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문제 없는데 > (100/200)

< 문제 없는데 >

‘투 스트라이크에 몰리기 전에 끝을 보자.’

포크볼이란 구종은 어쩔 수 없이 자주 던지기 힘들고 자주 던질 수도 없는 구종이었다.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악력을 심하게 갉아먹고, 손가락을 자연스럽지 않게 벌려 사이에 공을 끼우고 탑스핀을 주는 과정에서 손목까지 꺾느라 통계를 떠나 인체역학적으로도 부상 위험도 큰 구종.

똑같이 부상 위험이 크다고 알려진 슬라이더가 2040년이 되어서도 명확한 통계나 증거가 나오지 않은 것에 비해 포크볼은 이미 2000년대에도 반론이 없었다.

하루 공 던지고 말 게 아니라면 조심스럽게 던질 수밖에 없는 공.

결국, 포크볼은 태생적으로 결정구로 써야 하는 공이었고, 대부분이 투 스트라이크 이후 구사될 수밖에 없었다.

‘워낙 장인이라 카운트 잡는 용도로도 쓰긴 하지만...’

안정규는 구사하는 포크볼의 종류를 늘리는 것으로 약점을 메우려 했고, 어느 정도는 메울 수 있었다.

어느 한 구종을 정말 잘 던지는 투수는 같은 구종을 여러 개씩 던지기도 하는데, 안정규 역시 그런 식으로 포크볼의 바리에이션을 늘린 것.

하지만 포크볼은 결국 커브와 같은 탑스핀 구종이고, 패스트볼과 커브의 중간이라고 평가되는 만큼 커브와 비슷한 약점이 있었다.

밋밋한 포크볼은 밋밋한 커브처럼 배팅볼이나 마찬가지고, 금방 까마득하게 날아간다는 것.

제대로 던지면 카운트를 잡는 용도의 포크볼 역시 악력 저하, 부상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결국, 안정규의 피칭은 투 스트라이크를 얼마나 수월하게 잡아낼 수 있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정해졌다.

타자도 이를 모를 리 없으니 투수와 타자의 노림수가 명확할 수밖에.

[안정규 선수, 투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신중한 피칭을 이어갑니다.]

[사람들이 다들 안정규 선수를 말할 때 포크볼을 먼저 이야기하지만, 커브도 굉장히 잘 던지는 선수거든요. 사실, 포크볼을 자주 던지지 못하기 때문에 따져보면 커브 구사 비율이 훨씬 높아요. 커브를 주 무기로 하는 투수라고 해도 됩니다.]

[포심 구사 비율이 40%를 밑돌고, 커브가 30% 근처, 슬라이더와 포크볼을 합쳐서 30% 정도로 나타나긴 합니다. 하지만 멸종 직전의 포크볼을 구사하는 투수라서 포크볼에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죠. 실제 성적이나 구종 가치를 봐도 포크볼이 더 높기도 하고.]

[하지만 커브만 없었다면 포크볼을 구사하기 위한 카운트를 잡는 것부터 어려웠겠죠. 그러니까 안정규 선수는 절대 포크볼 하나로 먹고사는 선수가 아니다, 그 말을 하고 싶었어요.]

투 스트라이크를 잡으려 하는 안정규, 어떻게든 투 스트라이크 전에 승부를 보려는 유영도.

두 선수의 눈치 싸움이 치열했다.

해설자의 말처럼 안정규의 커브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에 쉽지만은 않았다.

‘상대 투수의 주 무기를 공략해야 진정한 간판, 슈퍼스타가 될 수 있다면... 그까짓 것 안 하고 말지.’

영도의 노림수는 오직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주 무기를 공략해서 투수를 흔들고 자연스럽게 팀 동료들에게까지 도움을 준다?

배부른 소리였다. 일단 나부터 잘하고 봐야지...

상대의 약점을 노려야 좋은 결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는 건 상식.

영도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버리는 공, 유인구로만 자꾸 쓰는데 스트라이크 존을 좀 넓게 가져가야 하나.’

안정규도 바보는 아니라서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는 대부분이 한 번 버리는 공, 속아주면 좋고 안 속으면 어쩔 수 없는 유인구로 소비했다.

투 스트라이크가 되었을 때 포심과 커브, 그 둘의 중간인 포크볼까지 다 생각하고 타격하는 건 쉽지 않았다.

어떤 투수나 마찬가지지만, 안정규는 노 스트라이크, 원 스트라이크에 비해 투 스트라이크 이후 성적이 유독 좋았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두 개.

빠지는 공이라도 쫓아가서 패스트볼, 슬라이더를 노려보거나, 아니면 결정구가 될 커브나 포크볼을 노리거나.

그나마 다행인 건 안정규도 메이저리그 기준으로는 스터프나 구속이 뛰어난 투수가 아니라서 패스트볼이 일단 칠 수 있게만 들어오면 시도해볼 만하다는 건데...

[절묘한 포크볼! 안정규, 기어이 투 스트라이크를 잡아냅니다. 역시 믿을 건 포크볼이었습니다.]

[자, 일단 투 스트라이크는 잡혔어요. 이러면 유영도 선수 입장에선 다음 공을 노릴 가능성이 높거든요? 포크볼을 일단 던졌으니 다음 공은 포크볼이 아닐 확률이 있고, 유영도 선수라면 포크볼 타이밍 전에 결과를 내고 싶을 거예요.]

[여기서부터 두 선수의 심리전이 또 치열하게 벌어질 것 같습니다.]

[그렇죠. 유영도 선수에겐 반갑지 않은 상황이에요.]

포크볼 연속 두 개는 아닐 것 같고... 2-2로 아직 볼 한 개의 여유가 있으니 유인구를 던질 것도 같고...

포크볼과 메커니즘이 비슷해 혼란을 주기 쉬운 패스트볼이나 커브, 그중에서도 아마 커브가 아닐까, 싶으면서도 이번 승부에서 거의 던지지 않은 패스트볼일 것 같기도 하고.

걱정했던 것처럼 투 스트라이크가 쌓이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포심-포크볼-커브라는 헷갈리는 메커니즘의 공을 비슷한 궤적으로 던지는 투수라 투 스트라이크 이후가 확실히 골치 아팠다.

‘골치는 아프지만, 결국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지.’

투 스트라이크에서 고민해봤자 크게 달라질 게 있을까.

결국, 비슷한 건 다 휘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2-2, 매우 중요한 볼 카운트입니다. 안정규 선수와 유영도 선수, 두 선수 모두 날카로운 눈빛으로 신중하게 다음 공을 준비합니다.]

‘포크볼이냐, 패스트볼이냐, 커브냐...’

포크볼은 다른 말이 필요 없는 결정구, 커브도 마찬가지고, 패스트볼은 브레이킹 볼을 결정구로 하는 투수들이 허를 찌르는 결정구로 종종 사용하는 구종.

‘패스트볼에 타이밍을 맞추고 다른 건 알아서 반응하는 수밖에.’

이럴 때 무기력하게 물러나지 않으려고 스윙 타이밍까지 최대한 늦춰가면서 타격폼을 작게, 더 작게 바꿔왔는데 허무하게 물러날 순 없지.

실제로 메이저리그를 떠나기 전과 돌아온 지금, 가장 많이 달라진 것 중 하나가 투 스트라이크 이후 성적이었다.

예전에는 투 스트라이크 이후 브레이킹볼만 들어오면 휘리릭 돌리고 뻘쭘하게 들어갔는데, 지금은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도 나름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그렇게 버티니까 타고난 장타력이 더해져 성적도 자연스레 좋아졌고.

적당히 맞춰도 내야를 넘길 힘이 있으니까 맥없이 속아 넘어가지만 않으면 최소한의 성적은 나왔다.

[뚝 떨어지는 공에 딸려 나오는 배트! 앞으로 무너지면서 가까스로 배트에 맞추는 건 성공... 맞추는 것만 성공했는데 이게?]

[3루수와 유격수가 계속 뒤로 달리거든요? 저 타구가 대체 어디까지 날아가려고 저러는 걸까요!!]

[3루수, 유격수는 멈췄습니다! 계속 파울 라인 근처로 휘어지는 타구! 이제 좌익수 로날드 매그니만 따라가고 있고, 유영도 선수는 1루 돌아 2루로!]

[말도 안 되게 멀리 날아가는데요!? 높게 떴는데 코스도 너무 좋아요, 지금!]

안정규의 선택은 연속 포크볼이었고, 패스트볼이라 생각하고 출발한 영도의 스윙은 타이밍이 너무 빨랐다.

영도는 스윙이 돌아가는 힘으로 대신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스윙 타이밍을 늦췄다.

어쩔 수 없이 상체가 다 무너지고 하체 회전과 허리 회전이 다 죽어 팔과 어깨로만 휘두른 스윙.

그러나 언제나처럼 생각보다 멀리 뻗었다. 

게다가 스핀까지 심하게 걸린 채 파울라인을 향해 휘어지면서 수비가 따라가기 어려운 위치로 날아가기까지.

[라인 안으로 떨어지냐, 밖으로 떨어지냐. 경우의 수는 두 가지입니다. 매그니의 수비력이나 수비 범위를 생각하면 잡는 건 어려워 보이는데... 페어! 페어가 선언됩니다!]

[유영도 선수는 이미 2루에 도착했어요! 매그니, 내야로 중계해보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복잡한 심리전에서 사실상 밀렸고, 자세도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 이뤄진 타격이었지만.

어쨌든 결과는 장타, 2루타였다.

2루타를 때려냈으니 과정과 관계없이 승자는 영도였고.

[유영도 선수의 2루타! 연속 경기 홈런 중단의 후유증은 전혀 없다는 듯 첫 타석부터 2루타를 때려냈습니다.]

[뭐 자세가 무너졌고, 타이밍이 다 어긋났고... 이런 거 다 필요 없죠. 타자는 결과로 말하는 거고, 결과가 좋으면 타격감이 올라오고, 타격감이 올라오면 결과가 좋고 그런 거예요. 지금 유영도 선수가 타격감을 유지하고 있으니까 저런 자세에서도 2루타가 나오는 거지, 만약 기록 중단 때문에 후유증이 있다고 하면 저런 결과가 안 나오죠.]

[실제로 2루타가 나올 거라고 상상하긴 어려운 자세였죠. 유영도 선수의 파워가 무시무시하다고는 하지만, 항상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거든요?]

[타격감이 좋아서 그래요. 컨디션이 좋아서.]

어제 경기에서 10경기 연속 홈런 기록이 중단되었을 때,로키스 관계자, 동료들뿐 아니라 팬, 메이저리그 사무국, 심지어는 다른 팀 관계자들까지도 영도의 오늘 성적과 컨디션을 궁금해했다.

팬들은 영도의 이번 시즌 성적을 기대했기 때문에, 사무국은 아시아 지역 스타 마케팅을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다른 팀에서는 영도를 상대해야 했기 때문에.

각각 다른 이유로 영도의 오늘을 궁금해했던 것.

“흠... 타격 감각은 좋아 보이는데요? 단순히 신체 능력이 좋아서 어거지로 만들어낸 타구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게. 생각보다 완성도 좋은 타자라는 건 이미 증명되었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저런 공까지 따라가는 건 완성도 말고 감각까지 받쳐줘야 하는 거니까.”

“그러면... 기록 중단 같은 건 전혀 신경도 안 쓰는 것 아닙니까?”

“... 대체 멘탈이 어떻게 된 놈이길래 이런 상황에서도 흔들리질 않는 거지? 아니지, 이제 고작 첫 타석인데.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어, 사람이라면. 그러니까 먼저 판단하지 말고 경기 끝날 때까지 모든 걸 다 뜯어내. 내장이 보이면 내장까지도.”

다음 경기 상대인 신시내티 레즈의 전력 분석원들은 뒤통수를 박박 긁어대며 다시 카메라 초점을 조정했다.

로키스를 홈구장인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로 불러들여 3연전을 치를 레즈는 홈구장이 쿠어스 필드 다음가는 홈런 공장이라 영도의 컨디션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레즈 전력 분석원들의 경계 대상 1순위가 영도라는 것.

이게 2041시즌 초반 영도가 차지하는 위치였다.

‘이 정도 타구로는 컨디션 어쩌고저쩌고하는 입들을 다물게 하긴 부족해. 좀 더 제대로 된 타구를 뽑아내야 그딴 소리 안 듣고 조용히 야구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인터넷에서 떠들어대는 소리, 듣지 못하는 곳에서 떠들어대는 소리는 언제나 그래 왔듯 무시할 수 있지만, 직접 눈앞에서 걱정하는 사람들까지 무시할 순 없었다.

눈앞에서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영도를 걱정한다는 거고, 걱정해주는 사람들까지 무시할 만큼 무신경하진 않으니까.

걱정이 아니라 비꼬는 거라고 해도 시끄러우니까 귀찮았다.

그러니까 아예 그런 생각을 못 하도록 제대로 된 걸 보여줘야겠지.

이런 2루타로는 아직 부족했다.

아직 귀찮은 것 다 치워버리고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걱정해주는 사람들과 오지랖 떠는 사람들을 납득시킬 한 방이 필요했다.

< 문제 없는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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