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귀 인사 >
“Y-DO의 이번 시즌 성적, 어느 정도나 나올까?”
“그거야 모르지. 시즌을 좀 치러보고 플레이하는 것도 좀 보고 그래야 알지.”
“그래도 같은 야수로서 딱 보면 대충 알지 않아? 각은 나오지 않나?”
“투수는 대충 보면 아냐? 그나마 투수는 제일 능동적인 포지션이니까 알 수도 있겠지만, 몇 경기 보고 바로 계산 서는 건 아닐 거 아냐.”
영도가 과연 콜로라도 로키스 합류 첫 시즌인 이번 2041시즌에 어느 정도의 성적을 찍어줄까.
이는 팬들이나 전문가, 다른 구단 프런트까지 갈 것도 없이 로키스 선수단 내에서도 화제였다.
한때 가장 유명했던, 메이저리그 역사에 도전할 거라 평가받았던 특급 유망주가 이전에 있었던 다른 수많은 특급 유망주들처럼 그냥저냥 사라지는 듯하다가 부활해서 돌아왔으니 같은 선수들도 궁금해했다.
6,500만 달러를 그냥 내다버린 것인지, 아니면 그 정도의 활약을 펼쳐줄지, 그것도 아니면 이제야 준비가 된 특급 재능을 헐값에 사 온 것인지.
“이야... 메이저리그에서만 10년 넘게 뛰었어도 그런 건 못 보겠던데 꼬꼬마들이 벌써 그런 대화를 한단 말이야?”
“아, 라미로 씨. 그냥... 좀 궁금해서...”
“저희는 그냥... Y-DO가 한창 잘 나갈 때 고등학생이었으니까요. 아무래도 말로만 전해 들어서...”
특히 이번 시즌 함께 루키 시즌을 보내게 된 동갑내기들, 커트 페니, 프레드릭 더햄 같은 20대 초반 선수들이 영도의 활약을 궁금해했다.
옛날 마크 프라이어,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브라이스 하퍼가 그랬던 것처럼 영도 역시 유망주의 재능을 평가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
아마추어에서 아주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는 몇몇 선수들에게만 ‘포스트 Y-DO’ 같은 수식어가 붙었으니까.
마이너리그에서 재능을 보여주면 당연히 마이크 트라웃, 알버트 푸홀스 같은 이름이 붙지만, 아마추어에선 역시 프라이어, 스트라스버그, 하퍼, 그리고 Y-DO였다.
“하긴. 너희도 한창 Y-DO와 비교 많이 됐을 세대구나. 너희보다 두세 살 정도 위 애들이 피크였지만, 너희도 한창 많이 들었겠지. 요즘 애들도 Y-DO랑 비교되던데.”
“그러니까요. 이 냉정한 바닥에서 어지간한 재능으로는 이렇게 오래 언급될 리 없으니 진짜 어마어마한 재능이었을 텐데...”
“그런 재능이 이제야 드디어 터진다고 하니까 기대되서 그렇죠. 라미로, 라미로는 어떻게 생각해요?”
메이저리그 11년차 라미로 볼퀘즈.
이제 막 루키 시즌을 치르게 될 두 신인에게 볼퀘즈는 모르는 게 없는 인공지능 컴퓨터 같은 존재였다.
무슨 질문을 하든 답이 딱딱 나오는.
“모르지, 자식들아. KBO에서 하는 거 보면 드디어 터진 것 같긴 한데, 어디까지 터진 건지 확신할 수 없으니까.”
“그럼 재능이 얼마나 대단했던 건데요? 그 재능이 100% 터졌으면 진짜 역사를 새로 쓸 정도였던 건 맞아요?”
“나는 투수니까 아무리 이런저런 설명을 해줘도 모르겠어요. 그냥 딱 홈런 몇 개 정도는 쉽게 쳤을 거다,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왜? 듣기 쉽게. 좀 가르쳐줘요오!!”
역사든 스포츠든 IF는 없지만, 역사든 스포츠든 IF를 가정해서 떠드는 것만큼 재미있는 게 없었다.
선수들도 사람인데 팬들이랑 다를 게 있을까.
팀 내 유망주 2위, 전체 53위의 커트 페니도, 팀 내 4위, 전체 98위의 프레드릭 더햄도 IF에 흠뻑 빠져 있었다.
“100% 터졌으면 홈런을 몇 개나 쳤을까... 솔직히 어려운 건 있어. 그때 Y-DO는 덮어놓고 무조건 풀스윙 돌리는 타자였으니 컨택이 제일 문제였거든.”
“근데 요즘 Y-DO는 컨택도 대단하던데요? 안 그래, 릭?”
“... 그러게. 나도 컨택 좋다는 소리 많이 들었는데, 요즘 Y-DO 하는 거 보면 나랑 큰 차이 없는 것 같던데...”
“그게 Y-DO의 노력이고, 동시에 재능인 거거든.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으면 그 형편없던 컨택이 그렇게 좋아졌겠어. 동시에 타고난 파워가 너무 대단해서 적당히만 맞춰도 내야를 뚫어버리는 것도 있고.”
비록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지 못했지만, 어쨌든 영도는 서비스 타임 3년을 채우고 4년 차를 맞이한 선수였다.
대형 유망주가 이런 선수를 만나면 둘 중 하나의 반응이 나오는데, 하나는 ‘재능이 많이 떨어지는 어정쩡한 메이저리거’, 하나는 ‘이 험난한 빅리그에서 살아남은 대단한 선배’였다.
다행히 커트 페니와 프레드릭 더햄은 순둥순둥한 선수들이었고, 길고 얇은 커리어를 이어온 라미로 볼퀘즈는 물론 영도에게도 존중을 보여주는 착한 루키들이었다.
“대충 맞춰도 펜스까지 날려버리는데 요즘 컨택까지 좋아진 거 보면... 만약 옛날 내가 봤던 재능 그대로면 적어도 홈런 40개는 가볍게 치지 않을까? 솔직히 나도 투수라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홈런 40개... 40개를 가볍게...”
“... 우리 팀이라서 다행이네요. 쿠어스 필드에서 그런 타자를 상대라도 했다면...”
“근데 50개, 60개 쳐도 놀라진 않을 것 같다. 와, 신기한데? 상식적으로 40개도 대단한 거지, 싶고, 그것보다 많이 칠 것 같진 않은데, 50개, 60개를 쳐도 놀라움은 없을 것 같아. Y-DO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갈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여튼... 대단한 놈이야. 다들 바닥 드러났다고 한 게 몇 년 전인데 아직도 이런 기대감을 주는 거 보면.”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은 생각이라면 진짜 무서운 선수네요. 이러다 정말로 역사에 도전하는 거 아닌가 몰라.”
“... 진짜로 막 73홈런 도전하고 그러진 않겠죠? 누군가 약에 오염되지 않은 선수가 그 기록 좀 깨줬으면 좋겠다고 매일 생각하긴 했는데, 진짜 깨면 그게 더 무서울 것 같기도 하고...”
라미로 볼퀘즈는 영도와의 첫 만남을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는 선수였다.
영도의 커리어 첫 홈런과 커리어 첫 멀티 홈런을 선물한 상대 투수가 바로 그였으니까.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다고 생각한 공이 130m, 140m씩 날아가는 그 공포는 선발투수가 아니면 절대로 알 수 없었다.
그 홈런들은 영도에게도 잊을 수 없는 홈런이겠지만, 10년 넘게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볼퀘즈에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홈런 TOP 3 안에 무조건 들어가는 홈런들이었다.
그때 그가 느낀 감정들이 말 속에 그대로 실려 전해졌고, 페니와 더햄은 몸으로 그 감정을 느꼈다.
평균 구속 80마일대의 빠르지 않은 공으로도 배짱 있게 스트라이크를 집어넣는 강심장, 라미로 볼퀘즈.
그가 이 정도로 진지하게 긴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처음이었고, 그런 만큼 더욱 강한 임팩트로 다가왔다.
“아!!”
“왜. 내 욕이라도 하고 있었나? 왜 당황하는 거지.”
그때, 커트 페니가 놀라며 뒤를 가리켰고, 볼퀘즈와 더햄도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등장한 건 대화의 주인공이었던 Y-DO, 유영도.
예의 바르던 루키는 갑자기 자신에게 삿대질을 하며 놀라고, 한참 대화 중이던 나머지 두 사람도 등장하자마자 곧바로 대화를 멈춘 상황.
그냥 대놓고 수상한 모습이었다.
***
[드디어 시작된 2041시즌 메이저리그 개막전. LA 다저스의 돈 라이스가 콜로라도 로키스를 상대로 네 번째 사이영상 사냥을 시작합니다.]
[이제 막 31번째 생일이 지난 선수잖아요. 이 정도면 아직 젊은 거거든요? 그런데 사이영상을 이미 세 개나 받고 네 번째 사이영에 도전하고 있어요. 평균 92마일대의 패스트볼, 20-80 레이팅에서 80점을 받은 슬라이더와 60점의 체인지업. 괜히 클레이튼 커쇼의 재림이라 불리는 게 아니예요.]
이젠 한 시즌 10명 이하로 줄어든 200이닝 선발투수.
돈 라이스는 그 몇 안 되는 200이닝 선발투수 중 한 명이었다.
2039시즌, 20댕의 마지막 시즌에 세 번째 사이영을 수상한 그는 여전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슬라이더가 무슨... 분명 잠들기 직전까지 분석하다가 잤는데도 낯서네.’
솔직히 돈 라이스 역시 투구 이닝이 쌓이고 연차가 쌓이면서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어쩔 수 없이 하락하는 중이었다.
한때 94마일 초반까지 나왔던 평균 구속이 지난 시즌에는 92마일 후반대로 떨어졌으니 패스트볼의 위력 역시 덩달아 떨어졌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돈 라이스가 가진 최고의 무기는 슬라이더.
20-80에서 80점을 받은 이 절대적인 슬라이더의 비율을 높여가면서 패스트볼 위력 하락을 커버했다.
체인지업 역시 플러스-플러스 급의 강력한 무기.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에 밀리는 게 억울할 정도로 좋은 공이었고,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사이 적재적소에 활용해가면서 쏠쏠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봐.’
2028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전체 7순위 돈 라이스.
2028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전체 9순위 게일 해니건.
돈 라이스는 트레이드로 얻은 1라운드 지명권을 사용한 LA 다저스에 합류했고, 게인 해니건은 언제나처럼 상위 지명권을 확보한 콜로라도 로키스에 합류했다.
당시 고졸 드래프티 중 1, 2순위로 평가받았던 두 선수가 나란히 NL 서부에서 뛰게 된 것.
그리고 좌타자 게일 해니건은 좌완투수 돈 라이스의 한 끼 식사가 되었다.
“하하하, 미안. 아아, 저 슬라이더를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네. 30이 넘어가도 패스트볼만 떨어지고 슬라이더는 뭐...”
“그래도 6개나 봤으면 됐죠. 돈 라이스한테 첫 타석부터 공 6개 던지게 했으면.”
타석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를 갈았지만, 이번에도 게일 해니건은 삼진으로 물러나야 했다.
공 6개를 던지게 했고, 패스트볼,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최소한 한 개씩은 끌어냈지만, 어쨌든 아웃은 아웃.
이제 타석에는 2번 타자 영도가 들어섰다.
‘보니까 컨디션 관리는 잘 된 것 같고. 100%는 아니지만, 그건 타자들도 다 마찬가지니까.’
일단 영도는 좌완이나 우완을 가리진 않았다.
언더핸드, 사이드암에 특히 강했고, 좌완과 우완은 메이저리그 시절엔 똑같이 약했고, KBO 시절엔 똑같이 강했다.
돈 라이스는 다이나믹한 투구폼과 끝까지 이어가는 디셉션으로 투구 전부터 유리함을 가져가는 투수.
그래도 영도는 공을 오래 지켜보는 타격폼을 장착했기에 다른 타자들보단 그래도 조금은 유리한 부분이 있었다.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꽤나 큰 화제를 몰고 다녔던 '부활한 천재', Y-DO의 복귀 첫 타석입니다. 과연 돈 라이스를 상대로 어느 정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시간은 좀 필요하지 않겠어요? 메이저리그 커리어가 짧은 선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바로 직전 시즌을 KBO에서 보냈으니 메이저리그 수준에 적응할 시간은 필요할 거예요.]
영도도 커리어나 성적, 보여준 것들에 비해 많은 관심을 받는 선수지만, 돈 라이스는 보여준 것들까지도 많은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선수였다.
아무래도 초점이 돈 라이스 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변수가 있다면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다른 선수라면 모를까, Y-DO의 파워라면 낮의 다저스타디움은... 그냥 놀이터겠죠. 신나게 놀다 갈 수 있는 곳.]
[확실히 그건 그렇죠. 다저스타디움은 투수 친화구장이란 인식이 강하지만, 낮에는 평범한 수준이거든요. 특히 홈런만큼은 타자 친화구장만큼 나와요.]
다저스타디움은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투수친화구장이란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구장 크기 자체는 KBO에서도 평균적인 수준으로 작은 편.
구장이 작아 외야 수비가 쉬운데, 언덕 위에 지어져 하강 기류 때문에 홈런까지 억제되어 투수친화구장이 된 것이었다.
하지만 해가 지기 전까지는 상승 기류가 생기기 때문에 구장의 작은 크기까지 겹쳐 타구가 멀리 날아갔다.
그나마 구장이 작아 홈런 외의 장타, 특히 3루타가 거의 나오지 않았기에 파크 팩터는 상위권 정도였지만, 홈런 팩터만큼은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수준.
돈 라이스와 영도의 승부에서 변수가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쿠어스 필드를 홈으로 쓰다 보니 의외로 로키스엔 단순 장타력이 뛰어난 선수는 많지 않아. 컨택이 좋고 파워가 평균인 선수와 반대의 선수가 있으면 전자를 먼저 데려오니까.’
쿠어스 필드 때문에 스프레이 히터와 컨택 좋은 선수를 선호하는 콜로라도 로키스.
그래서 그나마 타격이 강한 팀이란 인식과 달리 순수 능력으로만 따지면 파워 위주의 선수보단 컨택 위주의 선수를 선호했다.
로키스가 원정에서 고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적어도 원정에서 홈런이 줄어드는 이유는 명확했다.
그냥 선수들의 장타력이 그 정도였다.
‘하, 진짜 타이밍 맞추기 어렵네...’
영도는 최선을 다했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공을 지켜보며 집중해서 배트를 휘둘렀지만...
정타를 때려내는 건 역시 어려웠다.
돈 라이스의 슬라이더는 참... 얄밉게도 배트를 피해갔다.
[일단 높이 떠올랐습니다. 중견수 PARK이 따라가는데... 계속 따라가는데... 갔습니다! 펜스 바깥으로 사라지는 타구, Y-DO! 메이저리그 복귀 첫 타석부터 홈런을 신고합니다!!]
[와... 아니, 이게 넘어가요? 아니, 분명히 낮의 다저스타디움은 홈런이 잘 나오는 곳이라고 설명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게 넘어가는 건 반칙이죠!]
[찬란하게 빛나던 Y-DO의 재능이 드디어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메이저리그에 복귀한 포스트 짐 토미, 포스트 지안카를로 스탠튼이 자신의 반짝이는 재능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돈 라이스도 그냥 웃고 마네요. 그렇죠. 이런 건 그냥 웃고 말아야죠, 뭐. 저 힘없이 그냥 높게만 뜬 타구가 넘어가는데 투수가 뭘 할 수 있겠어요?]
‘낮의 다저스타디움에선 멀리 뻗는다고 듣긴 했는데, 이 정도였나...? 내셔널리그는 처음이라 몰랐는데, 이 정도면... 할 만하겠는데?’
투수친화구장이 몰려있다는 인식으로 유명한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하지만 자이언츠의 오라클 파크가 외야를 당겼고, 다저스타디움 이상의 극단적인 투수 친화구장 펫코 파크는 당겨치는 우타 빅뱃들에겐 그렇게까지 불리한 구장은 아니었다.
쿠어스 필드는 말할 것도 없고, 체이스 필드 역시 아주 살짝 타자 친화구장에 가까운 중립 구장 정도.
다저스타디움까지 이 정도라면...
중장거리 타자도 아닌 전형적인 홈런 타자, 3루타를 보기 어려운 우타 빅뱃 영도에겐 내셔널리그 서부지구도 딱히 별것 없었다.
< 복귀 인사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