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티다 >
[콜로라도 로키스도 이제 위닝 시리즈를 챙겨갈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원정 9연전이라지만, 세인트루이스 원정에서 1승 2패, 피츠버그 원정에서 1승 1무 1패, 보스턴 원정에서 1승 1패로 3차전에 돌입했습니다.]
[로키스 전력이 약한 건 맞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성적이 나쁜 걸 합리화할 순 없는 거거든요. 전력 약하니까 져도 된다? 팬들이 무슨 죄예요.]
[로키스의 원정 경기. 로키스의 홈 경기 만큼이나 악명이 높긴 합니다. 그래도 이번 시즌 역시 리빌딩 중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언제나처럼 중부지구 최하위 후보인 피츠버그 파이리츠에게도 위닝 시리즈를 가져가지 못했다는 건... 아무리 원정 시리즈여도 가끔은 위닝 시리즈를 가져가지 않습니까?]
[하아, 근데 사실 세인트루이스 원정이나 피츠버그 원정보다 보스턴 원정이 훨씬 힘들고 빡세거든요? 이전에 한 번은 위닝 시리즈를 챙기고 왔어야 하는데...]
원정 9연전 중 8경기를 치른 상황에서 로키스의 전적은 3승 1무 4패였고, 이는 오히려 걱정했던 것보다 좋은 성적이었다.
연장전이 사라지고 9회 말 종료 시점에서 동점이면 무승부로 마무리하는 규정이 생긴 것도 로키스 같은 약팀들에겐 차라리 다행이기도 했고.
사실, 펜웨이 파크 원정 3연전에서의 1승은 로키스 입장에서 성공적인 결과였고, 기대하지 않은 성과였다.
보스턴 레드삭스라는 팀 자체가 리툴링이 급한 팀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아직 월드시리즈 우승후보로 꼽히는 팀이었고, 그중에서도 특히 펜웨이 파크 원정은 레드삭스의 전력이 어떻든 언제나 어려웠다.
그런데도 로키스는 이번 지난 두 경기 내내 치열한 시소 게임을 펼쳤고, 한 경기는 아예 승리를 따내기까지 했다.
단순히 경기가 잘 풀린 게 아니라 누구나 알 수 있는 선전의 이유가 있었다.
[자, 결국 위닝 시리즈를 위해서는 오늘도 유영도 선수가 해줘야 합니다. 지난 두 경기 내내 유영도 선수의 맹활약 덕분에 레드삭스와 접전을 펼칠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원래 펜웨이 파크가 우타 빅뱃들한테 유리한 구장이긴 해요. 사실, 레드삭스가 유영도 선수 영입에 적극적인 팀 중 하나였잖아요? 워낙 영입할 포지션이 많아서 결국 실패하긴 했습니다만, 이번 시리즈를 치르면서 욕심이 더 강해졌을 것 같네요.]
[유영도 선수와 로키스의 계약 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2년 후 옵트아웃이 가능한데, 지금 같은 활약이면... 2년 후 나오지 않을 이유가 없죠.]
[무조건이죠. 2년 후 FA 시장에 나올 확률이 높고, 지금보다 훨씬 큰 규모의 계약도 가능하죠.]
펜웨이 파크의 그린 몬스터.
11m의 그린 몬스터 때문에 홈런이 억제될 거라 생각하지만, 그만큼 펜스까지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좌측 펜스를 넘어가는 홈런 숫자는 평균적인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다른 구장에선 펜스 앞에서 잡힐 타구들이 전부 그린 몬스터에 맞고 장타가 되기 때문에 펜웨이 파크는 타자친화구장에 속했다.
그리고 지난 두 경기에서 영도는 레드삭스가 우타 빅뱃을 원하는 이유를 온몸으로 증명해냈다.
스윙 궤적이 그렇게까지 심한 어퍼 스윙은 아닌데도 영도의 홈런 타구들은 대부분 낮고 빠른 라인 드라이브 타구보다 큰 포물선을 그리는 문 샷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궤적이 궤적이다 보니 라인 드라이브로 날아가는 배럴 타구도 적지 않았고.
홈런은 문제없이 나오는데, 라인 드라이브 타구 대부분이 장타로 연결되니...
[최근 메이저리그도 우타 빅뱃 가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난 시즌 홈런 순위 1위부터 30위 중에 우타자는 고작 11명에 불과하고, 10위까지로 한정하면 3명이죠.]
[지금 선수들이 보통 플라이볼 혁명 시대에 야구를 시작한 선수들이라 오른손잡이가 굳이 억지로 좌타석에 서는 빈도는 전보다 줄었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홈런 타자들은 대부분 좌타자들이에요. 신기하게도.]
[그래서 더욱 유영도 선수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순수한 홈런 타자인데 우타자. 레드삭스의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번엔 실패했지만, 아마 2년 뒤 시장에 나오면 또 한 번 레드삭스가 달려들 거예요. 레드삭스가 원하는 선수 스타일에 너무 정확하게 부합해서 달려들 수밖에 없어요. 돈이 없는 팀도 아니고...]
[2년 뒤에는 또 악성 계약 두어 개가 만료되기 때문에 더더욱 부담이 없죠.]
[4시즌 전 월드시리즈 우승에 도움을 줬던 선수들이라 악성 계약이라기엔 조금 억울하겠습니다만, 지금 당장은 악성 계약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긴 하죠. 어쨌든 레드삭스 입장에선 빨리 털고 유영도 선수를 영입하고 싶긴 할 거예요.]
레드삭스가 원하는 우타 빅뱃 3루수지만, 사실, 이번 시즌 초반 영도의 활약을 보면 이런 선수를 원하지 않는 팀이 있을 수가 없었다.
홈 구장이 타자친화구장이라서, 투수친화구장이라서, 팀의 장점이 장타력이라서, 약점이 장타력이라서 다들 영도를 원하고 부러워했으니까.
[다시 한 번 펜스를 직격하는 타구! 펜웨이 파크에서의 유영도는 그냥 과학입니다! 치면 펜스를 때리거나 펜스를 넘기거나. 50% 확률로 둘 중 하나죠!]
[오늘까지 11타수 6안타, 홈런 1개, 2루타 4개로 맹활약 중이긴 하지만... 50% 확률까진 아니죠.]
이제 고작 세 번째 경기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영도와 펜웨이 파크의 궁합을 부정할 순 없었다.
레드삭스와 링크 나는 선수들이 대부분 우타자인 것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맹활약.
영도는 펜웨이 파크에서 홈팀의 그 어떤 선수보다 밝게 빛났다.
덕분에 콜로라도 로키스는 원정 9연전 승률 5할의 희망을 이어나갔다.
5월의 끝물에서 0.465의 호성적, 그리고 다시 승리를 노리는 콜로라도 로키스.
로키스는 미약하게나마 기대 이상의 성적으로 조용하게, 하지만 착실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여전히 전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포스트시즌 후보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지만...
서부지구 3위까지 올라오며 순위를 한 계단이나마 올렸고, 조용히 승수를 쌓아나가고 있었다.
[지난 3시즌 동안 적지 않은 기회를 받았지만, 선발로서 안타까운 모습으로 서비스 타임 1년을 겨우 채운 잭 스미스. 하지만 이번 시즌 들어 오프너 등판 이후 2번째 투수로 나서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팀의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입니다.]
[사실, 이런 게 오프너 전략의 장점이죠. 200이닝 선발투수가 지금보다 훨씬 많을 때도 5이닝이 버거운 선수들은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200이닝 선발투수도 확 줄고 선발투수들의 소화 이닝 자체가 확 줄어든 시대잖아요? 그래서 옛날엔 5이닝용 투수였을 선수들이 3이닝, 4이닝용 투수로 바뀌었습니다.]
[오프너를 활용하면 오프너가 1, 2이닝을 맡아주고, 3, 4이닝용 투수들로 경기 중반까지 커버할 수 있게 됩니다.]
[잭 스미스, 조셉 커닝햄처럼 선발로 이미 한 번 실패한 투수들이나 레이 카레도 같은 루키들을 활용하기가 좋아지죠. 선발투수 몸값이 금값인데, 로키스나 로키스보다 더 가난한 구단들은 오프너 전략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로키스가 미약하게나마 기대 이상의 승률을 노려보는 근거가 당연히 있었다.
근거가 없는데 목표만 높게 잡아봐야 시즌 플랜이 꼬이기만 하지, 장점 따위 하나도 찾기 어려웠으니까.
기대하고 영입하긴 했지만, 기대보다 훨씬 뛰어난 활약을 펼쳐주는 영도가 첫 번째 근거였고, 두 번째 근거는 오프너 전략의 기대 이상의 성공이었다.
선발 투수로의 성장을 기대했지만,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2, 3년 차 투수들이 오프너 등판 이후 2번째 투수 자리에서 맹활약하면서 구멍이 숭숭 뚫린 선발 로테이션을 어떻게든 메워준 것.
[완전히 타이밍이 무너지면서 툭 건드린 타구! 3루 방향으로 데굴데굴 구릅니다!]
‘쿠어스 필드가 진짜 투수한테 그 정도인가.’
선발 로테이션을 ‘어떻게든 메웠다’는 워딩에서 눈치챘겠지만, 말 그대로 ‘어떻게든 메워준’ 딱 그 정도.
하지만 오늘 로키스 투수진은 우타자에 강한 우완 사이드암 비토 카모나가 오프너로 등판해 1이닝, 이후 좌타자에 강한 좌완 언더핸드 케네스 제임스가 또 1이닝, 그리고 잭 스미스가 3.2이닝을 맡아 3피안타 1볼넷의 무실점 피칭을 이어가고 있었다.
쿠어스 필드의 위력은 영도 본인도 온몸으로 경험했지만, 투수는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100% 이해하긴 힘들었다.
그저 이런 피칭들을 3루에서 지켜보며 확실한 차이가 있겠구나, 하고 생각할 뿐.
[유영도 선수가 달려 들어오면서 잡고 1루로! 1루에서 여유 있게 잡아내면서 삼자범퇴로 마무리합니다.]
[이야... 로키스가 호르헤 바티스타를 상대로 집단 마운드를 가동해서 대항하네요. 6회까지 0-0!]
[보스턴 레드삭스의 에이스, 지난 시즌 사이영 투표 2위의 호르헤 바티스타가 펜웨이 파크에서 등판했는데 경기의 2/3가 끝났을 때 0-0 동점이다? 이건 레드삭스가 굉장히 조급해지죠.]
[솔직히 말해서 오늘 경기는 그냥 유영도 선수만 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승리 자체는 그렇게까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러면 기대가 되죠. 이제 곧 바티스타도 내려가야 하고, 그러면 불펜 싸움. 로키스도 불펜은 아주 나쁘진 않아요.]
“가자, 5할!! 원정 5할 한 번은 챙겨야지!!”
경기 흐름을 보는 눈은 중계진이나 선수들이나 비슷했다.
로키스 선수들도 경기 전에는 말만 안 했을 뿐, 승리를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아무리 프로라고 해도 뻔히 보이는 것까지 무시할 순 없었으니까.
하지만 7회 초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0-0이다?
그것도 거의 패배가 확실하다고 평가받던 불리한 팀이?
이 정도 되면 그 불리함을 극복하고 여기까지 끌어준 투수들에게 미안해서라도 야수들이 불타오르기 마련이었다.
로키스도 마찬가지.
사실상 세인트루이스 원정에서 루징 시리즈에 그쳤을 때 80퍼센트 정도 포기하고 피츠버그 원정에서 1승 1무 1패로 끝났을 때 100퍼센트 포기했던 원정 5할까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지금, 로키스 야수진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Y-DO. 이런 말이 참 민망하긴 한데... 2루타 한 번만 더 부탁할게.”
“부탁하지 않아도 최선을 다하긴 할 건데, 2루타로 나가면 들어올 순 있나?”
“모르지. 난 이미 6회의 마지막 타자였으니까. 이번 이닝에 나가긴 힘들겠지.”
“... 당당하네?”
7회 초, 호르헤 바티스타의 마지막이 될 확률이 높고, 본격적으로 콜로라도 로키스가 승리를 노리기 시작한 이닝.
선두타자는 이번 시리즈에서 로키스가 가장 믿을 수 있는 타자, Y-DO였다.
"그래서 2루타는 쳐줄 수 있다는 거지? 우리도 빈센트-티모시-조던으로 이어지는 필승조는 나쁘지 않다고. 1점, 1점이면 마음 편하게 치를 수 있을 거야."
"2루타라... 꼭 그런 이야기 안 해줘도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데... 그 힘도 아껴서 경기에 쏟아. 칼로리 아깝다."
딱 보면 모르나? 같은 선수로서 어떤 선수가 매 타석 힘을 얼마나 쏟는지, 얼마나 올인하는지 딱 보면 알 텐데.
손성호도 그랬고 항상 책임감 강하고 리더십 강한 사람들은 사서 고생하는 느낌이 있다니까.
< 버티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