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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귀를 실감하는 순간 > (103/200)

< 복귀를 실감하는 순간 >

“대체 일정은 누가 짜는 거야? 원정 10연전 치르고 드디어 좀 돌아왔나 했더니 6경기 하고 또 원정 9연전이라고? 우리 홈 경기는 대체 언제 하는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뉴욕 메츠를 상대로 오래만에 2연속 위닝 시리즈를 가져간 콜로라도 로키스.

그러나 위닝 시리즈의 기쁨도 잠시, D백스전을 마지막으로 같은 지구 팀들 위주로 맞붙던 일정이 끝나면서 중부의 세인트루이스, 피츠버그에 이어 동부 보스턴으로 이어지는 원정 9연전이 시작되었다.

어차피 홈 경기와 원정 경기 숫자는 정해져 있기에 시즌 초반에 원정 경기를 몰아서 치르면 후반엔 비교적 편해진다지만...

원정 10연전 이후 홈 6연전, 다시 원정 9연전으로 이어지는 일정에는 불만이 없을 수가 없었다.

에녹 단장, 콕스 감독도 그렇고, 해니건을 비롯한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

확실히 로키스의 시즌 초반 일정이 쉬운 편은 아니었다.

“어차피 다들 홈, 원정 오가며 치르는 게 시즌인데.”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무슨 원정 10연전, 9연전을 중간에 일주일 텀만 두고 치르냐고. 이게 우리 마지막 원정 10연전이야. 이후로 시즌 끝날 때까지 원정에서 3개 시리즈 연속으로 치르는 일은 없다니까?”

“없으면 좋은 것 아닌가.”

“아니지! 그만큼 웬만하면 일정 짜는 사람들도 원정에서 연속으로 3개 팀까진 만나지 않게 짜는데 우린 일주일 사이에 두 번 연속으로 치른다는 게 문제인 거지! 이건 악의가 있다, 이거야. 아니면 우리처럼 힘없는 구단들한테만 몰아놓은 거거나.”

5월에 한 번, 6월이나 7월에 또 한 번.

이런 식이면 이해할 수 있지만, 일주일 단위로 두 번이나 원정에서 3개 시리즈를 치러내야 하다니...

이제 겨우 몸이 회복되려고 하는데 다시 원정 지옥으로 떠나야 했기에 더더욱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시즌 후반에 원정 나가는 것보단 초반에 몰아치는 게 낫지 않나. 통계적으로 보니까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원정 경기 성적이 바닥을 찍던데.”

“... 그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이 없지만.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원정 경기 감각이 흐트러지는 것 같긴 해.”

“그러면 좋은 거네.”

“... 아, 또... 이 자식은 힘만 가지고 야구하는 놈 같은데 은근히 되게 똑똑하단 말이지... 하나만 해라, 하나만. 그렇게 괴물처럼 날려댈 거면 그렇게 두뇌파 선수처럼 공부하질 말던가.”

다른 팀과 원정 경기에 대한 느낌, 성적이 다를 수밖에 없는 콜로라도 로키스의 상황.

그걸 정확하게 집어주는 영도의 말에 해니건도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밖에 없었다.

일정이 어렵고 몸이 힘든 건 사실이지만, 로키스의 성적을 봤을 때 시즌 초반 원정 경기를 몰아서 치르는 건 나쁘다고만 볼 일이 아니었으니까.

어차피 지옥의 원정 경기 일정은 전통적으로 메이저리거들을 항상 괴롭혀왔던 상수.

워낙 힘드니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지만, 항상 있던 일이라 그 이상의 움직임을 보일 수도 없었다.

그냥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불만도 불만이지만, 내가 대표적으로 한 번 휘저어주는 거지. 다른 애들이 불만스러워들 하니까.”

“당신이 로키스의 주장 같은 거니까?”

“그렇지. 내가 나서서 투덜거려주면 다른 애들은 그래도 좀 마음이 누그러지잖아. 내가 이 정도라고.”

“... 그래. 약간 미심쩍긴 한데 평소 주장답게 잘하니까 이번에도 잘했다고 넘어가 주지.”

원정 9연전 중 초반 6연전을 최근 부침을 겪으며 리빌딩 진행 중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아직도 얌체 운영을 버리지 않은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치르는 건 지옥 같은 일정 속에서 그나마 숨을 돌리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마지막 3연전을 영원한 우승후보, 메가 마켓 보스턴 레드삭스와 치른다는 게 불안하긴 하지만, 어차피 전력 차가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데 핑계라도 있는 게...

“우리도 어쨌든 여름 전에 5할 승률 근처는 지키고 있어야지. 그러다가 후반기에 뭐 하나만 터지면 와일드카드도 노려보고 그러는 거니까.”

“우리가 원한다고 되는 건가. 그냥 매 타석 열심히 하는 거지. 내 몸값도 올릴 겸해서.”

“넌 그게 메인이잖아. 네 성적이 메인이고 팀 성적은 옵션 아니야?”

“맞지. 대부분 그렇지 않나? 내 성적 버리고 팀 성적에만 올인하는 선수가 어디 있어.”

“발디. 발디가 우승에 목매잖아. 내 성적이고 뭐고 우승만 하고 싶다고.”

“... 하긴. 평생 백업 포수만 하는데 그렇게 우승권 팀만 피해가기도 어려울 거야. 안타깝긴 하지.”

콜로라도 로키스라는 팀은 사실 선수들이 팀 성적, 나아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욕심낼 만한 팀은 아니었다.

팀 성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선수들은 굉장히 흔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각이 나와야...

다만 백업 포수 발데마르 피자로는 월드시리즈 우승 하나 때문에 선수생활을 연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선수였다.

백업 포수로만 메이저리그에서 10년을 버틴 36세의 노장 포수.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위해 선수생활을 연장하고 있지만, 이번 시즌은 우승권 팀들이 전부 백업 포수들을 장만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일단 1년 계약으로 로키스에 합류한 포수.

우승이 유일한 목적이다 보니 이번 시즌에는 초반부터 다음 시즌을 대비하며 몸을 사리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만약 포스트시즌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기 시작하면 그 누구보다 온몸을 내던질 선수이기도 했다.

“발디한테는 남은 시간도 그리 길지 않을 텐데, 최선을 다해봐야지. 1년이지만 그래도 팀 동료인데.”

“최선은 언제나 다하지. 우승에 목매는 베테랑의 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영도는 손성호를 통해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손성호는 그래도 데뷔와 동시에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커리어 전체를 슈퍼스타로서 보냈지만, 발데마르는 그런 것도 아니고...

다만, 아쉬워할 순 있어도 그 이상 뭔가 해줄 건 없었다.

내가 최선을 다하고 다른 동료들의 활약까지 더해져야 이변이 생겨도 생기지, 나 혼자 팀 성적을 책임지려고 하면 스트레스만 받고 성적이 좋아지지도 않았다.

농구야 5명이 뛰는 스포츠고, 실력에 따라 플레이 지분의 50% 수준까지 가져갈 수 있으니 에이스 한 명으로 성적이 달라질 수 있다지만, 야구는 아무리 대단한 선수여도 플레이 지분은 1/9일 뿐.

“발데마르를 위하고 싶다면 그냥 불평하지 말고 경기에나 집중해. 그러다가 잘 되면 발디를 위해 좋은 일도 하고 그러는 거지.”

“그런데 나 빼고 딱히 발디를 생각해주는 친구가 없는 것 같아서 안쓰럽긴 해. 겉도는 느낌이란 말이지...”

“본인 선택이지. 시즌 초반인데 벌써 다음 시즌 생각해서 몸 사리는 게 일반적으로 팀 동료들이 좋아하는 행동은 아니니까.”

“너도?”

“난 별 생각 없지. 본인이 그걸 원한다는데. 대신 그 반응도 본인이 감수하기만 하면 되는 거고.”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우승을 노린다는 것부터가 과욕.

발데마르의 유일한 소원이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면 지금처럼 다음 시즌을 대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그를 위하는 것일 수도.

영도는 전생 포함 20여 년의 야구생활 내내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기에 발데마르의 행동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이번 시즌에 집중하지 않고 커리어 연장을 위해 건강 관리에만 집중하는 그를 탐탁치 않게 여길 수도 있지만...

어차피 인생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자기 목표에 매진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지 않은가.

다만, 동료들이 싫어하는 것, 대놓고 말은 못해도 뒤에서 수근대는 것 정도는 감수해야지.

솔직히 팀 전력이 안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고, 그 와중에도 어쨌거나 커리어를 위해, 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이 많은데 그들이 좋아할 수 없는 행동인 건 맞으니까.

“사실, 나도 마음에 안 들긴 해. 우리 팀이 약팀이라고 평가받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도 팬들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발데마르보다는 앤서니가 동료들한테 사랑받는 스타일이지.”

“아... 맞네? 그렇네! 똑같이 백업 커리어가 더 길고 저니맨에 우승 반지 없는 것도 똑같은데 왜 발디만 계속 생각했지?”

“앤서니는 조용하고 묵묵하고 성실하니까.”

무엇보다 우승 반지라는 게 한 시즌마다 30개 팀 중 한 팀만 얻을 수 있는 귀한 물건.

게다가 몇몇 강팀들이 돌아가면서 가져가다 보니 일부는 은퇴할 때 9개, 10개씩 가져가고 대부분의 선수들은 한 개라도 가지고 은퇴하는 게 꿈인 그런 물건.

발데마르보다 한 살 더 많은 앤서니 모리스 역시 장타력 하나와 저렴한 몸값을 앞세워 백업 1루수, 좌익수로 근근이 살아남은 저니맨이었다.

하지만 그는 언제 나설지 모르는 한 타석을 위해 불만 없이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고, 동료들의 평가도 좋았다.

“발디보다 앤서니를 생각하니까 더 욕심나네. 월드시리즈는 몰라도 포스트시즌 정도는 밟고 은퇴하게 해주고 싶은데...”

“마음대로 은퇴시키지 말고.”

“이번 시즌이 끝은 아니겠지만, 얼마 안 남은 건 부정할 수 없지 않나?”

“그럼 당신 역할에 최선을 다하든지.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아니, 그런 마음으로 시합에 집중한다는 거지. 마음가짐 정도는 그렇게 먹을 수도 있잖아?”

“내 마음가짐으로는 원정 가는 비행기에선 푹 자야 하니까 이제 좀 가서 쉬어.”

대체 왜 자꾸 날 붙잡고 이런저런 말들을 늘어놓는 걸까.

지난 시즌 제츠에 있을 때야 영도 본인이 팀의 간판이자 에이스였으니 어떻게든 팀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손성호가 옆에 붙어 케어했다지만...

‘여기선 아니잖아? 기대는 좀 받는 것 같지만, 나 말고 키스도 있고 칼튼도 있고...’

시즌 초반에 너무 잘해서 그런 건가.

아니면 내가 말 걸어서 성질머리를 고쳐보고 싶은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인 건가.

원정 비행기에서는 무조건 자는 게 내 루틴인데 왜 옆에 와서 말을 거는 거냐고...

영도는 푸욱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살짝 흔들리긴 했지만, 루틴은 어떻게든 지켜야 하니까.

원정 비행기라는 편하지 않은 장소에서 잠을 청하는 선수도 있고, 오히려 몸에 안 좋다고 잠들지 않는 선수도 있지만.

결국, 그들도 결국 루틴이었다.

해니건 때문에 잠이 좀 깨긴 했지만, 비행기에 탈 때마다 자 버릇했더니 그래도 눈을 감으니까 솔솔 잠이 왔다.

‘그래, 내가 이걸 잊고 있었지. 그래도 세인트루이스는 LA랑 거리가 비슷해서 다행인데... 보스턴에서 올 땐 또 어떻게 하냐.’

다행히 비행시간 2시간이 넘으면 이동일 경기 시간을 조정하는 규정이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3일에 한 번씩 비행기 2시간을 타는 게...

메이저리그 일정이 괜히 지옥인 게 아니고, 아시아에서 온 선수들이 부진 끝에 결국 아시아로 컴백할 때마다 이동 거리를 가장 큰 이유로 꼽는 게 다 이유가 있었다.

이동 거리를 생각하니까... 갑자기 피곤해졌다.

갑자기 피곤해진 덕분에 잠이 잘 오니까 다행인 건가...

‘이렇게 시끄러운 곳에서 잠이 잘 오다니. 이런 난장판에서 잠드는 게 익숙해진 내가 자랑스럽고 안쓰럽네.’

원정 가는 비행기에서 잠들지 않는 선수들은 한쪽에서 같이 맥주도 마시고 포커도 치면서 시끄럽게 놀고 있었다.

루틴을 지키기 위해 항상 잠들다 보니 이제 이 정도 시끄러우면 오히려 잠이 더 잘 왔다.

그게 참... 복잡한 기분이었다. 메이저리거의 삶이란...

< 복귀를 실감하는 순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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