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진짜 시작 > (99/200)

< 진짜 시작 >

“... 괜찮은 거지?”

“괜찮습니다. 홈런 매일 치는 게 더 이상한 건데요.”

결국, 시즌 11번째 경기인 시카고 컵스와의 3연전 중 2차전에서 영도의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은 마침표를 찍었다.

10경기 연속 홈런, 10경기 11홈런의 기록을 남기고 끝을 알린 홈런 레이스.

영도 본인은 처음부터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고, 9경기를 넘어간 이후부터는 정말로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기록이 끊긴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10경기 연속으로 홈런을 터뜨렸던 게 오히려 이상한 거지, 원래는 3경기마다 한 개씩만 쳐도 그리 어렵지 않게 홈런왕에 오를 수 있는 시대였으니까.

“이봐, Y-DO. 혹시 상실감이 느껴진다거나 허하다거나, 몸이 마음 같지 않다거나... 그런 느낌이 들진 않아?”

“대체 몇 명이 물어보는 거야. 난 괜찮은데 다들 자꾸 물어봐서 오히려 안 괜찮아지겠어.”

일단 2차전 경기가 끝나고 3차전을 위해 리글리 필드에 모이자 마자 메이슨 콕스 감독이 영도를 불러 상담을 진행했다.

홈런 기록이 깨졌는데 괜찮냐, 이런 언론과 여론의 관심을 모두 한몸에 받았던 기록이 깨지면 대다수의 선수가 슬럼프를 겪고, 일부는 장기 슬럼프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그럴 낌새는 없냐, 힘들면 말해라, 바로 쉴 수 있게 해주겠다, 등등...

콕스 감독만 이러는 것도 아니었다.

해니건, 가드너, 와그너 등 그냥 만나는 선수마다 괜찮냐며 물어오는 통에...

‘내가 괜찮으면 안 되는 건가, 지금이라도 안 괜찮아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

“안 그래도 지금 내 동생이 매니저 역할 하고 있는데, 어제 들어가자마자 걔도 그러더라. 괜찮냐고.”

“아무래도 관심이 엄청나게 쏠렸던 기록이고, 그만큼 부담감도 많이 느꼈을 테니...”

“전혀. 난 그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9경기로 경신한 순간 바로 얼마 없던 관심도 껐다. 그러니까 제발 괜찮냐고 좀 그만 물어봐. 그게 더 신경 쓰이니까.”

“그래. 정말 괜찮은 거...”

“괜찮다고! 괜찮으니까 묻지 마. 진심으로 짜증 나니까.”

“그래, 괜찮다면 다행이고. 그럼 오늘도 고생해라.”

걱정해주는 건 고맙지만, 일상생활에서도 가끔 그런 것처럼 걱정이 지나치면 걱정 그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했다.

아니, 퍼펙트, 노히트 노런 같은 기록이 진행 중이면 격려하고 우려해주는 것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갈까 우려해 말도 안 걸면서 왜...

“게일. 가서 다른 선수들한테도 전해. 제발 신경 끄라고.”

“... 그래, 알았다. 괜찮은 것 같다고 전할게.”

안 그래도 경기 전 루틴이 많은데 더 이상의 방해가 들어오면 루틴을 지키는 것조차 어려워질 것 같았다.

아무리 야구에 모든 걸 거는 프로 선수라고는 하지만, 경기 전이라고 해도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이 벌어지기 마련이었다.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내가 의도하지 않은 일 때문에 소모되는 시간은 있기 마련.

그래서 시간적인 여유를 두고 루틴을 만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다른 사람의 걱정이 또 이어지면 시간이 부족해질 것 같았다.

그만큼 팀원들에게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선수들은 지금 영도의 상태를 궁금해했다.

‘고맙지만... 이 정글 같은 곳에서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줄 수 있다는 게 대단하기도 하지만... 난 이런 거 어색하다고. 별로 반갑지도 않고.’

드디어 콕스 감독과 해니건을 쫓아내고 경기 준비에 매진하려던 순간, 이번에는 또 휴대폰이 울렸다.

슬슬 움직이려던 순간이었기에 맥이 빠진 영도는 한숨을 푸욱 내쉬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아, 형! 기분은 어...]

“괜찮아. 닥쳐. 끊어.”

하여튼 도움 안 되는 놈...

매니저에서 자르고 에이전트 공부나 더 열심히 하라고 해야 하나...

***

“여어! 후배님!”

“하아, 괜찮다고... 음? 한국어?”

“뭐가 괜찮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컨디션은 좀 어때?”

시카고 컵스의 3선발이자 오늘 경기 등판이 예정된 선발투수.

KBO에서 연평균 18승, 188이닝, FIP 2.33이라는 압도적인 기록을 남기고 FA를 통해 메이저리그로 넘어온 MLB 4년 차의 베테랑.

안정규가 경기 전 잠깐 시간을 내서 영도를 찾았다.

“아아, 안녕하십니까. 어제 홈런 못 쳤다고 걱정해주면서 귀찮게 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요. 선배는 컨디션 괜찮으십니까?”

“나야 괜찮지. 아, 그러고 보니까 그런 일이 있었지. 선발 등판 준비한다고 신경을 못 썼네. 그래서 어떤데, 컨디션은?”

“... 하아, 괜찮습니다. 어제 경기 끝나고 오늘까지 한 12시간 동안 괜찮다는 말만 120번은 한 것 같네요.”

“아니지, 아니지. 난 널 걱정해서 하는 말이 아니니까. 난 그냥 오늘 상대하는 팀의 가장 무서운 타자가 컨디션이 좋은지, 안 좋은지 염탐하러 온 거거든.”

영도가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건 2035시즌, 풀타임 시즌을 보내기 시작한 건 2037시즌.

안정규는 2038시즌 메이저리그에 진출했기에 영도가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이후였다.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한국인은 박희성이 전부였기에 미국 국적이지만, 국적만 빼면 그냥 100% 한국인이었던 영도와도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다.

외국에 나가면 외로운 건 일반인이나 프로 선수나 마찬가지고, 그럴 땐 말이 통한다는 것만으로도 급격히 가까워지기 마련이니까.

“어쨌거나 괜찮다니 아쉽네. 안 괜찮았으면 조금 더 편하게 보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선배도 이번 시즌 끝나고 FA였죠?”

“그렇지. 그러니까 좀 살살해줘. 넌 이제 첫 시즌인데 FA 수험생한테 좀 살살해줄 수 있는 거잖아.”

“하하하, 무슨 그런 농담을.”

박희성이나 안정규나 4년 계약을 체결하며 메이저리그에 진출했고, 안정규는 이번 시즌이 FA 직전 시즌이었다.

2008년생, 미국 나이로도 33세가 된 그에겐 사실상 마지막 FA이자 마지막 대박 기회였고, 그만큼 이번 시즌이 중요했다.

“... 반응이 부드러운데? 겨울에 봤을 때도 느꼈지만, 대체 한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 까칠하던 놈이 이렇게 부드러워진 거지? 성호 형한테 연락해서 방법을 좀 물어봐야 하나?”

“그거 물어봐서 뭐하려고요.”

“나도 좀 길들여보게. 힘도 좋으니 잘만 길들이면 평생 안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할 말 없으면 가서 경기 준비나 하세요. 중요한 시즌이라면서.”

혹시 이것도 경기 준비에 매진하지 못하게 하려는 수작인가?

역시 주목을 받는다는 건 마냥 편하고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주목을 못 받을 땐 적어도 경기 준비를 방해받는 일이 없었는데, 탑 프로스펙트 시절이나 KBO 시절, 연속 경기 홈런을 이어간 이번 시즌 초반에는 경기에만 집중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일부러 못 할 수도 없고 말이지.’

상황이 그렇게 된 걸 어쩌랴.

욕심이 없는 것도 아니니 주목을 받는 것에 익숙해지는 수밖에.

그리고 뭐 안 좋은 부분도 있지만, 마냥 나쁜 것도 아니었다.

사람인 이상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관심을 받고 자신의 분야에서 주목받는 사람이 되는 걸 아예 싫어할 리 없으니까.

***

[이번 시즌 첫 번째 코리안 메이저리거 맞대결입니다. 시카고 컵스의 선발투수 안정규, 그리고 콜로라도 로키스의, 이번 시즌 전 세계 야구 팬들을 흥분시키는 선수죠? 3루 거포, 유영도 선수가 만났습니다.]

[오늘이 재키 로빈슨 데이잖아요. 메이저리그는 물론, 전 세계에 여전히 남아있는 인종차별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고 이를 극복한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을 기념하는 날. 한국 선수 두 선수가 마운드와 타석에서 맞대결을 펼칩니다.]

[묘한 기분이네요. 42번 등번호를 달고 두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맞붙다니...]

[그런데 꼭 오늘 유영도 선수가 주전으로 나왔어야 했나, 하는 생각은 들어요. 10경기 연속 홈런 기록이 깨지면서 후유증도 있을 거고, 후유증을 생각하지 않아도 연속 홈런 기록 때문에 매 경기 주전으로 나오면서 경기 중 빠지지도 못했거든요.]

[물론, 중계하는 입장에선 유영도 선수가 출전해주는 게 좋고, 안정규 선수와의 맞대결을 지켜보는 것도 즐겁습니다만, 한 시즌을 놓고 보면 사실 이쯤에서 쉬어줄 필요는 있겠죠.]

영도와 안정규의 맞대결인데 한국에서 중계되지 않을 리가.

비록 탑 클래스로 자리 잡진 못했지만, 준수한 3선발급으로 안착한 안정규는 KBO 시절부터 다이나믹한 피칭으로 리그를 지배한 에이스이자 슈퍼스타였다.

박희성과 함께 5년 이상 리그를 이끌었고, 유형근과 안희성, 김진형, 박병헌 등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고 떠나왔지만, 아직도 그 자리를 완전히 메우지 못할 만큼 거물이었던 슈퍼스타.

당연히 지금도 인기는 상당했다.

영도야 말할 것도 없고. 지난 시즌 65홈런, 이번 시즌 메이저리그 진출 직후부터 11경기 11홈런인데 한국이고 뭐고 야구 팬이라면 무조건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각 대륙에서 야구를 대표할 수 있는 슈퍼스타를 찾아내려 노력 중인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놓칠 리 없는 매치업이기도 했고.

영도는 미국 내에서도 인지도가 있지만, 어쨌든 한국에서부터 팬 베이스를 키우는 게 유리한 상황.

화제성과 접근성이 좋은 안정규와의 맞대결을 통해 한국에서의 인지도를 최대치까지 끌어올려 주길 원했고, 로키스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영도는 괴물 같은 체력 덕분에 아직 전혀 힘들지 않았고, 여전히 경기 출전이 최대 목표인 선수.

이게 바로 쿠어스 필드에서의 6경기 포함 11경기 연속 교체도 거의 없이 출전 중임에도 12번째 경기까지 출전하는 이유였다.

[헛스윙 삼진! 안정규! 게일 해니건이라는 거물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면서 기분 좋게 경기를 시작합니다.]

[지금도 포크볼이죠? 포크볼이 사실 2010년대부터 스플리터라는, 익히기도 쉽고 부상 위험도 적고 무브먼트 차이도 크지 않은 구종에 밀리면서 정말 희귀해진 구종이거든요? 안정규 선수가 포크볼의 본고장인 일본을 포함해도 정통 포크볼을 구사하는 몇 안 되는 선수거든요? 저 포크볼이 KBO에서도 그랬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더욱 강력한 무기가 되어주고 있어요.]

안정규는 스터프보다 무브먼트를 앞세운, 삼진보다 맞춰 잡는 유형에 가까운 투수였지만, 포크볼 덕분에 삼진도 나름대로 잡아주는 투수였다.

포크볼이라는 무기 덕분에 메이저리그에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강력한 구종이었다.

구종 평가 자체는 60-65 정도로 아주 높은 편이 아니지만, 구사하는 투수가 5명이 채 되지 않아 메이저리그 대표 결정구, 마구를 꼽을 때 가끔 꼽히기도 할 정도.

“아오... 1년에 한두 번 만날까, 말까인데 그것 때문에 따로 시간을 더 내기도 그렇고...”

“많이 까다롭지?”

“그래. 그래도 포크볼은 동양 선수들이 많이 던진다는 느낌이 있는데, 그럼 너도 좀 치냐?”

“나도 별로. 이미 한국에서도 사라진 구종이라.”

영도 역시 안정규의 포크볼을 경계하며 타석에 들어섰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번 시즌을 끝으로 FA가 된다고 해서 살살 해줄 생각은 없었다.

안정규도 전혀 기대하지 않을 테고.

[지난 시즌까지 해도 박희성 선수와 함께 한국 야구를 이끌었던 안정규 선수와 지난 시즌과 이번 시즌, 믿을 수 없는 페이스로 홈런을 쓸어담으며 야구팬들을 열광시킨 유영도 선수. 두 선수의 첫 번째 맞대결입니다.]

[정말 대단한 선수들이죠. 여전히 한국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박희성, 안정규, 조유성 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이고, 유영도 선수도 국적만 미국일 뿐, 고등학교 때 넘어갔기 때문에 사실상 조건 자체는 한국 선수들과 다를 게 없어요. 어려운 일, 대단한 업적을 세운 선수들입니다.]

[이 네 선수 외에도 몇몇 선수들이 도전했지만, 실패한 선수들이 더 많죠. 날고 기는 선수들도 실패하는 곳에서 단단하게 자신만의 입지를 다진 두 선수. 이렇게 보니까 야구 팬으로써 가슴이 막 뛰고 그러네요.]

[한참 선배로써 저도 그래요. 뭔지 모를 감정들이 막 올라오기도 하고... 하여튼 고맙습니다.]

KBO를 완전히 파괴한 영도가 안정규까지 무너뜨리면 그 순간 완전히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이견 없이 인정받을 수 있었다.

박희성은 같은 타자라서 기록으로 쉽게 비교할 수 있고, 조유성은 불펜 투수라 한계가 명확했으니까.

사실, 아무리 투수와 타자가 달라도 수준이 너무 달라서 이미 밀어냈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다른 소리가 아예 안 나오려면 맞대결에서도 이겨주는 게 좋았다.

‘괜찮냐, 멀쩡하냐, 이런 소리 듣기 싫어서라도 잘해야지. 홈런까진 아니더라도 멀티 히트나 2루타 정도는 필요해.’

물론, 영도는 그런 복잡한 것까진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제발 그런 생각 좀 해달라고 매달릴 순 있겠지만, 이미 자신의 한계와 위상이 고정된 안정규를 화려하게 밟고 일어나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타가 되어주길 바라겠지만.

영도 입장에선 꼭 안정규에게만 이기겠다고 기를 쓸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이기겠다고 기를 쓰니까.

< 진짜 시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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