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소 >
[드디어 오늘 Y-DO가 처음으로 스프링 트레이닝 타석에 서게 됩니다. 지난 시즌 KBO에서 65홈런을 터뜨리며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세우고 그 기록을 바탕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Y-DO. 과연 4년 65M이라는 작지 않은 계약 규모에 어울리는 선수일지. 야구계가 주목하는 타석입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KBO 성적을 바탕으로 돌아왔다는 것도 있지만, Y-DO잖아요? Y-DO가 얼마나 대단했어요? 한때 메이저리그를 뒤흔들었던 특급 유망주였고, 여전히 그의 잠재력을 기대하는 팬들이 많아요. 그러니까 더욱 주목받는 거죠.]
[터지면 바로 지안카를로 스탠튼이고 짐 토미라는 소리까지 듣던 내추럴 본 파워 히터죠. KBO에서의 활약을 통해 의외로 선구안이 좋은 편이라는 것도 드러나서 이젠 진짜 짐 토미를 떠올리게 하는 선수가 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파워는 세 선수 모두 엄청나지만, 짐 토미는 정말 출루율이 굉장한 선수였죠. 당시에는 출루율이 그렇게 높게 평가받던 시대도 아니었는데 통산 타율보다 출루율이 1할 3푼 이상 높았으니까요. 요즘 시대에 그런 선수로 성장한다? 어휴... 그럼 바로 MVP고 바로 4,000만 달러예요.]
메이저리그 스프링 트레이닝답게 초반에는 AA의 특급 유망주와 AAA의 콜업이 시급한 유망주, 이젠 정말 마지막 기회인 AAAA급 유망주들이 주로 나섰다.
영도 역시 검증이 필요하다면 필요한 선수지만, 아무래도 연 평균 1,625만 달러짜리 선수한테 스프링 트레이닝 시작부터 나가라고 하는 건 메이저리그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렇게 스프링 트레이닝의 1/3이 지났을 때, 영도의 첫 번째 출전이 확정되었다.
[11,000여 명을 수용 가능한 솔트리버 필즈 앳 토킹스틱을 가득 메웠습니다. 당연히 Y-DO를 보기 위해 몰려든 팬들 덕분일 겁니다.]
[아직 게일 해니건, 키스 가드너 같은 선수들은 휴식 중이고, 바로 전 경기와 비교해도 관중이 훨씬 늘었죠. 이유는 Y-DO의 출전밖에 없고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팬들도 많이 보이지만, 본토 팬들도 전보다 훨씬 많이 보입니다. 아무래도 이번 시즌 로키스가 영입한 선수 중 가장 비싸고 거물급 선수기 때문에 팬들도 관심을 갖는 것 같습니다.]
[이번 시즌 로키스는 불펜 뎁스 강화에 집중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계약을 다수 체결했죠. 그러다 보니 대형 계약이 없었어요.]
영도에 대한 관심이 커진 건 KBO에서의 미친 활약, 이전부터 압도적이라 평가받았던 재능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번 시즌 로키스의 영입 기조도 한몫했다.
게일 해니건, 제러드 홉슨, 칼튼 와그너와의 대형 계약이 아직 남아있고, 연봉조정을 피하고 FA 연차 2년을 포함하는 키스 가드너와의 5년 82M 계약이 이제 막 시작된 로키스는 여유가 없었다.
2선발 브랜든 에레라와 클로저 조던 파인스틴, 우익수 고든 애커슬리도 이번 시즌 직후 연봉 조정 자격을 얻는 선수들이었고.
여기에 불펜 뎁스 강화까지 시급해 계약 규모가 작다지만, 그만큼 많은 선수를 영입했기에 영도 말고는 연평균 1,000만 달러 이상의 선수를 영입할 수 없었다.
앞서 언급한 이유들과 빅마켓과 영입전에서의 승리 등 여러 가지 이유가 겹치면서 영도를 향한 로키스 팬들의 기대감은 자연스레 하늘을 찔렀다.
‘여기서 밀어쳐서 넘길 수 있다면 쿠어스 필드뿐 아니라 웬만한 구장에서는 다 넘길 수 있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영도에겐 그저 평범한 스프링 트레이닝, 시범경기일 뿐이었다.
비시즌 동안 시도했던 변화를 실전에서 실험해보는 기간.
이번 시즌을 앞두고 시도한 변화는 배트플립외에도 더 있었다.
배트플립은 그냥 작은 변화일뿐이고, 진짜는 이쪽.
바로 밀어치는 타구의 증가였다.
로키스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모든 최첨단 과학을 동원해서 쿠어스 필드의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다.
피로 문제는 나름대로 노력했으나 여전히 완전하지 않았고, 오히려 야수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게 알려지면서 기술 도입으로 인한 이득보다 손실이 더 커졌다.
그나마 타구 비거리 문제는 휴미더, 습도조절기의 성능 강화로 효과를 봤지만...
2위 구장의 파크 팩터가 1.2를 찍을 때 1.4씩 찍던 게 1.35 정도로 떨어진 수준.
여전히 자연은 너무 강력했고, 인간은 너무 무력했다.
‘밀어서 평범한 구장을 넘길 수 있으면 타율, 출루율 다 끌어올릴 수 있을 텐데.’
공을 더 오래 지켜봐서 타율과 출루율의 개선을 이뤄내겠다.
밀어치기 허상이 사라진 가장 큰 이유, 밀어치기로는 빠르고 강한 배럴 타구를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치명적인 단점에서 나만은 예외일 자신이 있으니 조금 더 타율과 출루율을 욕심내 보겠다.
스윙 타이밍을 늦춘 이유였고, 쿠어스 필드를 홈구장으로 쓰기에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는 변화였다.
KBO이기에 마음 편히 변화를 시도했던 것처럼, 쿠어스 필드이기에 마음 편히 시도할 수 있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성공적인 결과가 나온다면 그 ‘마음 편한 환경’을 벗어나서도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변화.
목표였던 메이저리그 복귀를 이뤄냈지만, 영도는 여전히 만족을 몰랐다.
[초구 헛스윙. 97마일 빠른 공이 Y-DO의 배트를 끌어냈습니다. 이번엔 약간 타이밍이 늦은 것처럼 보입니다.]
[글쎄요? 이제 한 타석이라 잘 모르겠네요. 약간 늦은 것 같긴 한데, 배트 스피드가 굉장히 빨랐거든요? 어쩌면 의도한 것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어요.]
[확실히 지난 시즌 KBO에서 가장 놀랐던 게 Y-DO의 컨택 능력이었죠?]
[지난 시즌에도 지지난 시즌에 비해 스윙 타이밍을 많이 늦춘 게 보였잖아요? 메이저리그에 있을 땐 몰랐던 배트 스피드와 선구안이 드러났죠. 아직 더 지켜봐야 해요.]
‘역시 메이저리그는 메이저리그야. 이제 23세라고 했나? AA 유망주라던데 1회에 97마일...’
공을 더 오래 지켜보기로 했지만, 타이밍이 아니라 단순 시간만 따지면 KBO 시절보다 짧았다.
평균 구속 차이가 10km를 넘어가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그렇다고 내가 못 친다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는 옛날에도 쳤지.’
AA 유망주의 기량에 놀랐지만, 반대로 자신의 기량을 조금 더 확신하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훈련 중 같은 팀 투수들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실전에서의 느낌은 역시 달랐다.
밀워키 브루어스가 아끼는 선발투수 유망주 3인방 중 한 명이라는데...
97마일짜리 공이 이렇게까지 부담스럽지 않은 건 영도에게 아주 큰 안심감을 느끼게 하는 사건이었다.
‘이 정도면 최선을 다해서 우중간으로.’
그러니까 더더욱 의식적으로 밀어쳐야 했다.
시즌이 시작하면 당겨치고 밀어치고 나발이고 그냥 무조건 잘 쳐야 하는 거고, 내가 원하는 공을 원하는 방향으로 노리고 칠 수 있는 상황은 시즌 중엔 없다고 봐야 했고.
쿠어스 필드가 아닌 곳에서도 밀어서 담장을 넘길 수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선 지금 꼭 실험해볼 필요가 있었다.
결과와 관계없이 실험에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기.
영도는 이 시기를 절대 놓칠 생각이 없었다.
[타구가 계속 1루 방향으로 날아가는데... 이게 의도한 걸까요, 아니면 타이밍이 안 맞는 걸까요?]
[물론, 브루어스의 제이슨도 절대 나쁜 투수는 아니죠. 아니, 오히려 좋은 투수고 뛰어난 유망주예요. 미래가 기대되는 좋은 유망주인데, Y-DO가 타이밍을 전혀 못 맞출 정도로 뛰어난 투수냐. 이건 아닌 것 같거든요?]
[그렇다면 Y-DO가 의도적으로 밀어치는 거라 생각하십니까?]
[개인적으로는 그럴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하는 거죠. 자세한 건 조금 더 스프링 트레이닝이 진행되어야 확인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또 로키스 지역 중계를 맡은 중계진인데 의도적인 걸로 해달라고 기도라도 해야지, 괜히 부정 타요.]
아무래도 타이밍을 잡는 게 쉽진 않았다.
KBO에서 영도를 겁낸 투수들의 계속된 바깥쪽 승부로 밀어치는 타구가 늘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지난 시즌까지의 영도는 분명 풀히터, 당겨치는 타자에 가까웠다.
극단적인 수준에서 평범한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그래도 당겨치는 타구 비율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높았다.
물론, 이번 시즌에도 스프레이 히터가 되겠다는 생각까진 없었다.
그저 필요할 땐 밀어칠 줄도 아는, 풀히터 중에서 당겨친 타구와 밀어친 타구 비율의 차이가 적은 라이트한 풀히터로 변신하려는 것.
다만, 어쨌거나 커리어 내내 당겨치기 위주의 타격을 해왔던 만큼 이번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에는 밀어치기에 집중해 볼 생각이었다.
‘아! 이건가? 이 타이밍인가.’
[걸렸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우익수 방면! 멀리, 멀리 날아가서... 넘어갑니다! 멋지게 넘어가는 Y-DO의 타구. 밀어친 타구임에도 우측 담장을 훌쩍 넘어갔습니다.]
[역시... 역시 Y-DO의 파워는 참... 밀어치는 게 익숙하지 않아 보이거든요? 실제 스탯으로 봐도 밀어치기에 익숙한 선수는 아니고요. 하지만 역시...]
밀어치기 타이밍이 아직 낯설긴 하지만, 투수와의 수준차 덕분에 타이밍이 안 맞았을 뿐, 헛스윙까지 나온 건 아니었다.
타이밍이 흐트러진 건 영도의 실험 때문이었고, 투수의 공이 위력적이어서가 아니었기에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다.
물론, 인플레이 타구가 나오는 게 예견된 결과고, 그 타구의 결과는 또 다른 이야기인데...
결과는 홈런이었다.
‘이 정도면... 30개 구장 중 절반 가까이는 우측 담장도 넘길 수 있겠는데.’
애리조나에서 펼쳐지는 캑터스 리그.
애리조나는 사막이 많은 건조한 지역이고, 건조한 지역에서는 타구 비거리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홈구장 체이스 필드는 한때 쿠어스 필드 다음가는 홈런 팩터를 기록하곤 했다.
하지만 휴미더를 사용하면서 중간 정도로 내려갔고, 캑터스 리그에서도 휴미더를 사용했다.
로키스의 스프링 트레이닝 구장 솔트리버 필즈 액 토킹스틱은 체이스 필드와 비슷한 크기의 구장이었고, 휴미더를 사용하는 구장이었기에 홈런 팩터로 따지면 중간 정도 수준이라고 볼 수 있었다.
“예에! 비공식이지만, 어쨌든 첫 홈런! 첫 실전 투입 첫 타석부터 홈런이라니... 분위기 좋은데?”
“그러게. 어떻게 결과가 잘 나왔네.”
“이러다가 진짜 우리 포스트시즌 가는 거 아냐?”
“하아... 왜 나는 어디 갈 때마다 자꾸 우승, 포스트시즌 진출에 목메는 핵심 베테랑들이 있는 거냐.”
갑자기 손성호가 생각났다.
팀에 합류하자마자 한국시리즈 우승을 요구하던 손성호처럼 포스트시즌 진출에 목마른 해니건도 자꾸 포스트시즌 진출을 요구했다.
“이제 겨우 첫 타석했고, AA 투수한테 홈런 하나 빼앗은 것뿐인데. 나한테 제발 팀 성적 이야기는 좀 나중에 해달라고.”
“아... 이제 겨우 메이저리그 돌아온 선수한테 내가 너무 큰 짐을 지웠나?”
“알아서 최선을 다할 거니까. 내가 최선을 다해서 성적이 잘 나오면 팀 성적은 알아서 올라가겠지.”
“그건 그래. 팀 성적 신경 안 써도 좋은 선수는 WAR이 높아지니까. 오케이. 한동안은 적응할 수 있게만 도와주지.”
“아니, 꼭 도와주진 않아도 되는데...”
“아니지, 아니지. 혹시 어렵거나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내 존재 의미가 바로 그거라고.”
책임감까지 손성호를 떠올리게 하는 게일 해니건...
영도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옅은 미소를 지었다.
홈런을 때렸으니 상황이나 홈런의 가치와는 관계없이 당연히 기분은 좋았지만...
미소의 이유가 그것 하나만은 아닌 듯했다.
< 미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