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스타 투표 >
“좋은 아침! 아침은 아니지만.”
“그래, 좋은 아침.”
원정 6연전을 마치고 쿠어스 필드로 출근한 로키스 선수단은 몇 시간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다시 오늘 경기를 준비했다.
어제 낮 경기가 17시 다 되어 끝났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시간만 4시간에 달했으며, 덴버에 도착했을 땐 이미 새벽 한 시가 다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시간은 대략 오전 10시 정도.
덴버에 도착해서 각각 집으로 찢어진 뒤, 각자의 사정에 따라 집에서 7, 8시간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다시 오늘 경기를 준비하게 된 것이었다.
“상태는 좀 어때? 나는 아주 찌뿌둥해서 죽겠어. 이동일 경기 시간 다 앞으로 당겨줘도 이 정도인데, 옛날에 거의 모든 경기를 6시, 7시부터 시작할 땐 대체 어떻게 살았나 몰라.”
“어떻게든 살았겠지. 그게 싫으면 서부나 동부 말고 중부 팀으로 이적하든지.”
“... 누가 싫대? 난 덴버밖에 없다고. 로키스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팀이지.”
“그래.”
“...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로키스가 최고라니까? 괜히 로키 산맥 내려가 봐야 너만 힘들어. 알고 있는 거지?”
“찌뿌둥하다며. 몸이나 풀어.”
그나마 중부에 가까운 덴버에서도 동부의 뉴욕 원정은 절대 쉽지 않았다.
일단 같은 동부 마이애미에 들려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3연전에서 슬슬 시작된 원정 악몽을 정면으로 겪으며 3연패, 이어진 뉴욕 원정에선 그나마 감각은 좀 돌아왔지만, 양키스와의 전력 차를 온몸으로 체감하며 3연패...
33승 5무 33패, 겨우 맞춰놓았던 5할 승률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전반기 종료까지 남은 경기는 이제 고작 17경기.
5번의 시리즈 이후 전반기 종료를 맞이하는 상황에서 로키스의 목표는 최대한 5할 승률에 근접한 채 전반기를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시즌 초반 원정 경기를 몰아 치른 덕분에 남은 5번의 시리즈 중 원정 시리즈는 같은 서부 지구의 다저스, 자이언츠와의 시리즈밖에 없다는 건 다행이었다.
그리고 홈으로 불러들일 토론토 블루제이스,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전력도 해볼 만하고, 동부에서 날아오는 만큼 체력적으로 유리한 상대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역시 홈에서 만나면 충분히 해볼 만한 상대였으니 5할 승률 회복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었다.
“그나저나 오늘 난리던데? 쿠어스 필드 한 50km 전부터 너한테 올스타전 투표 좀 해달라고 광고판이 대체 몇 개가 붙어있는지...”
“하나, 당신 집에서 여기까지 50km가 안 돼. 20km는 되나? 둘, 메인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었던 것 같은데.”
6월 말이 되면서 슬슬 올스타전 투표가 끝나가고 있었다.
팬 투표 50%, 선수 및 미디어 투표 50%로 올스타전 출전 선수가 정해지는 만큼 과거보단 덜해졌지만, 여전히 팬 투표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콜로라도 로키스 같은 스몰마켓 선수들은 전국 중계 숫자도 적고 미디어 노출 기회 자체가 적은 만큼 투표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키스 가드너는 유격수 왕국 콜로라도 로키스의 전통을 이어 지난 시즌부터 올스타전 선발 유격수로 출전했고, 이번 시즌 역시 내셔널리그 유격수 포지션에서 투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해니건은 아니었다.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소속 NL 중견수 NO.1 마티아스 그린의 벽이 높았고, 인지도도 살짝 떨어졌다.
그래도 특유의 리더십과 헌신, 성실하고 붙임성 좋은 성격 덕분에 기자들, 코칭스태프, 타 팀 선수들의 평가가 좋아 꾸준히 올스타전에 참가할 순 있었다.
“메인이 나인 건 키스랑 넌 그런 투표 독려 없이도 1위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렇겠지. 성적 위주로 뽑는 미디어나 다른 선수들도 키스랑 널 최소한 1, 2위로는 뽑아줄 테니까. 난 아니잖아? 성적도 마티, 데미안 다음 3위권이고.”
“음. 설득력이 있긴 하네.”
그리고 이번 시즌 메이저리그로 돌아온 3루수 유영도.
미쳐버린 초반 페이스로 투수들의 집중 견제 및 분석을 넘어 팀 차원의 견제까지 당하고 로키스 특유의 원정 지옥까지 겹쳤지만...
영도의 성적은 여전히 내셔널리그 3루수 중 최고를 노릴 만했다.
내셔널리그 최고의 3루수이자 MVP 후보군에 들어가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아놀드 그레고리가 부상으로 15경기 정도 결장한 것도 영도에겐 호재.
타율은 2할 8푼 아래로 떨어졌지만, 오히려 출루율은 올랐고, 장타율도 5할 8푼 근처를 유지했다.
홈런은 많이 따라잡히긴 했지만, 당연히 양대 리그 통합 1위.
WAR 3.5로 양대 리그 통합 야수 중 8위, 전체 10위.
전반기도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WAR 기준 이번 시즌 몸값보다 훨씬 뛰어난 활약.
게다가 시즌 초반 연속 경기 홈런 신기록 덕분에 안 그래도 높은 편이던 인지도까지 확 뛰어올라 올스타 투표에서도 유리했다.
“그러니까 너도 SNS 같은 데다가 나한테 투표 좀 하라고 올려줘. 나도 교체 말고 선발로 올스타전 좀 가보자.”
“귀찮은데... 내가 SNS 하는 거 봤어?”
“그래도... 그거 알아? 네가 우리 팀에서 SNS 팔로워 나 다음으로 많은 거?”
“호오... 역시 한국 팬들 덕분인가. SNS 관리는 동생이 하고 있어서 난 잘 몰라. 옛날에 좀 유명했을 때 많이 모였나 보네.”
“그건 오히려 내가 모르고. 어쨌든 홍보글... 아니다, 그러면 네 동생한테 부탁하면 되겠네.”
“동생이 받아만 준다면야. 그쪽 일은 아예 일임하고 있어서 나한테 말하는 것보다 동생한테 말하는 게 빠를 수 있지.”
올스타 경력은 단순히 영광일 뿐 아니라 연봉 협상, 은퇴 후 선수 평가 등 다방면에 영향을 미쳤다.
근본적으로 팬들을 위한 축제라는 점에서 성적 이외의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는 타이틀이었지만...
프로에게 성적 이외의 것들이 필요하고, 그런 것들이 몸값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잘못된 일이긴커녕 당연한 일이었으니 잘못된 건 없었다.
팬들의 사랑을 받는 선수가 연봉 좀 더 받고 평가 좀 더 높은 게 당연한 것 아닌가.
***
[쿠어스 필드로 돌아오자마자 홈런포 폭발! 시즌 27호 홈런으로 2위 앨런 밀러와 4개 차 1위 유지]
[“집에 돌아오니 너무 좋아” 유영도, 장타 폭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2차전에서 2루타 2개, 3루타 1개로 팀에 승리 안겨]
[3경기 연속 멀티 히트! 쿠어스 필드로 돌아온 유영도, 막판 스퍼트로 올스타전 득표에 마지막 박차 가해]
[좁혀지긴커녕 점점 더 벌어지는 2위와의 격차... 유영도, 메이저리그 복귀 첫 시즌, 커리어 첫 올스타전 선발이 눈앞에]
[한국인 최초 팬 투표 통한 메이저리그 올스타 선발까지 D-15. 아시아 출신으로 선발 출전한 선수는 누구?]
[7월 12일 전후로 급격히 늘어난 피츠버그행 관광객. 7월 12일 피츠버그에선 어떤 일이?]
[오라클 파크에서 벌어질 7월 12일의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유영도 선발 출전이 대한민국 여행 업계에 미치는 영향]
[역대 최초 한국인 동반 올스타전 출전 가능할까? 감독 추천 노리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조유성]
- 유영도는 진짜... 첫 끗발이 개 끗발 소리도 듣고 거품이다, 플루크다, 이런 저런 소리 다 들었는데... 전반기 다 끝나가는데도 홈런 1위네.
- 홈런만 1위가 아님. 웬만한 타격 성적, WAR까지 전부 다 TOP 10 안에 들어감.
- 한국에서 이런 타자가 나왔다는 게 진짜 믿기질 않는다. 벌써 시즌 개막하고 3개월이나 지났는데...
- 투수는 어차피 감독 추천인 경우가 대부분이니 그렇다 쳐도 야수 중엔 스즈키 이치로랑 마쓰이 히데키, 오타니 쇼헤이 다음으로 처음 아닌가? 팬 투표 + 선수, 미디어 투표로 올스타전 선발 결정된 이후엔 처음인 것 같은데.
- 이치로는 그렇다 쳐도 마쓰이랑 오타니는... 일본 새끼들 몰표가 결정적이었다는 게 정설이니까. 솔직히 둘 다 아메리칸리그 외야수 중 TOP 3에 들만한 성적은 아니었다. TOP 5라면 모를까.
ㄴ 박희성도 아슬아슬했지. 성적 형편없는데 국뽕들이 몰표 줘서. 선수, 미디어 투표 없었으면 선발로 나갈 수도 있었을 듯
- 팬 투표로만 올스타 선발하는 방식 사라져서 다행인 듯. 인기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성적을 아예 무시하면 안 되지.
ㄴ 근데 팬들을 위한 축제면 팬들이 보고 싶은 선수가 나와야 하는 거 아님? 인기가 꼭 성적이랑 비례하는 건 아니니까.
ㄴ 그래도 보통은 비례하지. 야구선수가 야구를 잘해야 인기가 생기는 건 당연한 건데
[자, 오늘 경기를 끝으로 올스타전 투표가 마무리됩니다. 이미 920만표 가량을 획득해 2위 아놀드 그레고리를 100만 표정도 앞선 유영도 선수이기에 사실상 선발 출전이 확정된 것과 다름없는 상황입니다.]
[사실, 아놀드 그레고리가 대단하죠. 전반기의 1/5 정도를 결장했는데도 얼마 차이 안 나는 2위라니... 사실, 다른 포지션들을 살펴보면 1위가 1,100만표 정도를 받았고, 2위와 200만 표 이상 벌어진 게 보통이거든요.]
6월 29일, 콜로라도 로키스의 6월 마지막 경기이자 올스타 투표 마지막 날.
이미 키스 가드너와 영도가 1위를 사실상 확정지었고, 게일 해니건의 선발 여부만을 남긴 로키스는 충분히 만족하며 블루제이스와의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보통 한 팀에서 3, 4명 정도 뽑힌 팀이 올스타 최다 배출의 영예를 차지하는데, 최소 2명, 최대 3명의 선수를 올스타전에 내보낸다는 건 로키스 같은 스몰마켓이자 상대적 약팀에겐 커다란 성과였다.
[그래도 투표 마지막 날까지 화끈한 모습으로 쐐기를 박아줬으면 합니다. 오늘 경기를 끝으로 다시 원정 6연전을 치르기 때문에 올스타 선발의 기쁨을 홈팬들과 나눌 수 없는 상황 아니겠습니까? 오늘의 활약으로 팬들 앞에서 보답해야죠. 팬들이 뽑아준 올스타인데요.]
[이번 홈 6연전에서 컨디션이 좋아 보이기 때문에 충분히 해줄 것 같아요. 보답도 보답이지만, 이를 떠나 이제 곧 올스타 브레이크가 시작되니까 마지막 체력을 쏟아서 최대한 성적을 끌어올렸으면 좋겠네요.]
메이저리그 풀타임 4년 차가 되어서야 드디어 참가하게 된 올스타전.
올스타전은 그냥 숨 쉬듯 나갈 테고, 매 시즌 MVP 후보 0순위가 될 거란 유망주 시절의 평가엔 아직 부족했지만...
방출 이후 한 시즌 만에 메이저리그로 복귀해 맞이한 첫 시즌 성적으론 더없이 완벽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본인들의 시간을 적지 않게 투자해가며 표를 던져준 팬들과 함께 맞이한 투표 마지막 날이자 아쉽게도 함께 팡파레를 터뜨릴 타이밍이 사라진 홈팬들과 함께하는 날.
이미 그들의 노력과 헌신에 보답할 준비는 끝나 있었다.
[올스타전까지 11경기가 남았고, 현재 27개의 홈런을 터뜨리고 있는데... 마지막 욕심으로 전반기 30홈런 딱 찍어주고 올스타 브레이크에 들어갔으면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전반기 30홈런을 기록한 선수가 2033시즌의 션 앨런이었는데, 만약 이번에 30홈런을 넘기면 8시즌 만의 전반기 30홈런이 됩니다.]
[6시즌 만의 50호 홈런을 위한 예열로 8시즌 만의 전반기 30홈런. 어우, 완벽한 커리큘럼인데요?]
< 올스타 투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