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시즌 맛보기 > (97/200)

< 시즌 맛보기 >

“9경기 연속 홈런! 경애하고 존경하는 켄 그리피 주니어, 마찬가지로 경애하고 존경하는 돈 매팅리, 데일 롱의 기록이 드디어 깨졌습니다. 1986년 돈 매팅리, 1993년 켄 그리피 주니어의 기록은 타이기록이었기 때문에 1956년 데일 롱이 세운 기록을 85년 만에 새로 쓴 겁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상대로 한 홈 6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홈런을 터뜨리며 기어이 9경기 연속 홈런 고지를 밟은 유영도.

한국 언론은 물론이거니와, 미국 언론까지도 이 기록을 메인으로 다뤘다.

201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플라이볼 혁명’ 당시, 홈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에 대해서는 아직도 뒷이야기들이 끊임없이 거론되었다.

타격 방법론뿐 아니라 당시 계속해서 떨어지던 메이저리그의 인기를 되살리기 위해 사무국이 주도해 공인구 반발계수를 조작했다는 것.

홈런은 어쩔 수 없이 야구의 꽃이고,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의 역대급 홈런왕 경쟁으로 야구 인기가 살아난 경험을 잊지 못한 수뇌부들이 일부러 홈런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확실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효과도 없었다.

메이저리그 인기가 살아나기 시작한 건 미국 특유의 그리고 야구 특유의 보수적이고 꽉 막힌 스탠스를 버린 채 스포츠로서의 자존심을 다소 포기하고 KBO를 벤치마킹,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강화한 뒤였다.

심지어 스포츠로서의 야구를 좋아하는 팬들도 홈런만 뻥뻥 나오는 시합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의 야구는 타율이 바닥을 찍고 홈런만 신나게 나오던 플라이볼 혁명 당시와 달리 연속 안타를 통한 속도감 있는 타격과 장타를 통한 한방 역전의 매력을 동시에 갖춘, 그러면서도 투타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사실, 홈런 관련 기록들이 많이 멈춘 상태였잖아요? 20년 전 ‘플라이볼 혁명’을 겪으면서 홈런 기록들이 많이 바뀌었고, 그때 바뀌지 않은 기록들은 ‘스테로이드 시대’의 기록들이 대부분인데... 정말 오랜만에 홈런 기록이 새로 쓰인 겁니다.”

“으하하하!! 9경기 연속 홈런! 나도 6경기까지는 해봤는데, 9경기는 진짜 대단하긴 합니다. 좋아! 인정합니다! Y-DO, 이제 인정해주겠어!”

“호오... 칼이 홈런 타자를 인정하다니. 권위는 별로 없지만, 희소성만 따지면 실버슬러거보다 받기 힘든 인정이겠군요.”

아무리 팬들이 투타의 밸런스를 좋아하고, 장타와 단타의 밸런스를 좋아한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홈런은 야구의 꽃이고, 가장 화려한 순간이었다.

‘사무국의 의도적인 움직임, 위화감이 들 정도로 지나치게 많은 홈런’은 싫다.

하지만 그래도 홈런 뻥뻥 날려대는 시원한 선수, 몇 명만이라도 압도적인 홈런 페이스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한때 큰 기대를 받았으나 사라졌던, 그러나 다시 화려하게 복귀한 Y-DO는 그런 메이저리그 야구 팬들의 소망을 채워주는 선수였다.

“9경기 연속 홈런, 그리고 개막 이후 9경기 만에 두 자릿수 홈런. 이 정도면 Y-DO의 기대치를 훨씬 더 높게 잡아야 할 것 같은데요. 시즌 전에는 OPS 8할대 후반에 30홈런, 3루 수비를 보통 근처로만 해주면 성공이라고 다들 그랬잖아요?”

“어우, 사과하러 가야지. 내가 그랬는데, 사과하러 가야겠어요. 생각보다 너무 잘하는데요?”

“그때 칼이 그런 말을 했었죠. 홈런이라는 게 힘만 세다고 때릴 수 있는 건 아니라고. Y-DO는 파워가 아주 놀라울 정도로 대단하지만, 정교함이 부족해서 30홈런이면 잘 치는 걸 거다.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길버트랑 같이 방송할 때마다 참... 훅훅 찔리는 느낌이 가끔 든단 말이죠. 어쨌든! Y-DO의 성적을 다시 예상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생각보다 컨택이 괜찮다, 공을 잘 골라낸다는 거죠.”

“칼이 빠뜨린 거 하나를 말씀드리고 싶은데, 아, 이건 투수 입장에서 말하는 겁니다. 투수로서 타자 Y-DO의 가장 공포스러운 점은 컨택이 생각보다 좋다, 선구안이 좋다, 이런 게 아니예요.”

“오, 그런 것 좋아요. 투수 출신이기에 이해할 수 있는 투수들의 공포. 야구는 결국 멘탈 게임 아니겠어요?”

“공감해주니까 고맙네요, 메이슨. 꼭 야구가 아니라 메이슨처럼 방송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내 상식을 벗어나는 사람을 만날 때가 가장 무섭거든요. Y-DO의 가장 근본적인 공포는 빗맞아도 펜스를 넘길 수 있는 잔인한, 압도적인 파워입니다. 이게 괜찮은 컨택, 괜찮은 선구안과 시너지를 일으켜서 투수들에게 공포로 다가오는 거예요.”

“오케이, 오케이. 다들 알겠지만, 난 정말 다른 선수들, 특히 타자들을 인정하지 않아요. 엄격하게 보는 편이고, 내가 최고였기 때문에 최고만 인정하는 편인데... Y-DO가 가진 것 중 유일하게 인정하는 게 바로 파워입니다. 이건... 아, 정말 이런 말하기 싫은데, 나보다 확실히 나아요.”

길버트 조던은 통산 155승, FIP 3.93을 기록한 준수한 2, 3선발급 커리어를 쌓은 투수.

칼 오르테가는 통산 427홈런을 기록한 3루수 출신 거포.

오르테가는 자신과 비교해가면서 영도를 평가했고, 조던은 영도를 만나는 투수 입장에서 평가했다.

그래서 한 명은 타자 입장에서 의외로 괜찮은 타자로서의 완성도, 타격 테크닉에 집중했고, 한 명은 투수로서 영도가 가진 가장 큰 장점, 가장 큰 공포에 집중했다.

“정리하면 두 분의 말씀은 이런 거죠? 빗맞아도 넘어가는 징그러운 파워를 가지고 있는데, 생각보다 타자로서의 완성도도 나쁘지 않아서 모두의 예상을 배신하고 있다.”

“바로 그거예요! Y-DO가 가진 최대 장점이 파워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 그건 유망주 시절이었던, 거의 10년 전부터 다 알았다니까요? 고등학교 때 160m짜리 홈런을 때렸는데! 그러니까 이번 시즌 초반 Y-DO의 성공은 생각보다 완성도가 높아서예요. 파괴적인 파워, 그거 하나만 있었으면 그냥 2년 전의 Y-DO 되는 거예요.”

“2할 초반의 타율이지만, 압도적인 파워 덕분에 겨우 8할 초중반 OPS에 25홈런 정도 때려내는 선수였죠. 자, 그럼 길버트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건 맞죠. 최대 장점이 파워라는 거고, 그 파워를 꽃피우기 위한 토대가 이번에 겨우 마련된 거예요. 그게 바로 칼이 말한 완성도인 거고. 토대가 마련되자마자 파워라는 꽃이 만개했잖아요. 그리고 만개하니까 어떻습니까. 우리가 10년 전부터 한눈에 반해버렸던 장타력이란 꽃이 그 어떤 꽃보다도 화려하게 피었습니다.”

여전히 시즌 홈런 1위는 40개 후반에서 50개 초반으로 형성되고 25명 정도는 한 시즌 30홈런을 넘기는 시대.

팬들은 개나 소나 30홈런을 넘기고 팀마다 한 명씩 40홈런 타자를 보유하는 것까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홈런 1위를 두고 경쟁하는 한두 명 정도는 60홈런도 가끔 넘겨주고, 특별한 한 선수, ‘더 맨’, 그러니까 미국이 사랑해 마지않는, 좋아 죽는 소위 ‘히어로’를 원하는 마음은 여전했다.

꼭 미국이 아니더라도 히어로를 꿈꾸고 원하는 마음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같으니 전 세계의 야구 팬들이 같은 마음이었고.

실패해서 메이저리그를 떠났지만, 1년의 KBO 경험 끝에 돌아와 복귀전부터 9경기 연속 홈런을 터뜨린 상황.

야구 팬들은 히어로의 탄생을 꿈꾸기 시작했다.

***

‘아, 이건가?’

원정 3연전 후 홈 6연전을 끝내고 다시 원정 6연전 첫 경기를 치르는 콜로라도 로키스.

영도처럼 로키스에서 첫 시즌을 맞이하는 선수들이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고비였다.

로키스 소속 야수들이 겪는 어려움은 심각한 피로 누적과 부상 위험, 그리고 원정 경기에서 완전히 무너지는 감각이었다.

개막 원정 시리즈는 쿠어스 필드를 경험해보지 못한 시기의 일이었고, 홈 6연전 이후 원정을 떠난 이번 경기가 영도에겐 첫 번째 경험이었다.

‘구속, 구위, 변화 폭... 뭐 하나 비슷한 게 없네.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쿠어스 필드에서 타구뿐 아니라 투수의 공까지도 크게 다르다는 걸 모르진 않았다.

그래서 홈 개막전이자 쿠어스 필드 첫 경기에 나섰을 때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던 것 아니었고.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쿠어스 필드에선 치기 쉬워지는 거고, 지금은 치기 어려워진다는 것.

특히 홈팀 시카고 컵스도 두 번째 홈 시리즈를 맞아 에이스 에릭 카날레스를 올려보냈기에 더욱 어려웠다.

‘분명히 분석할 때 확인한 그만큼의 변화인데... 몸이 살짝 어색해 하는 건 느껴지네.’

쿠어스 필드의 희박한 공기는 패스트볼과 브레이킹볼을 가리지 않고 공의 궤적에 변화를 일으켰다.

리그 최고 수준의 체인지업을 자랑하는 에릭 카날레스.

궤적만 봐도 헷갈리는데 타이밍 뺏는 구종의 대명사와 같은 체인지업 장인을 만났으니...

머리로는 익숙한 궤적인데, 몸이 어색해 했다.

프로 선수의 몸이 얼마나 예민한지... 

나노미터 단위로 돌아가는 기계처럼 고작 6경기, 30타석도 안 되는 적은 타석을 쿠어스 필드에서 치렀을 뿐인데, 기계에 미묘한 오류가 생기고, 그 미묘한 오류 때문에 타격이 마음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는 Y-DO. 일단 첫 번째 타석은 역사적인 타석이 아니었습니다.]

[쿠어스 필드 6연전 이후 첫 번째 원정 경기거든요? 로키스는 Y-DO가 제발 이번 시리즈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바랄 거예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는 홈/원정 편차 때문에 선수들이 고생했죠. ‘산사나이’라는 별칭이 조롱처럼 쓰였을 때가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요즘은 팀이 고생이고요. 그게 선수 문제가 아니라 팀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걸, 피할 수 없는 디메리트라는 걸 모두가 다 알게 되었으니까.]

[Y-DO를 영입했을 때, 이 선수는 굳이 홈런을 치려고 안 해도 홈런을 칠 수 있는 선수고, 쿠어스 필드에 어울리는 스프레이 히팅으로도 원정에서 홈런을 때릴 수 있는 선수니까 데려왔다고 했거든요? 이 선수는 절대 무너지면 안 돼요.]

‘타석 접근법엔 문제없어. 그냥 적응만 하면 되는 거니까 그래도 난 괜찮아.’

쿠어스 필드에서는 스프레이 히팅이 유리하지만, 일반적인 나머지 29개 구장에선 당겨치기가 유리했고, 당겨치기로 더 좋은 타구를 만들어내는 선수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해니건은 원래부터 스프레이 히터로 중장거리 타자라 홈/원정 편차가 적었고, 가드너는 다른 선수들과 비슷한 수준의 편차를 보였다.

와그너는 편차가 심했고.

타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네 선수 중 해니건을 제외하면 다들 쿠어스 필드 효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

그 쿠어스 필드 효과에서 자유로운 타자를 찾고 찾아서 영입한 게 영도였고, 영도만큼은 자유로워야만 했다.

“홈 6연전 후 원정이라는 게 쉽지 않지?”

“쉽지 않긴 하네. 그래도 다행히 적응할 수 있을 것 같긴한데... 한 번 봐야지.”

원정 첫 타석의 감흥을 묻는 해니건의 질문에 콕스 감독 이하 로키스 코칭스태프들의 귀가 영도의 입으로 쏠렸다.

로키스가 영도 한 명 잘한다고 포스트시즌에 가고 이럴 수 있는 전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트레이드든 뭐든 영도의 원정 경기 성적에 많은 게 걸려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콕스 감독뿐 아니라 제프리 에녹 단장마저도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경기.

이 경기에 걸린 건 10경기 연속 홈런만이 아니었다.

콜로라도 로키스의 2041시즌도 10% 정도는 이 경기에 걸려 있었다.

< 시즌 맛보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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