지는 말고 그냥 지금보단 조금 더 편하게 지켜보다 결과가 좋으면 그때 기뻐해도 늦지 않을 텐데...

사람이라는 게 참... 기대를 받으면 부응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날 응원해주는 사람들, 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원하는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런 마음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

드디어 시작된 성공적인 커리어 덕분에 여유가 생기면서 팬들을 위하는 마음은 커지는데, 표현에 능숙하지 않아 고민 중인 영도로선... 타석에서 보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얘들도 급한지 버리는 경기 마무리 역할에 가까운 투수고.’

블루제이스도 이런저런 어려운 상황이 겹쳐 히트 포 더 사이클이고 나발이고 이미 승부가 기울었으니 주력 선수들을 아끼려 했다.

전부 다 무난하고 특별한 무기는 없는 무난무난한 투수.

차라리 약점이 있어도 확실한 무기가 있는 게 낫지, 무난하기만 해서는 기껏해야 롱릴리프, KBO 기준 추격조, 패전조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수비 못 하기로 유명한 중견수나 좌익수 쪽으로 가르면 대충 뭔가 될 것 같기도 하고... 펜웨이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가 3루타를 치려면 상대 외야수들의 도움이 좀 필요해서.’

개인적으로 크게 원하는 기록은 아니지만, 팬들이 원한다면야...

응원하는 선수의 기록 달성을 선수 본인보다 기뻐하는 게 팬이라는 존재였으니까.

팬들의 기대를 의식한 뒤, 영도 역시 3루타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어떤 공을, 어떤 코스로, 어떤 방식으로 때리면 3루타가 나올 수 있을까.

의식하면 오히려 될 것도 안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렇다고 의식을 안 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

그냥 마음 편히 마음 가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두면서 치기 좋은 공을 기다렸다.

[(8회 말) 로키스 생중계 달리기 vs TOR]

COL 10 : 3 TOR

유영도 : 4타수 4안타(솔로 홈런, 단타, 2루타, 2루타)

- 으으으... 제발... 이거 겁나 쫄리네...

- 쫄깃쫄깃... 이번엔 진짜로 마지막 타석일 텐데

- 뭔가 계속 될 듯 될 듯 안 되는데 이번엔 제발 3루타 한 번 치자. 전 타석에 줬어도 되는 건데 이대로 끝나면 억울해서 잠 못 잔다

- 아, 새벽부터 일어나서 보는 중인데 여기서 실패하면 유영도가 잘했어도 하루 종일 기분 애매할 듯...

- 응원하는 선수가 잘했는데도 찝찝한 기분이라니. 제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면

- 할 수 있다!! 된다!! 간다!!

- 유영도가 근데 3루타가 가능한 선수였나... 아주 느린 건 아니지만...

- 쿠어스 필드니까 한 번 믿어보는 거지. 외야만 뚝 떼서 봐도 몇 년 전 없어진 청주 구장이랑 크기 비슷할 듯.

‘제구도 날리고 구위도 흔들리지만... 칠 수 없는 공은 아냐.’

평소라면 스트라이크 존을 좁히고 걸어나가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좋은 공만 공략하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한 번쯤은 평소와 달리 욕심 좀 내봐도 되겠지.

점수 차도 7점이고 모두가 3루타를 기다리는데... 무리하면 칠 수 있는 공들까지 골라내면 이 경기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 특히나 팬들이 실망할 테니까.

‘이 정도는...!!’

결심이 선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명치보다 살짝 높이 날아오는 패스트볼을 과감하게 노렸고, 힘으로 쭈욱 밀어냈다.

‘어? 외야수 교체되었나 본데?’

의도하고 때린 건 아니었지만, 바라던 대로 우중간을 향해 날아간 타구.

하지만 블루제이스도 마음을 접었는지 주전 중견수가 빠지고 백업으로 교체되었다.

쿠어스 필드 못지않은 타자친화구장, 로저스 센터를 사용하기에 전통적으로 공격 위주의 라인업을 구성하는 블루제이스.

하지만 수비를 아예 무시할 순 없으니 로스터에 대수비 자원을 상당수 데리고 있었다.

[오랜 야구계의 격언대로 교체된 야수에게 향하는 타구! 블루제이스의 중견수 유망주, 고란 초리치가 쫓아갑니다!]

‘이거 잡고 올라간다!’

나름대로 인정받는 유망주지만, 타격이 아직 완성되지 않아 대수비 자원으로 활용되는 25세의 유망주, 고란 초리치.

25세면 이제 슬슬 유망주 칭호가 민망해지는 나이였고, 어떻게든 주전으로 자리 잡아야 하는 나이였다.

당연히 초리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고, 어느 정도의 조급함과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타격도 타격이지만, 장점인 수비와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단계 올라서겠다고 다짐했는데...

여기서 변수가 생겼다.

[다이빙 캐치 시도! 아! 잡지 못했습니다! 뒤로 흘러나가는 타구! 기회! 기회입니다!!]

[너무 욕심을 냈어요! 쿠어스 필드에서 외야수가 공 한 번 빠뜨리면 바로 대참사거든요!?]

쿠어스 필드의 외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기 때문에 확실하지 않으면, 적어도 몸 앞에 떨어뜨릴 수 있다는 확신이 없으면 다이빙 캐치는 생각도 하지 말아야 했다.

차라리 단타를 내주는 게 낫지, 한 번 뒤로 빠뜨리면 공이 끝도 없이 굴러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쿠어스 필드가 낯선 아메리칸리그 소속이자 의욕이 많이 앞섰던 초리치는 평소 해오던 대로 몸을 날렸고, 한 끗 차이로 아깝게 공을 놓쳤다.

그런데... 쿠어스 필드의 외야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었고, 백업을 와주리라 믿었던 우익수는 그의 생각보다 멀었다.

‘진짜 오늘 뭐 있는 거 아냐?’

중견수도 교체되었고, 타구 자체도 라인 드라이브성으로 날아가 2루타도 아슬아슬했는데...

순식간에 상황이 180도 반전되었다.

이젠 3루에 못 갈 것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홈까지 가야 할까 봐 걱정되는 상황.

[2루 돌아서 3루로! 일단 우익수가 급히 달려가 내야로 던져줍니다!]

“멈춰! 멈춰!!”

일단, 3루까지 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주루코치의 정지 사인을 받아 3루에서 멈췄고, 고개를 돌려 공의 위치를 확인했다.

“음... 다행히 애매하네요. 홈으로 충분히 갈 수 있는데도 그냥 멈춰 세운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오늘 벌써 세 번째 장타니까. 발이 생각대로 안 움직이지 않았어?”

“살짝? 뭐, 큰 차이는 아니었습니다.”

“안 그래도 빠르지 않은 발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겼으면 큰 거지. 굳이 무리해서 한 베이스 더 갈 이유도 없고. 홈으로 갈 수 있는 타구였어도 부상 방지, 체력 안배 때문에 무리하지 않았다고 하면 다들 이해했을걸.”

발이 느린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광활한 외야를 지나 펜스까지 굴러갔다가 내야로 돌아왔음에도 홈에 들어갔다면 미묘하게 세이프, 혹은 접전이 되었을 타이밍이었다.

상황상 굳이 간판타자가 된 영도를 무리시킬 이유도 없었고.

어쨌든 덕분에 논란의 여지도 없을 깔끔한 3루타로 8회 말 마지막 타석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영도가 3루에 도달함과 동시에 대형 전광판을 통해 히트 포 더 사이클 달성 자축 문구가 떠올랐다.

““우와아아아앙아아아!!!!!!!!!!””

그리고 팬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도 이어졌다.

[유영도 선수, 전반기 종료를 눈앞에 두고 기어이 히트 포 더 사이클까지 완성하면서 2041시즌 전반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10경기 연속 홈런에 이어 히트 포 더 사이클까지! 원하는 모든 걸 현실로 이뤄냅니다!]

[메이저리그로 가도 잘할 거라고는 생각했어요. 당연히 잘하겠지, 이 정도면 검증이고 뭐고 필요 없지... 하지만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정말 몰랐네요.]

‘참... 다들 기뻐하네. 정작 나는 별 생각 없는데...’

별로 욕심나지 않았던 기록이지만, 팬들이 기뻐한다면 뭐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거겠지.

영도는 잠시 경기가 중단된 사이 열광하는 팬들을 향해 헬멧을 벗어 인사했다.

그러자 더욱 커지는 함성이 그를 맞이했다.

“기어이 그걸 하네...”

“그러게. 기어이 하라고 저걸 도와주네.”

이후 당연하게도 대주자와 교체되어 덕아웃으로 돌아온 영도를 동료들이 애정 섞인 터치로 맞아주었다.

홈 6연전에서 2연속 위닝 시리즈를 기록하며 승패 마진을 -6까지 끌어올리고, 영도의 히트 포 더 사이클로 흐름까지 반전시킨 콜로라도 로키스.

로키스의 여름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욕심의 결과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