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3년 > (82/200)

< 23년 >

[2040시즌 KBO 한국시리즈 4차전]

[고척 티타노마키아]

[서울 타이탄스 3 : 9 서울 제츠]

[9회 말, 서울 타이탄스 공격]

<8번 타자, 홍인주(대타)>

- 아... 씨X... 홍인주한테 대체 뭘 기대한다고 여기서 내보내? 한국시리즈에서 삽만 X나게 파고 있는데...

- 미스터 타이탄스? X랄 X싸고 앉아있네... 다른 팀도 아니고 제츠랑 한국시리즈에서 만났는데 미스터 타이탄스라는 X끼가 이 지X을 한다고? 꺼져, X새끼야...

- 손성호 하는 거 봐라. 손성호는 저렇게 날아다니는데 어쨌든 더 어린 X끼가... 아... 프랜차이즈가 꿀리다니...

-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냐고!! 최근에 아무리 우승 많이 했으면 뭐해!! 제츠한테 한국시리즈에서 처발리는 꼴은 진짜 보기 싫다고! 죽어도 싫어!!

- 하아, 씨X... 질 수도 있지. 질 수도 있는데 4대떡은 X발, 너무 심한 거 아니냐?

무너진 조지 스넬은 결국 타이탄스를 위기에서 구해내지 못했다.

3점에서 더 이상의 실점도 없었고, 어떻게든 불펜 소모라도 줄여주기 위해 8회까지 책임졌지만, 타선이 류종인-강이현-이창우-송하경으로 이어지는 제츠의 필승조를 공략하지 못하면서 3-0, 이변 없이 경기 종료.

마지막 희망까지 꺾여버린 타이탄스.

더 큰 문제는 조지 스넬을 3차전에 소모했기 때문에 4차전에 올릴 투수가 3일 쉰 1차전 선발 요한 도밍게즈 아니면 4선발 오민수밖에 없다는 것.

강한 하위선발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강한 ‘하위선발’이었고, 요한 도밍게즈를 올리기엔 짧은 휴식 기간도 휴식 기간이지만, 1차전 대참사가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요한 도밍게즈가 타이탄스의 명운을 걸고 4차전 마운드에 올랐고... 대차게 털렸다.

시리즈 내내 부진했던 홍인주와 함께 죽일 놈의 역적이 되어버린 요한 도밍게즈...

결국, 9회 말 2아웃 상황에서 홍인주가 대타로 타석에 들어서며 타이탄스의 마지막을 담당했다.

[이번 시리즈 들어 성적이 매우 좋지 않은 홍인주 선수... 타이탄스의 상징, 홍인주 선수가 어쩌면 타이탄스의 이번 시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타석에 들어섭니다.]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남아있는 선수 중엔 홍인주 선수가 맡아줘야죠. 다른 팀도 아니고 서울 제츠와의 최초의 한국시리즈 맞대결인데 4전 전패로 끝나기 직전. 홍인주 선수가 아니면 누가 이 역할을 맡아주겠어요.]

경기가 중계되는 뉴미디어, 인터넷 사이트의 댓글창에는 분노하고 좌절한 타이탄스 팬들로 가득했다.

사실, 타이탄스가 전성기를 달리고 제츠가 무난한 중상위권 강팀 정도에 머문 지도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팬들의 숫자는 제츠가 조금 더 많았다.

이는 홈구장의 홈팬, 원정구장의 원정팬 통계에서 드러났다.

그런데 이번 시즌에는 제츠가 21년 만의 정규시즌 우승을 달성하고, 영도는 65홈런으로 아시아 한 시즌 홈런 신기록을 경신했으니...

타이탄스는 물론, 팬덤 규모 TOP 2로 함께 꼽히는 세일러스마저도 제츠와 적지 않은 격차를 보였다.

그런데 댓글창을 타이탄스 팬들이 점령하다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당연히 이유는 있었다.

“““달리자, 제츠!! 싸우자, 제츠!! 끝내자, 제츠!! 무!!적!! 제츠!!””” 

“““서울의 자존심, 서울!! 제츠!! 신화를!! 창조하라!! 서울!! 제츠!!”””

제츠 팬들은 이미 집에 있지 않았다.

잠실 올림픽 파크에 3만여 명, 그리고 수십 배에 달하는 팬들이 근처의 제츠 서포터즈 펍을 방문하거나 일반 펍을 빌렸다.

제츠의 23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같은 팬들과 함께 만끽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댓글창에 제츠 팬들의 숫자가 급감할 수밖에 없었다.

[20세의 윤한태가 23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이 걸린 중요한 4차전 선발로 나와서 5이닝 2실점 호투를 펼쳤습니다. 마운드를 이어받은 건 제츠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해 10년 차가 된 강이현 선수였습니다.]

[제츠의 1라운더 유망주 출신, 실망스러웠지만,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놀라운 호투로 21년 만의 정규시즌 우승을 안긴 김동구 선수가 또 1이닝, 제츠의 차기 클로저인 22세의 이창우 선수가 또 1이닝, 그리고 34세의 베테랑 클로저 송하경이 또 0.2이닝을 던졌죠. 그리고 마지막 아웃 카운트...]

[서울 제츠가 대체 언제 이렇게 강팀이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신구의 조화, 신구의 재능, 기량들... 당연히 완벽하진 않지만, 완벽에 한없이 가까워진 모습입니다.]

[이번 시즌 제츠의 우승을 유영도 선수, 단 한 선수의 힘이라며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긴 있어요. 하지만... 감히 장담하건대 향후 10년간 제츠는 강팀일 겁니다. 우승을 몇 번이나 할진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처럼 포스트시즌에 단골로 진출하면서 지금까지보다 조금 더 끈끈한 팀이 될 거예요.]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제츠가 보여준 모습은 강렬했다.

여름 지나 부진에서 헤어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유영도가 빠지면 다시 이전 시즌의 모습으로 돌아갈 거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만큼 영도의 영입 효과는 상상을 초월했고,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영도가 없었다면 서울 제츠의 정규시즌 우승도 없었다는 걸 부정할 순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직행한 한국시리즈.

한국시리즈에서 보여준 제츠의 모습은 정규시즌과는 분명히 달랐다.

정확히는 시즌 막판부터 달라진 모습들이 보였다.

윤무열, 조명근이 나가떨어지고, 김동구가 정신을 차리면서 남은 선수들끼리 십수 년 만에 처음으로 같은 목표, 우승이라는 목표를 같이 바라보며 하나가 되어 달린 서울 제츠.

그 과정에서 여전한 기량을 유지하는 손성호, 한영훈 등의 베테랑과 윤한태, 류종인, 이창우, 어경준 등 팬들을 놀라게 한 특급 신인들의 등장도 이어졌다.

결국, 체력 소모가 있긴 했지만, 어쨌든 놀라운 페이스로 레이더스, 에이스, 마지막에는 매지션즈까지 격파하고 올라온 타이탄스를 4-0으로 스윕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런 팀이 갑자기 영도 하나 빠졌다고 예전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되는 게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지금 이 타이밍에서 그럴 거라 말할 수는 없었다.

그 순간 X문가처럼 보일 테니까...

[쳤습니다! 너무나도 중요한 타구!! 이 타구는 3루수 유영도 선수의 글러브에 안착합니다!!]

홍인주의 맥없는 내야 땅볼 타구는 영도의 글러브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 순간을 가장 간절하게 바라왔던 손성호는 지명타자였기에 덕아웃에 앉아, 아니, 초조하게 서 있다가 1루로 송구하기도 전에 덕아웃을 박차고 나와 그라운드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덕아웃의 다른 선수들, 심지어 외야수들도 마찬가지.

홍인주는 거북이었고, 영도의 수비는 이제 KBO에선 흠잡을 게 없을 만큼 믿음직했다.

제츠 선수들 모두 이미 우승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걸로 내 야구인생의 한 장면이 끝나는 건가.’

KBO에서 보낸 2040시즌은 야구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한 시즌이 될 것이다.

영도는 이미 오래전부터 확신하고 있었다.

이번 시즌의 성공을 기점으로 분명 큰 변화가 있으리라는 것을.

그런 기념적인 시즌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플레이.

영도의 오른손에서 공이 떠났다.

[천천히 여유롭게! 정확하게 1루로!! 아웃! 아웃입니다!! 2040시즌 KBO의 챔피언은 서울 제츠입니다!! 23년 만에 다시 한 번 KBO 챔피언 자리를 차지한 서울 제츠!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정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서울 제츠를 응원하는 팬 여러분! 서울 제츠가 드디어! 다시 한 번! 챔피언의 자리에 오릅니다!!]

[기어이 해내네요! 드디어 해냈어요. 그렇게 오랫동안 원하고 또 원해왔던 순간인데, 드디어! 드디어 서울 제츠가 23년 만의 우승을 이뤄냈습니다.]

‘와... 성호 선배는 분명 울 거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저 정도까지 울 줄이야...’

우승이 결정되는 순간, 제츠의 모든 선수들과 모든 코칭스태프들, 심지어는 프런트 직원들, 응원단장, 치어리더, 라커룸 및 장비 관리자 등 모든 관계자들이 기뻐서 펄쩍 튀어 올랐다.

선수들은 순식간에 마운드로 몰려들어 다 같이 얼싸안고 기쁨을 만끽하다가...

손성호가 눈물을 터뜨리면서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되었다.

손성호를 시작으로 조규영, 우희운, 류종인, 윤한태 등 적지 않은 선수들이 눈물을 보였다.

한영훈, 김원상 등 필요 이상으로 활발한 선수들 역시 이들을 놀리는 듯하면서도 뭉클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고.

특히 손성호는 말 그대로 폭풍 오열.

벅차오르는 감동에 그냥 눈물을 흘리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폭풍 오열이었다.

성인 남성이 오열하는구나, 수준이 아니라 성별, 나이, 사회적 체면 이런 것 다 관계없이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에 가까운 폭풍 오열.

그것만 봐도 그동안 손성호가 겪어왔던 마음고생과 우승에 대한 갈망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선수에겐 우승이라는 게 저 정도 의미인 건가. 아니... 거의 반 이상이 우는 것 같은데, 내가 이상한 건가.’

우는 선수가 절반 이상, 그리고 나머지 절반도 눈물만 흘리지 않을 뿐, 그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얼마나 벅차하는지를 확인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물론, 우승은 당연히 기쁜 일이었고, 영도 역시 기뻤다.

하지만 감정이 그들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감정이 따라가지 못해 뭔가 뻘쭘해지다 보니 그냥 주변 선수들을 구경하며 분석 중이었다.

‘... 감독님도 울고 계시네. 코치님들도 대부분 울고 계시고... 제츠 출신이 꽤 많다고 듣긴 했는데... 정말로?’

선수들뿐 아니라 환갑이 넘은 구승배 감독과 중년의 코치들까지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분위기...

영도는 이 분위기가 꽤 낯설었다.

하지만 꽤나 깊은 인상을 받았다.

시즌 전부터 손성호 때문에 귀에 굳은살이 생길 정도로 우승 이야기를 들었고, 시즌을 치르며 개인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사라짐과 동시에 팀 성적을 조금씩 신경 쓰기 시작했던 것처럼.

‘원정 팬 얼마 되지도 않는데 잠실에서 듣던 데시벨이...’

동료 선수들도 인상적이었지만, 팬들의 모습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원정 경기이기에 오늘 구장을 찾은 제츠 팬은 대략 4, 5천여 명 정도였다.

하지만 올림픽 파크 2만5천여 명의 목소리와 크기가 비슷했다.

언뜻 보기에도 제정신인 사람이 별로 없었다.

개인 성적에서 벗어나면서 팀 성적, 팬 서비스 등을 신경 쓰기 시작한 지금...

팬들의 저런 모습은 또 하나의 충격이자 변화의 계기가 되어주었다.

“고맙다, 고마워, 영도야!!”

“아, 선배... 너무 우는 것 아닙니까?”

손성호는 여유가 있을 때마다 영도에게 고마움을 표현했고, 오늘 역시 광란의 시간이 지난 후 바로 달려와 또 한 번 고마움을 표현했다.

너무 운다고 틱틱대긴 했지만, 손성호는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지어 영도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주었다.

한국시리즈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 그 간절함과 치열함, 기쁨의 눈물은 마지막으로 영도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 23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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