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초반 스퍼트 > (96/200)

< 초반 스퍼트 >

“여러분, 여러분! 여러분도 영도 경기 다 챙겨보고 계시죠? 지금 여기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어차피 나랑 같이 영도 중계 보려고 들어와 있는 거잖아. 그럼 어제도, 그저께도 다 봤다는 거 아닌가?”

영도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가장 반겼던 사람을 꼽으라면 절대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전 프로야구 선수이자 현 인터넷 방송인인 오일도일 것이었다.

KBO에서 활약할 때도 창원 와이번스 레전드이자 편파 중계 방송인으로서 서울 제츠, 특히 유영도의 활약상을 시시콜콜한 것까지 전부 전했던 오일도.

영도의 메이저리그 진출로 눈치 볼 필요가 없어진 지금은 매일 아침, 아니, 아침보다는 새벽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시간부터 방송을 켜서 영도의 모든 경기를 중계했다.

그것도 그동안 참아왔던 열렬한 응원과 함께.

누가 보면 숨겨진 혈육이라도 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 아이고... 우리 아재. 진짜 유영도 메이저리그 안 갔으면 어쩔 뻔했음?

- 그랬으면 둘 중 하나지. 화병 났거나, 그냥 우릴 무시하고 제츠, 유영도 편파 중계했거나

- 근데 솔직히 니네도 다 속이 시원하지 않냐? 유영도 메이저리그 안 갔으면 우린 맨날 유영도 보면서 토하고 어지럽고 공포스럽고 막 그랬을 텐데

- 완전 ㅇㅈ 내일 제츠랑 붙는데 거기 3번 타순에 유영도가 있다고 생각해봐라. 메이저리그 가서 얼마나 다행이냐.

- 제츠 서울 깍쟁이 새끼들... 이 통쾌한 사이다를 지들끼리만 마셨다는 거냐? 자다가 막 트림 나올 정도로 벌컥벌컥 마시는 기분인데?

- 상대 팀 선수가 아니라 내가 응원하는 선수라고 생각하고 보니까 이렇게 통쾌할 수가 없음.

- 홈런을 저렇게 때려대는데 통쾌할 수밖에 없지... 이번 시즌에도 우리 와이번스는 꼴찌나 안 하면 다행일 텐데 그래도 응원할 선수 있고, 그 선수가 잘해줘서 살았음.

ㄴ 안 그랬으면 고구마로 숨구멍까지 다 막혀서 사망했을 것.

- 박희성, 안정규, 조유성. ‘박안조’ 트리오도 나름대로 잘해줬지만, 유영도는 확실히 그동안 한국에 없던 스타일이라 더 통쾌한 듯.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인이 8경기 9홈런? 이거 실화냐, 진짜??

“우리 영도가 진짜 대단하긴 대단하죠? 크으... 메이저리그에서 8경기 연속 홈런이라니. 물론, 여러분들은 옛날 이대형 선배의 9경기 연속 홈런을 세계 신기록으로 알고 계실 거고, 실제로도 그게 세계 신기록이긴 해요. 그러나!! 그게 메이저리그 기록은 아니거든요.”

영도는 개막전부터 시작된 연속 홈런 기록을 8경기까지 이어갔다.

다저스타디움 3연전 이후 홈에서 6연전을 펼치는 게 결정적.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3연전에 이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2연전에서도 쿠어스 필드의 도움을 받아 연속 홈런을 기록하며 8경기 연속 홈런, 8경기 9홈런의 무시무시한 홈런 페이스를 유지했다.

“메이저리그 최다 경기 연속 홈런 기록은 8경기예요. 여러분도 다들 아시는, 이름 정도는 들어보셨을 켄 그리피 주니어가 있고, 아는 분도 몇 명은 있을 돈 매팅리, 그리고 저도 잘 모르는 데일 롱이라는 선수가 가지고 있는 기록이라고 하는데... 어쨌거나 중요한 건 뭐다? 메이저리그의 역사에 두 번째로 이름을 올리게 생겼다. 그것도 복귀하고 딱 9경기 만에!!”

모든 스포츠가 다 그렇지만, 미국 스포츠는 특히나 남들이 보기엔 별로 특별한 것 같지도 않은 기록들까지 하나하나 챙기는 경향이 있었다.

누군가는 짧은 역사, 적은 기록들로 인한 콤플렉스 때문에 사회 전반적으로 기록에 민감하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이외에도 가설은 여러 개가 있지만, 확실한 건 기록을 특별할 정도로 중시한다는 것.

하지만 홈런은 야구의 꽃이었다.

당연히 홈런 관련 기록은 미국뿐 아니라 야구를 보는 국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중요하게 생각했고.

 복귀 후 첫 경기인 2041시즌 개막전에서 515피트짜리 홈런으로 2015년 스탯캐스트 도입 이후 최장거리 홈런을 때려내고 개막전부터 8경기 연속으로 홈런을 기록하며 연속 경기 홈런 타이기록까지 세워버린 지금.

한국은 물론이고, 야구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이 영도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오늘도 홈런 쳐서 9경기 채웠으면 좋겠다.

- 메이저리그 신기록으로 끝내지 말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세계 신기록도 갈아치웠으면 좋겠는데. 9경기 연속 홈런 기록도 벌써 30년 전 기록임.

- 그럼 1위 기록도 한국 선수고, 2위 기록도 한국 선수 아님? 크으... 다른 것도 아니고 홈런 관련 기록에서 한국 선수가 1, 2위라니.

- 4년 65M 쌉거품, 개거품 막 지껄이던 애들 다 어디 감? 지금 그 거품이 8경기 동안 홈런만 9개 때렸는데?

- 작작 빨아라. 홈런만 9개지, 타율은 3할 겨우 넘는다. 안타 11개 중에 홈런이 9개인데, 앞으로 홈런은 무조건 줄어들 수밖에 없음. 그럼 금방 다시 2할 따리 된다. 너무 빨지 말고 그냥 입 닥치고 있어. 괜히 쪽팔리지 말고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병X인가? 홈런 줄어드는 건 당연한 건데, 왜 그걸 다 아웃으로 계산해?

- 그러니까. 홈런이 줄어들면 대신 2루타가 늘어나는 게 상식인의 계산 아니냐? 하여튼 저런 X신들만 홈런 아니면 아웃이라고 계산하지. 

- <논리야 놀자> 읽고 와야 함. 조금 옛날 책이긴 한데, 논리의 바이블, 논리의 탈무드 같은 책임.

***

[Y-DO의 세 번째 타석. 6회 말 선두타자로 들어서는데, 이미 승부는 거의 갈렸습니다. 제러드 홉슨도 아주 좋은 피칭을 보여준 건 아닙니다만, 로키스 타선이 폭발하면서 이미 9-3까지 벌어졌습니다.]

[자이언츠는 다음 시리즈를 위해 에이스를 아꼈죠. 다음 시리즈가 시즌 두 번째 홈 시리즈고, 에이스 리카르도 페냐의 이번 시즌 첫 번째 홈 등판을 위해 이번엔 5선발을 올렸는데... 5선발에겐 쿠어스 필드의 벽이 너무 높았죠.]

시즌 초반이다 보니 승리도 승리지만, 홈팬들 앞에서 주요 선수들을 선보이는 것도 중요했다.

어차피 로테이션 상으로는 5선발을 철저히 지킨 팀의 경우 4선발, 휴식일을 포함해 로테이션을 당긴 팀의 경우 5선발이나 1선발이 등판하는 일정이었기에 5선발이 등판한 자이언츠도 특별히 큰 변화를 준 건 아니었다.

홈 6연전을 기분 좋게 끝내기 위해 에이스를 두 번 연속 4일 휴식 후 등판으로 당겨 쓴 로키스가 시즌 초반 힘을 빡 주었다는 게 로테이션 운용에서 보였다.

[자, 지금 Y-DO도 개막 후 전 경기, 전 이닝 출전 중이거든요? 기록 때문에 출전을 안 할 순 없잖아요? 그러면 빨리 홈런 하나 치고 쉬어야죠.]

[Y-DO는 원래 체력으로 아주 유명한 선수긴 합니다만, 휴식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긴 해요. 이쯤에서 하루쯤 쉴 수 있다면 쉬는 게 좋겠죠.]

‘차라리 기록이 아예 끊기는 게 나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Y-DO 본인한테도 연속 경기 홈런 같은 영양가 없는 기록보다는 그냥 홈런 1위가 나을 거고.’

6회 말 로키스의 공격, 자이언츠의 남은 공격 기회는 3회.

9-3, 6점 차지만, 이 정도면 경기 종반이고, 핵심 선수들 몇 명 정도는 빼줄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전 경기, 전 이닝 출전 중인 선수는 홈런 기록이 걸려있는 영도가 유일한 상황.

메이슨 콕스 감독은 기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영도를 계속 내보내면서도 속이 복잡했다.

시즌 초반에는 선수들도 몸이 다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고 몸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땐 부상 위험도 크기 때문에 감독입장에선 시즌 중반보다 조심스레 운용할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부상 위험이 큰 쿠어스 필드를 홈으로 쓰는데 시즌 초반부터 휴식 없이 내달리는 건...

‘그래도... 9경기 연속 홈런까지는 치고 끊겨도 끊겨야겠지? 그때까진 그래도 감독인데 응원해주는 게 맞는 거겠고...’

딱히 영양가도 없는 기록이고, 선수 생활에 크게 도움될 기록도 아닌데...

차라리 탑 프로스펙트 경력이 훨씬 더 도움이 될 테고 위기 상황에서 한 번 더 기회라도 받을 수 있을 간판인데...

영양가에 비해 임팩트가 너무 커서 팬들의 관심이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정도까지 쌓여버렸다.

콕스 감독도 어쩔 수 없는 야구인인지라, 그것도 미국의 야구인인지라 일단 기록이 걸렸고, 신기록이 눈앞에 다가왔으면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저 오늘 9경기 연속 홈런까지는 때려서 신기록을 세우고 다음 경기에서 실패한 뒤 다음 경기에서 휴식을...

‘아니, 그래도 9경기까지 가면 깔끔하게 10경기까지는 채워야 하나...’

... 무시할 수가 없었다.

[오늘 로키스 타선의 상태와 자이언츠 마운드의 상태, 홈 3연전을 준비하는 자이언츠의 생각까지 생각하면 Y-DO에게 최대 3번까지는 기회가 올 것 같거든요? 이왕 이렇게 된 것, 매 경기 홈런 때리고 163홈런으로 시즌을 끝냈으면 좋겠네요.]

[으하하하, 163홈런! 그거 좋은데요? 진짜 그런 선수 한 번 보고는 싶어요. 2527년 정도에는 나올까요?]

‘일단 맞으면 날아간다. 확실히 마음이 편해지는 것만으로도 쿠어스 필드 효과는 있어.’

8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는 동안 최근 5경기가 쿠어스 필드였다.

그리고 그 중 최소 2, 3개 정도는 다른 구장이었으면 넘어가기 힘들었을 타구였다. 솔직하게.

쿠어스 필드가 타자들의 성적을 끌어올린다는 건 실제 타구 비거리가 늘어난다거나, 타구 속도가 늘어난다거나 하는 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사람인 이상 흐름이라는 게 중요하고, 타자들은 그 흐름을 안타, 홈런, 볼넷 같은 결과로 끌어올리는데, 그런 결과들이 잘 나오니까 흐름도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그게 다른 구장과 메커니즘 자체가 너무나도 달라져서 원정에서 불리해진다는 게 문제지...

‘당장 바로 다음 원정 시리즈가 걱정되긴 하는데, 일단 오늘부터 잘하고 생각해보자고.’

원래 이런 기록에 거의 흔들리지 않는 편이고, 거의 신경도 쓰지 않는 성격인데...

이번엔 세계 야구계 전체가 너무 주목하고 있었다.

사람인 이상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

오히려 영도였기에 그냥 신경만 쓰고 말지, 다른 선수였다면 한 타석 한 타석 들어설 때마다 여기 표현으로 ‘X알이 작아지는’ 기분을 느꼈을 것이었다.

‘공은... 분석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고.’

영도는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상대 투수의 공을 끝까지 지켜봤다.

아니, 적어도 침착할 때의 루틴을 꼼꼼하게 흉내라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자부했다.

나니까 흉내라도 낼 수 있는 거라고.

‘확실히 필승조도 아니고 스윙맨도 아니고... 이 정도면 세컨더리 셋업맨과 롱 릴리프 사이인가.’

메이저리그의 중간계투 분류에서 가장 패전처리에 가까운 보직이 바로 롱 릴리프였다.

패배하는 경기를 잘 패배하기 위해서 경기 막판 긴 이닝을 끌어주는 투수.

세컨더리 셋업맨은 추격조에 가까웠고.

메이저리거라 해도, 두터운 선수층에서도 상대적인 우열은 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 롱 릴리프로 활약하던 투수들이 한국에 오는 외국인 투수 중 최정상급의 커리어를 가진 선수들로, 조지 스넬 같은 선수들이 바로 메이저리거 시절 이 보직에서 뛰었다.

그리고 조지 스넬은... KBO에서 영도에게 제대로 혼쭐 난 투수 중 한 명이었다.

‘스탯은 이럴 때 쌓는 거라고!’

야구라는 스포츠의 특성상 에이스급 투수들은 하위타순을 상대로 스탯을 쌓고, MVP급 타자들은 4, 5선발, 세컨더리 셋업맨, 롱 릴리프 같은 투수들에게 스탯을 쌓는 법.

기량 차이가 있는 선수들을 상대로 스탯을 쌓지 못하면 아무리 에이스급 선수들을 기가 막히게 공략해도 ‘히든카드’ 이상의 위치로 올라갈 수 없었다.

[강하게 잡아당긴 타구! 좌익수가 급히 따라가보지만... 이거 따라갈 필요가 있나요?]

한 시즌에 65홈런을 때리려면 에이스급 외의 투수들에게 스탯을 쌓아야만 했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65홈런을 일정 수준 이상의 투수들에게만 때리려 해도 그런 투수가 홈런 65개를 때릴 만큼 존재하질 않았다.

지난 시즌의 영도는 명백히 레벨 차이가 있는 투수들을 기가 막히게 공략한 타자였다.

[자, 이것도 넘어갔습니다!! 9경기 연속 홈런!! 1956년 이후 85년 동안 깨지지 않고 타이기록만 두 번 있었던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을 드디어 새로 썼습니다!! Y-DO의 폭발! 메이저리그를 뒤흔들었던 Y-DO의 특별한 재능이 드디어 그 폭발적인 빛을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9경기 연속 홈런, 9경기 10홈런을 기록하는 동안 돈 라이스를 상대로 기록한 첫 홈런 포함 2, 3개를 제외한 나머지 홈런들은 냉정하게 말해 상대적으로 기량이 떨어지는 투수들에게 뽑아낸 홈런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영도의 이번 시즌 성적을 더욱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투수들을 제대로 공략해야 제대로 된 스탯이 찍히는 법이었으니까.

[이야... Y-DO... 대체 어디까지 가려고 이러는 걸까요? 아직 10경기도 치르지 않았는데 자꾸 이런 임팩트를 보여주면 팬들은 계속 욕심만 커지거든요? 와...]

< 초반 스퍼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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