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짐 >
[스프링 트레이닝을 철저히 실험의 무대로 활용하는 'Mile High City'의 새로운 3루수, Y-DO]
[밀어치기에 집중하는 Y-DO의 새로운 실험. 과연 이번에도 드라마틱한 성장을 보여줄까]
[점점 맞아가는 타이밍. 밀어치기까지 장착할 Y-DO의 장타가 기대된다]
[KBO 출신의 한계?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실패한 유망주의 벌거벗은 민낯]
[혹시나는 역시나... 불쌍한 콜로라도 로키스, 안 그래도 빠듯한 살림에 4년 동안 65M 날리나]
[스프링 트레이닝 타율 0.222. KBO에서, 그것도 고작 한 시즌 잘한 선수에게 너무 큰 돈을 안겨준 건 아닐까]
영도는 스프링 트레이닝 전 기간을 밀어치기의 감각과 타이밍을 익히는 데 할애했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성적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밀어치기의 완성도를 떠나서 밀어치기 딱 하나만 생각하고 들어가면 그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지 못해도 타이밍은 충분히 확인해볼 수 있으니 당길 수 있는 타구는 그냥 다 지켜만 보았다.
당겨서 더 좋은 타구가 나올 만한 공도 웬만하면 다 밀어봤고.
그 결과, 성적은 좋지 않지만, 굉장한 속도로 밀어치기 타이밍에 익숙해질 순 있었다.
스프링 트레이닝은 원래 이렇게 활용하는 기간이었고, 영도는 그 시간을 아주 빽빽하게, 충실하게 채워가며 발전을 도모했다.
그러나 성급한 팬들은 아무 의미도 없는 스프링 트레이닝 성적이 좋지 않다며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고, 여전히 KBO와 동양인을 무시하는 소수의 보수적인 언론에서 건수를 잡았다는 듯 매서운 때리기를 시작했지만...
어디 영도가 그런 걸 신경 쓰는 선수였던가.
[‘절대영도’의 스프링캠프 부진, 숨 고르기인가, 수준 차이인가]
[유영도의 심상치 않은 스프링캠프. 지난 시즌 활약은 리그 수준 차로 인한 착시였을까]
[급증한 우중간 타구 비율... 밀어치기인가, 밀려치기인가]
- ㅋㅋㅋㅋㅋㅋㅋ 개비오 수준... 메이저리그 2할 따리한테 영혼까지 털리는 게 개비오지.
- 개비오 수준이 ㅂㅅ인 건데 미국인 빨던 놈들은 무슨 메이저리그에서도 60홈런 때릴 것처럼 지랄하더라. ㅋㅋㅋㅋㅋ 수준 뽀록 나니까 조용해지는 거 봐라
- 어유, 이제야 겨우 제자리 찾았네. 메이저리그에서 병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게 자꾸 마이크 트라웃 코스프레하니까 존나 꼴 보기 싫었는데 드디어 진짜 자기 자리 찾아가는 거지.
- 스프링캠프가 뭐라고 이 지랄들이지... 아니, 스프링캠프는 그냥 실험하는 시기 아님?
- 그냥 잘나가는 사람 까면서 지들 불쌍한 인생 위로받고 싶은 놈들이지. 그런 걸로는 자기만 더 불쌍해진다는 걸 모르는 불쌍한 새끼들...
- 그만 좀 빨아라. 성적 보면 모르냐? 아무리 스프링탬프라도 적당히 못 해야지, 저 정도로 못하면 그냥 실력임.
- 어이구... 그럼 메이저리그 최고 3루수라는 스펜서 메이어도 커리어 내내 스프링캠프, 시즌 첫 한 달 부진하기로 유명한 선수인데 얘도 KBO 와야 되냐?
- 잘나면 잘날수록 말도 안 되게 까대는 무개념들도 많아지지. 어쩔 수 없어. 메이저리그 복귀 후 첫 시즌이고, 실력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형. 요즘 미국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개념 없는 놈들이 자꾸 건드리는데... 마지막 경기에선 한 번 보여줘야지?”
“별로 신경 안 쓰는데. 어차피 난 1,625만 달러짜리 선수고, 스프링 트레이닝 때 아무리 부진해도 무조건 주전으로 나갈 선수라서...”
“당연히 나도 알지. 형은 성적 스트레스 없을 때 최대한 실험하고 싶어한다는 걸. 아무리 스프링 트레이닝이어도 형처럼 아예 다 내려놓고 실험만 하는 건 어려운데... 특히 KBO에서 이제 막 복귀해서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고 삐딱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선 더더욱.”
“나도 그건 참 다행인 것 같아. 사람들이 그렇게 욕한다고 주변에서 자꾸 전해주는데, 난 관심도 없고 신경도 안 쓰니까.”
특급 유망주 시절, 마이너리그 성적이 워낙 대단하다 보니 미국 언론들은 미국 특유의 호들갑으로 영도가 데뷔만 하면 메이저리그를 씹어먹을 거란 논조의 기사들을 쏟아냈다.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어두운 법.
어쨌거나 유망주에 불과한 선수를 지나치게 띄워주는 것에 불만은 가진 사람들도 있었고, 2040년대에도 완전히 박멸되지 않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불만 역시 있었다.
이후 5시즌 동안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면서 팬들보다 헤이터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한국의 여론도 마찬가지.
어쨌거나 잘나가는 사람들은 그만큼 질투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어떠한 이유에서든 남들과 다른 의견을 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지나치게 압도적인 성적 때문에 조용히 숨어있던 그들은 스프링 트레이닝 성적이 조금 안 좋아 보이자 기다렸다는 듯 물 위로 뛰쳐나왔다.
미국에 있는 선수고, 시간 아깝게 고소를 한다거나 할 것 같지도 않고, 성적에 대한 비판인 것처럼 숨겼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하면서.
어차피 나중에 성적이 좋아지면 다시 댓글을 멈추면 그만이었기에 일단은 자신의 저열한 감정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래도 슬슬 형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줘야지. 개막전에서 딱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마지막 한 경기 정도는 팬들을 위해 쇼맨십 한 번 보여줘야지.”
“난 실험만 끝까지 하고 시즌 시작하면 제대로 달리고 싶은데.”
“형. 어떻게 생각하면 이게 마지막 실험이야. 시즌 중에도 밀어치기만 할 거 아니잖아. 당길 수 있는 건 다 당기고 못 당기는 것만 밀어치려는 거 아냐?”
“... 그렇지? 그렇지. 어디까지나 풀 히터고, 스프레이 히터가 될 생각은 없으니까.”
“그럼 스프링 트레이닝 마지막 경기 정도는 실전처럼 치러봐야지. 형을 위해서도, 팬들을 위해서도.”
“그럼 그렇게 해볼게. 나도 고민 중이었거든. 마지막 경기... 제대로 한 번 해보는 게 좋을까, 하고.”
지금도 훈련할 때는 밀어치기만 실험하지 않았다.
훈련 때는 어지간한 건 다 당겨치고 당겨치기 힘들다 싶은 것만 밀어쳤다.
영도는 진지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정규시즌을 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 상대도 딱 형이 제대로 된 모습을 처음으로 보여주기에 완벽한 상대잖아.”
“아... 에이스? 딱히 신경은 안 쓰는데... 그땐 내가 못했던 거고, 에이스는 날 방출할 만했고.”
“그렇긴 한데 사람들이 관심을 갖잖아. 형이 신경을 안 쓴다고 해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때 임팩트를 주는 게 프로에겐 필수지.”
“음. 설득력이 있네. 어차피 고민 중이긴 했는데.”
콜로라도 로키스의 캑터스 리그 마지막 경기 상대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였다.
영도가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시작한 팀이었고, 동 세대 최고의 유망주로 성장한 팀이었으며,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해 방출당한 팀이었다.
스포츠 팬들은 항상 주목받는 선수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가졌다.
그냥 평범하게 헤어져도 그런데, 영도처럼 방출이라는 과정이 들어가고 방출 이후 그 선수가 성장해서 돌아왔다면...
팬들은 물론이고 언론, 전문가들마저 즐거워하는 게 당연했다.
이런 게 스포츠를 보는 재미고, 언론이든 전문가든 그 스포츠를 좋아하기 때문에 언론인이 되고 전문가가 된 것이었다.
“한 번 분위기 시원하게 전환하고 시즌 들어가자고. 자꾸 사람들이 형 의심하는데 언제까지 그냥 둘 순 없잖아?”
“그래. 네가 그걸 원한다면야. 분위기 전환이라는 것도 중요하긴 중요하지.”
영도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지만, 팬들이 거기에 관심이 많다면야...
굳이 일부러 피할 필요는 또 없지 않을까?
***
“아... 도우, 너랑 이렇게 실전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왜 내 뒤가 아니라 내 앞에 있는 건데?”
“내가 쫓겨났으니까. 간단한 이유지.”
메이저리그에서 쫓겨났다가 화려하게 복귀했지만, 그 기간은 고작 1년에 불과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선수 대부분은 영도와 안면이 있고, 일부는 얕은 친분도 있었다.
오늘 선발투수로 예정된 메이저리그 5년 차 선발투수 믹 고든은 에이스에서도 특히 영도와 접점이 많았던 선수였다.
영도와 같은 시즌 콜업된 두 살 연상의 그는 영도와 같은 2037시즌에 첫 풀타임 시즌을 보냈다.
나이도 비슷하고 루키 시즌도 같이 보냈으니 천하의 유영도도 어느 정도는 친분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존X 부럽네, 진짜. 누구는 이제 겨우 연봉조정 2년 차라 620만 달러 받았는데, 누구는 방출 당했다가 돌아오니까 1,700만 달러도 넘게 받고... 이거 너무 불공평한 거 아냐?”
“그럼 너도 개판 치고 방출됐다가 한국 가서 MVP 받고 돌아오던가. 자신 있으면.”
“... 자신 없지. 메이저리그 3, 4선발이면 차고 넘친다고들 하던데, 그게 어디 쉽나? 그냥 잘하는 정도도 아니고 리그를 씹어먹는 건데.”
“많이 냉정해졌네.”
“... 그거 좋은 말인가? 칭찬인 걸로 하자.”
믹 고든은 좋은 투수고, 대권 도전을 천명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안정적인 3선발로 자리 잡은 믿음직한 투수였다.
영도가 팀 내 유망주 1위이자 메이저리그 전체 유망주 6위, 실질적으로는 독보적인 1위로 평가받을 때, 고든의 순위는 팀 내 3위, 전체 72위였다.
그러나 지난 시즌 전까지 고든은 WAR 3.0급의 준수한 선발, 영도는 WAR 1.0급의 평범한 선수였다.
순식간에 620만 달러와 1,625만 달러로 3배 가깝게 몸값 차이가 벌어졌는데, 여전히 똑같은 태도로 영도를 대하는 믹 고든은 좋은 선수이자 좋은 사람이었다.
“적당히 살살 하자, 살살. 나도 그렇지만, 너도 스프링 트레이닝 성적 같은 건 하나도 안 중요하잖아? 어차피 컨디션 올리는 시기인데 같이 컨디션 올리자고. 승부는 정규시즌에. 오케이?”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주변에서 자꾸 한 번은 제대로 하라더라고. 그래서 오늘은 제대로 좀 해볼까 하는데.”
“아, 왜... 왜 오늘이야.”
“마지막 경기니까. 성적 상관없으니까 편하게 던져.”
“... 성적 상관없긴 한데... 그래도 홈런 맞는 건 좀 싫은데. 한국에서 얼마나 컸는지 확인 한 번 해봐야 하나?”
“나 없는 동안 얼마나 컸는지 보여주던가.”
아무래도 연차가 똑같고 콜업 시기까지 똑같다 보니 믹 고든과 영도는 훈련 중 자주 마주쳤다.
전형적인 로우 리스크-로우 리턴의 완성된 대졸 투수 믹 고든과 전형적인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의 재능 넘치는 고졸 타자 유영도.
둘의 승부는 주로 믹 고든이 승리했지만, 영도가 승리할 땐 굉장한 타구들이 나왔다.
그리고 2년 만에 다시 이뤄진 승부...
‘와... 진짜 장난 아닌데...’
믹 고든은 시즌 개막에 대비해 스프링 트레이닝 초반과 달리 5이닝, 혹은 6이닝을 던지기로 하고 경기에 나섰다.
약속된 마지막 등판이 될 5회.
믹 고든과 영도는 오늘 경기 세 번째 맞대결을 펼쳤다.
[오늘은 Y-DO가 계속 잡아당긴 타구를 만들어내는데요? 스윙 타이밍 자체는 그렇게 늦어지지 않은 것 같은데...]
[아마 정규시즌용으로 모드를 바꾼 것 같은데요? 주로 잡아당기는 타격을 하지만, 조금 더 공을 오래 지켜보고 당기기 힘든 공은 밀어치는 형태로.]
[그렇다면... 굉장한데요? 믹도 절대 가벼운 투수가 아닌데 연타석 홈런이라니...]
[개인적으로 나는 스프링 트레이닝 성적으로 절대 정규시즌을 예상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특히 Y-DO처럼 이미 기량을 인정받은 고액 연봉자일수록 더더욱. 하지만 오늘 경기를 보니까 내 생각보다도 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 같네요. 다른 것 다 떠나서 파워 자체가 상상보다도 더 압도적이에요.]
‘이 정도 해야 1,625만 달러 받는 건가...’
장외로 넘어가는 타구를 지켜보던 믹은 고개를 돌리며 그냥 웃었다.
어차피 스프링 트레이닝이고,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홈런 몇 번 안 얻어맞은 투수가 어딨을까.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신나게 얻어맞아 이번 시즌은 망했다는 소리 한 번은 들어봐야 풀타임 선발이 될 수 있고, 그걸 극복해야 진정한 레귤러가 될 수 있었다.
다만...
‘도우가 저렇게 만족스러워하는 걸 보니까 약이 오르긴 하네.’
영도는 언제나처럼 표정 변화 거의 없이 베이스를 돌았지만, 믹 고든은 그 미세한 변화에서 기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미숙했던 10대의 영도를 보아왔기에 이젠 완숙해진 표정 관리도 읽어내는 것.
‘그래도 기대는 된다. 이제 그 재능을 폭발시킬 때도 됐지. 내가 가진 재능은 우스워 보일 정도로 선택받은 놈인데.’
이제야 겨우 자신의 재능을 터뜨린 Y-DO가, 도우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뒤늦게 영도의 방출이 너무 아쉬워졌다.
역사에 도전하는 그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없게 되었으니까.
< 조짐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