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대책과 대책과 대책 > (102/200)

< 대책과 대책과 대책 >

“야! 유승도! 저녁 안 하고 뭐하냐!!”

메이저리그 복귀전을 치르고 어느덧 한 달.

영도는 지옥의 원정 10연전을 마치고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왔지만...

꿀맛 같은 휴식일 전 마지막 3연전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귀여운 동생 놈이 식사 시간도 잊고 방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철저하게 짜여진 루틴과 스케줄 그대로 생활하는 영도의 매니저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실수였고, 오랜만에 진심으로 짜증이 올라왔다.

“아, 아! 시간이 언제 이렇게 됐어? 미안, 미안. 요즘 일이 너무 많아서...”

“... 일이 그렇게 많아? 네가 웬일로 밥 시간을 다 잊어버려? 이런 일 한 번도 없었는데.”

“다 형 때문이지. 형이 잘하면 에이전트가 바쁘고, 형이 못하면 에이전트가 편한 거니까.”

“그럼 그동안은 내가 너무 못해서 스케줄을 안 잊어버린 거였냐.”

“응. 몰랐어? 지난 시즌에도 좀 바쁘긴 했지만, KBO랑 빅리그는 사이즈가 다르니까.”

32경기를 치른 지금, 영도의 성적은 0.281/0.363/0.657로 OPS 1.020, 16홈런을 마크했다.

홈런은 리그 전체에서 2위보다 4개 많은 1위, 내셔널리그 기준 2위보다 6개 많은 1위로 압도적인 수준.

비록 10경기 11홈런 이후 22경기에서 5홈런에 그치며 살짝 부진했지만, 22경기 성적도 나쁘진 않았다.

무엇보다 32경기를 치르는 동안 홈 경기는 13경기에 불과하다는 게 이후 활약을 계속 기대하게 하는 부분.

대부분의 선수가 홈 성적이 원정 성적보다 좋았고, 무엇보다 영도의 홈 구장은 천하의 쿠어스 필드였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넌 이제 에이전트 일에 집중하고 매니저 하나 새로 구해달라고 할까?”

“... 아니, 그럴 필요는 없고... 제일 시간 많이 잡아먹는 게 식사 준비니까 어떻게 조리사만 구하자. 다른 일은 내가 다 하겠는데, 식사는 이제 조금 더 전문적으로 해야 할 것 같은데. 시간도 시간인데, 이제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하긴. 나도 그런 생각은 해봤는데, 네가 돈도 안 받고 너무 잘하니까 굳이 안 구해도 되는 줄 알았지.”

“... 돈 안 드는 노예 취급은 하지 말아줄래.”

순수 장타율만 0.370을 넘어가는 어마어마한 파워.

비록 초반의 기세를 계속 이어나가진 못했고, 살짝 꺾인 듯한 느낌은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압도적인 홈런 1위였다.

심지어 초반 페이스를 싹 무시하고 연속 경기 홈런 기록 중단 이후의 페이스만 계속 유지해도 산술적으로 46홈런이 가능한 상황.

압도적인 초반 페이스 덕분에 관련 기사, 분석 기사가 쏟아져 이젠 여름 이후, 시즌 후반기 성적이 더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에 5시즌 만의 50홈런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에이전시가 바빠지는 건 당연한 수순.

승도는 최소한 식사 준비만큼은 전문가를 고용해 맡기자고 제안했고, 메이저리그 계약 직후부터 이를 고민했던 영도 역시 흔쾌히 수락했다.

야구를 잘하기 위한 돈은 절대 아끼지 않는 영도다운 선택이었다.

“원정 10연전은 어땠어? 팀 성적은... 형편없었지만, 개인 스탯은 그래도 로키스 타자 치곤 나쁘지 않았는데.”

“이게 메이저리그구나, 하고 새삼 깨달았지. 시즌 초반이라 서부만 쭈욱 돌았는데도 피곤하네. 서부만 돌았다고는 해도 이동할 때마다 거의 3시간씩 걸렸지만.”

로키스는 원정 시리즈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타격 성적이 좋아졌다.

원정 시리즈가 길어질수록 성적이 떨어지는 다른 팀들과 정반대의 그래프였지만, 이게 언제나의 로키스였다.

혼자 이상한 쿠어스 필드를 떠나 원정 시리즈를 치르며 예전 감각을 찾을수록 성적이 올라가는 게 로키스 원정 경기의 특징이었으니까.

쿠어스 필드만 혼자 타자에게 요구되는 감각, 타석 접근법이 달랐으니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야구는 타자들만 하는 게 아니었다.

그 결과, 32경기를 치른 상황에서 로키스의 성적은 13승 2무 17패.

시즌 전 예상대로 파드리스만을 아래에 둔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4위에 이름을 올렸다.

“보니까 투수들 분석이나 견제도 철저해진 것 같고, 오랜만에 빅리그 일정을 치르면서 이동거리 적응도 덜 된 것 같던데? 그것만 익숙해지면 지금보단 페이스가 올라오지 않겠어?”

“올라와야지. 곧 날 더워지면 상대적으로 또 유리해질 거고.”

“그나저나 빅리그... 역시 무섭네. 무슨 분석이 순식간에 끝나?”

“전력 분석팀에 들이는 돈이 얼마인데. 타자는 금방 분석되고, 투수는 30개 팀 13명씩이면 400명인데 그걸 또 언제 분석하느냐고. 빅리그는 이게 힘들어. 단순히 수준 차이 때문에 힘든 게 아닌데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

냉정하게 말해서 KBO에서 건너온 선수들 정도 되면 확고한 주전까진 몰라도 주전급 선수들과의 기량 차이는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KBO 출신 선수들을 정말 어렵게 하는 건 바로 옆 동네로 원정을 가도 서울-부산 거리보다 더 먼 거리를 가야 하는 지옥 같은 이동 거리와 분석이 어려울 정도로 지나치게 두터운 선수층이었다.

이동 거리야 웬만한 야구팬이라면 이제 다 알지만, 전력 분석 시스템의 차이는 비교적 덜 알려진 상태.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인, 그래 봤자 거기서 거기인 KBO에선 아예 정보가 없는 상대를 만날 일이 거의 없었다.

반면, 메이저리그는 엄청난 돈을 투자해 전력분석팀을 꾸려도 내일 만날 선수에 대한 유의미한 정보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반대로 정보가 없던 선수도 이름을 알리려고 하면 순식간에 해체되어 한 달 정도 반짝하고 사라지는 경우 역시 많았고.

조금 활약하려고 하면 철저하게 분석 당해 약점만 얻어맞고, 종종 나의 모든 걸 다 아는 낯선 상대를 만나 맨몸으로 맞붙어야 한다는 것.

여기까지 버텨내야 진정한 메이저리거라고 말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들으니까 모든 팀이 형 때문에 난리였다더라.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자료 다 파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만든다고. 30개 구단 전부 한동안은 다른 일 다 멈추고 Y-DO 분석에만 올인했다던데? 오올... 유영도오--, 성공했는데에--”

“내가 너무 달라졌으니 갑자기 터진 루키 분석하는 것처럼 한 거지, 오버는... 루키 한 명 제대로 터졌을 때랑 비슷했겠지.”

“뭐, 그럴 수도 있고. 근데 그때보다는 반응이 훨씬 빠른 건 맞는 것 같은데? 원래 형 재능 하나는 유명했으니 더 민감하게 반응한 걸 수도 있고.”

“뭐, 그건 그럴 수 있지. 그쪽은 설득력이 좀 있네.”

원정 10연전은 타격감을 유지하기엔 너무 길었다.

그리고 영도의 시즌 초반 성적은 지나치게 위협적이었다.

빅리그 팀들은 10경기 만에 영도를 빅리그 최정상급 타자라 평가, 현미경 분석을 시도했고 이후 철저하게 경계하며 약점을 공략해왔다.

물론, 그로 인해 페이스가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시즌 전 예상보다 훨씬 뛰어난 성적이긴 했다.

그리고 홈으로 돌아왔을 때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예상할 수 없었고, 어차피 초반 페이스는 너무 말이 안 되는 수준이라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기도 했다.

“천천히 해, 천천히. 어차피 확 내달렸으니 잠깐 쉬어가는 시기가 오는 건 당연한 순서지. 이제 분석돼서 다시 처음 같은 모습은 절대 못 보여줄 거라고? 누가 그래? 분석돼서 주춤한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러운 흐름일 뿐인데 아는 척은...”

“시끄러워. 난 그런 생각 해본 적도 없고, 내 앞에서 감히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없어.”

“그래, 그럼 다행이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니까? 제리 페이지, 로날드 비어니 같은 선수들이 분석 당한다고 주춤했나?”

“하하하, 지난 시즌 MVP랑 비교한다고? 적당히 해, 적당히. 꼭 MVP가 아니더라도 분석이 의미 없는 타자들은 많아.”

“호오... 그래서 형도 그 정도는 된다? MVP는 아니지만, 분석이 의미 없는 타자다?”

“그 정도는... 되어야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분석 한 번 당했다고 한 번에 스러질 선수가 되기 위해 한국까지 다녀온 게 아니었다.

과거의 유영도는 구단의 조급함이 유망주를 망친 전형적인 사례이자, 특출난 장점 덕분에 콜업 초반 잘 나갔지만, 그만큼 적나라한 약점을 메우지 못해 분석되고 무너진 전형적인 사례였다.

이미 한 번 빅리그의 분석력에 철저히 당했는데, 두 번 당하면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

“아직 분석이 의미 없는 수준까지는 아닐 수 있지. 그래도 나 역시 멈춰있는 건 아니니까.”

“그래, 그래. 내가 밥할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쁜데 앞으로 더 바빠져도 좋으니까 항상 말했듯 야구만 좀 잘해줘. 형이 잘해서 바빠지는 건 얼마든지 환영이라고.”

“... 조리사 구할 때까진 밥 시간 놓치지 마라. 지금 이것도 영양 균형은 문제 없으니까 먹지만... 맛이 아주 마음에 안 들어.”

“넵. 형님. 명심하겠습니다.”

***

[내셔널리그 서부지구는 LA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라는 리그 명문 팀들이 속한 리그지만, 전체적인 리그 승률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그 두 팀을 제외한 나머지 팀들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죠. D백스와 파드리스는 스몰마켓이고, 로키스와 파드리스는 극단적인 타자친화, 투수친화구장 때문에 각각 투수와 타자를 영입하는 게 어려우니까. 그나마 리그 전체에서 중간 이상의 관중 동원력을 자랑하는 로키스가 쿠어스 필드 때문에 무너지면서 전체적인 지구 승률이 항상 무너져요.]

콜로라도 로키스가 13승 2무 17패로 지구 4위까지 내려앉았지만, 다저스, 자이언츠 두 팀을 제외하면 나머지 세 팀의 전력 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쿠어스 필드와 펫코 파크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큰 변화는 없을 확률이 높은데, 두 구장 모두 개장 후 50년도 되지 않은 비교적 젊은 구장들이라...

한동안은 모든 미국 프로 스포츠 구단들의 무덤 ‘애리조나’의 한계, 마켓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함께 세 팀이 ‘우리만의 리그’를 형성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장타 억제하겠다고 아무리 바깥쪽으로 던져봐라. 내가 옛날처럼 무턱대고 휘두르나.’

우리만의 리그를 만들든 말든 개인 성적은 쌓이는 법.

현미경 분석으로 응수한 타 팀 투수들에 맞서 영도 역시 크고 작은 변화들을 시도했다.

상대가 스트라이크존을 넓게 쓰면서 장타를 억제하려 할수록 영도는 스트라이크존을 더욱 타이트하게 좁혔다.

상대가 못 치는 공을 던지려 하면 안 치고 기다리다 걸어나가면 그만.

메이저리거라고 해도 던지는 공의 절반 정도가 원하는 위치에 꽂히면 선방인데, 존을 좁히고 느긋하게 기다리다 보면 실투 하나 안 나올까.

‘난 볼넷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어. 다른 대단한 선수들처럼 볼넷에도 만족 못 할 정도로 자의식이 강하진 않거든.’

타격감이 좋을 때 투수들이 계속 피해 가는 피칭으로 일관하면 초조함에 계속 따라가는 스윙을 하다가 좋던 타격감까지 무너지는.

좋았던 타격감을 잃어가는 타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이클이고, 매 시즌 몇 명씩은 꼭 보여주는 흐름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타자라 할지라도 팀 성적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개인 성적에 대한 욕심 때문에 꼭 보여주는 흐름.

하지만 볼넷으로 살아나가기만 해도 만족하고 팀 성적은 전혀 관심 없는 영도에겐 효과가 크지 않은 방법이었다.

생각보다 선구안이 좋다는 것까지 드러난 지금은 더더욱.

‘생각만큼 배트가 안 나오지?’

스트라이크 존을 좁히는 게 새로운 변화는 아니었다.

오히려 KBO 진출을 준비하며 처음으로 시도한 변화에 가까웠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선수여도 결국 마찬가지.

갑자기 빵 터진 몇몇 선수를 제외하면 서로 가진 무기를 전부 다 꺼내놓고 보여주면서 싸우는 게 메이저리그였다.

투수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타자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내는 선수는 절대 있을 수 없는 법.

누구나 아는 무기들을 얼마나 적재적소에,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집어 들 것이냐가 핵심.

어차피 들킨 무기에 아주 사소한 변화를 더해 상대의 허를 찌르느냐가 핵심.

그런 의미에서 절정의 타격감으로 비교적 넓은 존을 공략하다가 갑자기 확 좁혀버린 영도의 선택은 D백스 투수진의 허를 절묘하게 찔렀다.

[참고 또 참으면서 기다렸던 몸쪽 공을 놓치지 않고 포착! 쿠어스 필드의 외야 펜스를 손쉽게 넘겨버립니다! 시즌 17호 홈런! 내셔널리그 홈런 2위와의 격차를 5개로 벌리는 홈런!]

[계속 바깥쪽으로만 던질 수 없어 딱 하나 몸쪽으로 넣었는데, 그걸 안 놓치네요.]

[아직도 Y-DO의 각성을 믿지 않으려는, 인정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곧 분석되어 바닥을 드러낼 거라 말하곤 합니다만... 글쎄요. 5월 중순으로 접어드는 지금까지 낌새가 안 보이니 크게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걱정을 할 시간에 50홈런을 넘길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게 더 생산적일 것 같네요. 5시즌 동안 없었잖아요, 50홈런 타자가.]

29개 구단이 영도를 분석하고 무력화시키기 위해 전력분석팀을 본격적으로 동원, 방법을 찾아내려 갖은 애를 썼다.

그리고 영도는 그들의 공략법을 다시 무력화시키기 위해 가진 무기들을 다시 점검하고 끊임없이 작은 변화들을 시도했다.

2041시즌 초반 한 달 동안 그들의 방심을 틈타 강력한 펀치들을 꽂아넣었던 유영도.

이제 그렇게 올라온 위치에서 버틸 수 있다는 것, 버텨내면서 더욱 비상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시험과 맞닥뜨렸다.

< 대책과 대책과 대책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