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드롬 >
[아아... 이번 시즌에도 콜로라도 로키스는 치명적인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는 건가요? 이번 시즌 첫 홈 연전 이후의 원정 시리즈인데, 에릭 카날레스에게 꽁꽁 묶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오늘 경기는 그냥 카날레스가 잘 던진 거라고 봐야죠. 대권에 도전하는 팀 중 하나인 시카고 컵스의 에이스인데요. 이 정도는 해줘야죠?]
[브랜든 에레라의 피칭도 정말 좋았거든요. 콜로라도 로키스 선발진의 상황을 생각하면 2선발로서 상대 에이스를 상대로, 우승권 팀을 상대로 좋은 피칭을 선보였는데... 아쉽습니다.]
[어쩔 수 없어요. 브랜든 에레라는 준수한 3선발급 투수고, 그 정도의 피칭을 했어요. 안타까운 건 어쩔 수 없이 로키스의 상황 때문에 2선발 역할을 맡아야 하고, 그렇게 되면서 내셔널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 중 한 명인 에릭 카날레스와 맞대결을 펼치게 되었다는 거겠죠. 선발 영입과 육성이 모두 어려운 로키스의 한계입니다, 이게.]
8회 초 공격에 1-4.
로키스의 2선발 브랜든 에레라도 6이닝 3실점 호투를 펼쳤지만, 7이닝을 1실점으로 묶어버린 카날레스의 호투가 눈부셨다.
[그리고 원래 시즌 초반에는 로키스 타선도 원정에서 나름 괜찮아요. 시즌이 진행되면서 홈과 원정에서의 격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거지, 시즌 초반에는 아주 큰 차이까지는 안 납니다.]
[하긴, 확실히 그런 게 기록으로 나타나긴 하죠. 그럼 오늘 경기는 그냥 에릭 카날레스가 잘 던진 걸로 하겠습니다.]
로키스 타선 부진의 이유가 홈 연전 이후 원정 시리즈의 어려움 때문인지, 카날레스의 호투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오늘의 로키스는 무기력했다.
그리고 사실 이유를 찾을 것도 없이 전력부터가 로키스는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하위권 팀이었고, 컵스는 중부지구 우승권 팀이었으니 원정에서 힘을 못 쓰고 밀리는 게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실제로 영도의 9경기 연속 홈런 때문에 가려져서 그렇지, 개막 이후 9경기 동안 4승 5패로 홈에서 6경기를 치른 것치고는 좋은 성적도 아니었고.
‘1-4, 마운드에는 프라미어리 셋업맨. 좋지 않은데...’
[아마도 Y-DO에겐 마지막이 될 타석입니다. 이 타석에서 홈런이 나오지 않으면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은 9경기에서 멈출 확률이 높습니다.]
[팬들 입장에선 아무래도 10경기 연속 홈런까진 보고 싶죠. 하지만 로키스도 그걸 원할지는 모르겠네요. 8회 2아웃이고, 주자도 없는 상황. 지금 홈런이 나와도 대세에는 영향이 없거든요?]
[야구계 전체의 주목을 받는 연속 기록을 이어나가다가 끊기면 후유증을 겪는 선수들이 많잖아요? 아무래도 그래서 팀에선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죠?]
[바로 그겁니다. 어차피 끊길 거고, 어차피 후유증을 겪을 거면 이왕 새로운 기록도 세웠으니 이쯤에서 끝나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Y-DO 본인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에이, 그럴 리가 있겠어요? 후폭풍이 어떻든 간에 당사자는 무조건 이어가야죠.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는데.]
‘이건 그냥 심플하게 토 나오는 공인데.’
신장 198cm, 긴 팔, 긴 다리에 디셉션에 모든 걸 투자한 투구폼. 사이드암에 가까운 스리쿼터.
평균 구속 100마일을 오가고 90마일 초반대의 무시무시한 슬라이더.
시카고 컵스의 프라이머리 셋업맨이자 차기 클로저, 콜린 디아즈는 랜디 존슨의 불펜 버전이자 불펜 시절의 크리스 세일이라 불렸다.
그냥 단순하게 데이터 분석이고 뭐고 다 무시하고 심플하게 압도적인 구위로 찍어누르는 투수.
불펜투수로서는 말 그대로 이상향에 가까웠고, 시카고 컵스의 에이스인 에릭 카날레스와 비교해도 1, 2이닝 기준으로는 절대 떨어지지 않는, 오히려 강력하다고도 말할 수 있는 강력한 투수였다.
‘그래, 이런 게 메이저리그지. 카날레스 같은 투수 다음에 또 이런 투수가 나오고 다음에는 클로저가 나오는 리그.’
영도는 우타자이기에 사이드암에 가까운 좌완 스리쿼터면 유리함을 일단 가져가야 했다.
물론, 아예 없진 않았다. 좌타자들은 정말 지옥이고 과장 좀 보태서 공이 눈앞에 도착하기 전까진 공을 찾을 수도 없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디셉션이 워낙 뛰어난 폼이고 왼팔을 최대한 느리게 휘두르는 폼이었기에 평범하게 치기 어려운 폼 정도였다.
‘그런데... 내가 또 사이드암, 언더스로 공은 기가 막히게 치지.’
이제 10경기 연속 홈런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어차피 9경기 연속 홈런이나 10경기 연속 홈런이나 메이저리그 신기록인 건 마찬가지.
그리고 애초에 기록에 집착하지도 않는 성격이고, 그렇게까지 중요한 기록도 아니었다.
영도는 언제나처럼 한 타석, 한 타석에 모든 힘을 다할 뿐.
한 타석이라도 나서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십수 년을 수도사 같이 살아온 초심.
상황이 바뀌었고, 위상이 바뀐 만큼 초심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고, 그게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었다.
‘뭐지? 분명히 첫 번째 맞대결인데 점점 타이밍이 맞아가는 것 같단 말이지...’
콜린 디아즈 역시 타석에 선 영도의 간절함을 느꼈다.
사이드암, 언더스로 투수에게 강한 특성까지 더해지면서 디셉션이 더러운 100마일대 무시무시한 포심에 점점 타이밍이 맞아가고 있었고, 이는 디아즈를 당황케 했다.
‘어지간한 타자들은 거의 다 5번 이상 만나기 전까진 텍사스 안타 같은 걸 제외하면 타이밍을 못 맞췄는데...’
안 그래도 메이저리그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 사이드암에 가까운 스리쿼터, 그것도 더욱 희소한 좌완.
100마일대의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그것만으로도 타자들에겐 지옥인데, 좌완에 투구폼에 디셉션까지 이외의 장점도 한두 개가 아닌 투수.
그래서 디아즈는 커리어가 짧은 타자들, 아메리칸리그에서 활약하는 타자들을 상대할 때 다소 방심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충분히 방심할 수 있을 만한 자격도 있고, 실적도 있지만...
사이드암이 비교적 흔한 KBO에서 건너온, 100마일대 패스트볼과 90마일대 슬라이더에 반응할 능력까지 갖춘 괴물과의 만남을 예상하지 못한 게 문제일 뿐.
[93마일 슬라이더에 또 한 번 반응하는 Y-DO! 계속 디아즈도 이름값에 어울리는 멋진 공을 던지는데, 그걸 자꾸 반응하고 끊어내거든요?]
[아니... Y-DO... 초반 9경기만 봐도 생각보다 완성도가 높은 타자라는 걸 알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정도로 끝내야죠. 아니, 콜린 디아즈 정도 투수의 공을 이렇게 끈질기게 끊어내면 교타자들은 뭐 먹고 살아요?]
그리고 오늘따라 컨디션도 좋았다.
시즌 개막전부터 오늘까지 10경기 연속으로 좋은 거지만, 어쨌거나.
그중에서도 특히 컨디션이 좋았고, 휘두르면 어디로 뻗든 공을 맞추긴 맞췄다.
야구의 아이러니로 그렇게 컨디션이 좋은데도 무안타로 막혀 있었지만.
‘드디어! 아니, 이게?’
끈질기게 버티던 영도는 이번 타석 8번째 공에서 드디어 타이밍을 정확하게 맞춰냈다.
스윗 스팟에는 맞추지 못했고, 살짝 벗어난 위치에 맞아나갔지만...
‘그래. 이런 게 메이저리그였지.’
콜린 디아즈의 이번 공은 102마일의 패스트볼.
어마어마한 구속이었던 만큼 배트에 맞았을 때 뻗어나가는 힘 역시 자연스레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스윗 스팟에 정확히 맞추진 못했지만, 타격이 이뤄진 그 순간부터 맹렬하게 뻗어나갔고...
메이저리그에선 생각보다 적지 않게 경험할 수 있는 일이었다.
[배럴 타구는 아니고, 발사각이 대충 35도 비슷하게 높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이 정도면 뭐 볼 것도 없죠. 갔습니다! 높은 궤적으로 중견수 뒤 펜스를 넘어가는 문 샷! 큰 포물선을 그리면서 넘어가는 멋진 홈런입니다!]
[10경기 연속 홈런을 기어이 채우네요! 크으... 10경기 11홈런! 콜린 디아즈를 상대로도 이런 홈런을 때려내면 Y-DO가 홈런을 빼앗지 못할 투수는 있을까요?]
[있죠. 에릭 카날레스.]
[아니... 한 경기는 그럴 수 있겠지만, 능력, 홈런을 때려낼 능력을 말하는 거잖아요!]
마지막 타석에서 기어이 10경기 연속 홈런을 채웠지만, 이번에도 역시 무뚝뚝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베이스를 돌았다.
쿠어스 필드에서 9경기 연속 홈런을 때렸을 때, 이미 홈팬들과 함께 신나는 시간을 즐겼다.
물론, 팬들이 신나게 즐겼고, 동료들이 신나게 즐긴 거지만...
그 정도면 함께 즐겼다고 해도 되겠지.
[10경기 연속 홈런도 연속 홈런이지만, 2-4로 따라가는 매우 중요한 홈런이기도 합니다.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거예요.]
[Y-DO의 연속 경기 홈런이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하지만, 클러치 상황에서 터진 게 많다는 것도 중요해요. 이 부분을 많이 간과하는데, Y-DO는 꽤 훌륭한 클러치 히터거든요?]
클러치 히터에 대한 환상은 많이 사라졌지만, 단어 자체가 가진 힘과 매력 때문에 여전히 활용되고 있었다.
예전처럼 환상적인, 절대적인 의미로 쓰이진 않아도 ‘결정적인 한 방으로 강한 임팩트를 남긴 타자’ 정도의 의미로 쓰였다.
그런 의미에서 2041시즌 초반의 영도는 분명 클러치 히터였다.
클러치 히터까지 포함, 2041시즌 초반의 유영도는 그냥 임팩트 덩어리였고, 매 경기 언론을 장식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했다.
“나 지금 미국 갈 거야!! 내가 지금 저 홈런들을 현장에서 보고 있었어야 하는데, 나 왜 여기 있어!? 왜 방구석에 있는 거냐고!! 우리 영도 응원하러 가야 하는데!!”
- 인정!! 인정한다!! 구독자 이벤트로 같이 가자!! 우리도 데려가, 아조씨!!
- 아... 이번엔 인정을 안 할 수가 없네. 유영도 진짜 미친 거 아니냐? 메이저리그에서 지금 혼자 뭔 짓을 하는 거야?
- 국적 떠나서 혈통이 100% 한국인인데 대체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우리보다 아마추어 선수 숫자만 몇십 배, 몇백 배 더 많은 일본 애들도 못한 건데?
- 이제 유영도 평가할 때 한국인 어쩌고 하는 말은 다 그만해야지. 한국 선수 중에서가 아니라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제일 미쳐 날뛰고 있는데...
- 그러니까 그게 말이나 되는 거냐고. 한국 타자가 메이저리그에서 홈런 타자로 인정받는 것도 아직 못 믿겠는데, 이미 양대 리그 홈런 1위에 4개만 더 때리면 통산 100홈런임...
- 그러니까 작년엔 저런 애가 KBO에서 뛰고 있었으니 홈런만 65개를 때리지...
- 이대형이 한국에서 연속 경기 홈런 신기록 세웠을 때도 난리였는데, 유영도는 차원이 다르네. 메이저리그에서 저 짓을 또 했다고?
메이저리그에서 매일 야구계 뉴스 메인을 차지할 정도였으니...
한국에서의 반응은 길게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동안 수많은 한국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지만, 이 정도 신드롬을 일으킨 선수는 없었으니까.
KBO를 거친 외국인 선수 중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위치에 올라간 선수가 없었다.
당장 미국으로 날아가겠다고, 영도의 모든 경기를 직관하겠다고 날뛰는 오일도의 반응이 딱 한국 야구팬들의 반응이었다.
2041년의 봄, 전 세계 야구 팬들이 유영도에게 미쳐 있었다.
< 신드롬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