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화들 >
[우측! 우측으로 쭉쭉 뻗습니다! 우측으로 깊게! 우익수가 펜스 근처까지 달려갑니다!]
‘와... 이게 쿠어스 필드인가?’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 내내 밀어치는 연습을 했고, 밀어치기 타이밍을 잡으려 노력했지만...
이번엔 그냥 단순히 타이밍이 안 맞아서 밀린 타구였다.
물론, 밀린 타구라고 해서 힘이 전혀 실리지 않은 타구는 아니었다.
어쨌든 끝까지 놓지 않고 팔로우 스윙을 이어갔고, 자기 스윙을 가져갔으니까.
타고난 파워와 장타력이 있으니 타구가 생각보다 뻗는 건 이해할 수 있었지만...
[넘어갔습니다! 쿠어스 필드의 오른쪽 담장을 아주 크게 넘어갑니다. 홈 개막전, 홈팬들 앞에서 기록한 시즌 5호 홈런! Y-DO의 질주가 멈추지 않습니다.]
[흐음... 이제 겨우 4경기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조금 더 기대해도 될 것 같은데요? 일단 로키스 팬들. 로키스 팬들은 기대할 수밖에 없죠. 시즌 초반부터 이렇게 내달리면 기대를 안 하고 어떻게 버텨요?]
이번 타구는 명백히 쿠어스 필드 덕분에 넘어간 타구였다.
초반에는 영도도 자신의 파워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홈런과 플라이, 장타의 느낌을 구분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래도 다른 선수들만큼은 구분하고 있었다.
그런 구분에서 지금 같은 감각이면 장타도 아닌 플라이, 그것도 특별히 깊지 않을 플라이였고.
쿠어스 필드가 영도의 감각을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참 중요한 홈런들을 많이 때립니다. 개막전도 그랬고, 이후 두 경기에서도 홈런들을 보면 추격하는 홈런이거나 선취점을 올리는 홈런이었죠.]
[오늘도 해니건의 출루 이후 투런 홈런으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플랜을 무너뜨렸네요. 오프너를 활용할 때 1회부터 실점하게 되면 경기가 많이 힘들어지거든요?]
[로키스도 오프너를 적극 활용하는 팀이잖아요? 아마 이 홈런으로 콕스 감독의 마음이 편해질 것 같습니다.]
[오늘은 대형 유망주 커트 페니가 등판했지만 말이죠. 아마 커트 페니는 오프너로 활용하지 않을 거예요. 정통 선발로 키울 만한 유망주거든요? 실력도 있고 가능성도 있으니 제프리 에녹 단장의 플랜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아줄 만한 선수죠.]
“홈런 페이스가 너무 빠른 거 아냐? 4경기에 5개면 시즌 홈런 200개?”
“실없는 소리. 오버하네, 또.”
“... 좀 많이 과했지? 그래도 시즌 초반부터 좋은데? 적응이고 뭐고 필요 없네.”
“4경기 컨디션 좋은 건 누구나 하지. 부담 주지 말라고.”
좋은 타자가 타선에 한 명 더 들어온다는 것.
우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니 다른 타자들에게도 굉장히 좋은 소식이었다.
특히 영도는 합류 직후부터 2번 타순에 배치될 정도로 팀의 간판이 되어줄 수 있는, 되어줘야 하는 타자.
리그를 옮긴 만큼 적응기가 필요한 게 당연하지만, 사실은 적응기를 요구하기엔 눈치가 보이는 위치이기도 했다.
[아! 이 타구도 멀리 가는데요? 한껏 잡아당긴 가드너의 타구가 이번에는 좌익수 뒤로 사라집니다!]
[아... 파드리스, 망했는데요? 1회부터 세 타자 연속 안타로 3실점. 이제 곧 오프너를 내리고 다음 투수를 올려야 하는데...]
[분위기가 완전히 넘어갔죠. 풀타임 선발 첫 시즌을 보내게 된 커트 페니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가드너의 이번 시즌 첫 홈런.]
[로키스의 시즌 초반. 좋네요. 비록 개막 3연전은 1승 2패 루징 시리즈로 끝났지만, 로키스와 다저스의 전력 차를 생각하면 나쁘지 않고, 특히 경기 내용이 괜찮았어요.]
“저것도 다 네 덕에 나오는 거지. 네가 자꾸 앞에서 투수들을 흔들어주니까 뒤 타자도 힘을 받는 거 아니겠어?”
“...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나야 좋지만.”
로키스는 쿠어스 필드의 특성상 타자들의 장타력보다 컨택을 더 중시하지만, 아쉽게도 컨택이 좋은 교타자보단 장타력만 좋은 공갈포들이 시장엔 더 많았다.
지난 시즌 로키스는 3루와 1루, 좌익수 자리를 그나마 구하기 쉬운 공갈포들로 채울 수밖에 없었고, 해니건과 가드너는 그 속에서 그나마 제 몫을 해주는 포수 칼튼 와그너와 함께 악전고투했다.
그러나 이번 시즌은 어쩌면 다를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시즌 초반, 영도의 활약은 이들에겐 곧 희망이었다.
“나이스 배팅.”
“... 그래, 너도.”
“오?”
“이야, 키스! 그래! 너도 이제 Y-DO를 인정하는구나!”
“인정이라... 잘하면 인정해줄 수밖에 없지.”
드디어 영도를 인정하고 영도에게도 리액션을 보여주기 시작한 키스 가드너.
가드너의 변화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에이스 제러드 홉슨은 뛰어난 체인지업과 커맨드, 컨트롤을 앞세운 땅볼 투수.
2선발 브랜든 에레라는 높은 고도에 익숙한 덴버 홈보이이자, 싱커를 앞세운 땅볼 투수.
3선발 라미로 볼퀘즈는 평균 88마일의 느린 공을 컨트롤로 극복하는 싱커 위주의 땅볼 투수.
쿠어스 필드를 극복하기 위해 안 해본 게 없는 로키스는 과거에도 싱커, 체인지업, 투심 위주의 땅볼 투수들로 투수진을 꾸린 전력이 있었다.
사실, 땅볼 투수들로도 꾸려보고, 삼진형 투수들로도 꾸려보고 안 해본 게 없었다.
그 결과, 그냥 좋은 투수로 투수진을 꾸리는 게 좋다는 결과를 얻고 다른 팀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투수진을 한동안 꾸려왔다.
하지만 제프리 에녹 단장은 다시 땅볼 투수들로 투수진을 채우려 했다.
땅볼 투수를 데려온 것도 있고, 아예 팜에서부터 유망주들에게 싱커, 투심, 체인지업, 커터 중 선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구종을 장착시켜 올렸을 정도.
어쨌거나 일단 공이 뜨면 심장은 떨어지는 쿠어스 필드이기에 땅볼 유도 비율이 높은 구종을 장착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제프리 에녹은 2037시즌 종료 후 단장으로 선임되었고, 브랜든 에레라는 2038시즌 확장 로스터 적용 이후 등장해 2039시즌 화려하게 등장했다.
2038시즌과 2039시즌의 가장 큰 차이는 싱커 장착이었고, 싱커를 장착한 뒤 프런트라인 선발급으로 성장, 어느새 로키스의 2선발이 되었다.
에레라의 성공은 에녹의 투수진 운용 방향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번에도 내야를 벗어나지 못하는 타구! 2루수 왓슨이 간단하게 건져내서 1루로. 2아웃입니다.]
[좋은데요? 지난 시즌 막판 올라왔을 때도 분명한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이번 시즌 첫 등판부터 굉장히 인상적인 피칭을 이어가네요.]
조지 스프링어, 크리스 브라이언트 등의 피해자가 연달아 발생하자, MLB 사무국은 서비스 타임 제도를 개정, 특급 유망주들이 6월이나 되어야 콜업되던 꼼수를 사실상 리그에서 퇴출했다.
커트 페니나 프레드릭 더햄, 레이 카레도 같은 유망주들은 그 덕분에 개막 시리즈부터 27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투심을 주 무기로 던지긴 하지만, 스플리터도 땅볼을 유도하기 좋은 구종이잖아요? 슬라이더로 좌타자한테 삼진을 잡고, 투심으로 우타자한테 땅볼을 끌어내고, 스플리터는 좌우를 가리지 않는 모습.]
[밸런스가 꽤 좋죠? 특별한 약점 없이 어떤 타자든 상대할 무기가 있어요. 루키에게 이런 건 기대하기 힘든데, 로키스가 꽤 좋은 루키를 발견한 것 같네요.]
커트 페니 역시 아마추어 시절 슬라이더 위주의 투수에서 2년간의 담금질을 통해 투심 위주의 투수로 변신에 성공했다.
브랜든 에레라에 이어 제프리 에녹 체제의 투수 운용을 대표하는 선수로 기대받는 커트 페니.
일단 풀타임 선발 데뷔전을 훌륭하게 치러내는 중이었다.
[강한 배럴 타구! 3루 방향으로... 아!!]
‘내가 범위는 좁지만... 내 범위 안으로 들어오는 건 절대 안 놓친다고!!’
고도 자체가 높으니 낮고 빠르게 날아가는 라인드라이브 타구마저 빠른 속도를 자랑하며 멀리 날아가는 쿠어스 필드.
이에 대항하기 위한 광활한 외야와 땅볼 위주의 투수들.
제프리 에녹 체제에서 선수는 내야와 외야를 막론하고 무조건 수비를 잘해야 했다.
KBO 진출 이전의 영도는 3루 포지션을 빼앗겼을 뿐, 수비 못한다는 소리까진 듣지 않았다.
평범한 1루 수비와 평범에 가까운 코너 외야 수비로 멀티 포지션이 가능한 선수였지.
즉, 야수 경험이 적어서 그렇지, 수비 재능에 대해서는 다들 나름대로 인정하는 선수였고, 에녹 역시 그런 부분까지 감안해서 KBO에서 3루수로 좋은 수비를 보여준 영도를 영입한 것이었다.
[3루 파울 라인 위로 레이저처럼 날아가던 타구를 Y-DO가 몸을 날려 걷어냅니다! 엄청난 탄력! 절대 작지 않은 체구의 선수인데, 엄청난 탄력으로 날았습니다!]
[Y-DO의 서전트 점프는 NBA 평균 서전트 점프와 비슷하다고 하죠. 그렇게 안 보이지만, 탄력이 굉장한 선수예요.]
[이야... 파워에 이어 서전트 점프까지. 타고난 하드웨어만큼은 역시 굉장한 선수네요.]
[그리고 그 하드웨어를 드디어 실제 기량으로 바꿔가고 있고요. 로키스 팬들, 한국과 아시아의 팬들이 기대할 수밖에 없어요. 이런 선수한테 어떻게 기대를 안 합니까?]
“감사합니다, Y-DO.”
“감사할 것까지야.”
“그래, 감사할 것 없다니까? 우리 로키스에서 이 정도 수비 못 하면 내야수로 못 써먹지.”
땅볼 투수들이 많다는 건 내야수 입장에서 분명 부담이었지만, 영도의 생각은 달랐다.
어차피 수비는 꾸준히 해야 하고, 아직 경험도 더 많이 필요한데 실전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다니... 이렇게 좋을 수가.
따로 시간을 할애해서 훈련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는데, 수비 훈련 시간을 그만큼 줄이고 다른 곳에 투자할 수 있으니 꽤나 만족스러웠다.
“이 정도 해주면 완벽하지만, 그런 선수가 많진 않지. 나이스 캐치였어.”
“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키스, 설마 무슨 일 있어? 심각한 일이면 나한테는 꼭 말해줘야 한다? 적어도 나는 알고 있어야지.”
오늘따라 자꾸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는 키스 가드너.
해니건은 네 마음 다 안다는 듯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쫄래쫄래 따라갔고, 커트 페니는 가드너의 저런 모습이 의외라는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영도는... 가드너와 함께 유이하게 이 상황에서 무표정을 유지했다.
“Y-DO... 키스랑 무슨 일 있었어요? 혹시 밥이라도 한 끼 사준 건 아니죠?”
“그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능력은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는 거지. 너도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다음 이닝이나 준비해.”
가드너의 무뚝뚝한, 어쩌면 싸가지 없다고 욕해도 할말 없었을 태도도 그러려니 하고 넘겼던 게 영도였다.
그런 태도도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데, 갑자기 잘 대해준다고 흔들릴 이유도 없었다.
무슨 츤데레에 흔들리는 소녀 마음도 아니고...
"가끔 보면 키스보다 Y-DO가 더 대하기 어려운 것 같기도 해요. 혹시 Y-DO도 알아요?"
"아주 잘. 그런 소리 아주 많이 들어서."
가드너는 그래도 야구 잘하는 선수는 인정해주고 무뚝뚝하게라도 챙겨주는 게 눈에 보이기라도 하지, 느껴지기라도 하지...
영도는 그런 것 없이 모든 사람에게 무뚝뚝했다.
그나마 KBO에 다녀와서, 친화력 좋고 장난기 많은 손성호와 조규영, 한영훈 등을 만나서 이 정도인데, 만약 그 전의 영도를 만났다면...
루키인 커트 페니의 입에서 이런 말도 아마 나오지 않았을 것이었다.
실력과 경력을 떠나 피지컬에서 풍기는 분위기, 의도치 않게 힘을 드러내는 상황들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게 대해야 했을 테니까.
< 변화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