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다시 처음부터 > (84/200)

< 다시 처음부터 >

“다저스, 로키스, 레드삭스, 컵스 정도가 처음부터 적극적이었던 팀이고, 요즘에는 양키스, 필리스, 에인절스도 꽤나 적극적으로 나오네.”

영도의 이번 시즌 KBO 성적은 그게 아무리 KBO에서 나온 성적이라 하더라도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니 S급 3루수 매물이 적은 시즌이라 하더라도 KBO 성적으로 이번 스토브리그 3루수 최대어로 평가받을 수 있는 거였고.

반대로 3루수는 야수진을 꾸릴 때 생각보다 구하기 어렵지 않은 포지션이긴 했다.

유격수, 2루수, 중견수, 포수의 센터라인이 가장 중요한 뼈대이자 구하기 어려운 포지션이었다.

반대로 KBO 진출 이전 영도의 포지션이었던 1루수, 좌익수, 우익수는 타격 하나만 어느 정도 해주면 나름대로 쓸만 했기 때문에 구하기 쉬웠고.

3루수는 수비도 어느 정도 해줘야 하지만, 좋은 유격수를 가지고 있으면 비교적 부족해도 상관없고, 타격도 좋아야 하지만, 1루수에 비하면 그래도 기준이 낮았다.

그리고 유격수나 2루수 중에 타격이 괜찮고 수비력이 부족하면 3루수로 넘어오는 경우도 많아서 일단 괜찮게 채워 넣기는 비교적 어렵지 않은 포지션이었다.

물론, 팬들까지 불만 없이 만족하는 3루수를 가진 팀은 다른 모든 포지션이 그렇듯 많지 않았다.

하지만 단장이 팀을 꾸릴 때 이 정도면 괜찮다, 적어도 전력 보강의 최우선 순위는 아니다,라고 생각할 만한 3루수는 적은 편은 아니었다.

“양키스랑 레드삭스는 어차피 FA 시장에서 세트고, 에인절스도 결국 다저스랑 세트고... 컵스도 돈은 많지. 3루 자리도 비어있는 편이고. 로키스가 좀 의외네. 중소구단들은 다 빠져나간 것 같은데.”

“그렇지? 그런데 로키스가 제일 적극적이더라고. 스카우트팀 총괄 책임자가 한국에 가장 먼저 들어온 팀이 로키스였어. 다저스가 두 번째고.”

“그러니까. 로키스가 다른 선수도 아니고 나한테 그렇게 적극적으로 달려들 줄은 몰랐는데. 로키스가 장타력 위주 타자한테 이렇게까지 적극적이었던 적 있었나?”

“이야기 좀 들어보니까 다른 것보다 형이 통뼈라서 좋다던데? 쿠어스 필드에서도 안 다칠 것 같다고...”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는 어떤 한 팀이 어떤 선수에게 욕심을 낸다, 싶으면 나머지 한 팀 역시 바로 영입전에 뛰어들었다.

그 선수를 진짜로 원하든 말든, 상대의 영입을 파토내기 위해, 적어도 상상 이상의 지출을 끌어내기 위해 무조건 영입전에 뛰어드는 것.

그래서 이 팀이 진짜로 나를 원하는 것인지 판단하는 게 쉽진 않았다.

LA 에인절스는 LA 다저스에게 성적이나 인기에서 꽤나 밀리지만, 그래도 연고지 라이벌이었다.

또, 같은 LA 연고이기에 원래부터 한국에서 인기가 많았고, 1년 만에 KBO 최고의 스타가 된 영도를 욕심내는 게 당연했다.

여긴 양키스-레드삭스 라이벌리와 달리 두 팀의 제안만 보고 선택해도 문제는 없었다.

로키스가 놀란 아레나도 이후 10년째 3루수 때문에 고민한다면, 컵스는 20년째였다.

컵스에는 염소의 저주를 깨고 108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안긴 MVP 3루수, 크리스 브라이언트가 있었다.

서비스 타임 꼼수로 데뷔 때부터 구단과 사이가 틀어졌던 그는 FA 자격 획득이 가까워질수록 연장 계약 의사가 없음을 드러냈고, 결국, 2020시즌 중 트레이드로 팀을 떠났다.

그리고 컵스는 ‘염소의 저주’를 깨뜨려 준 크리스 브라이언트를 떠나보내면서 ‘KB의 저주’를 얻었다.

20년 동안 평균 이상의 3루수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

10년 정도 전부터는 “메이저리그 3루수 몸값은 컵스가 다 올려놓는다”는 말까지 있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그냥 웬만한 포지션은 전부 보강해야 하는 팀이었다.

돈도 많은 팀이고, 팀 연봉 순위도 TOP 10 안에 드는 팀이지만, 전력은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에서도 최하위나 겨우 면할 수준.

연봉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면 합류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역시 영도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많은 돈 + 인내심 없는 구단주 + 인내심 없는 단장 + 인내심 없는 팬덤이 더해져 조금만 부진하면 바로 새로운 경쟁자가 영입되었고, 영도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안정적인 주전 확보에 언제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팀이었다.

로키스는 중소규모의 구단이었고, 그래서 뭔가 마음이 가는 게 있었다.

이 정도 규모의 구단이 양키스, 레드삭스, 다저스, 컵스 등의 빅마켓과 마지막까지 경쟁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피로도 상승과 부상 위험 등의 문제가 마음에 걸리긴 했는데, 적어도 영도는 예전부터 다른 건 몰라도 건강에는 자신 있었다.

로키스에서 뛴다고 모두가 유리몸이 되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회사에서 알아서 잘 협상하겠지. 너는 어떻게 되어가는지만 잘 듣고 전달해. 내가 말한 것만 잘 지켜달라고 그쪽에도 전달하고.”

“안정적인 주전 확보가 1번, 같은 의미에서 마이너 강등 거부 조항이 2번. 트레이드 거부 조항은... 필요 없다. 차라리 입지가 약해지면 트레이드 되어서라도 출전하는 게 낫다. 맞지? 옵션은 적당한 수준까지 받아들일 수 있고.”

“그래. 1, 2번이 중요한 거고, 나머지는 그냥 별 상관 없다는 뜻이야.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상관없다. 옵션도 말도 안 되는 수준만 아니면 괜찮아.”

“내가 형을 모를까. 1번 조건이야 어떤 선수든 마찬가지고, 마이너 거부권은 어차피 형도 서비스타임 3년 이상이라 어렵진 않을 것 같은데. 2년만 더 채우면 자동으로 생기는 거 2년 먼저 달라는 것뿐이니까.”

다른 KBO 출신 선수들과 달리 이미 메이저리그에서 서비스타임 3년을 채운 영도이기에 다른 선수들보다 계약에서 유리한 부분은 분명 있었다.

지명할당 되었을 때처럼 실력이 애매했다면 그게 오히려 불리한 요소가 되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특히 서비스타임 3년 차부터 지명할당 되었을 때 마이너행 대신 FA 자격을 얻을 자격이 생겼고, 5년 차부터는 아예 마이너행 자체를 거부할 자격이 생겼다.

KBO 출신 선수들이 마이너 거부권에 얼마나 목을 매는지, 그걸 얻지 못했을 때 어떤 상황이 발생하는지 생각해보면 이건 굉장한 이득이었다.

꼭 KBO 출신 선수가 아니어도 마이너 거부권의 중요성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어디 가는데? 또 에드가 인스트럭터 만나러 가?”

“응. 협상은 너랑 회사 몫이고, 내 몫은 언제나 야구하는 거니까. 메이저리그 왔으니 또 준비해야지.”

“KBO 갈 때 준비했던 것처럼?”

“그렇지. 그렇다고 그때처럼 이것저것 다 바꾸는 건 아니지만.”

“그래. 이번 시즌엔 무리하지 마. 이동 거리만 몇십 배인데... 아무리 형이 금강불괴여도 이젠 미래도 준비해야지.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알았다, 알았어. 안 그래도 에드가 코치부터 그러던데. 메이저리그 시즌 준비는 KBO 시즌 준비랑 다르게 해야 한다고. 그러니까 야구는 내가 알아서 잘한다니까.”

KBO에서 역사적인 시즌을 보냈지만, 영도는 여전히 만족하지 않았다.

많이 변했고, 자신감도, 자존감도 찾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신에게 냉철한 시선은 유지하고 있었다.

KBO에서 성공했어도 메이저리그 대비는 필요하다.

아니,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해도 그걸로 만족하고 발전을 멈추면 분석되어서 그 이상의 시즌을 보낼 수 없다.

이게 영도의 생각이었고, 은퇴하는 그때까지 끊임없이 발전을 도모하리라 마음먹었다.

선수마다 다르겠지만, 영도는 언론 노출, 야구 외 활동 등을 최대한 줄인 채 야구에만 집중하는 스타일의 선수였다.

물론, 프로선수에겐 팬들의 사랑과 관심이 또 하나의 능력인 만큼 동급 선수들에 비해 불리한 부분들이 생길 테고, 실제로 마이크 트라웃 역시 가진바 능력과 재능에 비해 메이저리그 인기에 기여한 바가 적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그렇게 되어버린 걸 뭐 어쩌겠는가.

야구 인기는 다른 선수한테 맡기고, 영도는 그냥 생긴 대로 살기로 했다.

***

“그럼 이번엔 배트 플립 연습이나 좀 해보죠. 작년에는 그럴 여유까진 없어 보여서 이야기 안 했지만, 한국 출신인데 이렇게 배트 플립 못하는 선수는 처음 봤습니다.”

“... ...”

생긴 대로 살겠다고 결심한 게 고작 수 시간 전이었는데...

트레이닝 센터에 도착해 훈련을 진행하던 영도에게 에드가 펜서는 배트 플립 연습을 제안했다.

“배트 플립을 따로 시간까지 내서 연습해야 할 정도인가요...?”

“어지간한 선수라면 그렇게까진 안 하겠지만, Y-DO는 너무 심각합니까요. 무슨 20년 전 야구선수도 아니고, 배트를 너무 소중히 하는 거죠.”

20년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전염병 발발 이후 가장 먼저 프로 스포츠가 재개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그 과정에서 KBO가 미국에서 생중계되었고, 예상치 못한 인기를 끌면서 메이저리그도 부활의 키워드를 KBO에서 찾았다.

중계 기술의 현대화, 응원 문화, 가족 팬 공략 등을 메이저리그에 적용했고, 배트 플립 역시 그때 배워간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이젠 메이저리그에서도 배트 플립이 KBO만큼은 아니더라도 많이 대중화되어 있었고, KBO 출신 타자들은 메이저리그에서 오래 버티진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배트 플립만큼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분명 영도에게도 그런 부분을 기대하는 팬들이 있을 것이었다.

에드가 펜서 입장에서도 자신의 지도로 발전한 선수가 슈퍼스타로 성장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기에 어렵지도 않은 배트 플립 훈련을 배제할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이번 시즌은 지난 시즌과 달라서 크게 공들일 것도 없지 않습니까? 후반기부터 넓어진 스트라이크존을 다시 좁히고 지난 시즌 훈련했던 그대로 다시 몸에 익히기만 하면 되는데...”

“아니, 딱히 배트 플립을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만... 이 타이밍에 시간까지 들여서 훈련하는 게 어색해서 그렇죠.”

“많이들 합니다. 배트 플립 하나 멋지게 해냈을 때, 그 효과는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니까요.”

“팬들이 그런 거 좋아하는 줄은 알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좋아하나 보네요.”

솔직히 못 할 건 없었다.

비록 수십 년 전이긴 하지만, 고교 시절의 영도는 지금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배트 플립 따로 훈련하는 선수”였다.

어떻게 배트를 내던지는 게 가장 화려하고 멋질지, 그러면서도 자연스러울지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선수.

아무리 수십 년 동안 잊고 살았다지만, 그 강렬했던 기억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오... 제가 괜한 말을 했나 봅니다. 저보다도 훨씬 더 예술적인 배트 플립인데요?”

분명 스윙을 최대한 컴팩트하게 줄인 타격폼이고, 스윙 반경 자체가 많이 작은 폼인데...

스윙 후 배트 플립이 더해지자 타격폼 전체가 굉장히 역동적이고 호쾌한 것처럼 보였다.

물론, 영도의 배트 스피드와 파워 때문에 작은 폼에 비해 원래도 이상하게 호쾌해 보이는 게 있었지만...

배트 플립은 그런 착시에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그렇습니까? 사실,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안 했던 거지, 제가 한국에 있을 땐 본고장 한국에서도 가장 멋지게 배트 던지는 선수 중 한 명이었거든요.”

“... 한국에 있을 때면... 중학교, 고등학교 때 아닌가요?”

“그렇죠. 한창 사춘기라 멋지고 화려한 거 좋아할 나이죠.”

“... 그럼 배트 플립은 됐고... 타격폼이나 다시 정리하죠. 후반기가 길긴 길었나 봅니다. 그때 만들었던 폼보다는 확실히 커져 있어요.”

“조금 전엔 어려운 일 아니라더니...”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당장 할 것도 없는데 빨리 끝내놓는 게 낫죠. 전 후반기 폼으로도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거라 생각하긴 하는데, Y-DO가 불안하다니까.”

비록 한 시즌이지만, 영도와 에드가 펜서 사이에는 끈끈한 신뢰 같은 게 생겼다.

첫 번째는 당연히 성적으로 증명되었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가르치는 대로만 하면 좋아지는 게 느껴져서’, ‘가르치기만 하면 뼈를 깎는 노력으로 완벽히 익혀와서’였다.

이렇게 믿을 만한 코치 혹은 인스트럭터가 있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었다.

영도는 신뢰하는 인스트럭터 에드가 펜서와 함께 하는 두 번째 시즌을 위해 언제나처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 다시 처음부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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